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04
4부 388화(2004화)
7.
아, 미국과 관련해서 특이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이건 옛날에는 정말 일어날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다가 몇십 년 동안 잊고 있었는데, 내가 잊고 있는 사이에 그만 현실이 되었다.
“합중국에서 망명객들이 몰려왔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미국에서 누벨 프랑스로 이주하는 이들은 꽤 많다. 나폴레옹을 숭앙해서 옮기는 사람들도 있고, 순전한 경제적 동기로 넘어가는 이들도 상당수다. 바로 인접한 나라인 데다 비옥한 농토와 풍요로운 초원이 이어져 있으니 말이다. 비록 토지 취득과 관련해서 까다로운 제한이 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누벨 프랑스로 건너가는 사람들 쪽이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들보다는 많다. 그래서 누벨 프랑스의 인구 증가율이 제법 높은 편이기도하고.
하지만 누벨 프랑스를 넘어 우리 미주까지 오는 미국 출신 이주민은 별로 없다. 선교사나 상인들이야 꽤 많이 오가지만, 눌러 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까지 찾아올 동기가 없어서다. 일단 인구부터가 누벨 프랑스의 다섯 배나 되어 괜찮은 땅은 대개 임자가 있다.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보호도 누벨 프랑스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소홀하지 않다. 기독교도 안 믿는 이교도들의 나라이기까지 하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는 우리끼리 이미 끝냈다.
그래서 우리 미주에 이주하는 미국인은 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 특이한 존재가 한꺼번에 7천여 명이나 찾아왔다고 한다. 미주대총관도 전례가 없는 사태에 당혹감을 느껴서 지시를 청한 거지만, 그 보고를 받은 나부터도 황당한 기분 이 들 수밖에 없었다.
“벌을 피하려고 도피한 극악한 범죄자가 아니라면야 받아주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수천 명이나 되는 남녀노유가 대체 무슨 까닭으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우리 땅까지 왔단 말인가?”
“그것이, 합중국 정부가 자기들이 믿는 예수교 종파를 심하게 탄압하기에 부당한 탄압을 피해서 자유로운 나라를 찾아왔다고 하옵니다.”
종교 탄압?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살던 미국인들이 이교도 국가인 대한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 왔다고? 이거 어딘가 모순된 소리 아닌가?
하지만 그때 뇌리를 스치는 역사 지식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1840년대고, 기독교이면서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서 미국 정부와 대중의 맹비난을 받았던 교파, 박해받은 끝에 황무지 취급받는 서부 멀리 떠나 자신들만의 새 터전을 개척한 이들. 이거, 그거잖아.
“미주총관부가 올린 보고에 의하면 저들의 수령은 조셉 스미스라 하는 자이옵고, 교단의 명칭은 ‘후기 성도 교회’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미주에서도 최근에 홍서당이 난동을 부린 바 있어, 이자들도 혹시 그런 자들이 아닌가 하여 폐하께 알리고자 글을 올렸다고 하옵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놈들, 그거잖아. 몰몬교.
“신앙 문제로 합중국에서 관헌과 온갖 논란을 일으킨 끝에 빠져나왔다고 하니, 사교도가 아닙니까? 정착을 불허함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신도 그리 생각합니다. 합중국 백성들이 주로 믿는 개신교는 비록 조상을 대하는 예에서 성현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나머지 분야에서는 딱히 도리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이들이 비판한다니 필시 문제가 심각한 자들일 것입니다.”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 개신교를 호의적으로 평하는 모습을 보다니, 이것도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원래 세계에서라면 이런 모습은 눈 씻고도 못 볼 텐데.
이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 듯하다. 일단 무려 250년 전부터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선비들이 기독교를 익숙하게 대하게 됐고, 미국인•영국인 선교사들도 대한이란 어떤 나라인지 미리 학습하고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니 말이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 본국에 찾아오기 전에 북미주에서 ‘한국 사회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맛을 보고 찾아온다. 그러니 드러내 보이는 교리는 물론 개인적인 품행 면에서도 별로 흠잡을 부분이 없을 수밖에. 조상 제사 안 모시는 문제만 빼고.
