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16
4부 400화(4016화)
“그 싸움에서는 우리 군사들도 한몫해야 할 거요. 피를 흘리지 않고 전량만 댄 자가 함께 피를 흘린 자들과 같은 몫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처음에는 나도 후금 내전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승부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여러 요인으로 물자 지원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말려들었다. 물자를 운반하는 열차를 보호할 호송대 파견에서 철로 보호를 위한 수비대 주둔, 그리고 직접 파병까지 차근차근.
지금 후금에는 북방에서 차출한 정예 기병 7개 연대와 도성에서 특별히 파견한 훈련도감 소속 포병 1개 중대가 나가 있다. 기병 1개 연대의 편제 인원은 기병 3개 대대와 지원대인 기포병(騎砲兵) 1개 중대, 본부대 20명을 합쳐 1천5백이므로 총원 1만 기를 조금 넘는다.
각 연대에 편제된 기포병 중대가 자모포 2문, 무종야포 2문으로 구성된 자주포 4문씩을 보유하고 있는데 굳이 훈련도감에서 포병을 따로 보낸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들이 지방군에는 없는 최신 장비를 장비하고 있어서다. 회선연자포 말이다.
장조 시절부터 훈련도감은 최신 장비와 전술을 가장 먼저 시험하는 선두주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회선연자포를 가장 먼저 받았다. 후송으로 간 회선연자포도 전부 훈련도감 소속 포수들이 운용한다.
후송에 가져간 회선연자포는 개떼처럼 몰려오는 적 보병들을 저지하는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 갔다. 그리고 후금에 간 녀석들은 질주하는 적 기병들을 저지하는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서 갔다. 물론 우리가 최일선에 설 것도 아니고 해서 1개 중대, 4문만 보낸 거지만.
주력은 역시 1만 기에 달하는 기병이다. 총화기의 사용 비중이 늘고, 연발총이 대량으로 지급되면서 이제 활은 거의 안 쓴다. 기창(騎槍)은 아직 남아있기는 한데 기창을 사용하는 중기병의 비중이 확 줄었다. 각 연대 기병 1천5백 기 중 중기병은 1백 기쯤밖에 안 된다.
중기병이라고 해도 옛날처럼 전신에 갑옷을 걸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강철 투구와 흉갑만 착용한다. 그리고 경기병이 타는 작고 빠른 말보다 크고 힘센 말을 탄다.
중기병이 줄어든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우리 기병이 옛날부터 적을 직접 짓밟기보다 기병총이나 활로 적을 제압하는 식의 전투를 선호했던 게 그 하나고, 유사시에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적들이 총으로 무장하는 비율이 올라간 게 그 둘이다.
유럽이나 아시아나 마찬가지지만, 총으로 무장한 대규모 보병 대열에 정면으로 돌격하면 아무리 정예 기병이라고 해도 벌집이 될 뿐이다. 갑옷을 아무리 입어도 소용없다.
그래서 지난 백 년 동안 우리 기병 전력에서 중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그리고 중기병들도 기병총과 권총을 소지하고 창보다는 총을 주로 쓴다. 아직 창을 가지고 있는 건 적보병 대열에 뛰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 기병을 제압하기 위해서고.
하지만 건주 양국은 기병에 관한 관점이 우리와 다르다. 청나라나 후금에서는 전체 기병 중 중기병의 비중이 지금도 거의 4할에 달한다. 중세 몽골군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마 주로 맞붙는 상대가 비슷한 기병 중심인 준가르군인지라 딱히 변화할 동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정답이리라. 후송과 싸울 때는 의도적으로 녹영군에 속한 보병을 앞세웠으니, 더더욱 팔기를 개혁할 동기가 없었고. 그러니 마갑기병까지 아직 남아있지.
그러나 우리는 대규모 보병을 주력으로 하는 후송, 그리고 만약의 사태가 터진다면 역시 보병이 주력인 일본 정도가 가상적 순위 상단에 있다. 그러니 경기병을 확대하고 중기병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참, 기병이 활을 장비하지 않기 시작한 건 말을 타고서도 비교적 쉽게 재장전할 수 있는 뇌관식 기병총이 보급되면서부터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활이 다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뇌관식이기는 해도 육혈포가 지급되면서부터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활은 무조건 두 손을 모두 써야 하고 오른쪽으로는 쏘기 힘든 등의 제약이 있지만 권총은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이든 자유롭게 쏠 수 있고 손도 하나면 된다.
지금은 후장식 리볼버 카빈인 갑식기총과 탄피식 육혈포인 흥선포가 만들어지면서 기병의 무장을 바꾸는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다만 전군의 무장을 일시에 교체할 수는 없는지라, 아직은 뇌관총이나 활을 소지한 병사들도 상당수다.
