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01
4부 385화(2001화)
3,
영국 공사 애머스트 백작은 갑오년(1834)부터 8년째 한양에서 지내고 있다. 유럽 본국과 여기 사이 거리가 너무 먼 탓도 있겠지만, 한양에 부임한 유럽 외교관들은 대체로 몇 년씩 근무하곤 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야 같은 사람이 오래 있으면 친분도 깊어지고 대하기도 편해지니 좋기는 하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세상 반대편에 있는 한국 주재 공사 자리가 혹시 퇴물들을 보내는 한직으로 취급받는 자리는 아니려나 하고 말이다.
6년 하고 떠난 초대 공사 웰즐리 후작이야 웰링턴의 형이기도 하니까 다르다고 하겠지만, 애머스트 백작은 어떨까. 중앙 정계에서 외면받는 바람에 총리가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 아무도 런던으로 불러주지 않는 건 아닐까. 다만 내 앞에서 늘 당당하게 구는 애머스트 백작의 태도를 보면 딱히 찬밥 신세가 된 건 아닌 모양이다. 한국 주재 공사로 적임자라고 인정받아서 말뚝을 박았는지도 모를 일이지.
“우리 여왕 폐하의 정부에서는 서부 지역에 웅거한 광신도들을 진압할 지원군을 파견하는 문제에 관해 송나라 정부와 이미 양해가 되어있었습니다.”
“알고 있소.”
후송 조정에서 임칙서와 영국 공사 사이의 회견에 관해서 공표한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런 중대한 사안이 영원히 비밀로 지켜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 요지는 우리 귀에도 들어왔다. 파병에 붙은 조건이 무엇인지도.
1년 4개월이면 그 회견 내용이 런던으로 전달되어 의회에서 논의를 거친 뒤 결론을 내고 돌아오기 넉넉한 시간이다. 게다가 지금 총리인 멜버른 자작 윌리엄 램은 빅토리아 여왕의 스승과 같은 존재 아닌가. 그런 사람이 세운 계획을 여왕이 반대할 리 없다.
더구나 이번 파병 계획은 하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들었다. 익문사 주재원들이 스크랩해서 보낸 타임스 지 기사를 읽어 보니, 윌리엄 램 총리의 참전 승인 요청에 관해서 야당인 토리당 소속인 초선의원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비평한 연설이 실려 있었다.
「….시니카는 자국 내에서 아편 유통을 금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해독을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영국 상인들은 그 금지를 무시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깃발을, 누구도 그 영광을 더럽힐 엄두를 내지 못 하는 깃발을 달고 마약을 밀수했습니다.
나는 우리 국기가 자랑스러운 장소에서 자랑스러운 일에만 휘날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타락한 상인들은 자기들의 마약 밀수를 감추는 방패로 우리 국기를 사용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역사가 수십 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시니카 정부가 끈질기게 요구하는 마약 거래 중단 요구를 계속 무시했습니다. 동인도회사가 아편을 팔아서 버는 그 불명예스러운 돈이 회사의 주주들에게 이익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외상이신 파머스턴 경께서는 시니카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동안 시니카에 마약을 밀수한 죄를 갚기 위해, 시니카 정부를 도와 반란군을 진압해 주겠다면서 말입니다.
나는 이번 전쟁이 그동안 시니카인들에게 아편을 팔면서 지은 우리의 죄에 대해 속죄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 반란군들은 정당한 군주의 통치를 거부하고 사특한 사교 집단의 깃발을 내세웁니다. 그런 자들을 토벌하는 건 신의 섭리에도 부합합니다.
이 전쟁이 승리를 거둘 것은 분명하고 그로 인해 얻을 이득도 확실합니다. 더불어서 우리 국왕 폐하와 대영제국이 얻을 명예, 위신, 존엄성의 이익도 엄청날 것입니다.
나는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어디까지 규모가 확장될지 판단할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우리 깃발을 영광스럽게 하는 정의로운 전쟁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원래 세계에서 글래드스턴이 ‘부정한 전쟁’이라고 해서 아편전쟁 개전을 반대하는 연설로 명성을 떨쳤다는 건 나도 기억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되레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으로 글래드스턴의 역할이 바뀌었다. 나비효과가 이런 식으로 나도 되나 이거.
