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30
4부 414화(2030화)
4.
이번에 후금에서 새로 얻은 영토는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기존 요서주에 편입하여 요서주 도독이 다스리기로 했다. 군사는 요서주 병마절도사가 맡는다.
큰 성과를 얻은 건 기뻤지만 막상 지도를 들여다보니 너무 많이 받아낸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감도 조금 들었다. 바다에 면한 원래 요서 지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북쪽 내륙부에 있는 평야는 동몽골, 옛 코르친에 속하는 탁색도맹(卓索圖盟)의 영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몽골과 우리를 나누는 경계선으로는 아무래도 자연국경인 대흥안령산맥 쪽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저쪽에는 좀 가혹하기는 해도 그 선에 맞춰 협상을 끝낸 것이고.
접수도 쉽다. 북경과 상도로 가는 철도가 모두 이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철도 경비를 명목으로 진주한 우리 군이 내란 초기에 진입한 청군과 함께 치안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니 행정을 넘겨받을 지방관만 골라서 파견하면 인수 절차는 간단히 끝난다.
조정 중신들도 협상 결과에 별 이견은 없었다. 협상 결과를 회람한 뒤에 보이는 반응도 다들 긍정적이었다.
“그대들은 좌상이 가져온 협상 결과에 관해 어찌 생각하시오.”
“흡족한 성과라고 사료되옵니다.”
내 이복형인 효왕 이정의 장인, 국무총리대신 심세원이 선선히 동의를 표했다. 과거에는 그도 외무대신을 맡아 바쁘게 뛰어다닌 전력이 있는지라 타국에 가서 진행하는 외교 교섭의 어려움을 잘 안다.
그 사위인 이정은 청나라 봉선에 한 번 다녀오더니 또 집에서 글만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거참, 여행도 좀 하고 그러고 살라고 일부러 바깥 구경을 시킨 보람이 없다. 또 내가 끌어내서 내보내야 하나.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얻었다고 보입니다. 요서 일대는 본래 사방에 늪이 널린 황무지였으나 지금은 개간되어 비옥한 농장과 염전이 많이 들어서 있으며, 내륙은 풍요로운 목초지니, 우리에겐 분명한 이득입니다. 다만 금국 내의 사정이 크게 흔들릴 듯합니다.”
심세원은 전임자인 이종선과는 성품이 다르다. 이종선이 떠오르는 말이라면 뭐든지 뱉는 직설적인 사람이었던 데 반해 심세원은 세심하고 조심스러웠다. 본래 외교관 출신인 데다, 사위가 선황의 서장자인 효왕이다 보니 조심하는 태도가 몸에 밴 모양이다.
“국상 대감. 금나라는 이번 내란 때문에 타격이 큰데 크게 흔들릴 사정이나 있겠습니까?”
“의무대신께서는 미처 보지 못하셨을 수 있으나, 그 타격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이 클 수 있소. 금국 내에서 민족 간의 세력 비율이 바뀌게 되오.”
과거에는 6백만가량이던 후금 인구 중 왜인까지 포함한 만주인의 비율은 대략 ⅓이었다. 대략 ¼이 안 되는 몽골인보다 확실하게 우세였다.
하지만 이번 내란의 결과로 요서 일대가 우리 영역으로 넘어왔는데 여기는 만주인과 왜인 다수가 거주하던 땅이다. 저들이 우리 백성으로 귀부하든, 이주하든 후금 지역 내의 만주인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후금에서나 청에서나, 만주인들은 지금도 기병 양성을 위해 숲에서 산다. 숲에서 약간의 농사와 더불어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다. 그래서 다이샨과 요토가 의도적으로 화북 일대에서 피보라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산서와 섬서 일대를 숲으로 만든 것이고.
고로 만주인들이 우리 치하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고 이주한다면 금나라 잔여 영토보다는 청나라 땅으로 이주할 공산이 크다. 여기보다 북쪽에도 숲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쪽에서는 너무 추워서 농사가 안된다.
왜인들도 마찬가지다. 왜인들은 만주인보다 따뜻한 기후를 선호해서 상도에 머무는 일부 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 요서에 거주했다. 이들은 더더욱 추운 북쪽으로는 가지 않으리라.
“국상의 말을 듣고 보니….청제가 요서 땅을 우리에게 양도하도록 한 게, 요서에 거주하는 만주인들을 청으로 유입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구려.”
“소신의 생각으로는 그러합니다, 폐하.”