개중에는 손에 익은 활이 익숙하다면서 활을 쓰기를 고집하는 군사들도 종종 있다. 우리 군에서는 임무에 지장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소지하는 장비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그러운 게 방침이라, 그런 자들은 알아서 하도록 놔둔다. 대신 관리 책임은 개인이 진다.
근접전용 장비로는 기창과 환도 외에 철퇴도 아직 애용 된다. 환도보다 더 편하게 휘두를 수 있으면서 투구를 쓴 적의 머리통도 깨부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기병이 근접전을 아예 안 치르는 게 아닌 이상 이 정도 무장은 필요 하다.
아, 그리고….전신에 판금갑옷을 걸치는 기병이 딱 하나 남아있기는 하다. 금군인 친위대 소속 2개 기병대대 중 하나가 비호군으로 지칭되며 옛날 비호군의 무장을 그대로 착용한다. 전신 판금갑옷에 그위에 걸치는 표범 가죽까지. 물론 실전이 아니라 행사용 복장이다.
다른 한 대대는 적룡군이라 해서 붉은색 두정갑을 착용하고 편곤이나 월도를 든다. 물론 이쪽도 실전용이 아닌 행사용 복장이다. 양 대대 모두 일상에서는 평범한 전복을 착용한다. 휘장이라거나 술 같은 것을 잔뜩 달아서 일반 군영 병사들보다 엄청나게 화려하긴 하지만.
물론 이번에 후금에 파견된 기병들은 북한 지역에 주둔하던 평범한 일반 연대들이므로 그 복장과 무장도 평범하다. 전투력도 훌륭하지만, 사실 승패를 장담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다. 동북아시아 최강의 기병으로 불리는 후금 기병들과의 정면 승부라면, 솔직히 좀,
“자신이 없기는 합니다.”
육군대신이 이렇게 솔직히 말할 정도니 뭐. 그리고 이렇게 된 건 아까 언급했듯이 우리가 중기병을 축소한 탓도 있다. 그러니 근접전에서는 솔직히 밀린다. 우리가 고이마혼 휘하의 정예 기병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건 피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정면에서 적도들과 싸우는 건 다라순승군왕에게 맡기고, 우리는 측면에서 돕기로 하지 않았소. 적도들의 별군을 상대하며 본진을 견제해 주면 충분하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허점을 드러내서 적이 ‘무방비한’ 치중대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그 위치에는 회선연자포 4문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수레에 실려서 움직이는 회선연자포로는 날랜 적을 쫓아가서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적이 다가올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부디 일선의 장수들이 내 지시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6.
장갑열차와 귀차 같은 신무기의 성능에 관해서는 애머스트 백작을 비롯한 재경 외교관들 쪽에서도 잘 모른다. 우리가 갖가지 무기를 개발하는 거야 저들도 알지만, 이번에 우리가 투입하는 이런 신형 장비는 언뜻 보기에는 신무기 티 가 안 나기 때문이다.
장갑열차는 언뜻 보기에는 그냥 열차로만 보일 것이고, 귀차도 평범한 장갑 버스로 보일 거다. 회선연자포야 주재무관들 불러놓고 시사를 한번 했으니, 그게 뭔지 알겠지만.
정찰용 열기구도 이제는 흔한 물건이라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으리라. 후송 관군도 항구를 지키는 포대 위에다 기구를 띄워 바다를 살피게 하는 세상이니, 기구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눈을 크게 뜨겠는가.
하지만 우리 기구에는 한 가지 개선점이 추가됐다. 예전에는 거울로 일광신호를 보내거나 서한을 넣은 전언통(傳言桶), 표식이 새겨진 목패 같은 것들을 떨어트려 지상과 연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신기를 쓸 수 있게 됐다.
기구를 올릴 때 전선을 끌고 올라간다. 그리고 기구 위에서 관측한 바를 전신기로 지상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린다. 예전보다 정찰 성과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이건 아마 주변에서 곧장 모방하겠지 싶다. 우리가 전신을 설치하는 걸 보고 주변국들도 죄다 전신을 깔기 시작했으니, 이런 방식의 사용도 바로 따라 할 게 뻔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주변국들이 전신을 깔았다지만, 아직 동아시아 전체가 전신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수준은 아니다. 기술적인 미비로 해저 전선을 부설할 수 없다 보니 연결하지 못하는 나라가 많다.
