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37
4부 421화(2037화)
1.
이런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별 기대없이 겉보기에 소박해 보이는 성당 건물 안으로 들어간 전사들은 그 내부에서 눈앞에 나타난 휘황찬란한 천장화와 벽화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지상이야, 천상이야?!”
이들은 후금 수도 상도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인 줄만 알았다. 소수는 한국의 수도 한양에 있는 마포 성당을 보고 온 경험이 있었지만, 그 성당은 웅장하기는 해도 화려하지는 않았다. 성당이라기보다는 요새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수준이 달랐다. 다채로운 색깔로 그려진 그림들은 도저히 이 세상에 있는 광경이 아닌 것 같았다.
“오, 천주님이시여, 성모 마리아님이시여!”
“제 눈이 영광을 보았습니다!”
새로 지급받은 제복으로 단장한 전사들이 앞다투어 시스티나 성당 바닥 대리석 모자이크 위에 무릎을 꿇었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눈길에는 낯선 동양인들을 신기하게 여기는 기색과 경계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지만,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 주님이시여.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이 미천한 생명을 어여삐 여기소서. 저희는 죄 중에 태어나 죄지은 자이오니 그 죄를 용서하옵시고…..”
“성부님, 성자님, 성령님, 죄 많은 저희를 위하여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무릎을 꿇은 전사들은 만주어와 억양이 이상한 라틴어로 부지런히 기도문을 주워섬겼다. 하지만 그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은 굴마훈은 기도를 올리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여기 오기까지 겪은 수많은 난관을 떠올렸을 뿐이다.
“대칸. 정말 다 놓고 가시는 겁니까? 대주교에 옥새까지요?”
그분이 아니다. 타고 있는 말과 소지한 무기, 그리고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까지 필요한 식량을 제외한 모든 물자를 버리고 간다는 지시를 받은 측근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하지만, 대칸! 러시아의 원병을 받아 재기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다른 건 몰라도 옥새는 쥐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명분이 됩니다.”
“옥새를 쥐고 있으면 미친 늑대가 러시아까지 따라올 뿐이다.”
굴마훈이 서글프게 웃었다. 숙부 아바타이를 그렇게 죽인 걸 뼈저리게 후회한 지 오래다. 얀신부터 먼저 해치웠어야 했다고 몇 번이나 이를 갈았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로 화를 낼 기력도 없다. 지금의 그는 만사를 해탈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뒤를 쫓는 늑대를 떼어놓으려면 쏘아죽이거나, 놈이 배가 부를 만큼 고깃덩이를 넉넉히 던져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그 미친 늑대는 도저히 쏘아죽일 수 없으니, 미끼가 될 만한 고깃덩 이를 두고 가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후금 대칸에게는 옥새가 두 개 있다. 홍타이지가 건주에서 처음 떨어져서 만주 한을 칭할 때, 형인 다이샨이 14년 전에 할하부를 쳐부수고 얻은 대원전국옥새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홍타이지의 아들 호거가 즉위하면서 대금(大金)으로 국명을 바꿀 때 새로 옥새를 만들었다.
이것들을 전부 두고 간다. 그러면 얀신은 대주교와 옥새를 수습하느라 국경을 넘어서까지 추격하지는 못할 거다. 얀신 본인이야 계속 쫓아오고 싶겠지만, 부하들이 붙들고 말릴 거다. 대주교와 옥새부터 챙겨야 한다고. 상도로 귀환하자고.
“그러면 다시 추격을 재개하지는 못할 거다. 우리는 안전하게 러시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대칸, 그러면 다시 일어설 희망은…..”
“없지. 없어.”
굴마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원했던 자리건만, 차라리 포기해 버리니 이렇게 웃을수 있었다.
“러시아 차르가 우리를 도울 거라면 진작에 도왔을 거다. 하지만 그자는 우리 손에 십만 대군이 있을 때도 우리를 돕지 않았다. 그런 놈이 망명자 신세가 된 우리를 진심으로 도울 리가 있겠느냐?”
그래서 모두 놓고 가기로 했다. 대금의 대칸이라는 지위에 미련을 가져봐야 완전한 파멸, 그것밖에 남을 게 없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야 저쪽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대주교 역시 마찬가지다. 도로이 다하스훈 군왕이 상대라면 인질 노릇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있는 가정제에게는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사람 아닌가. 그쪽에서 유효한 인질은 선대 대복진인데 미친 늑대가 이미 그쪽도 작년에 빼앗아 가 버렸고.”