하지만 이 임칙서-엘리엇 회견의 결과는 실제로 의회에서 호평받았다. 후송에다 아편을 파는 상인들과 연계된 의원들은 당연히 그 합의를 깨려고 했지만, 중국에 대량의 기계를 팔 기회를 잡은 공장주들과 연계된 의원들의 수가 더 많았던 탓이다.
다만 다른 나라 반란,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망하든 말든 영국에 별 영향도 없는 시니카 따위의 반란을 왜 영국군이 출동해서 진압해 줘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하는 의원들도 상당수였다. 그래서 출병 동의안은 294대 239, 겨우 55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건 작년 7월의 일입니다. 지금 투표를 다시 한다면 아마 50표가 아니라 250표 정도는 차이가 날 겁니다.”
애머스트 백작의 지적에 나도 동의했다. 영국인들의 태도가 확실하게 달라질 만한 사건이 그동안 있었으니 말이다. 묘노들의 세계적인 일제 반란, 우리말로는 ‘홍적의 난’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Sinica Red’s Riot 라고 불리게 된 이 사건은 영국에도 꽤 피해를 주었다.
영국 본토야 묘노가 없으니까 무탈했다지만, 식민지 중에는 묘노를 쓰는 곳들이 많았다. 특히 호주, 뉴홀랜드에 많은 묘노, 즉 쿨리가 건너가 농장과 항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 쿨리들이 일으킨 반란이 무척 큰 타격을 입혔다.
아니, 가장 중요한 장소를 빠트릴 뻔했군. 영국의 대아시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이 이번 묘노들의 반란으로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심지어 여기는 백인 영국인보다 묘노들의 숫자가 더 많은 판이었고 반란 참여율도 70%에 가까웠다. 그러니 쑥대밭이 될 수밖에.
거기가 어디냐고? 반하지 않은가. 홍콩이지.
붙잡힌 신도들이 자백한 바에 따르면, 저들은 이미 영국군이 관군을 도와 파병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평천국을 공격하는 영국군이 거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큰 장소인 홍콩을 미리 초토화하겠다고 작심하고 일을 벌인 거였고. 우리가 그랬듯이, 영국인들도 벌레나 다름없는 쿨리들의 동태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고, 항만 시설이 반 이상 파괴되고 상품이 가득하던 창고가 줄줄이 불타는 끔찍한 상황을 맞았다. 입항 중이던 배도 불탔다. 인명 피해도 막대했다.
영국인들만 피해를 본 것도 아니었다. 광주가 아직은 주요 무역항으로서 위치를 확보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홍콩의 위상이 갈수록 올라가다 보니 우리 외수사를 비롯한 다른 나라 상인들도 홍콩을 중계점으로 꽤 사용하고 있다. 이들도 고스란히 피해를 보았다.
당시 홍콩에는 동인도회사군 일부밖에 병력이 없어서 바로 진압할 수도 없었다. 마카오의 포르투갈군과 뇌주에 있던 우리 주둔군 일부, 여기에 광주의 양광총독부에서까지 지원군을 급파한 덕분에 겨우 폭동이 가라앉고 고립된 총독과 수비대를 구출할 수 있었다.
“폐하께서도 들으셨겠지만, 홍콩에서 사망한 우리측 인원들만 2천 명이 넘습니다. 재산 피해는 6백만 파운드에 달하고요. 그런데 어찌 의회가 참전을 거부하겠습니까.”
인명 피해는 그렇다고 치고, 재산 피해가 어째 좀 부풀려 진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도 아니니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저건 어디까지나 영국과 후송 간에 해결할 문제니까.
“송나라 조정은 그 피해를 물어줄 수 없다고 했다지.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매우유감스러운 답변이었습니다.”
기왕 오기로 한 영국군이라면 태평천국 진압에 써먹을 대로 써먹겠다고 작정했는지, 후송 조정은 묘노들의 반란은 자기들 탓이 아니므로 당연히 배상 책임도 없다고 주장 했다. 평소 묘노들을 자비롭게 다뤘으면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겠느냐고 도리어 반박도 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배상제회가 후송 내에서도 당연히 같은 날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후송 조정이 영국 측이 배상 요구에 제대로 응대할 정신이 없는 데는 자기들도 그 난장판의 뒤처리를 하느라 코가 석 자인 탓이 크다.
‘그런데 잘 좀 대해주지 그랬냐는 말이 틀린 말은 또 아니라는 게 재미있는 점이지.’