그나마 그 제사 문제도 천주교의 본을 받아 ‘조상을 무시 하는 게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모시는 것뿐’임을 상세하게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홍보 수단으로 한성신보(漢城神報)라고, 기독교인들이 만든 냄새가 팍팍 풍기는 제호(題號)로 시보까지 하나 창간했다.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활동한 덕분에 도성 사대부들 사이에서 미국인 선교사들은 ‘조금 이상한 면은 있어도 성실하고 점잖은 양반들’로 통하고 있다. 그 ‘괜찮은 사람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박해받아 쫓겨난 종파라고 하니 얼마나 돼먹지 못한 종자들로 보이겠는가.
다만 나는 몰몬교가 박해받은 결정적인 이유가 교리나 태도가 아닌 일부다처제 때문임을 알고 있다. 미국에 몰몬 말고도 이단 종파가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이 몰몬처럼 박해받지는 않았잖은가. 몰몬은 일부다처가 사회질서를 흐트러트린다고 해서 좀 세게 맞은 거지.
“그대들의 말이 맞기는 맞는데…. 그 문제라는 게 우리 대한에서는 문제가 된다고 하기 좀 난감하다고 생각하오.”
미주에서 보낸 표문에는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교단 간 부진에 대한 신문 조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나라인 한국이라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안심하고 찾아왔다는 언급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내 지시를 받고 그 대목을 다 읽어 본 신하들이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 여자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금언은 예수교라면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도덕률이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많을수록 좋다는 교리를 내세우는 예수교 종파라 니, 너무나 낯설었다.
심지어 지도자 조셉 스미스는 아내를 무려 55명이나 데려왔다고 했다. 불과 36세밖에 안 된 젊은이가 그토록 많은 아내를 두었다는 언급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사교(邪敎)입니다, 폐하! 입국을 금하고 돌려보내심이 옳습니다!”
천주교도인 학무대신 박성일은 절규하다시피 했다. 첩 서넛 거느리는 정도도 아니고 무슨 처가 2개 소대라니 경악할 만하다. 하지만 국상 이종선이 시큰둥한 태도로 한마디 했다.
“기생 50명을 찾아다니며 오입질하는 난봉꾼보다는 처첩 50명을 두고 대신 기생집에 안 다니는 사내 쪽이 차라리 나을 것 같소만.”
삽시간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하기야 일부다처제 – 라기보다는 일부일처다첩제 – 가 아직 자연스러운 이 나라에서 처첩의 숫자를 가지고 몇 명은 되고 몇 명은 안 되고 제한하는 게 웃기지 않은가. 당장 선황만 해도 궁에 들인 후비 와 밖에서 만나 즐기던 애첩의 숫자가 다 합치면 몇 명이었는지 본인도 몰랐던 판인데.
“폐하. 그 교주가 사술(邪術)을 써서 여인들을 현혹하거나 겁박하여 억지로 말을 듣게 한 게 아니라면 굳이 많은 여인을 거느렸다는 이유만으로 추방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일단은 동변 땅 일각을 내주어 살게 하시고, 추후 하는 바를 보아 처결하시면 어떻겠사옵니까.”
법무대신 윤승직이 제안했다.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우리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게 변방인 유타성에 살게 하자면서 말이다.
“유타성은 변방이라 아직 그 인구가 많지 않으니, 그들을 정착시키면 고을을 크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말도 옳소.”
거참, 유타가 몰몬교의 성도가 되는 건 이쪽에서도 마찬 가지가 되려나. 원래 세계에서도 유타주가 발전하는 데는 몰몬교도들이 크게 공헌했다. 그 양반들이 성실하고 근면 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대부들의 몰몬교에 대한 인상도 더 좋아질지 모르지.
그나저나 몰몬교의 극단적인 일부다처 사례를 보면 사회적으로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좀 궁금하다. 부러워들 하려나, 저건 너무 심하다고 하면서 반동으로 축첩제 폐지 같은 주장이 나오려나.
