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85
4부 369화(1985화)
1.
호남에서도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활동하기 적절하지 않은 계절이다. 그래서 장사를 함락한 뒤의 태평천국 수뇌부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겨울을 맞아서 군사들을 쉬게 하면서 다음 싸움을 준비할 때였다.
“천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태평천국의 두 번째 수도가 된 장사의 거리는 매일 같이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길가에는 천왕 홍수전의 가르침을 기록한 홍서(紅書)를 읽는 자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태평군 수뇌부가 누구나 가져가서 읽으라고 길가에서 배포한 덕이다.
“타락한 조씨의 하늘은 물러가라!”
“이제 붉은 태양이 세상을 지배한다! 태평천국 만세!”
형주도통사의 착취에서 벗어난 것 하나만으로도 백성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4개월에 걸친 포위전을 치르느라 장사 백성들도 기아에 시달려 큰 피해를 보았건만 뜻밖에도 이들은 태평군을 별로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해방군으로 여겼다.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이 무너졌을 때, 도통사를 비롯한 성내의 유력자들이 창고에 쟁여놓고 있던 식량과 재물만 해도 장사 백성 전체가 1년은 굶주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장사 백성들은 태평군에게 성이 포위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식량이 떨어지면서 기아에 시달렸다. 하지만 진계옥은 백성들이 굶든 말든 창고에 든 양곡을 풀지 않고 군사들에게만 겨우 버틸 정도의 식량을 주었다. 진실이 알려진 건 성이 함락된 뒤였다.
상황이 그랬으니 분격한 백성들이 창고의 은괴를 가져다가 진계옥의 몸 위에 쌓아서 눌러 죽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기들은 석 달 동안 굶주리면서 사람고기까지 먹었는데, 진계옥 주변의 측근과 유력자들은 그 상황에서도 산해진미를 즐겼으니 말이다.
장사에 입성한 천왕 홍수전은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조치를 명령했다. 접수한 창고에서 주민들이 마음껏 식량을 꺼내갈 수 있게 하고, 진계 옥과 그 측근들, 성내의 부자들을 모두 붙잡아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이 마지막 조치에는 약간의 반대도 있었다.
“천왕 폐하. 형양을 함락했을 때는 부자와 향신들을 살려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관대함을 왜 장사에서는 보여주지 않으시는지요. 저들에게 적당한 자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싸움이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태평군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신벌(神罰)에 열중해 있는 건 아니었다. ‘태평천국’이라는 형태로 국가를 칭하게 된 이상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배상제회 시절과는 다르게 더 관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홍수전은 단호했다.
“그대들의 뜻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형양에서는 그자들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바로 성문을 열어 투항했기 때문에 관대하게 처우했다. 하지만 장사는 무려 4개월을 버티며 우리 천군(天軍)에 큰 손실을 입혔으니, 어찌 용서하겠는가.”
승리한 태평군이라고 해서 손해가 전혀 없었던 게 아니다. 태평군은 숫자와 기세에 의한 싸움을 주로 해왔고, 대규모 공성전에 필요한 장비와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20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군사가 3만 명밖에 없는 장사 공략에 4개월이나 걸렸다. 손실도 4만에 달했다.
이것도 투항하는 자에게는 생명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끊임없이 화살로 쏘아 넣고 전군을 동원해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위협한 끝에 겨우 얻어 낸 성과였다. 수성군의 사기가 떨어져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장사는 정말로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버텼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4개월 동안 고생한 군사들도 장사 백성들만큼이나 잔뜩 독이 올라 있다. 그들에게 분풀이를,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확신할 동력을 주려면 그자들을 처형해야 했다.
“그대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곳 장사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고을인지를. 여기는 과거 손견, 황충, 위연과 같은 용장들이 활약했던 곳이라, 주민의 기상이 호탕하고 호걸이 많아 마땅히 폭군에게 맞서 떨쳐 일어날 고장이니라.”
