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13
4부 397화(2013화)
1.
“하늘이 내린 질서를 허물고 세상을 어지럽히려 시도한 천하의 대적을 토벌하는 일이다. 이에 경에게 보검을 내리니, 짐의 뜻을 헤아려 적당을 토멸하고 천하의 올바른 질서를 다시 세우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드디어 출정식이다. 의식을 위해 화려한 두석린갑을 차려입은 토적사(討賊使) 이근성이 내가 내리는 보검을 두 손으로 받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홍적(紅賊)은 천하 만민을 괴롭히는 대악적(大惡賊)이라, 이를 토벌함은 마땅한 하늘의 뜻입니다. 황공하옵게도 폐하께서 신에게 대명(大命)을 내리셨으므로, 신명을 다해 받들어 수행하겠습니다!”
이근성의 계급은 부장, 나이는 올해 54세다. 주로 북방에서 근무했으나 최근에는 대남주 병마절도사를 맡아 남방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우리 육군이 보유한 수많은 군영 중 후송과의 전쟁을 가장 열성적으로 준비하는 군영이 대남주 군영이다. 그러니 대남주 병마절도사 출신인 이근성을 발탁한 건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주산진은 전적으로 해군이 관할하는 고을이라 육군은 관계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처음 욕심을 낸 후보는 최근까지 누손주 병마 절도사였던 이희영이었다. 모로족 토벌을 맡아 거둔 성과가 아주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만한 장수라면 강남 지역에서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만 계속 공 세울 기회를 준다면 형평성 문제와 더불어 지휘부 전체의 경험 부족으로 이어질 공산이 있었다. 게다가 이희영은 5년 동안 진행한 토벌을 마친 뒤로 본국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65세나 된 노장을 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불러내겠는가.
대신 토적군에 배속한 예하 지휘관이나 참모 중에는 다수가 모로 토벌전 경험자다. 물론 태평천국은 모로족과 전법도 환경도 다르지만, 그 경험도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적이 갑자기 나타나서 기습한다고 놀라서 허둥거리다가 망하지는 않을 테니.
“이번에 우리 군은 송나라를 도와 대적을 토벌하러 가는 것이지 송나라를 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군사들의 품행에 유의하도록 하라.”
“예, 폐하.”
두석린갑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요즘 실전에서는 두석린갑은커녕 두정갑도 아무도 안 입지만, 이런 의식행사에서는 여전히 일종의 예복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종 때만 해도 유럽이나 마찬가지로 장수들이나 기병들은 갑옷을 꽤 입었다. 지휘관들이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방호 효과도 있기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이 갈수록 널리 쓰이는데다가 지휘관이 백병전에 뛰어들 일 따위도 없다 보니 몸을 무겁게 하는 갑옷은 점점 입지 않게 되었다. 실전에서 갑주를 착용하는 군사들은 강철 흉갑과 투구를 착용하는 중기병 정도가 고작이다. 투구는 부대에 따라 여전히 착용한다.
갑주가 예복 노릇을 하면서 군관들이라면 두정갑 한 벌쯤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다만 의례용으로 만들다 보니 본래 두정갑 내부에 붙이는 방호용 갑찰은 안 붙이는 게 보통이다. 두석린갑이나 수은갑은 화려하긴 한데 무거워서 인기가 없다. 대신 두정갑을 비싼 소재로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비단에 금동 징을 박고 두르는 모피는 초피를 쓰는 식으로.
일반 병사들은 행사에서도 갑옷은 안 입는다. 다만 금군은 예외라서 일반 병사들도 행사 때는 쇄자갑을 입는다. 가끔은 위병 근무를 설 때도 갑옷을 입고 설 때가 있다. 이 병사용 쇄자갑은 지급품이라서, 군관들처럼 사비로 갑옷 맞추느라 끙끙댈 필요는 없다.
