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10
4부 394화(2010화)
17.
전쟁은 전쟁이고, 개발은 개발이다. 그리고 후송 원정이 우리 기둥뿌리를 뽑아야 할 정도 부담을 주는 원정도 아니다.
“송나라 조정에서 군량과 마초는 책임지겠다고 했으렷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우리 원정군의 진군 경로는 육로와 수로의 조합이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건 아니고, 지난한 협상의 결과다.
먼저 주산진에서 항주로 간다. 항주에 상륙해서 육로로 북쪽의 태호(太湖) 연안에 있는 호주(湖州)1)로 간다. 거기서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가서 선성(宣城)2)을 통과하면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장강 연안의 주요 하항(河港) 중 하 나인 무호(無湖)3)로 나간다.
여기서 후송 측에서 준비한 배로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파양호(都陽湖)로 간다. 그리고 호수 동편 파양현에 집결해 호수 서편에 있는 남창으로 간다는 복잡한 경로를 가게 되었다.
“놈들이 수로를 열어주면 처음부터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을.”
“수도를 지나는 수로를 누가 타국 군선이 지나도록 열어 주겠습니까. 이해해 줘야지요.”
영국 정부가 참전 보상으로 요구한 대가 중 하나가 영국 상선이 남경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 즉 남경 개항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장사하러 들어가는 상선과 원정군을 수송하는 함대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호 위할 함대도 붙을 텐데.
후송 조정은 절대 우리 함대가 병력을 싣고 남경을 지나가게 허용할 수는 없다고 버텼다. 다만 보충병을 수송하고 사상자를 후송하며, 전투에서 소모된 탄약과 무기 등을 보 층하기 위한 보급선은 운행할 수 있다. 전투함은 보낼 수 없고 수송선만 왕래하는 조건이다. 결국 맺은 합의가 육로와 수로를 조합한 지금의 경로로 이동한다는 거다. 그나마 이것도 후송 측이 처음보다 많이 양보한 결과였다.
“순전히 육로로 남창까지 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후송 측에서 처음 제안한 경로는 곧바로 육로로 서진, 휘주(微州)4)와 경덕진을 경유해서 남창으로 가는 길이었다. 경덕진은 도자기로 유명한 그 경덕진 맞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이쪽이 더 짧기는 하다. 문제는 그 길로 가는 우리 군사들이 최소 6백 리 길을 주야장천 걸어야 한다는 거다. 항주에서 호주를 거쳐 무호로 가는 철도는 있어도 항주에서 휘주로 곧바로 가는 철도는 없다. 가려면 선성으로 우회해서 가야 한다.
휘주에서 경덕진까지는 철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협궤라서 수송량이 적다. 경덕진에서는 배를 탈 수 있지만, 여기로 들어가는 수로가 좁아서 배도 작다. 그게 무슨 고생인가.
하지만 호주를 지나는 길을 택하면 처음부터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무호에서 큰 배를 타고 바로 남창으로 갈 수 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한 5백 명 정도 보낼 것 같으면 그냥 말 타고 직선으로 달리는 게 빠르겠지. 하지만 5만 대군 아닌가. 게다가 마필과 무기, 차량 같은 장비도 운반해야 한다. 그 수고까지 고려하면 자력 행군은 절대 안 된다. 제대로 된 교통편을 이 용해야 한다.
이 모든 고생이 후송 조정이 수로를 열어주지 않아 우리 함대가 남창까지 직행할 수 없는 탓인 고로, 우리 원정군이 항주에서 남창까지 이동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전장에서 소비하는 모든 군량과 마초, 연료 등은 후송 측이 제공하기로 했다. 당연한 도리 아닌가.
걱정되는 건 강서 지방이 이미 잇달아 터진 반란과 교전으로 황폐해져 있는데 과연 우리 병사들이 필요한 만큼의 양곡과 마초가 조달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후송 조정에서는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과연 어떨지.
하여간 원정군의 보급을 후송 측이 책임지기로 했으므로 우리로서는 큰 부담을 덜었다. 남쪽으로 가는 일본군과 영국군의 보급은 양광총독부가 책임지는데, 우리는 후송 조정에서 직접 책임진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다만 이건 작전구역이 우리는 황실 직할지인 강서성 일대고, 남부전선을 담당한 연합군은 양광총독부 관할 구역에서 싸운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행정부에서 군량 공급을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게 원정에 필요한 우리 부담이 줄어든 만큼 국내에서는 다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생각만 하고 벼르던 사업, 이제 슬슬 추진해야지.
