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29
4부 413화(2029화)
3.
“청제를 직접 알현하니, 폐하께 감사를 전해 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역도를 토벌하고 막북의 질서를 바로잡는 대업을 이루지 못하였으리라 하면서 크게 치사(致謝)하였습니다.”
“우리는 회맹을 맺은 형제의 나라가 아니오. 그 정도는 마땅히 할 일이지.”
고이마혼의 죄는 컸다. 숙부들과 형제들을 죽이거나 모함해서 쫓아냈고 모친을 겁박했다. 거친 옛 사고방식이 많이 남은 후금과 달리 유교화된 청나라나 우리 대한의 시각에서 보면 천하의 대죄인이 분명했고, 이는 토벌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고로 륵극덕혼을 도와 내전에 개입한 것까지는 심양회맹을 지킨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내전이 끝난 뒤에 후금의 영토를 분할하고 그 지위를 속국으로 낮춘 부분이 회맹의 의도를 벗어난 거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집안 문제인 칸위 계승 문제를 집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국을 끌어들였다. 그나마 니콜라이 1세가 국상을 치르느라 개입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러시아까지 끼어들어 사국대전(四國大戰)이라도 벌어질 뻔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 결국 후금 황실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황실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박락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린 대복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패륵들, 군왕들까지. 그들 모두 잘못이 크다.
그중 누가 가장 잘못했는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으리라. 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천주교 신자로 귀의하여 서자의 계승권을 박탈한 홍타이지와 혜연이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게 지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나.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러니 지금 벌어진 일의 뒤처리와 앞으로의 일에 관한 구상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 처리 때문에 김정희가 내 지시를 받아 협상에 관한 전권을 쥐고 북경에 다녀온 것이고.
정약용이 조부를 위해서 일했듯이 내 옆에는 김정희가 있다. 한 가지 차이라면 정약용은 주로 내정에 집중해서 공적을 세웠다면 김정희는 외정에서 활약한다는 정도겠다. 내 스승의 자리에서 처음 시작한 인연이 앞으로도 굳세게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청과 후금에 지원한 전량(錢糧)은 곡식이 대략 2백만 석, 이런저런 물자가 약 3백만 냥 어치쯤 된다. 육혈포를 비롯한 무기와 탄약까지 제공하다 보니 규모가 갈수록 늘었다. 여기에 철도 경비와 잔적 토벌 과정에서 사상자도 1천 명 가까이 나왔다.
이웃에 대한 의리로 조금 도왔다고 겸손을 부리기에는 비용이 좀 많이 들었다. 저쪽에서 정산을 거부한다면 등 뒤에 숨겨둔 몽둥이 끄트머리를 살짝 보여주면서 재고를 요청해야 할 액수다.
내가 만약 적절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차르 표트르 3세….아니, 이쪽 세계에서 부르기는 스웨덴 국왕 카를 13세가 한 짓이나 마찬가지다. 카를 13세야 프리드리히 2세를 위해 기꺼이 무료로 봉사했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물론 중전이나 내 중신들은 내가 호구짓을 한다고 해서 날 폐위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만만찮은 잔소리는 각오해야 하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나폴레옹이라면 모를까, 내가 왜 덕명이나 륵극덕혼을 위해 그런 거액을 허비한단 말인가. 거기에 군사들의 생명까지.
“넘겨받기로 한 영토는 얼만큼인가.”
“예전 금나라가 가지고 있던 영토 중 요서 땅을 일부만 빼고 다 받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금나라는 항구가 필요했으니까 그 땅을 쥐고 있었지만, 청나라는 굳이 그 지역을 확보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말 입니다.”
이 지역은 후금이 가지고 있던 기존 영토 중 가장 따뜻하고 가장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당연히 후금 황실과 만주 귀족들의 농장이 잔뜩 들어서 있다. 게다가 후금이 소유한 유일한 항구인 흥만성(興滿城)도 여기 있다.
후금으로서는 농업 중심지이자 유일한 교역항을 상실하는 셈이지만 청나라로서는 그다지 가치가 없는 땅이다. 그러니 선뜻 우리에게 넘겨줄 수 있는 거고.
이로써 우리 영토의 서쪽 경계는 예전에 내가 열차를 타고 건너갔던 소릉하(小湯河)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3백 리 정도 떨어진 구하(狗河)까지 멀어졌다. 본래 계획대로 해안에 면한 후금 영토를 전부 받았으면 110리 더 떨어진 산해관까지 갔겠지만, 그건 놓치게 되었다.