이게 전에 언급했나 싶은데, 요서 땅을 우리한테 내주는 ‘법적인 주체’는 덕명이 아니다. 륵극덕혼이지. ‘반적을 토벌하는데 도와준 감사의 뜻’으로 땅을 양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번에 김정희가 가서도 청나라 쪽 사람하고만 회견하고 온 게 아니다. 덕명에게 호출을 받고 온 륵극덕혼도 만나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당연하겠지만 륵극덕혼 본인은 자기 땅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내전에 이긴 게 아니다 보니 청나라 측의 압력을 거부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결과가 후금 권력의 핵심이던 만주인과 왜인 귀족층의 기반을 두들겨 부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 거래의 결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당연히 덕명이다. 자기 영토는 하나도 내주지 않고 후금 영토만 주었고, 자기 땅으로 들어올 인구는 최소한 수십만이다. 청나라 내에서도 소수인 만주인과 왜인 인구가 한방에 대폭 늘어날 기회다. 얼마나 큰 이득인가.
청나라 내에서 만주인 인구는 왜인에다 대략 백만 명쯤 되는 몽골인까지 다 합쳐도 5%가 간당간당한다. 여기에 수십만에서 백만에 이르는 후금계 만주인과 왜인이 추가되면 화북에 대한 덕명의 지배력이 크게 강화된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는 마치 현대 세계에서 인구 감소에 시달리는 러시아 같은 나라가 인구 획득을 노리고 이웃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 같은 격이다. 푸틴 같은 독재자라면 전사자가 백만 명쯤 나오더라도 우크라이나 인구 4천만을 획득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전쟁을 감행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2백 년 동안 쌓아온 기반을 잃은 데 대해 분노하고 있을 이 ‘실향민’들의 분노도 덕명에게는 향하지 않는다. 무능해서 땅을 잃은 구 후금 황실과 탐욕스럽게 그 땅을 빼앗은 우리 쪽을 향하겠지. 덕명은 그저 만주 황실의 종가로서 그들을 너그럽게 품어줄 뿐이고.
물론 청나라로 이주하는 만주인들을 재정착시키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나갈 거다. 하지만 이로써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덕명으로서는 그 정도 지출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리라. 정 급전이 필요하면 빌려서라도 말이다.
“더불어 그 지배를 받던 한노들도 우리 쪽으로 귀부할 테니, 금나라 인구는 내란 이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만주인과 왜인에다 몽골인까지 합쳐도 후금 인구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전부 후송에서 노예로 끌려온 한족들이다. 이들 대다수가 한쪽 귓불이 잘린 채로 요서에서 가혹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 일부는 북방의 광산이나 벌목장 등지에서 일한다.
우리가 김정희를 통해 후금 측에 경고했듯이, 이들은 요서의 주인이 바뀌면 곧바로 노비 신세를 벗어난다. 물론 곧바로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는 없는 게 현실이겠지만, 법적으로는 자유민이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들이 잔존 후금령으로 이주할 리가 있겠는가?
강제로 끌어갈 수도 없다. 수십만 명을 일시에 데려갈 방법도 없고, 우리가 두고 보지도 않을 것이며, 데려간다 한들 후금 땅에서 굶어 죽을 도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금 본토에 이들을 부양할 생산력이 없는데 갑자기 끌고 간들 어떻게 먹여 살리겠는가.
즉 요서를 상실한 후금은 인구가 내전 이전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들 공산이 크고, 완전히 유목을 중심으로 하는 몽골계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수도인 상도를 중심으로 만주인 인구가 일부는 남겠지만 그들은 청의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몽골인들은 북부, 서부의 목초지가 삶의 기반이므로 경제적인 타격도 덜 입는다. 게다가 청나라 조정에서 후금의 몽골인 왕공들은 전부터 청나라 영역에 살고 있는 몽골인 귀족들과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상대적으로 불만도 적다.
어디 그뿐인가? 륵극덕혼이 ‘선대 대칸의 아들’이라서 칸으로 봉해진 것이 아니라 ‘청나라 황제의 봉신’으로서 칸이 되었다는 말은 다음 대에는 애신각라씨가 아니라 보르지긴씨에서 칸 자리를 차지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말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말이다.
“고로 몽골에 대한 청제의 지배력도 과거 금국 대칸들보다 더 강화될 수 있사옵니다.”
“그렇구려. 대칸의 외척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대칸이 될수 있을 테니.”
아마 이를 강조하고자 해서 칸의 칭호에도 굳이 몽골의 옛 조상인 ‘실위(室韋)’를 덧붙인 것이리라. 과거에 후금 대칸이 겸임하던 ‘몽골의 대칸’은 이제 청나라 황제여야 하는데, 그 밑에 ‘몽골의 칸’을 따로 두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 격을 내린 거지.