“내년에는 한성부에서 상수도를 건설하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그 진행은 잘되고 있는가.”
18.
무종 시절, 이쪽 세계로 건너온 직후에 내 평안한 뱃속을 위해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려고 하다가 대간들의 반대 때문에 취소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내 용변은 매화틀에 보고 있다. 태의들이 내 변 상태를 보고 건강을 진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때 대간들이 수세식 변기 제작을 반대한 주요 논거 중 하나가 물 공급이었다. 궁인들이 일일이 물을 길어다 변기 물통을 채워야 한다는 점을 가리켜 공연한 수고로 노력을 낭비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그때 대궐 안에 상수도가 들어왔으면 이런 문제로 지적을 받을 일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사정으로는 상수도고 하수도고 꿈꾸기 힘든 상태였다. 그리고 수 백 년 동안 그런 상태가 이어졌다.
그나마 하수도는 개선이 제법 있었다. 중종으로 즉위하기 이전까지 도성의 하수도는 차도 양쪽에다 벽돌로 만들어 놓은 도랑 수준이었지만, 제2차 한성대화재와 무인지변으로 남촌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난 뒤에는 아예 환골탈태 했다.
당시 도성복건도감 도제조는 공부대신 장성준이었다. 장 성준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도성 동촌과 남촌 일대의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하수도도 설치했다. 도로 아래를 파고 벽돌을 쌓아 하수와 빗물을 청계천으로 빼내는 체계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남촌뿐이었다. 하지만 중종 시기 내내 꾸준히 도성의 길바닥을 갈아엎은 결과로 적어도 한성부 내 지역은 하수도가 완비되었고, 그 뒤로 유지도 원활히 되고 있다. 대신에 청계천은 완벽한 시궁창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개선 사업은 한양을 제외한 주요 도시에서도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중종 시기 이후 천축괴질(콜레라)이 몇 차례 유행하면서 하수 처리 체계의 중요성이 세간에 제대로 인식된 덕분이다. 그 뒤로도 한 여섯 번쯤 유행했다던가.
콜레라 발원지인 벵골과의 교류가 긴밀하다 보니 콜레라 유입 자체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콜레라가 퍼져도 사망자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았다. 중종 시절에 상희가 처방을 공개한 황후수 덕분이다.
이런 간헐적인 콜레라 유행은 우리 보건 대책 강화에 도리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괴질에 걸리지 않으려면 하수와 분뇨를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잡히면서 한양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도시들도 하수도를 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상수도를 놓아야지.”
과거, 내가 상수도를 생각했을 때 부족한 기술적 요소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물을 퍼 올려서 공급하는 데 사용할 펌프였고 다른 하나는 배관을 만들 자재였다. 두 가지다 그때 없었던 요소지만 지금은 넉넉하게 있다. 증기기관 양수기와 주철제 수도관이 말이다.
여기에 자연적인 요소도 있다. 한양은 로마가 아니므로 겨울이 되면 수도관이 주철관이든 강철관이든 얼어서 터진다. 이놈의 수도관이 얼어 터지지 않으려면 땅에 아주 깊게 묻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만큼 비용과 수고가 든다.
더불어 사회적 요소도 있다. 수도라는 시설에 대한 필요성을 사람들이 느껴야 한다. 다들 자기 집 우물에서 물 길어 먹는 데 아무 불편을 못 느낀다면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 새로 상수도를 설치하자고 했을 때 동의하고 나설 리가 없지 않은가.
중종 때까지는 그게 좀 부족했다. 이때쯤에는 기술적 요소는 충족이 됐다. 광산 침출수를 정화하면서 물을 정수하는 방법 – 침전, 자갈과 모래를 통한 여과 – 에 관한 기술도 쌓았다. 그러나 상수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 한 인식이 좀 부족했다.
하지만 그 뒤로 백 년이 더 지나면서, 한양에서도 깨끗한 물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이미 도성과 성저십리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중종 시절의 70만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은 거의 120만에 달한다. 예전처럼 살아서는 깨끗한 물이 부 족할 수밖에 없다.