“신 역시 최선을 다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컬럼비아 의용군단, 우리 공식 명칭으로는 ‘미주원호군(美洲援護軍)’ 사령 직을 맡은 참장 박진승도 보검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의용군단 연대장들이 타국의 군주인 내 앞에 무릎을 꿇을 리 없다 보니 사령, 즉 군단장 직책을 맡게 된 박진승만 대표로 단상에 올랐다.
박진승 밑에서 각 연대를 통할할 참모장은 본래 예정대로 몰트케를 뽑았다. 다행히 선뜻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실 박진승은 박문수의 증손자다. 박문수의 장남 박순규의 후손으로, 나한테는 외현손이 되는 셈이다. 나이는 올해 48세, 강무관도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복승영장을 비롯해서 여러 요직을 섭렵한 유능한 무관이다.
“하잘것없는 도적을 치는 일이라 하여 방심하지 마라. 우리가 싸울 장소는 저들의 땅이고, 그대가 이끌 군사들은 그 땅과 사람에 관해 전혀 모른다. 저들을 이끌고 홍적과 싸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 되리라.”
“신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아직 젊고 미숙한 신에게 중책을 맡기셨으니, 진실로 분골쇄신하여 충성하겠나이다.”
어쩌면 박진승이 맡은 역할이 총사령관인 이근성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세 연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요구를 조정해야 할뿐더러, 아예 동양 문화에 관한 지식이 없는 이 이방인들이 대민사고를 치지 않도록 통제도 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두통이 온다. 의용군단 놈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수원에서 올라온 상언(上言), 즉 민원이 한두 통이었어야지.
의용군단 장교들은 모두 귀족, 신사였다. 정식으로 귀족 작위를 지닌 이들은 누벨 프랑스 장교단 중에만 있었지만 다른 나라 출신들도 귀족이자 신사로서의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 였다.
도성 시가지를 관광하러 온 장교들의 태도도 점잖았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노량진으로 올라온 의용군단 장교들은 강 건너에서도 훤히 바라보이는 경희궁의 자태에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 환영 연회 이후로 진행된 도성 관광도 무척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병사들이었다. 자기들끼리 한나절 정도 진행하는 훈련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보니 병사들이 성에서 나와 수원 시내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수원유수부 전체 인구가 15만 정도 되는데 갑자기 6천 명이나 되는 거친 이국 사내들이 몰려왔다. 난리가 안 날 수가 없다.
술집마다 사람이 들어차는 건 약과다. 술에 취한 의용군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악다구니를 벌이다 지나가던 한인에게 엉뚱하게 피해를 주거나, 한국 문화를 어설프게 알아서 지나가는 일반인 여인을 기생이나 논다니인 줄 알고 희롱했다는 보고가 연이어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폐하. 무지한 병사들의 실수를 사과드립니다.”
드 뤼옹 대령에다 리 대령, 산티아고 연대 지휘관 마르틴 페르펙토 데 코스 준장까지 내 앞에 와서 허리를 숙였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 사고를 치는 게 세 연대 중 어느 하나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나마 루이지애나 연대 병사들은 기강 잡힌 정규군이 깃발만 바꿔 들고 온 터라 문제가 비교적 덜했다. 하지만 정말로 생짜 민간인 출신들인 버지니아 연대는 술 먹으면 개가 되는 놈들이 절반이었고, 산티아고 연대는 정규군이라지만 버지니아 연대보다 나을 게 없었다.
“바로 싸움터에 나갈 줄 알고 왔는데 무료한 나날을 보내게 되다 보니 심심해진 까닭에 병사들이 좀 거칠게 놀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산티아고 연대장인 멕시코군 출신 데 코스 준장이 고개를 숙였다. 산티아고 연대가 CEA 가맹국들의 연합부대라고는 하지만 실상 그 주축은 멕시코군이다. 1천 명 중에 멕시코군만 5백 명이니 사실상 멕시코군이나 마찬가지다.
