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97
4부 381화(1997화)
17.
병력을 움직이게 되면 꼭 챙겨야 하는 중요한 물품 중 하나가 지도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러 차례 지도를 제작했지만, 지도는 늘 갱신이 필요하다. 지형이라는 게 불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이 흐름을 바꾸고 없었던 도시가 생기고 도로와 철도가 생긴다.
“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임무를 잘 완수하여 우리 조정과 백성이 더 좋은 지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무부 지리국 지도과 정랑 최한기, 육군부 군무국 지도과 정랑 김정호 두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이제 시작하는 『대한국강역전도(大韓國疆域全圖)』,약칭 대한전도 개정판 편찬 작업을 함께 맡아 진행할 실무 책임자들이다.
내무부와 육군부에 별도로 지도 관련 부서가 있는 건 양측이 필요로 하는 지도의 성격에 차이가 있어서다. 민간용 지도와 군사지도는 엄연히 용도가 다른데, 똑같은 지도를 양쪽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덧붙여 말하자면 해도는 해군부 순해국에서 작성한 것을 군과 민간에서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 내무부에 해도를 제작하는 부서는 따로 없다. 지리국 지도과가 담당하기는 하는데, 순해국에서 만든 지도를 받아다 배포만 할 뿐이다.
“장조께서 계시던 시절부터 새 작도법에 따라 지도를 그려 왔으니, 그동안 축적된 자료가 많고 참고할 기록도 많다. 이를 잘 참고하여 일을 진행하라.”
이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지도 관련 업무에 종사한 건 아니다. 내가 대리청정을 수행하던 시절에 관리 명단에서 이름을 보고 곧바로 해당 부서에다 꽂아 넣었다. 선황은 내가 누구를 어느 부서로 보내든 상관도 하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각자 맡은 부서에서 10년 동안 아주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에 미주에 다녀올 때도 둘 다 수행원으로 동행했다. 그런 덕분에 이제는 대한전도 개정판 작업 정도는 책임지고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셈이다.
다만 이 대한전도 개정판 작업은 원래 세계에서 김정호가 제작했던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할 일이 많다. 원래 역사에서의 김정호는 한반도 지역만 정리하면 됐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동서로 3만 리, 남북으로 2만 리에 달하는 방대한 강역을 그려야 한다.
물론 그 넓은 영역 대부분은 대동양 바다다. 하지만 두 대륙에 걸친 넓은 땅과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까지 그려 넣는 건 큰 수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대대적인 개정판 작업은 서양 쪽에서 제작한 지도까지 참고해서 몇 십 년에 한 번씩 하는 중대한 사업이다.
이 사업을 맡아서 진행하는 원방작도도감(圓方作圖都監)에는 참정대신급 인사를 도제조에 앉혀 책임을 맡긴다. 이들 두 사람을 굳이 ‘실무 책임자’로 지칭하는 것도 그래서다.
원래 역사에서와 똑같이 살지는 않던 이들을 굳이 기용해서 똑같은 일을 시키니, 이것도 일종의 자기실현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이 세계는 그 세계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여기에 서도 양헌수와 신헌이 무관으로 활동하고, 최한기와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하고, 김좌근이 외척 노릇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나도 그 궤를 따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궁궐이라도 하나 지어야 하나.’
당백전은 아니지만 새 돈도 만들었겠다, 군제개혁도 하고 있겠다, 새 지도도 제작하겠다…. 왠지 궁궐도 하나 지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조금씩 든다. 이것도 일종의 데자뷔라고 할 수 있으려나….?
18.
도성에는 경희궁 이후로 새 궁궐이 들어서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행궁이나 별궁은 다소 변동이 있긴 하지만, 도성에서는 경희궁이 확실히 마지막이다.
“황실의 위엄을 떨치기 위해서 궁궐 하나쯤 더 지으신다고 해도 안 될 건 없지요.”
사가독서를 끝내고 올해 초에 판내직부사로 올라온 외숙부 김좌근이 부추겼다. 이 대한을 다스리는 태황으로서 궁궐 정도는 열 개가 있어도 아까울 게 없다면서 말이다.