우리 본국에서도 그랬다. 실제로 사업주가 묘노들을 관대하게 대한 사업장에서는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더라도 그 양상이 좀 온건했다. 봉기한 묘노들이 진압하러 출동한 순검대나 병영군과는 싸우면서도 사업주 일가에는 해를 끼치지 않은 사례도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상대와 인종이 다르다 보니 쿨리들을 상대할 때 아예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다. 도덕적인 영국인들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런 인격자들은 홍콩의 부둣가가 아니라 런던에 있다. 그러니 쿨리를 혹독하게 대할 수밖에.
그렇게 지독한 인종차별을 당하던 쿨리들이, 복수할 기회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볼 것도 없다. ‘간을 씹는다’라는 표현이 왜 생겼겠는가? 그러니 홍콩이 그 꼴이 난 것이고. 홍콩이 당한 참상에 비하면 광동, 광서 일대에서 태평당에게 납치당해 처형된 상인이나 선교사 수십 명 정도는 티도 안 날 정도다. 이런 상황이니 영국 의회가 참전 논의에 쌍수를 들고 나서 리라는 예측은 당연하다.
“그래서, 귀국에서는 얼마나 되는 병력을 파견할 생각이오?”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3만 명 정도 파견할 것 같습니다. 인도에 주둔하는 동인도회사군과 본국 정규군이 모두 옵니다. 여기에 다른 나라에서 파견하는 병력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홍콩에 있는 병력이 2천 명 정도니 합치면 3만 2천이 되겠구나. 지금 홍콩에 있는 병력은 반란이 터진 뒤에 태평양 일대에 있는 모든 배와 병력을 집결시킨 것으로, 반란으로 파괴된 항만 시설을 재건하면서 추가로 올 증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선공을 당한 상황이니, 하려고만 하면 지금 보복작전을 시작해도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현지 지휘관이 병력이 부족하다면서 출전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제대로 무장도 갖추지 못한 폭도들을 상대로 왜 그렇게 겁을 먹었는지…. 작년 11월처럼 방심한 채 기습을 당할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싸우러 가는 건데 말입니다.”
“짐이 보기에는 현명한 판단 같소만.”
수십만 태평군을 상대로 고작 2천으로 밀고 들어가는 게 만용 아닌가. 하지만 애머스트는 밀고 들어가지 않는 게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태평군을 지나치게 얕보는 것 같은데, 혹시 본국에서 올 지휘관들도 저런 생각이려나.
“하여튼 3만이라니, 대단하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그만한 병력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편지만 보내 말로만 태평당을 성토하고 있는데.”
남아메리카 쪽에서는 묘노 때문에 입은 피해보다 파병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많을 정도라 그런지 군대를 보낼 기색은 없고 욕만 하고 있다. 누벨 프랑스는 군대를 보내 보복 하겠다고 선언은 했는데, 과연 어떤 군대가 얼마나 올지 모 르겠다. 보낼 여력이 없을 텐데.
가능한 방법이라면 사람만 보내고 보급지원은 우리한테 제공해달라고 하는 걸 텐데…. 과연 작금의 나폴레옹이 그렇게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해달라면 못 해줄 건 없긴 하다만.
미국은 전에 언급했듯 묘노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 적은 묘노가 하필 항만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뉴욕을 비롯한 몇몇 항구에서 난리가 났다. 그리고 홍콩에서 미국 상인들도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봤고, 홍서당에게 살해당한 미국인도 백여 명이 넘어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미국도 파병할 명분과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하려고 하면 파병할 능력도 있다. 물론 능력이 있다고 해서 꼭 그만큼 보내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누벨 프랑스가 아무리 노력해도 파병할 수 있는 병력은 천 명 정도밖에 안 될 거다. 막부 육군도 3만을 못 보낼 텐데 영국군이 3만을 보낸다니 우리를 제외 한다면 가장 대군인 게 맞다.
실제 군대가 몰려오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비난 여론을 끌어낸 건 정말로 홍수전이 이룬 엄청난 업적이다. 이건 의화단 사건에 가까운지, 진주만 기습에 가까운 지 좀 궁금하다. 우리, 청, 일본, 영국, 미국, 누벨 프랑스에 사실상 전 서구를 적으로 만들다니.