지금 도성 주민 절반은 생활용수로 자기 뒷마당이나 동네에서 길어 올린 우물물을, 다른 절반은 한강에서 퍼온 강물을 사용한다. 고객의 집으로 매일 물을 날라주거나 물통을 실은 수레를 몰고 다니면서 길에서 물을 파는 물장수들 도 성업하고 있다.
“하지만 백성들이나 물장수들이 주로 물을 긷는 마포와 용산 일대의 강물은 배와 사람이 자주 왕래하는 곳인 데다 청계천을 통해 내려간 하수가 섞이므로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보다 깨끗한 상류의 물을 취수하여 정화한 후 관로를 통해 공급할 필요가 있다.”
내년 봄에 기공할 수도국 취수장은 뚝도(뚝섬)에 건설할 예정이다. 그만하면 충분히 상류 쪽이니 청계천 때문에 수질이 오염될 염려는 없다.
대궐에서 우물을 쓰고 바깥에서 물을 들여오지 않듯이 조정 고관이나 종친들도 다들 집에 파놓은 우물물이나 맛이 좋다고 소문난 샘물을 가져다가 먹지 한강물 따위는 먹지 않는다. 그러니 상수도 공사를 그다지 절박하게 여기지 도 않았다.
하지만 도성 백성들이 물 부족 때문에 곤란해 한다는 정도는 이들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상수도 공사 자체가 쓸데없는 사업이라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예상되는 건설과 운영상의 문제점에 관해 지적하는 이들은 여럿 있었다.
“수도시설을 유지하자면 물값을 받아야 하는데, 그 물값을 받는 방법에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소. 각각의 가호에 수도를 일시에 넣고 물을 얼마나 썼는지 정확히 측정해서 물값을 받는 건 어렵지 않소.”
수도에 쓸 수 있는 계량기는 발명했다. 내가 한 건 아니고, 평양에 거주하는 한 기계공이 개발한 물건이다. 역시 풍부한 탄광을 기반으로 무종 시절부터 중공업이 발달한 고장다운 성과다.
다만 처음부터 수도 계량기로 쓰려고 만든 건 아니었다. 화학공장에서 석탄가스가 발생할 때 가스의 양을 재는 기계를 만들다가 가스나 물이나 똑같은 유체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물 흐르는 양을 잴 때도 쓸 수 있도록 개량한 물건이다.
이 계량기를 쓰면 물 사용량을 제법 정확하게 잴 수 있다. 문제는 한성부 내에 거주하는 30만 호에 달하는 각 가호에 수도관을 한꺼번에 매설하고 계량기를 달 수는 없다는 거다.
그래서 생각한 방안이 기존 우물처럼 각 동네에 공용수도를 설치하고 주민들이 공동으로 물값을 부담하게 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 다수가 반발했다. 강물과 우물물은 공짜인데, 그걸 그냥 퍼다 놓기만 하면서 왜 돈을 받느냐고 말이다.
“게다가 누가 얼마나 퍼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물값을 공정하게 물리냐고들 합니다. 각 가호에 무조건 균등하게 물리면 식구 적은 집이 손해를 볼 것이고, 식구 숫자에 따라서 물리면 식구도 적으면서 물을 펑펑 쓰는 자들만 이득을 볼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더니 그 짝이구려.”
수돗물을 공급하기는커녕 아직 수도관도 안 묻었는데, 취수장 공사도 안 했는데 수도요금 걱정부터 한단 말인가. 우리 도성 백성들 왜 이렇게 미래 대비가 빠른가. 학교에서 글자와 셈을 배워서 그런가.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다. 몇몇 시보에서도 수도요금이 얼마나 공정하게 매겨질 것인가를 두고 이미 지면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강물을 공짜로 퍼다 주면서 비싼 돈을 받는 다면 이는 날강도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는 놈들까지 있다고 했다.
“아니, 이놈들은 물장수가 직접 퍼오는 물에 돈을 내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도관을 타고 흘러오는 물에 돈을 내는 건 당연하지 않게 여기느냐? 도관을 묻고 물을 흘려보내는 일은 거저 되는 줄 아느냐?”
취수장을 짓고 수도관을 땅에 묻어 안정적으로 수돗물을 공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상수도관을 깊이 묻으려면 그 자리를 지나는 기존 하수도는 더 깊이 묻어야 한다. 그래야 하수가 상수도에 들어가는 사태가 안 생기지. 그 공사비도 다 돈이다.