“서울 서쪽이나 동쪽에다 하나 더 지으시면 어떻겠습니까. 듣자니 서대문 앞이 길지라고 하던데 그쪽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 원래 역사에서는 경희궁이 있던 자리잖아. 이쪽 세계에서는 궁궐병에 걸린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지 않았으므로 그 자리에 경희궁도 들어서지 않았다. 서촌의 중심으로서 종친과 돈 많은 양반들의 저택이 즐비한 곳이다.
“거기 사는 백성들은 어쩌고 말이오?”
“나가라고 하시면 되지요. 폐하께서 대궐을 신축하실 땅이 필요하다 하시는데 감히 누가 어깃장을 놓겠습니까?”
“판내직부사는 내가 무슨 걸주라도 되는 줄 아시오. 남의 땅을 함부로 빼앗아 그 자리에 궁궐을 짓다니, 옛 폭군이나 할 일이오.”
하마터면 연산군이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는 폭군으로서 이 나라를 다스린 연산군도, 광해군도 없다. 그러니 폭군의 대명사인 옛 중국의 군주들을 거론할 수밖에.
폭군 소리를 안 들으려면 제대로 돈을 주고 터를 매입하면 되겠지만, 사대문 안의 지가가 얼마나 비싼지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토지 매입에만 수십만 냥은 들어갈 거다.
“짐은 이미 삼지연에 행궁을 짓지 않았소. 그만하면 된 것 아니오?”
“폐하, 면적이 겨우 2백여 칸밖에 안 되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삼지연 행궁은 백두산을 찾는 사람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야 어찌 황실의 위엄을 떨치겠습니까?”
오랫동안 와병 중이던 큰외숙 김유근이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작년 여름에 눈을 감았다. 내가 아직 미주에 있을 때라 한참 늦게 소식을 들었고, 귀경했을 때는 이미 빈소도 다 걷은 뒤였다. 그래서 틈을 내서 묘소에 잠깐 다녀오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김유근이 세상을 뜨자, 이제는 확실하게 김좌근이 장동 김문을 이끄는 영수가 되었다. 다 알다시피 능력 면에서는 김유근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정치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양반이라 가문을 이끄는 일은 훨씬 잘해 나가고 있다.
“황실의 위엄을 떨치려면 백성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새 대궐을 지으셔야 합니다. 사대문 안이 좀 거북하시다면 성저십리 안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리로 택하소서. 남쪽에는 이미 경희궁이 있으니, 서쪽이나 동쪽에 지으시면 어떻습니까.”
“….궁을 새로 짓더라도 서쪽은 안 될 것 같소. 대명관이 랑 비교당하고 싶지 않소.”
천만 냥을 들여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대광실을 능가하려면 2천만 냥은 처발라야 할 텐데, 겨우 그런 일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대한의 1년분 세수 중 ¼이 아닌 가. 그런 큰돈을 궁궐 한 채에 퍼붓다니 말도 안 된다.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동쪽이 좋겠군요. 아차산 밑이 어떻습니까? 아차산을 등지고 한강을 내려다보니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었으며, 지대가 높아 홍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궁궐을 짓는 데 들어가는 인력과 물자를 수로로 바로 운반할 수 있는 것도 유리한 점입니다.”
아차산 밑이라…. 거기 유명한 호텔 있지 않았나. 한국전쟁에 와서 용맹하게 싸웠는데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국 장군 이름을 따서 지은. 한국에서 처음 들어선 리조트 호텔이라고 들었던 그곳. 그 자리라면…..
“용호청 본영이 있는곳이기도 하구려.”
“그렇습니다. 그러니 변란이 일어나더라도 아주 든든한 곳입니다.”
아차산 위에 있는 아차산성은 한양 동부를 방어하는 용호청의 본영이다. 용호청은 과거 무인지변 당시 내 편에서 싸운 전력이 있고, 지금도 그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과시 한다. 뭐, 무위영 빼고 그때 내 편 안든 군영이 어디 있느냐만.
사실 해체 후 재창설하는 형식으로 관계를 끊어내기는 했지만, 무위영이 수어청의 사실상 후신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무인지변이 거론될 때마다 다른 네 군영 쪽에서 무위영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그 주변이 딱히 흥청거리지도 않고 한적한 곳이지만, 폐하께서 궁궐을 지으시면 그 주변에도 사람이 몰리겠지요. 장차 이 한성이 동쪽으로 더 뻗어나갈 때, 그 동쪽 한계가 아차산 밑에 들어선 궁궐일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아차산 쪽으로 가려면 왕십리에서 청계천과 중랑천을 건너야 한다. 여전히 군사 훈련장이나 체육 경기장으로 쓰는 살곶이 벌판을 통과해서 동쪽으로 10리를 곧장 더 와야 아차산이 나온다. 21세기 서울에서는 광진구, 지금은 양주군 고양주면(古楊州面)이다.