뭔가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영국의 최대 경쟁자이자 어떤 일에서건 절대 안 뒤처지려고 하는 나라인 프랑스가 빠지지 않았느냐고?
물론 프랑스도 이번 묘노 사태로 피해를 보긴 했다. 안남에서 봉기한 묘노 일부가 프랑스 고문단과 선교사를 살해했고, 프랑스 동인도회사 소유의 농장과 창고를 불태워서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혔다. 수에즈 운하 공사장도 일하던 묘노들이 부린 난동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홍콩이 날아가다시피 한 영국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이것들도 꽤 큰 피해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번에 군대를 보내지 못할 거다. 왜냐고? 간단하다. 혁명이 또 일어나서 부르봉 왕조가 또 망했거든.
4,
사방에서 부르봉 왕조의 백합기가 끌어 내려졌다. 대신 그동안 금지되었던 혁명의 깃발, 삼색기가 여기저기서 나부꼈다. 그리고 분노에 가득 찬 함성이 그 주변을 메웠다.
“독재왕정 타도하라!”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바리케이드를 쌓아라! 국왕의 군대를 물리쳐라!”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이 포석(鋪石)과 가구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나폴레옹 전쟁 때 쓰던 낡은 총이 벽장 속에서 거리로 나왔다. 납으로 된 가재도구를 녹여 탄환을 만들었다. 모두가 격분했다. 이들은 루이 19세의 통치를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운하 건설에 필요한 비용과 알제리에서 벌어지는 정복전쟁, 이집트와 오스만 중앙정부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에 개입할 재원을 마련하느라 세금은 계속 올랐다. 등골이 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국왕 주변의 왕족들은 사치스럽기만 했다. 세금에 허덕이는 시민들 눈에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50년 전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왕실의 사치가 한몫을 크게 했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시민 여러분! 국왕은 지금이 17세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프랑스를 오직 자신의, 왕가의 영광을 빛내는 존재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가서 보았습니다. 왕가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땀 흘려 일하는 진짜 군주를 말입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른 청년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연설했다. 주변에 모인 군중이 총과 칼을 휘두르며, 무기가 없는 자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환호했다. 청년은 바로 프랑스의 황제로 이들을 다스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샤를 루이 나폴레옹이었다.
“저는 바다 건너에 있는 제 백부님의 이름을 걸고 여러분께 외치겠습니다! 우리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시민들은 이미 50년 전에 잔혹한 국왕의 목을 자르고 공화국을 선언한 전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만세! 공화국 만세!”
“만세! 공화국 만세!”
“삼색기 만세!”
우렁찬 함성이 일대를 채웠다. 흥분한 시민들은 뒤늦게 쳐들어온 정부군에 맞서서 총을 잡고 용감히 싸웠다. 정부군은 그 바리케이드를 끝내 뚫을 수 없었다.
양력으로 올해 2월에 벌어진 이 혁명은 부르봉 왕조를 붕괴시켰다. 보수주의자인 루이 19세는 자기가 일으킨 전쟁과 운하 공사로 국고를 허비하며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선거권 부여 기준이 토지 보유 면적 이었던 게 단적인 예다.
공화주의자나 나폴레옹 추종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도 계속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가 계속되니 시민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혁명이 터지고 말았다.
루이 19세가 충성파 군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면야 이번에도 봉기를 진압했겠지만…. 유감스러운 일이 빚어 졌다. 알제리에서 전쟁이 길어지면서 루이 19세가 상정한 것보다 더 많은 병력이 알제리로 끌려갔다. 전쟁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병력을 뺄 수도 없었다.
결국 프랑스 내부에 남은 병력 규모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공화주의자들과 나폴레옹 추종자들이 일단 손을 잡고 부르봉 왕정부터 무너뜨린 거다. 그리고 대통령제를 채택한 제2공화정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낸 사람 중 하나가 나삼이었다. 34세밖에 안 된 놈‘이 아주 당당하게 자기가 맡은 봉기를 성공시키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정말이지 아주 무능한 건 아닌 듯하긴 하다.
“태후께서 백작에게 주어 보내신 돈이 아주 긴요하게 쓰였을 듯합니다.”
“내 생각에도 그러하오.”
중전도 나삼을 만나는 보았던지라 무척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 진상을 조금 들려주긴 했지만, 못 믿는 눈치였다. 와, 정말 그놈 사람 홀리는 솜씨 하나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