홍수전은 이런 연설로 장사 백성들을 한껏 추켜세웠다. 그리고 장사 백성들에게 추려내게 한 악질적인 부자, 향신들과 형주도통부 고위 인사들 총 2천 명을 일시에 처형해서 민심과 군심을 잡았다. 다만 부녀자들은 처형하지 않고 노비로 삼아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투항한 관군 병사들에게 대한 처우도 갈렸다. 성이 함락되기 전에 미리 빠져나와 투항한 군사들은 예전 관례대로 입교할 기회를 주었지만, 성이 함락될 때까지 버틴 자들은 모조리 묘노로 팔아버렸다. 자비를 베풀 때 투항하지 않은 대가였다.
그로써 만족스럽게 분풀이를 마친 장사는 이제 고요하게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다가오는 봄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하는 시기,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야 했다.
2.
“폐하의 칭호를 천황으로 올리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옳습니다. 어찌 폐하처럼 존귀하신 분의 칭호를 고작 왕에서 그치게 하겠습니까.”
홍수전은 장사를 점령한 뒤에 관제를 정비했다. 육방관속에 각기 대응하는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의 6부를 설치하고 각 부에 정•부•참의 세 승상을 두었다. 그중 가장 선임에 해당하는 천정승상(天正丞相) 호일강(胡一康)이 홍수전의 칭호 문제를 거론했다.
“천하 만민은 군주로서 황제를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이제 천왕이 아니라 천황을 칭하심이 옳습니다.”
조정을 맡은 관리 상당수가 이 주장에 찬동했다. 이들은 투항한 향신이나 유학자 출신이 많아서 조정 운영에 유리하긴 했지만, 그만큼 태평도의 본래 이념에는 미숙했다. 그 부분을 홍수전 본인이 직접 지적했다.
“천제, 천황이라는 호칭은 내 아버지이신 천주님께만 바칠 수 있다. 지금 그대들이 올리는 요구는 내게 불효를 저지르라고 강요하는 것이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오직 천왕, 이 한 가지 칭호만 사용할 수 있다.”
“소….송구하옵니다.”
호일강을 비롯한 유학자 출신들이 움츠러들자, 그것 보라는 듯 배상제회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들이 으스대면서 코웃음을 쳤다. 홍수전이 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귀순하지 않고 각지에 흩어져 저항하는 형주도통부 잔병(殘兵)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얼마 안 됩니다. 많아야 만여 명 정도 될 것입니다.”
장사를 함락하고 진계옥을 죽였다고 해서 형주도통부 관할 지역 전체가 한 번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각지에 있는 작은 진이나 성에서 버티며 태평천국에 귀부하기를 거부한 관군 장수나 관리들이 아직도 상당수였다.
물론 홍수전과 12원수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나서면 그 정도쯤은 간단히 짓밟을 수 있다. 하지만 홍수전은 그런 잔챙이들까지 일일이 잡으러 쫓아다닐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일단 내버려 두라고 했다.
“우리 편에 선 소천병 – 홍수전은 자기 명령을 직접 따르지는 않으나, 태평천국의 대의를 따르겠다고 맹세한 소규모 집단들을 소천병(小天兵)이라고 불렀다 – 들이 계속해 공격하면 잔병 따위가 어찌 오래 버티겠는가. 놈들이 소굴에 틀어박혀 우리 천병을 방해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형주를 비교적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형주도통부가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나라를 상대하는 최전선인 한양도통부는 그보다는 강하리라. 그쪽을 상대하는데 집중하려면 잔챙이들 따위를 상대할 여유가 없다. 수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습니다. 봄이 되면 필시 관군이 사방에서 공격해 올 터, 저들과 맞서 싸울 궁리를 해야 합니다. 잔병들 따위를 처리하는 건 천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천병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남경에서 보낼 토벌군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우신위대원수 소영흥은 이쪽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하자고 주장했다. 토벌군이 태평천국을 포위하고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싸울 때마다 늘 선봉에 서던 그다운 적극적인 발언이었다.
“장사를 얻었으니, 이제 수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양까지는 겨우 천 리도 안 됩니다! 저들은 겁에 질려 있을 테니 수륙병진으로 일거에 몰아친다면 어렵지 않게 성문을 열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건 반대요.”