“허나 그 외양과는 별도로, 과연 청제가 나라의 내실을 얼마나 다질 수 있을지는 아직 알수 없겠소. 고난이 클 테니.”
3년 동안 벌어진 내란으로 후금 땅은 엉망진창이다. 그간 ‘미친 늑대’ 연신이 짓밟고 다닌 농장과 광산 숫자만 수십 개가 넘는다던데 전체적인 피해는 얼마나 크겠는가.
그 복구 책임 역시 덕명에게 있다. 륵극덕혼은 뭐도 없는 상황이고, 덕명이 확실한 주군 자리에 올랐으니 돌봐줄 책임도 있다. 그러니 짐을 져야지.
우리도 내란 피해를 그대로 입은 요서 땅을 인계받아 그 복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니 눈에 띄게 돕기도 어렵다. 과연 덕명이 그 과업을 제대로 진행해서 화북과 몽골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제대로 유지할지, 소화에 실패해서 도로 분리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나저나….올렝카와 율리아한테 미안하기는 하네.”
침전으로 돌아오니 두 사람한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기껏 신경 써서 황자비에 황후로 만들어줬는데 백 년 만에 그 후손을 내 손으로 다시 떨어트린 꼴이니 말이다.
얼굴이 안 닮아서 그런가. 걔네들 얼굴이 율리아를 생각나게 하는 외모였으면 내가 후금 황실이 망하지 않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왔을까.
사실 부수와 율리아의 4대손인 박락 항렬이든, 5대손인 륵극덕혼 항렬이든 외모가 부수와 율리아를 닮은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여진인 얼굴이었다. 그동안 다른 피가 섞이다 보니 유전자가 희석된 탓이 크겠지만, 그렇다 보니 딱히 유대감이 안 생겼다.
정말이지 율리아 닮은 애 하나만 있었으면 적극적으로 걔 도와줬을 수도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난 일, 지금 후회해 봐야 어쩌겠는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나 해야지.
5.
「토적군은 여전히 승승장구」
「올해 토벌한 적도의 수 벌써 수천」
「삼로로 진격하는 연군(聯軍) 중 우리 군이 가장 전과 많아」
북방에서 전란이 끝나가는 동안에도 남방에서는 싸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시보 기사를 통해서 백성들에게도 퍼지는 중이다.
가장 정확한 보도는 물론 조정에서 내는 조보다, 하지만 시보는 신속성과 화제성이 있다.
조보는 확실하게 사실로 판명된 기사가 아니면 싣지 않는다. 게다가 공보(公報)로서 갖는 특성 때문에 기사 논조도 좀 딱딱하다. 하지만 시보는 그런 거 없다. 독자가 재미있게 읽고 돈을 내게 만들려면 어느 정도 양념이 추가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체든, 내용이든.
시보 기사가 재미있어진 건 시대가 달라진 덕분도 있다. 옛날 같았으면, 즉 장조나 중종 시절 같았으면 시보에서 외국 관련 기사를 내려면 조보 기사를 전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로 윤색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각 시보가 직접 현장을 취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원보꾼이라고 부르는 특파원들이 후송 내 개항장에 나가서 취재하고, 토적군으로 나간 군사들의 가족들이 보내는 제보를 받기도 한다. 공식적인 조보에는 절대 안 실리는 소식들이다.
군사들이 직접 시보에 서한을 보내 제보하지는 못하는 건 향도 제도 덕분이다. 군사들이 보내는 모든 우편이 향도들의 손을 거치므로, 그 과정에서 관련 없는 이에게 보내는 서한은 모두 걸러진다. 군사보안 문제를 고려하면 당연한 조치 아닌가.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해도 너무 심한 이야기는 전부 거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통과할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들이 원보꾼들이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소식과 함께 시중에 퍼지고 있다.
“북쪽에서는 송나라 관군이 대패한 뒤로 방어에 집중해서 전전긍긍한다며?”
“절대 지면 안 되는데. 우리 대한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 아닌가!”
술청에서 술잔을 나누는 도성 백성들이 한양도통부가 패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한양도통부가 위치한 도시, 한양이 한자까지 우리 도성을 가리키는 한양과 똑같기 때문이다. 거기도 ‘漢陽’이다.
‘한양 함락’, ‘한양 불바다’ 같은 기사를 보면 나부터도 기분이 안 좋을 거다. 그러니 저런 백성들의 반응도 당연하리라.