“청나라 측에서 우려를 표하기를, 산해관은 관외에서 북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바깥에 여유를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형편을 살펴 백 리 남짓한 땅은 저들에게 넘기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덕명이라고 해도 산해관 코앞이 우리 대한과의 국경이라고 하면 불안할 거다. 기왕 형제국으로 지내기로 했으니 이 정도는 양보할 수 있어야겠지. 그 손바닥만 한 땅덩이 하나 더 가진다고 내가 더 부자가 될 것도 아니고, 긴장감만 높아지는데.
경계선은 구하를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가 기존 국경인 대흥안령산맥으로 올라간다. 과거 후금에게 바다로 가는 길을 마련해주느라 내주었던 평야를 모두 회수하는 셈이다. 이 정도 넓이의 땅을 얻었으면 산해관 앞의 한 조각 정도는 청나라에 양보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경계로 삼은 강 이름이 하필이면 ‘개(狗)’ 강이라니, 이름 참 마음에 안 드는구먼. 다른 구 자도 많은데 하필이면 ‘개 구’ 자란 말인가. 뜻이 좀 더 좋은 다른 구 자를 골라서 대신 쓰든가, 아예 새 이름을 지으라고 시키든가 해야겠다.
“요서 땅에 농장을 가지고 있던 금나라 황족과 귀족들에게는 법에 따른 세금만 합당하게 바친다면 계속 농장을 소유해도 좋다고 보장해 주었습니다. 다만 그 땅을 맡아서 경작하던 한노들은 모두 해방될 터이니 미리 알아두라고 통보하였습니다.”
“당연한 조치요.”
지난번에 바꾼 법 때문에 외국인 소유의 노비라고 해도 주인이 없이 우리 땅에 들어오면 해방된다. 물론 주인이 함께 온다고 해도 잠시 여행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 우리 대한 땅에 정착할 생각이라면 그 노비는 전부 해방된다.
고로 후금 황족과 귀족들은 어떤 수를 쓰려고 해도 요서 지역의 농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동안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한노들이 똑똑히 기억할 텐데, 돈 몇 푼 쥐여준다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일할 리 있겠는가. 아예 주인이 바뀐다면 모를까.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치른 내전 때문에 농장 자체도 쑥대밭이 된 곳이 많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패가 갈린 귀족들이 병력을 동원해 상대 파벌의 농장과 광산 따위를 습격해 댄 탓이다. 한노들이 혹시 남아 있더라도 농장을 재건하느라 고생해야 한다.
그런 판국이니, 내가 그 지역에 농장을 가지고 있는 후금 귀족이라면 망설임 없이 우리 쪽에 땅을 팔고 그 돈으로 어딘가 다른 투자처를 모색하겠다. 그게 현명한 선택이다.
투자처는 광산이나 공장, 철도 등 얼마든지 있다. 옛 후금 영토 내에 말이다.
“양도받은 영토 외에, 옛 금나라 영토 안에서 철도와 전신을 부설하고 광산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았습니다. 청나라 법에 따라 세금만 납부하면 됩니다.”
우리 자본으로 전부 할 수 있다면 좋긴 하지. 하지만 후금 귀족들이 투자하겠다면 그것도 환영이다. 그래서 그놈들이 우리 영토로 편입된 농장을 팔고 그 대금을 거기에 투자해 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또 그 농장을 공매에 부치고 말이지.
“이번 난리 때문에 창궐한 도적들이 아직 북방에 준동하고 있으므로, 초원 동쪽의 치안을 확보하는 역할도 맡기로 했습니다. 대흥안령산맥 서쪽은 우리 영토가 아니지만, 보루를 몇 개 짓고 병력을 두어 도적을 막고자 합니다.”
초원을 영토로 달라고 하지 않은 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초원에는 눈에 띄는 경계선도 없고, 유목민들을 통제하기도 힘들다. 저들에게 꼭 필요한 물터와 러시아로 가는 교역로를 통제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면 족하다.
“우리가 얻은 요서 땅에는 귀족들이 소유한 농장만 위치한 게 아니라 기인(旗人)인 일반 만주인이나 왜인들도 상당수 있지 않소. 그런 자들은 어찌하기로 합의를 보았소?”
“폐하께서 미리 명하신 대로 떠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살던 곳에 남아서 우리 대한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받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은 이주할 것 같다고 했다. 무지렁이 농민들이라면 모를까, 기인이라 하면 일종의 하급귀족이다. 그들이 새 대칸에 대한 충성은 없어도 그리 쉽게 사회적인 지위를 포기할 리 없다. 어차피 청나라 팔기에 편입됐으니, 청나라로 가서 새 터전을 찾아보려고 하리라.