8.
이번 홍서당의 난은 세계적으로 혼란을 초래하기에 앞서 우리 국내적으로도 안 좋은 문제 하나를 추가로 만들었다. 바로 올해 작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평년에 비해서 올해 비가 좀 덜 내리기는 하였습니다만, 평소였다면 이 정도만 내렸어도 그다지 농사에 곤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터인데…..”
“내무, 말을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시오.”
내무대신 김정희가 잠시 입술을 악물더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무척 난감한 목소리였다.
“올해 농사는 흉년입니다, 폐하.”
올해 강수량이 좀 적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수리시설에 모아둔 물로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평소라면 말이다.
문제는 폭동으로 인한 피해였다. 난을 일으킨 묘노들이 수리시설을 파괴한 사례가 있고, 의도적으로 부수지 않았더라도 군사들과 놈들의 교전 도중에 둑이나 수차 등이 우발적으로 파손되기도 했으며, 폭동을 일으킨 묘노 다수가 사살, 체포되면서 노동력도 확 줄었다.
난동에 가담하지 않은 묘노들도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없었다. 지금은 얌전해 보여도 언제 폭도로 돌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묘노가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다.
이런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올해 본국에서는 수확이 대략 1할 이상 줄어들 전망이라고 했다. 목화 같은 상품작물 작황 부진은 일단 미뤄두고, 주곡의 수확만 따져서도 말이다.
물론 유구, 대남, 누손 등 남방에 있는 속령들도 폭동이 일어나서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 상황이다. 하지만 그쪽은 환경이 달라 평소 다기작을 하다 보니 본국보다는 그나마 손해가 적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손해가 적은 남방에서 양곡을 넉넉하게 들여온다면 백성들이 굶주리지는 않을 듯합니다. 작년에 비축한 곡식도 있으니, 크게 걱정은 마시옵소서.”
“기껏 비축한 곡식을 또 헐게 되었구려.”
2년 연속 풍년이 들었던 성과가 이렇게 또 허물어진다. 젠장, 할 수 없지.
“상도에 보낼 양곡은 넉넉하겠소?”
“아직은 괜찮습니다.”
작년 겨울에 북한 지역의 군량 30만 석을 보내면서 시작한 군사원조는 어느새 누계 백만 석을 넘어갔다. 사실상 상도에 주둔하는 청군과 상도 주민 전체를 우리가 양식을 대서 먹여 살리는 상황이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일이 역시나 벌어졌다. 양곡을 운반 하는 열차가 ‘정체불명의 도적들’에게 습격을 받기 시작한 거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동승하고 있던 우포청 순검대는 간단히 놈들을 격퇴했다. 하지만 그런 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도적들은 몇 차례나 말을 타고 몰려와서 열차를 빼앗으려고 했고, 그때마다 순검대원들의 육혈포가 저들을 저지했다. 결국 철도를 보호하기 위해 요소요소에 우리 순검대가 별도로 주둔하면서 우리도 한층 더 깊이 후금 내전에 발을 디밀게 되었다.
“그놈의 승패는 대체 언제 나려는지.”
우리가 본격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탓인지, 당사자들이 다들 의뭉스러워서 그런지 몰라도 후금 내전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원나라 때 쿠빌라이칸과 그의 당조카인 카이두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 30년을 끌었던 걸 생각하면 이정도는 보통 일지도 모르긴 한다. 하지만 보고 있으려니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장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놈들이 전군을 동원해서 회전 한 번 치르고 바로 결판을 냈으면 좋으련만.”
청나라는 작년에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후금 내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중단하지 않았다. 도리어 병력을 증강하기까지 했다. 후금에 들어간 청나라 군사는 이제 대략 13만을 헤아린다. 륵극덕혼 파 후금군까지 하면 이제 그 세력은 15만이 되었다. 후금 최강의 무장인 륵극덕혼까지 있으니, 이 대군으로 결전을 벌이기만 하면 고이마혼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고이마혼은 끈질기게도 결전을 회피하고 있다. 청군이 지쳐서 철수하기만 기다리는 모양인데, 과연 그게 될까.