“우리 군사들이 동로가 아니라 북로로 갔어야 했는데! 그래야 한양을 지키면서 도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 거 아닌가. 대체 어떤 머저리가 폐하께 그리 가자고 아뢰어서…..”
응, 그 머저리가 후송 황태후란다. 우리 군대가 남경 코앞으로 지나가는 건 죽어도 볼 수 없다고 남창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가 악양으로 갔으면 절대로 악양 방어선이 무너질 리는 없었겠지만, 저놈들이 원하지 않았는데 별수 있나.
내가 잠시 후송 조정의 멍청한 선택을 비난하는 사이 저쪽에서 신이 난 손님들의 화제는 어느새 바뀌었다. 한양이 함락될 위험을 우려하는 심각한 담론에서 이번 전쟁이 자기들한테 안겨주는 직접적인 돈벌이로 말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모두 미주원호군에 공급할 물자를 주로 구매하는 양수상회 – 兩手商會, 존 화이트의 소속 회사인 스미스 앤 스크루지 상회의 한국 이름이다 – 와 주로 거래하는 상회 직원들이었다. 당연히 돈벌이 이야기도 그쪽과 관련되었다.
“자네, 석관식 내느라 바쁘지? 오늘 며칠 만에 쉰 거라고 했더라?”
“열흘. 정말이지 하루라도 온전히 쉴 틈이 없어. 물건이 나오기만 하면 상자에 담을 새도 없이 팔리니까.”
우리가 만든 통조림은 미주원호군에만 공급하는 게 아니다. 우리 토적군은 물론 영국군, 후송 관군까지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보급되는 음식물이 변질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고, 이로 인한 식중독이나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발병하기도 해서다.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를 비롯한 온갖 열대병만 해도 골이 아픈 데 식중독까지 주의해야 한다면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니 위생이 검증된 음식, 통조림 선호가 올라가지.
영국이야 하려고만 하면 자기네 본국에서 직접 통조림을 만들어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가 아직 완공되지 않은지라 운송해야 할 거리가 너무 길다. 그러니 통조림 같은 건 우리한테서 사는 게 싸고 빠르다. 당연한 일 아닌가.
“자네 쪽은 어때? 듣자니 그쪽도 바쁘다던데. 고마신이 동이 났다며.”
“우리야 받아다 팔기만 하지 직접 만들지는 않으니까. 물건 들어올 때만 바빠.”
저쪽 사내는 고무신을 취급하는 상단 종업원인 모양이다. 고무제품 업계도 이번 전쟁으로 통조림 못지않게 대박이 터졌다.
강남 일대는 습지가 많다. 그런 데서 돌아다니려면 방수가 잘 되는 신발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고무장화만큼 그 목표를 잘 충족하는 신발이 없다. 그 지역 토착민들이야 발이 젖든 말든 신경 안 쓰고 그냥 돌아다니지만, 우리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무슨 병 걸리려고.
기존에는 가죽신이 그 노릇을 했다. 하지만 고무신 쪽이 훨씬 관리하기도 편하고 가격도 싸다. 물론 내구성은 잘 처리한 가죽신보다 못하지만, 가격은 훨씬 싸다. 우리가 우리 영토 각지에 설립한 고무 농장들이 본격적으로 고무를 뽑아내기 시작한 덕분이다.
고무신뿐인가? 원래 역사에서는 확실하게 없었던 물건, 고무장갑도 아주 절찬리에 팔리는 물품이다. 나도 깜박 잊고 있었는데 누가 고안했는지 아주 필요한 상품을 만들었다. 빨래나 설거지 등등을 할 때 꼭 필요한 물건 아닌가.
“고마신만 송나라로 실려 가는 게 아니야. 조피도 아주 궤짝으로 간다고.”
고무 공급이 늘면서 조피 가격도 전보다 훨씬 싸졌다. 이제 돼지 창자로 제작하는 조피는 가격 경쟁에도 밀려서 생산이 완전히 중단 됐을 정도다. 재고품이야 뭐 여기저기 남은 게 좀 있겠지만, 조피를 만들기보다 순대를 만드는 데 쓰는 게 훨씬 돈이 될 판이다.
다만 사내는 조피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키득거렸다. 하기야 조피를 어디에 주로 쓰는지 생각하면 언급하면서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 뒤로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좀 더 듣다가 슬며시 일어섰다. 수행하는 선전관이 주인을 불러 냉큼 값을 치렀다. 디에고 얼굴이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다른 선전관을 순서에 따라 데리고 나왔더니 아무래도 좀 돌아다니는 재미가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