21세기 서울에서 이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차 있는 지를 생각하자면 김좌근의 예측은 혜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서울 인구가 지금보다 몇 배 늘어난 수백만 명에 달한 시기의 서울 권역을 이미 내다보고 있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지금 아차산 밑에 거주하는 백성이 몇 호나 되는지 혹시 파악해 두었소?”
“기껏해야 3백여 호도 안 됩니다. 집과 땅을 내놓는 보상금을 두둑이 챙겨 준다고 해도 만 냥도 안 들 것입니다.”
배산임수가 마을을 세우기 좋다고 하지만 그것도 농토가 있을 때 이야기다. 아차산 밑은 산비탈에서 바로 한강이 이어지므로 농토가 별로 없다. 당연히 거주하는 인구도 적다. 지금 살고 있다는 3백여 호도 태반이 용호청에 복무하는 군인들의 가족일 거다.
다만 그 자리에 서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경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원래 세계에서도 그랬고, 내가 여기서 아차산성 순시를 나가 주변을 둘러볼 때도 그랬다. 괜히 현대에 와서 거기에다 그 큰 호텔을 지은 게 아니랄까.
“어떻습니까, 폐하. 아차산 밑에 웅장한 궁궐을 지어 그 곳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시면서 또 동쪽에서 도성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황실의 위엄을 보이시고, 유사시에 도성 바깥으로 피할 수 있는 피난처도 새로 확보하시는 겁니다.”
도성 인근에는 유사시에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시설물들이 이미 여럿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본래 요새인 탕춘대성으로 건축했던 홍제궁이 있겠고, 그 위로 이어지는 북한산성이 있다. 규모나 전력이나, 북한산성은 한양 인근에 들어선 최강의 요새다.
서쪽에는 마포성당과 행주산성이 있다. 마포성당은 명목상으로는 성당이지만 처음 설계할 때부터 요새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지었기 때문에, 필요하면 얼마든지 요새로 전용할 수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수원성과 남한산성이 있다. 그리고 동쪽에는 아차산성이 있고.
김좌근의 제안은 이 아차산성에 궁궐을 덧붙여서 비상시의 피난처만이 아니라 평소 머물 수 있는 거처로도 삼고 장차 서울이 확장될 기반으로도 삼자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도 했다.
“아직 모로족 토벌이 끝나지 않았고, 금과 송으로 군대를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당장 새 궁궐을 짓자고 나서기는 솔직히 조금 어렵소. 그러니 판내직부사는 일단 기본적인 조사만 한번 해보도록 하시오. 비용이 얼마나 들 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등을 말이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최대한 빨리 견적을 뽑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싱글거리는 김좌근의 얼굴을 보니 불현듯 의심이 하나 솟는다. 저 양반, 혹시 고양주면에 땅 잔뜩 사놓은 거 아냐?
19.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덕명이 개봉 일대를 아예 팽개친 건 아니다. 우리가 보낸 구호품과 청나라 각지에서 모은 물자를 수재민들에게 지급하고 홍수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노력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어디까지나 2순 위였다. 1순위는 당연히 후금 원정이다.
후금으로 나간 청나라 군대는 내가 북경에 갔을 때 접반사로 만난 혁정이 직례총독으로서 지휘권을 잡고 있었다. 그때는 호군영 참령에 불과했던 사람이 어느새 직례총독까지 올라가 출세했는지. 나이도 아직 쉰이 안 됐을 텐데.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물러난 고관들이 많았던 탓이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려.”
부황의 사고사 때문에 갑작스럽게 즉위한 덕명은 좀 과도하게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래서 윗자리가 좀 많이 비기는 했다. 점잖게 표현해서 ‘물러난 고관들이 많은’ 거지, 많은 숫자가 처형되거나 관직을 잃고 쫓겨났다. 황족들 도마찬가지였다.