그래서 공무부 수도국에 영국인 기술자도 세 명이나 기술고문으로 고용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2백여 년 전부터 민간 수도회사가 수로까지 파 가면서 수도사업을 하고 있어서다.
물론 그쪽이야 원체 물이 별로 안 좋고 템스강이 정말 똥물이다 보니 우리와 사정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수도사업과 관련해서는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참고할 부분은 적당히 참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장수들의 반발도 있사옵니다. 나라가 자기들 밥줄을 빼앗아 간다고 아우성치니, 이들 역시 적당히 다독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도 시보에서 다루는 화제 중 하나다. 한양에서 영업하는 물장사 숫자만 기천 명에 달하다 보니 이들의 동향은 아주 중요한 사회적 현상 중 하나기 때문이다.
물론 수도 보급률이 100%가 된다면 물장사라는 직업은 소멸할 거다. 하지만 그 100%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장사들을 적당히 진정시킬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때까지는 물장수도 공용우물과 수도와 더불어서 공존 할 수밖에 없다. 생각 같아서야 물장수들의 항의는 무시하고 우물은 뚜껑을 덮어 잠가버리고 수돗물만 쓰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나라가 물가지고 백성들을 등쳐먹는 다고 난리가 나겠지.
“그럼 됐다. 공용 수도전(水道栓)에 수도국 관원을 두고 물을 퍼가는 이들에게 물의 양에 따라 직접 돈을 받게 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
이건 벌어들이는 물값보다 인건비가 더 나갈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던 방법인데. 하지만 동네 단위로 물값을 부과하는 게 반발이 심하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수도가 설치되면 청계천보다 하류 쪽에서는 강물을 퍼다 쓸 수 없도록 금지한다. 그 더러운 것이 섞이는 줄 뻔히 알면서 어찌 퍼다 먹으라 하겠는가.”
서울 면적이 넓어지면서 청계천 하나만으로는 하수도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포 쪽으로 새 하수도를 팔 참이니 더더욱 그쪽 물은 식수로 쓸 수 없고.
어쨌든 일단 한성에서부터 상수도를 깐다. 그리고 하수도 때도 그랬듯이 천천히 지방으로 확산시킨다. 그러다 보면 전국으로 퍼지게 되겠지.
19.
겨울을 맞이하는 눈발이 날리는 와중에 미주에서 연락선이 도착했다. 열두 척이나 되는 선단이 도착했다는 보고에 왜 그리 많이 왔느냐고 했더니 대답이 놀라웠다.
“신불랑과 합중국에서 태평당을 토벌하러 나선 의군이 배를 모아서 건너왔다고 하옵니다. 그 숫자가 무려 2천에 달합니다. 전체 인원은 6천인데, 그중 1진이 먼저 왔다고 하옵니다.”
“6천이라고? 허, 짐이 예상한 바보다 두 배를 넘는구나.”
전체 병력은 누벨 프랑스군이 2천, 미군이 3천, 기타 CEA 소속 병력이 약 1천이고 이번 1진은 누벨 프랑스군 중심이라고 했다. 상선 열두 척에다 사람과 짐을 잔뜩 싣고 온 행태를 보니 저들이 정말로 단단히 각오하고 오긴 한 모양이구나 싶다.
“이들을 내년 봄까지 어디서 지내게 해야 하겠습니까, 폐하.”
“언제 도착할지 미리 알았다면 굳이 힘들게 본국까지 올라올 것 없으니 대남도로 가라고 해서 거기서 겨울을 나도록 했겠다만……”
어차피 항주에 상륙해서 내륙으로 들어간다. 미주에서 오는 배들은 대남도나 유구를 거쳐 본국으로 오니, 그냥 대남도에 멈췄다가 대남도 군사들과 함께 항주로 가면 그만 이다. 굳이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내려갈 필요가 없는데.
“허나, 기왕 찾아왔으니 굳이 쫓아 보낼 필요까지는 없겠지. 수원성에 임시로 머물게 하고 장작과 석탄, 겨울옷과 모포를 넉넉히 보내주도록 하라. 그리고 먼 길을 온 군사들을 위해 술과 고기를 넉넉히 보내주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과연 이번에 건너온 의용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아는 사람이 좀 있으려나?
1) 호주현(湖州懸) – 후저우시
2) 선성부(宣城府) – 쉬안칭시
3) 무호현(無湖懸) – 우후시
4) 휘주현(徵州懸) – 황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