“산서와 섬서에는 숲이 많이 있으니, 저들이 넉넉히 정착할 수 있겠지.”
그 두 지방은 청나라가 입관 초기에 한족 농민들을 대규모로 학살, 추방하고 조성한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다. 지금도 청나라 만주 팔기 대부분이 그 지역에 거주한다. 외지에는 파견대가 나가 있을 뿐이다.
물론 정착이 쉽지는 않겠지. 그 많은 인원을 전부 현역병으로 복무시킬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평시에는 다른 생업을 마련해줘야 할 텐데, 과연 무슨 일자리를 줄 생각이려나. 그 지역에 탄광과 철광이 많으니 공장 지어 산업 노동자로라도 돌리려나.
어쨌든 요서에 많이 거주하던 만주인과 왜인들이 대규모로 청나라로 이주하면 후금 땅에 남은 백성 대다수는 몽골인이 되겠다. 럭더훈은 사실상 몽골의 칸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청제가 대칸에게 실위가한(室韋可汗)이라는 봉호를 내린 듯합니다.”
“금나라 백성을 거의 다스리지 않게 되었으니 금나라 칸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
중원의 천자국은 한 글자 국명을 쓰고 주변 야만족들은 두 글자짜리 국명을 쓰는 관습은 별로 상관이 없다. 그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금(金)’이라는 국명을 청의 속국이 된 처지에서 계속 쓸 수는 없었을 뿐이다. 아들이 아비를 종으로 부리는 셈이 아닌가.
만약 둘의 국명이 반대였다면, 다이샨의 후손이 금나라 황제가 되고 홍타이지의 후손이 청나라 대칸이었다면 덕명은 서슴없이 륵극 덕혼을 ‘청나라 칸’으로 봉했을 터였다. 청나라는 조상의 나라인 금나라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름이니 말이다.
원래 당시 다이샨과 홍타이지는 자기들의 나라를 건주, 만주라고 칭했다. 한 글자 이름을 따로 짓지 않았다.
그런데 홍타이지가 먼저 죽고 그 뒤를 이은 아들 호격이 선수를 쳐서 자기 나라의 이름을 먼저 만주에서 금나라로 바꿔버렸다. 5년 뒤에 제위를 이은 다이샨의 아들 요토는 금나라를 뺀 후보 중에 골라야 했고, 청나라를 골랐다. 그렇게 해서 양국의 국명이 정해졌다.
하지만 청나라라는 이름도 2백 년을 쓰다 보니 역사와 전통이 생겼다. 후금을 장악했다고 해서 청나라 국명을 금나라로 바꿀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자기네 조상이 세운 나라들 이름인 금나라나 건주, 만주 등을 속국으로 거느릴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게 그거다.
“실위가한이라, 정말 참고풍스럽구먼.”
실위가 대체 언제 적에 살았던 족속이더라. 대중 10세기쯤에는 소멸하지 않았던가. 일부 후손이 몽골인이 되었고 말이다. 몽골인을 다스리는 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군.
“옛 금나라 땅에 철로를 부설하고 수로를 이용할 권리를 인정받았으니, 교역로와 수원지 대다수를 장악할 수 있소. 하지만 그런 지위를 이용해서 저들 금나라 백성들을 핍박하면서 괴롭힌다면 하늘의 은총이 우리를 떠날 터, 형제국의 백성으로 공정하게 대해야 할 거요.”
우리는 유목민들에게 필요한 차, 소금, 설탕, 물 등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당연히 저들이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기회를 잡았다고 갑질하지 말고 공정하게 대하자는 거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신원이 확실하고 통과증을 소지한 이들만 물터와 교역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기는 할 거다. 우리가 치안 유지를 담당할 몽골 동부에는 사업을 하는 한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텐데, 양국 백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어우러지려면 최소한의 경계는 필수니까.
“물론입니다, 폐하. 청나라 측에서도 그 관리는 공동으로 하는 거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청나라가 요서를 양도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새로 획득한 영토 내 치안 관리까지 협력을 구하는 건 이유가 있다. 실제로 자기들 처지가 안좋기 때문이다. 청나라 남부 지방은 아직도 지난번 대홍수 때 피해를 입은 후유증이 남아 있고, 그 탓에 배상제회 세력이 퍼지고 있다. 청나라 조정도 이를 수습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저 그 끝이 없을 뿐이지.