서부에서도 찰니군이 청군, 두도군을 상대로 열심히 숨바꼭질하는 중이라고 한다. 후자의 양군은 적도 아군도 아닌 상태를 유지해 왔지만, 두도군이 군량과 화약 같은 물자를 청군에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역시 전쟁은 돈이다.
안정적인 수입은 전쟁은 물론이고 사회를, 국가를 유지 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다. 그리고 올 한해는 묘노들의 반란 때문에 그 부분에서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추후로 똑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 요했다.
9.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 앞에서 당당히 밝혔다.
“현재 우리 대한의 전 강역에서 모노들을 다루는 관행은 저들에게 원한을 품게 조장하고 그 결과로 심성을 잔악하게 만들어 언제 난동을 일으킬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러니 지금의 관행을 금지하여 묘노에 대한 대우를 바꿀 것을 명 한다.”
노비제가 완전히 폐지된 지도 벌써 8년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묘노를 거래하는 이들은 묘노들을 묶어두기 위해 온갖 협잡을 부렸다. 그 단적인 사례가 해당 묘노들을 거래 상대 소유의 노비로 기재한 뒤 ‘빌려 오는’ 형태로 부리는 거다. 그러면 법적으로는 그 묘노는 계속 후송에 있는 주인의 노예이며, 이쪽 에서는 해방해 줄 방법이 없게 된다.
영원히 풀려날 수 없는 노예 신세이니 당연히 대우도 일반적으로 혹독하다. 지금 본국에 있는 묘노 20만 명 중 대략 ⅓이 그렇게 임대 형식으로 들어온 노비들이다. 반란에서 가장 끝까지 저항한 것도 그놈들이고.
그 실상을 떠올리니 후송 조정에서 영국 측에 했다는 말이 한결 더 깊게 다가왔다. 평소 묘노들한테 좀 잘해줬으면 그놈들이 그리 난리를 쳤겠느냐는 그 말. 그래서 묘노들이 받는 처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로 했다.
“앞으로, 타국인의 명의를 사용하여 임의로 노비를 소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든 노비를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소유하려면 그 주인이 함께 입국하여 노비가 자신의 소유임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노비가 홀로 입국한다면 그 노비는 즉시 해방한다.”
이건 아주 간단한 논리다. 노비, 즉 노예는 주인에게 예속되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 노비가 주인도 없이 홀로 타국에 건너온다면 그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자기 뜻대로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유민으로 인정함이 타당하다.
이는 앞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묘노만이 아니라 이미 들어와 있는 묘노들에게도 적용된다. 우리 본국만이 아니라 태평양을 둘러싸는 전 속령에 있는 묘노들을 상대로 말이다.
“진즉에 이렇게 했어야만 했다. 묘노도 사람일진대 그 어려움을 살펴서 보살펴야 했거늘, 모두가 짐의 과오로다.”
선황은 복잡한 고려도 없이 노비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나는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묘노 따위에 얽매이기 싫어서 관련 업무를 뒤로 미뤘다. 그 탓에 이번 묘노들의 난이 터지는 데 일조했으니 할 말이 있을 리가 있나.
“폐하. 지금 노비 상태인 묘노의 법적인 주인은 외인(外人)들인데 괜찮겠사옵니까.”
“어차피 다 명의만 빌려준 가짜 주인들 아니오? 행여 자기가 진짜 노비 주인이고 불만이 있는 자가 있으면 3개월 안에 우리 관청에 출두하여 해명하라 하시오.”
“대우를 좀 잘해준다고 해서 묘노들이 갑자기 충실하고 선량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야 관리하기 나름 아니겠소? 내무부에서는 묘노들이 난동을 피우지 못할 방안을 살펴 강구하시오.”
묘노들을 일터에 묶어놓고 싶다면 예전처럼 채무로만 얽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신분까지 노비로 고정해서 아예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건 너무하다. 지난 8년 동안의 실수는 지나간 일이라고 치더라도, 앞으로라도 제대로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