연대장 데 코스 준장은 그사이 멕시코 대통령이 된 산타 안나의 매제라고 했다. 다만 이 작자 때문에 원활하게 대화를 나누려면 3개 국어가 필요한 이 군단 내에서 주도권을 두고 연대 간에 벌이는 다툼이 더 심해졌다.
명분은 다양했다. 드 뤼옹 대령은 자기가 라이프치히 전투 때부터 전장을 누벼 온 역전의 용사임을, 리 대령은 군단에서 자기가 지휘하는 버지니아 연대가 인원이 가장 많음을, 데 코스 준장은 자기가 가장 계급이 높음을 내세워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했다.
그냥 놔뒀으면 확실히 개판이 됐으리라. 그래서 정리가 필요했다.
분명 군단장직을 우리 쪽에서 맡기는 했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도 곤란해진다. 그래서 미주원호군 사령은 반쯤은 외교관 노릇도 해야 했다. 복승에 주재하면서 안남 조정과 외교 교섭도 해본 박진승을 사령으로 뽑은 건 그 이유도 있었다.
“그대들도 나서서 수습하고 있으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겠소. 하지만 우리 땅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 문제를 일으키지는 말아 주기를 바라오.”
의용군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편성한 헌병대가 질서 유지에 크게 공헌하고 있기는 하다. 그중에 우리 하와병들 만큼 덩치가 큰 하사관이 하나 있다는데, 아무리 심하게 취해 난동을 부리던 주정뱅이라고 해도 그 하사관의 주먹 한 방이면 그대로 나가떨어진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일렬로 선 세 연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상대들은 다들 자기 나라 언어로 말하고 나 혼자 3개 국어를 하는 이 복잡한 회의는 이렇게 끝났다. 결과적으로 장교들은 괜찮았는데 병사들이 거칠게 노는 바람에 외국인의 국내 여행 허용 문제가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건 좀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유탄을 맞은 사람이 본명이 유성업이라던가, 그 개성 출신 한국계 장교다. 직책이 법무참모다보니 사고를 친 병사들 문제로 수원유수부나 우리 군기대와 교섭하느라 바빠 정작 자기 본향인 개성에는 한 번도 가지 못 하고 말았다. 서울은 몇 번 왔지만.
전에 내게 이야기하기를, 가족이 모두 병과 사고로 죽은 다음에 본국을 떠났기에 개성에 남은 혈육이 없다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옛집에 한번 가보기라도 하는 것과 아예 못 가는 건 다르지 않은가. 다만 이들이 와서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누벨 프랑스에서 건너온 한국계 병사들이 고향에 들러보고 싶다고 해서 한국계 장교의 인솔하에 우리 안내인과 함께 다녀올 수 있게 해줬다. 몇 대 이전 조상이 살던 고향에 가서 산천도 둘러보고, 무덤에 절도 하고.
물론 조상의 무덤까지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는 자들은 몇 안 되고, 나머지는 미주 이주 전에 우리 조상님들이 대충 어느 고을에 살았다던데….하는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쯤만 해도 우리 조야에서는 무척 평이 좋았다. 고향을 잊지 않은 기특한 자들이 된 탓이다.
어쨌든 겨울은 끝났고 출정 준비도 마쳤다. 이제 출정식을 마치고 출발하면 된다. 마지막 절차가 끝나자, 군사들이 일제히 두 손에 쥔 총을 하늘로 치켜들고 흔들었다.
“주상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빨갱이들을 다 쳐 죽이자!”
3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지르는 함성이 출정식이 열린 마포 강변에 울려 퍼졌다. 주변을 에워싼 백성들도 만세를 연호했다. 의용군단 장병들은 여기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2.
겨울 동안 기본적인 작전안이 수립됐다. 후송 조정 및 일본 막부, 홍콩에 선발대가 닿은 영국군 지휘부 등과 조율을 마친 계획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주에서 온 의용군들을 포함한 우리 군사 5만 6천은 항주에 상륙해서 남창으로 간다. 이중 오군영과 대붕영, 미주원호군은 본국에서 항주로, 누손군, 대 남군, 기타 번병까지 1만 5천은 출발지에서 일단 주산진으로 집결한 뒤에 항주로 건너간다.