그러니 미친 늑대의 발걸음을 멈추기 위한 고깃덩이로 쓰는 편이 인질로 잡아두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미친 늑대에게 따라잡히면 교섭이고 뭐고 없이 몰살당하고 말 테니까.
“나는 이제 러시아로 건너가 우리의 새로운 길을 찾아볼 참이다. 동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은 대주교와 함께 여기 남아라. 도적이나 짐승들한테서 대주교를 지키기 위해 남았다고 하면 죽이지는 않을 거다.”
굴마훈의 선언이 진영 전체로 전달되자 남은 병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이제 남은 희망이 거의 없다는 건 이들도 알았지만, 주군인 굴마훈이 대놓고 저항을 포기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수백 기에 달하는 병사들이 남기로 했다. 굴마훈은 끝까지 자신을 따르기로 한 3천 기를 거느리고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을 향하여.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기껏해야 러시아군에서 용병 노릇이나 시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칼무크나 준가르가 지금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 갈 만한 곳도 있었다. 서역 일대 러시아군 전력에 구멍이 크게 났으니 말이다. 차니 그 멍청한 작자가끌고 온 병력 대부분이 서역 일대에서 러시아군 보조병 노릇을 하는 여러 부족에 속한 병사들 이었다. 그게 날아갔으니, 러시아 쪽에 탈이 안 날 수가 있는가.
하지만 차르의 지시는 뜻밖이었다. 자신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칼무크 병사들이 감시하게 하는 정도는 예상했지만, 유럽으로 불러들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 차르 옆에서 머무르는 근위대로 고용할 생각인가 하고 추측했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대는 이제껏 세속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싸웠지. 하지만 교회를 위해서 싸우는 기사가 되는 것도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대공?”
처자와 부하들은 모스크바에 놓아두게 하고 굴마훈만 수도로 불러들인 차르는 친절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이 던지는 말은 생각지도 못한 폭탄의 연속이었다.
“로마로 가서 교황의 기사가 되면 어떻겠소. 그러면 이제껏 지은 모든 죄가 용서될 테니, 그대와 부하 병사들의 천국행은 보장되는 거 아니겠소? 덤으로, 삶이 안정되면서 새 가족을 꾸릴 수도 있을 테고 말이지.”
“….알겠습니다. 로마로 떠나겠습니다.”
애초에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굴마훈의 처자식과 부하들은 전적으로 러시아 측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은 해제된 지 오래고 말조차도 없으니 반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굴마훈에게는 그를 믿고 따라온 부하들을 지켜낼 책임이 있었다.
굴마훈은 자기를 기다리던 수하들과 합류한 뒤에 다시 열차에 올랐다. 배를 타고 로마로 갈 예정이었기에 목적지는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오데사였다.
여기서 일행이 늘었다. 칼무크, 크림 타타르 등 차르가 지배하는 유목민 부족에서 징발한 여자 수백 명이었다. 가족을 원하는 이들이 배필로 삼으라는 차르의 전갈이 있었다. 문제는 굴마훈의 부하는 3천 명이라는 데 있었다.
“대칸, 수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습니다만.”
“….로마에 가면 뭔가 방법이 있겠지.”
굴마훈은 한숨을 쉬면서 배에 올랐다. 차르가 준비해 준 기선은 유유히 흑해를 가로질러 콘스탄티노플을 통과했다. 바다를 처음 보고 배도 처음 타보느라 고생하던 이들이 경외에 찬 눈으로 그 도시를 바라보았다.
“저기가 두 번째 로마, 신로마(新路馬)인가!”
너나 할 것 없이 갑판으로 몰려나와 도시를 구경했다. 후금에서도 이 도시는 회교도들의 침략에 맞서서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무너진 로마의 마지막 수도로 유명하다.