혁정과 그 형인 혁경 – 지금도 군기대신이다 – 은 처음부터 덕명 편으로 확고하게 충성을 바치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 숙청을 기회 삼아서 더 빠르게 출세했으리라. 뭐, 나야 나하고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고위직에 많은 편이 더 낫기는 하고.
“직례총독이 이끄는 병력이 지원이 필요하니 군량을 지원해 달라고…..”
청나라 예부에서 보낸 서신을 보니, 화북의 양곡이 수해 피해를 당한 지역으로 흘러가니 상도에 보낼 군량이 부족하다는 사연이 있었다. 그러니 지원을 요청한다고 했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양곡은 있습니다. 북한 지역의 여러 관고에서 쌀을 끌어내면 30만 석 정도는 여유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재무대신 최승조가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지금 그가 언급한 관고들은 모두 재무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로, 비축한 양곡은 유사시에는 군량미로 사용한다. 그래서 세심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작년과 올해 두 해 연속으로 풍년이 든 덕분에 여유가 제법 있었다.
“다만 전란에 휩싸인 금나라에 곡식을 보내자면 호송대를 붙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 군대가 드디어 금나라의 내란에 개입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그 점을 유념하여 결정을 내려 주시옵소서.”
육군대신 민홍석이 담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담담한 어조 속에 칼날과 같은 긴장감이 서려 있는 것이 내 눈에 빤히 들여다보였다. 물론 나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소. 굳이 다라극근군왕의 군사가 습격하지 않더라도 도적이 나와 우리 양곡을 털어갈 수도 있으므로 군사를 붙이지 않을 수가 없소. 그리고 청나라 예부에서 보낸 서신에 따르면 상도에 있는 청군은 마중을 나올 여력이 없다고 하고.”
많은 곡식을 빠르게 보내려면 철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다행히 고이마혼 측에서 심양에서 상도로 이어지는 철도선을 파괴하지는 않아서 그리로 곡식을 보낼 수 있다. 허나 이것도 아마 기회는 한 번일 거다. 고이마혼이 우리가 상도에 있는 청군에게 식량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장 철로를 파괴하려고 들 테니까.
“그러니 철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 군사들을 배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인 참전까지는 멀지 않을 것 입니다.”
육군제조 이원달도 민홍석과 보조를 맞추어 조언했다. 비록 서양의 최신 군사학의 도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구세대지만, 이런 면에서는 명백하게 상식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오. 우리는 다라순승군왕을 돕기로 했으니.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지켜야 하지 않소.”
상도까지 이어지는 철로는 사실상 우리 철도도감, 아니 철도청 – 작년부터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 의 소유나 마찬가지다.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 후금 조정에서 차량과 철로의 관리를 우리 철도도감에 위탁했고, 사용료만 자기들한테 납부하게 한 지 오래다.
내전이 끝난 이후에 후금과의 교류가 재개될 것을 생각하면 양국 사이를 왕래하는 철로는 꼭 무사히 보존해야 한다. 아직은 철로가 무사하다지만, 어느 편이든 철로를 파괴 할 위험이 없는 게 아닌 이상 결국 우리 병력이 철로를 보호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장 내란이 끝날 게 아니라면 말이오. 어차피 들여보내야 할 병력이니, 일단은 우포청에 속한 순검대 일부를 차출하여 철도 경비에 투입하시오. 그리고 호송대를 동반해서 상도까지 군량을 보내도록 하시오. 필시 상도 주민들도 굶주리고 있을 터, 양을 넉넉히 보내시오.”
청나라 예부는 체면 때문이겠지만 군량만 언급할 뿐 상도 주민들의 식량 사정에 관해서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도에 식량을 공급해야 할 동부의 농업지대나 북부, 서부의 유목지대 대부분이 고이마혼의 손에 있거나 전장이 되었다. 식량이 제대로 공급될 리가 없다.
“그나저나, 올해 겨울에도 우리 백성들은 금나라 모전을 살수 없겠구려.”
작년 이맘때는 내년 겨울이 오기 전에 사정이 풀릴 거라 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은 그만 헛것이 되고 말았다. 모전을 치는 대신 솜이불이라도 더 덮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 모전에 대한 고민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었다. 바로 며칠 뒤, 편전으로 급전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폐하! 묘노 일부가 홍서당에 선동되어 난동을 일으켰사옵니다!”
망할! 결국 다 못 막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