반대하고 나선 이는 소영홍의 가장 큰 경쟁자, 좌신위대원수 양부귀였다. 이들은 홍수전 밑에서 함께 군사를 지휘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장사 함락 이후로 점점 서로 갈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남 출신인 양부귀는 태평군이 외부로 치고 나가기보다는 호남을 근거지로 하여 귀주와 광서, 사천 등지로 세력을 확장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았다. 직례 출신으로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영홍과 견해가 다른 이유였다.
“우리가 전군을 동원해서 한양을 치러 간다면, 동쪽에 있는 남창(南昌)의 요주도통부군이 바로 장사를 공격해 올 겁니다. 요주도통부군이 오기 전에 한양을 함락하고 돌아와서 방어 준비를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양은 장사보다 방어가 강하면 더 강했지 절대로 약하지 않다. 도시 규모 자체가 장사를 아득하게 능가할뿐더러, 남송 시절부터 북방에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강화한 요새다.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에워싸인 요새라는 말이다.
현재 태평군의 전력으로는 절대로 단시간 내에는 그만한 도시를 함락할 수 없다. 관군이 철갑선이라도 동원해서 병력과 물자를 지원한다면 저지할 방법도 없다.
“장사로 올라오는 장강 수로는 비교적 폭이 좁은 편이라서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양 일대의 수로를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천왕 폐하, 지금의 전력으로 한양을 공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이 대비할 틈을 주지 말고 곧바로 한양을 쳐야 한다고 했잖소!”
소영홍이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애초에 그는 장사를 함락하자마자 그 여세를 몰아 한양을 치자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홍수전이 허락하지 않자, 자기 휘하에 있는 덕성도 출신 군사들만 거느리고 단독으로 한양을 치러 갔었다.
다만 그 공격 시도는 악양을 거점으로 방어선을 차린 한양도통부 군사들을 뚫지 못했다. 4만에 달하는 한양도통부 군사가 악양성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으니, 1만 5천에 불과한 소영홍의 군사로는 그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장비와 훈련이 부족했던 건 덤이다.
“두 달 전, 그때도 병력만 더 있었다면 악양을 간단히 돌파할 수 있었소. 하지만 귀공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실패했잖소! 지금도 마찬가지요. 늦으면 늦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은 작아질 텐데, 왜들 망설이는 거요!”
“우원수, 진정하게.”
홍수전이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소영홍이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반항적인 경향이 있어 다른 이들과 자주 충돌하는 그였지만, 천제의 아들이자 예수불의 아우인 천왕 홍수전 앞에서는 일단 성질을 참았다.
“천하 만민을 해방해야 하는 우리 책무를 생각하면 그대가 서두르는 심정도 알 만하네. 하지만 만사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일세. 아직 천제께서 때를 열어주지 않으셨으니, 참고 준비하여 기다려야 하네. 예수불께서 말씀하시기를, 때는 도적과 같이 오리라고 하셨네.”
본래 그 구절은 구원의 때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올 것이니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고 덕을 쌓으면서 기다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홍수전은 그 의미를 태평천국이 천하를 제패할 때가 오니 다들 기다리라는 뜻으로 해설해서 퍼뜨렸다.
“그리고, 기반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빨리 외부로 나가다가는 곤란한 처지에 몰릴 수 있네.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동쪽의 요주도통부 외에 남쪽의 양광총독부, 서쪽의 청나라 놈들도 있지 않은가.”
“다른 도통부는 그렇다 치고, 북적 놈들이 과연 위험이 되겠습니까?”
“위협이 될수 있지. 얼마든지.”
사천과 귀주 일대가 청나라 조정의 통제를 사실상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청군이 이동하는 것까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홍수전은 청군이 한중과 사천을 거쳐 호남으로 군대를 보낼 수 있다며, 그 위험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대들은 그 험한 길을 어찌 대군이 움직이느냐고 하겠지만, 이미 전례가 있다. 백여 년 전 서나라 말제가 붙잡혔을 때 이미 청군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는가? 한번 해본 일을 또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 나 역시 필요하면 그 길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홍수전은 언명했다. 만약 봉기에 실패하여 후송 관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면 자신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사천이 아니라 운남과 토번의 산길을 통해서라도 몸을 피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태평도의 불씨를 지킬 수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천제께서 가호하시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곳 장사를 얻고 호남을 확보함이 다 주님의 뜻이니, 지금에 와서 어찌 패배와 도피를 생각하겠는가?”