딱 하나 있는 국제 통신선은 심양을 거쳐 상도와 북경으로 연결되는 전선이다. 군량 수송 때문에 상도와 우리 사이에 긴밀하게 연락할 필요도 있고 해서 그냥 우리 돈으로 상도까지 깔았고, 청나라가 수도를 가까운 북경으로 옮긴 상 태였으므로 내친김에 북경까지 연결했다.
덕분에 우리 세 나라 조정은 아주 신속하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건주회맹에서 맺은 연계가 전신으로 더 가깝게 얽힌 셈이다. 국내적으로는 당연히 우리가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우리도 전신국을 연지 이제 겨우 3년째라서, 주요 철도 간선 구간을 따라가는 선로만 부설을 마쳤을 뿐 아직 전국을 전신으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전신을 쓸 수 있게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우리의 성과를 보고 뒤늦게 전선 부설에 나선 주변국들은 당연히 우리보다 전선을 부설한 구역이 훨씬 좁다. 수도 주변의 제한된 지역에만 전선을 깔았다. 자기들이 직접 부설할 수 없으니, 당연히 우리가 돈 받고 깔아주었다.
우리가 이렇게 시범선 공사를 한 나라들은 사실상 동아시아 전체다. 건주 양국에다 일본, 후송, 번국인 유구국까지 가서 전선을 깔았다. 호응은 열광적이었다.
이 전신망 부설 사업이 해당국 전역에 퍼지게 되면 장차 우리 우정도감 건설국에 막대한 돈을 안겨주리라고 예상된다. 전신선 공사 계약과 전신 장비 판매로 우리 우정도감이 아주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리라.
문제는 이놈들이 과연 우리하고 계약을 해줄지의 여부다. 나부터도 원래 세계에서 중국산 통신장비에 보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쪽 세계 후송이나 일본 측에서 과연 흔쾌히 우리 우정국에 공사를 발주하고 우리가 만든 통신기기를 매입해 줄지 모르겠단 말이지.
대안이 없다면 또 모르지만, 미국 회사들이라는 대안이 있으니까 말이다. 모스가 설립한 마그네틱 전신회사를 비롯한 미국 전신회사들은 미국과 유럽의 전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시장도 기웃거리고 있다.
사실 여기서 좀 켕기는 건 우리가 실제로 우리가 관리하는 전선으로 오가는 건주 양국의 전보를 훔쳐보기도 한다는 거다,
“우리가 저들의 전문을 엿보는 만큼 저들도 우리 전문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그 점을 잊지 말고 북경 및 상도에 있는 우리 공사관과 연락할 때는 꼭 비문(秘文, 암호문)을 써서 통신하도록 하라.”
“예, 폐하.”
아무리 우방이라고 해도 외교적인 첩보 같은 건 얻을 수 있으면 얻어야지. 우리 거는 안 빠져나가게 지키는 것도 당연한 거고. 어디, 현대에 한국과 미국은 상대방 정보를 서로 안 캤던가? 캘 수 있는 건 다 캐서 모았지.
상대국 전문을 중간에서 빼내는 행위를 ‘엿듣는다’라고 하지 않고 ‘엿본다’라고 하는 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종이 위에 찍히는 점과 선을 ‘보고’ 전문을 해독하기 때문이다. 원래 전신이라는 게 그런 거고, 음성 통신이 가능한 전화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계속 그럴 거다.
그러고 보니 전화는 언제쯤 만들어지려나. 소리를 전달하는 장치를 만들고 싶다고 뭔가를 두드리고 붙이는 괴짜 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도 같은데. 전신기 원리는 대충 알아서 뭔가 끼어들 게 있었어도, 전화기 만드는 법은 모르니 적당히 조언할 수도 없다.
영국에 2차로 유학 간 놈들이 전자기학을 배워 오면 해저에 전선을 깔 수 있게 되겠지. 그러면 일본으로 가는 전선도, 서해를 건너 청나라 산동으로 가는 전선도, 후송의 남경으로 가는 전선도 부설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대한이 동북아시아의 통신축이 된다. 왜냐고?
“청이 송과 전신을 연결할 리 없지 않은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청과 송은 싸울 때도 있고 평화로울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를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표현’을 쓰자면 정당한 자기 땅 절반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반국가단체’ 취급이다.
아마 두 나라 사이에 공식적으로 전신이 연결되려면 그 놈의 중원일통부터 양측이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어려우리라 본다. 그걸 포기하지 않으면 전신으로 상대국과 연락하는 자들은 죄다 역적과 통신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고로 청나라와 후송에 있는 누군가 – 그게 꼭 양국의 조정일 필요는 없다 – 가 서로에게 뭔가 급하게 전할 소식이 있다면 전신으로 우리를 거쳐 소식을 보내는 방법밖에 없을 거다. 그게 통신축(通信軸(, ‘허브’ 아닌가.