항주 근교에 전군이 집결하면 다시 남창으로 이동한다. 다만 이동할 경로는 처음 계획과 조금 달라졌다. 후송 측에서 수송할 인원이 너무 많다면서 곤란함을 피력하는 바람에, 일부 인원은 수로 대신 철도로 휘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들은 선성에서 북서쪽에 있는 무호로 가는 대신 남서쪽에 있는 휘주로 내려가게 된다. 후송에 깔린 철도는 죄다 협궤라서 수송량이 우리 철도보다 형편없긴 하지만, 그래도 화물 없이 인원만 수송한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으리라.
“북익, 동익, 남익에서 홍적을 포위하는 대규모 작전입니다. 동원되는 군사를 모두 합치면 35만쯤 될 듯하옵니다.”
“그만하면 근래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출정이로구나.”
전에도 언급했듯이 북익은 후송 정규군이다. 강용군, 부상군, 한양도통부군을 합쳐 12만 대군이 출전한다고 들었다. 역시나 금군은 나서지 않는다. 동익은 우리다. 우리 군사 5만 6천에 요주도통부 군사 6만이 보조로 붙는다. 정주, 항주, 명주도통부는 우리 밑에 군사를 파견하지는 않고 후방의 안정을 담당한다.
남익의 주력은 영국군 3만과 일본군 4만이다. 양광총독부 병력이 보조로 붙는다고 했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영국군, 일본군과 합치면 10만은 충분히 되리라.
청나라 쪽 사정이 좀 좋을 것 같으면 서익을 청군이 맡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아쉽다. 서쪽의 사천 일대는 일단 명색이 청나라 영토지만 지금은 태평당의 손에 제법 많은 땅이 넘어간 상태다. 사천 일대 군소 세력들 이 맞서 싸우기보다 투항을 택한 탓이다.
사천의 막대한 자원을 생각하면 태평당이 차지하게 둬서는 절대로 안 될 곳이다. 하지만 명목상 사천의 통치자인 청나라 황실이 수십 년을 방치한 데다, 작년 대홍수 이후 북경으로 천도해 버리면서 영향력이 더 약해졌다. 사천에는 사실상 청나라 관병은 없다고 봐야 한다.
후금 내전이 겨울 동안 결판이 났으면 청군이 시선을 돌릴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그렇지 못하다. 양측 군대가 모두 겨울에는 소규모 탐색전만 벌이며 주력은 감추어 두었다. 봄이 온 뒤에 결전을 벌이기 위해서.
지금 청나라 쪽에서는 사천 탈환에 나서기는커녕 남쪽에 있는 팔기군을 계속 북경, 산서 일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태평천국이나 후송을 치기보다는 후금을 제압하는 작업을 확실히 우선시하겠다는 태도다.
상황이 이러니 세 방향에서 포위된 태평당 놈들이 연합군에게 붙잡혀 궤멸당하는 대신에 서쪽으로 도주해서 사천이나 운남으로 들어가는 상황도 대비하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홍수전이라고 해도 분명히 그렇게 할 테니까.
만약 서나라 놈들이 안남과 더불어 태평당 봉쇄에 일익을 담당한다면 그 공을 인정해 줄 의사는 있는데, 과연 서 나라가 아직 살아남아는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통 소식이 없던데, 서진하는 태평군한테 이미 망해버린 건 아니려나.
안남 조정에서는 자기들은 비록 합세할 수는 없으나 적당들이 안남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기는 하겠다는 답이 왔다. 그것만 해줘도 뭐 만족이기는 하다.
어차피 안남 국경 방면은 일본군이 작전하는 구역이다. 일본군이 제대로 치고 올라간다면 태평군은 안남으로 도망칠 기회도 잡지 못할 거다. 과연 일본군이나 영국군이 내 기대처럼 제대로 싸워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