“옳습니다, 폐하! 그러니 어서 한양을…..”
소영홍이 또 공세를 주장했다. 하지만 홍수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원수. 내가 늘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 천병은 물고기일세. 그리고 물고기를 키워주고 숨겨 주는 건 물일세. 아직 형주 바깥에는 우리 천병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물이 충분히 고이지 않았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네.”
호남 백성들의 협력이 없었으면 4개월씩이나 장사를 포위할 수도 없었고 병사와 물자를 보충할 수도 없었다. 홍수전은 그 점을 강조하며 호북을 얻으려면 그쪽에도 더 많은 ‘물’이 고여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본군은 쉬면서 힘을 기르고 말이다.
“우리 천병이 치고 나가면 그 물이 더 빨리 고일 겁니다.”
“마른 땅 위에 고기를 던져 말라 죽게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네.”
소영홍이 끈질긴 만큼 홍수전의 태도도 단호했다. 물론 주변의 의견은 압도적으로 홍수전 편이었다. 그는 하늘의 뜻과 피를 이은 태평천국의 천왕이었으니까.
3.
“피곤하군.”
침전으로 돌아온 홍수전이 괜히 팔을 주물렀다. 소영홍이 원체 강한 성격이다 보니 그가 혼자서 동진론을 주장하는데도 억누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별군을 주어 혼자 활동하도록 내보내 버릴까.’
제대로 군무를 배운 적도 없으면서 천재적인 솜씨를 보이는 그 군재가 퍽 아깝기는 하다. 하지만 다루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 붙들고 있다가는 언젠가 큰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먼저 숙청하기에는 아직 별 잘못이 없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밖으로 보내서 따로 활동하게 만드는 편이 낫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동쪽으로 돌진하여 관군의 역량을 소진시키면서 홍수전이 이끄는 본군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혹시 놈이 새 천왕을 자처하더라도…..”
제거하는 건 간단하다. 소영홍을 따르는 자들은 그와 함께 동쪽에서 최근에 새로 유입된 덕성도 출신들뿐이다. 태평천국의 주류인 배상제회 계열은 절대적으로 홍수전을 따른다.
그자들이 홍수전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외부에 나간 상태라면 무슨 짓을 벌여도 큰 위험은 되지 않는다. 행여 반기를 든다고 해도 그대로 짓밟을 수 있다.
“천왕께 갈아입으실 옷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들라.”
시녀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장사가 함락될 때 잡혀서 처형된 향신들의 젊은 딸과 며느리 중 가장 아름다운 이들 십여 명을 골라 뽑아서 그의 옆에 시녀로 두었다. 순순히 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곧바로 군사들에게 던져주어 노리개로 삼게 했다.
“피곤하다.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라.”
“예, 폐하.”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섬섬옥수로 홍수전의 몸을 안마했다. 부모와 형제가,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똑똑히 보았기에 필사적이었다. 기분이 풀어진 홍수전이 두 눈을 뜨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특별히 너희 둘에게 모두 성총을 베풀도록 하겠다. 침대로 올라가 나란히 누워라. 그리고 눈을 감아라.”
시녀들이 주저하다가 나란히 누웠다. 옹수전이 흐뭇한 표정으로 다가가서는 그들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꾹 참고 살았으니 이제 이 정도쯤은 즐기며 지내도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 시녀들은 자신이 시녀로 거두지 않았으면 부형과 함께 처형되었거나 병사들의 노리개가 되어 비참한 상황에 떨어질 운명이었다. 그에 비하면 천왕의 시첩으로 지내는 게 훨씬 편하고 행복한 길 아닌가?
홍수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시녀들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알몸이 된 채 나란히 누운 시녀들을 보고 키득거리면서 자기도 옷을 벗었다. 그리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