청나라는 후금 방면으로 돌렸던 군대를 다시 남방으로 보낼 참이지만, 재정적인 여유는 여전히 없는지라 상당한 고난이 예상된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와 인접한 지역인 후금에서의 싸움은 지원했지만 남부 지방에서 싸우는 것까지 도와줄 의사는 없고 말이다.
이로써 쟁점사항은 대부분 정리됐다. 내가 통과시켰으니까 이제 어전회의에 들고 나가서 한번 회람하게 한 뒤 대신들의 의견을 한 번 더 듣고 승인하면 된다. 청나라 쪽에서는 이미 덕명이 승인했다고 하니, 우리 쪽이 수락 의사를 전보로 보내면 특사가 조인하러 올 거다.
“청제가 신을 보고 말하기를, ‘우리 양국은 모두 똑같은 고구려의 후예이니 진실로 형제라 하겠소. 앞으로도 이 우애가 계속되기를 바라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니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이번 조약은 청나라와 우리가 맺는 두 번째이자 보다 직접적인 동맹조약이 되는 셈이다. 다소 두루뭉술하고 막연한 언사로 채워져 있던 심양회맹 때의 조약문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상세하다. 한일조약 때 작성한 문서처럼 말이다.
확실히 막연한 우정보다는 타산적인 계약 쪽이 훨씬 굳건하게 오래 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청나라와의 사이도 계약적인 면이 강해지는 편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야 서로가 맡은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테니.
“참, 반적에게서 구출되어 고향인 북경으로 간 선대 대복진은 어찌 되었는지? 잘 지내고 있소? 통 소식이 없던데.”
지난겨울, 얀신이 구출해 온 선대 대복진 애신각라씨는 ‘나는 대금국의 황태후다’라면서 지금 후금에는 대칸이 없으니 자기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악을 썼다. 죽은 선대 대칸이 뒤에 남긴 형제와 서자들을 모두 역도들이라면서 말이다.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 박락 사망 직후였다면 그 말이 먹혔을지도 모른다. 그때라면 일단 다들 선대 대복진의 발언을 듣는 시늉이라도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는 내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상황이었다. 고로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륵극덕혼도, 청군을 지휘하던 공친왕 덕흔과 직례총독 혁정 – 전에 내가 북경에 갔을 때 접반사로 나왔던 그 양반 – 도 나라를 망치는 데 크게 한몫한 선대 대복진의 망언 따위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우리 지원군 장수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애신각라씨는 그저 고이마혼의 손에 안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륵극덕혼과 청군 지휘부는 안전한 곳에서 정양하라는 핑계로 애신각라씨를 그대로 북경으로 보내버렸다. 그 뒤로 나는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청제의 명으로 열하의 별궁에서 정양하고 있다고 합니다. 쾌유할 때까지 아무도 주변을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청제가 고모의 건강에 관심이 많구려.”
자기 친아들이 후금의 대칸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그렇게 기를 쓰더니만 꼴좋다. 자기만 유폐되는 결말이라니. 그러게 적당히 자제했어야지.
만약 그녀가 박락의 세 서자 중 가장 못나고 평범한 한대를 선택 했더라도 지금 같은 꼴은 안 났으리라. 참 가엾다면 가엾은 여자다.
앵베르 주교에 관해서는 따로 묻지 않았다. 그쪽이야 조선 교구 -이제 ‘한국 교구’라고 바꿔도 될 것 같은데 로마에서는 절대 안 바꾸고 죽어라 옛날 이름을 쓴단 말이지 – 에서 위문단으로 보낸 사제들이 챙기고 있으니, 나까지 끼어들 필요 없다.
협상 결과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몽골 동부를 통과하는 새 교역로를 구상하다 보니 문득 바로 그 길로 도망간 고이마혼 놈 생각이 났다. 러시아에서 대체 뭐 하고 있을까, 그놈?
러시아로 쳐들어가서라도 그놈을 잡아 오겠다고 날뛰는 연신을 달래느라 륵극덕혼도 무척 고생했다고 들었다. 결국 그놈을 주저앉히는 대신 고이마혼의 외가, 처가 식구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듣기는 했지만.
러시아 측의 통보로는 다시 못 돌아올 거라고 보장하기는 했는데, 이게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라서 대체 무슨 소리냐고 다시 회신을 보냈다. 이번에는 좀 구체적인 답이 돌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