혹시 후송과 일본이 우리 우정국이 아니라 미국 회사에 전선 부설을 맡긴다고 해도, 우리 대한의 위치상 우리 통신망에 접속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 대한은 동아시아에서 확고하게 통신축으로 기능하리라. 요금은 두둑하게 받아야지.
7.
화려한 행렬이 유구관에서 경희궁까지 이어졌다. 혼례식장인 경희궁 안팎은 온갖 장식과 꽃을 달아 화려하게 꾸몄다. 이번 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치르는 자식의 혼례이니 허술하게 치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올해는 날씨가 좋아 대풍년이 들 전망이고, 고로 백성들 눈치를 보면서 소박하게 일을 진행할 필요도 없었다. 흉년이 들면 궁중의 살림살이를 줄이고 수라상에서 감선(減膳)을 행하며 필요 없는 행사를 줄이는 건 지금도 유지되는 관습이니 말이다.
물론 우리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남방과 북방으로 출정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양쪽 방면 모두 우리 대한의 국운을 건 싸움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고로 내가 이번 생에서 처음 시집보내는 딸의 혼례를 초라하게 진행해야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축하합니다, 주상. 실로 황실의 큰 경사입니다. 그런데…..”
정민공주(貞珉公主)로 책봉된 ‘손녀’의 혼례를 보러 온 태후도 기쁜 얼굴로 내게 축하를 건넸다. 유구에 보낼 화번공주로 민지를 선택한 사람이 자기니만큼 지금 이 혼사를 한층 더 뿌듯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 이후로 동비와 태후가 더 가까워졌다. 아마 처음부터 그걸 노린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만약 태후가 영빈 이씨나 진빈 최씨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딱히 이득이 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선황의 후궁인 두 사람과 새삼스럽게 친해져서 뭘 한단 말인가. 선황도 죽고 없는 판인데.
유구가 신붓감을 바꾸는 데 선뜻 동의한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이미 죽은 선황의 옹주를 세자빈으로 들이는 것보다 살아있는 태황의 옹주를 받는 편이 실속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적통공주는 둘 다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고.
그런 고로 태후에게도 내 후궁인 동비와 친해지는 편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중전과 세 싸움이 벌어질 때 중전이 아닌 자기를 편들 사람을 늘릴 수 있고, 나한테 태후에게 신경을 써 달라고 졸라줄 사람도 생기는 거니까.
황귀비 최씨 역시 태후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황귀비로 책봉된 만큼 은근히 태후 편에서 움직이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하지만 최씨는 중전의 눈치도 크게 살펴서 절대 노골적으로 태후에게 달라붙지는 않았다. 중전이 0, 태후가 10이라면 늘 5.2 정도 위치에 머문달까.
그런데 혼례식장을 둘러보던 태후의 표정이 미묘하게 샐쭉해졌다. 식장 안팎으로 둘러친 장식과 장악원에서 온 수많은 악공과 무희들, 보석과 비단을 두르고 혼례 행렬에 끼어 있는 열 마리의 코끼리와 쉰 마리의 낙타, 백 마리의 백 마 등을 보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숙친왕과 경친왕, 화성장공주의 혼례 때보다 훨씬 화려하군요. 정민공주는 참으로 행복한 날이겠습니다. 부황의 사랑을 이토록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지요.”
뭐야, 지금 자기 아들딸 혼사 치를 때 이 수준으로 안 해줬다고 불평하는 거야, 지금?
시선을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고 허공을 향해 말했으니 이건 분명 혼잣말이다. 하지만 그 혼잣말이 옆에 선 내 귀는 물론이고 주변 궁인들 귀에도 똑똑히 들렸으니 이건 혼잣말이되 혼잣말이 아니다. 다 들으라고 한 말이 분명했다.
나로서는 기가 막혀 자빠져서 코가 깨질 소리였다. 아니, 내가 걔들 시집•장가 보내느라 들인 공이 얼만데….? 그걸 혼례식이 덜 화려했다고 뒤끝을 부려?
그리고 막말로, 국내에서 좋은 집안 배필 만나 치르는 혼인과 번국이라고는 해도 타국의 세자빈을 보내는 혼사가 같은 수준인가? 태후가 이 화려한 혼례식장이 부러웠으면, 자기가 먼저 나서서 ‘선황께서 생전에 남기신 약속을 지켜 화선장공주를 유구에 시집보내겠다’라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 기회가 다가왔을 때는 걷어차고 막상 딸 대신 손녀가 간다니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꼴사납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