과거 역대 대칸들은 이교도에게 빼앗긴 주님의 도시를 되찾아 다시 교회를 세워야 한다며 종종 의례적으로 ‘신로마 탈환’을 외치곤 했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길 생각들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멀어도 너무 멀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이들은 ‘바로 그 도시’를 지금 눈앞에 보고 있었다. 측근 한 사람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칸, 혹시 우리가 십자군이 되어 이 도시를 탈환하는 겁니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
군함도 아니고 여객선을 타고 앞바다를 통과하는 중이다. 무장도 갖추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로마 탈환인가. 그 도시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대략 보름에 걸친 항해 끝에 선단은 교황령의 항구인 안코나에 도착했다. 육지에 내려서 기다리니 교황청에서 나온 장교가 숙소를 안내했다. 그리고 굴마훈을 먼저 로마로 데려가서 관저인 퀴리날레 궁전에 있는 교황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대공.”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는 여든이 가까운 노인이었다. 하지만 자세는 곧발랐다. 굴마훈을 대하는 태도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대가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에 관해서는 차르가 보낸 편지에서 들었소. 복잡한 사연이 있더군.”
“그렇습니다.”
굴마훈은 철저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 세상 반대편까지 왔다. 수하들과 함께 발을 디디고 설 곳을 얻으려면 교황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세속에서의 다툼을 벗어나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니, 참으로 대단한 결심이오. 그대의 결심을 높이 사서 그대들을 ‘성 베드로의 로마를 지키는 카타이 근위대’로 임명하니, 이 성스러운 도시를 최선을 다해 지켜주기를 바라오.”
교황은 이 후금인들을 원래 교황청 직속 기사단으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굴마훈을 비롯해 다수가 기혼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방침을 바꿨다고 했다. 교황의 명령을 받는 종교기사단의 기사들은 수도자를 겸하므로, 가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성하.”
굴마훈도 속으로 안도했다. 남은 평생을 고자처럼 살라고 하면 고생하며 로마까지 건너온 수하 군사들이 얼마나 큰 난동을 부릴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황령에 속한 정식 군대로 교황에게 승인받았다는 소식에 수하들은 기뻐했다. 동방에서 입고 온 낡은 옷을 벗을 수 있도록 새 제복이 지급되어 그 기쁨을 더했다. 러시아에 있을 때 본 근위병들이 입고 있는 것 같은 화려한 옷이었다.
그리고 그 새 제복을 입고 로마를 순례했다. 직접 올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 왔다. 모두 마차에 탄 채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한꺼번에 움직일 수는 없었다. 여러 조로 나누어 로마에 산재한 여러 성지를 방문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라테라노 대성당 등 유럽에서 온 사제들에게 이름을 듣기만 했던 그 성스러운 성당들을 직접 방문하고 있었다.
굴마훈이 시스티나 성당을 찾게 된 건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안내원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더니 여기로 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벽면과 천장을 메운 거장들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는 데 돈 참 많이 들었겠군.’
미켈란젤로에게 저 천장화를 그리도록 주문한 율리우스 2세가 그 발언을 들었으면 크게 역정을 냈으리라. 하지만 2백 년도 더 전에 죽은 사람이니 그럴 걱정은 없었다. 잠시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굴마훈이 안내를 맡은 교황군 장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교황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연대를 ‘몬테카시노’라는 곳에 보내겠다고 하시던데 거기가 대체 어떤 곳이오?”
안코나에 머무는 동안, 굴마훈 일행은 교황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머나먼 동방에서 찾아온 기사들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교황청에 속한 관리와 군인들은 무척 큰 호감을 품고 이들을 대했다. 이 장교도 마찬가지였다.
“교황령의 남쪽 끝입니다. 거기 있는 카시노 산(몬테카시노) 위에 아주 중요한 수도원이 있지요. 나폴리 왕국과 경계를 접하는 곳인데, 요즘은 좀 시끄럽습니다.”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으로 프랑스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번이나 전쟁이 터졌고, 그때마다 주인이 바뀌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황실인 합스부르크 가의 방계인 페르디난도 2세가 다스리고 있다. 그 역시 그레고리우스 16세 못지않은 반동적인 군주라서, 국내에서 벌어지는 자유주의 운동을 맹렬히 탄압하고 있다.
“‘청년 이탈리아당’이라는 자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있지요. 교황령에서도 놈들이 활동하는데, 놈들은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모든 군주를 몰아내고 공화국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엄하게도 교황 성하까지 그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 들.”
프랑스인인 교황군 장교는 동방에서 온 이 카타이의 귀족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로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이들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굴마흔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쪽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교황령은 나폴리와 전쟁 상태라는 이야기인가? 나폴리 땅으로 쳐들어가 약탈해도 상관없는 건가?
유럽에서는 전쟁 상태가 아닌 상대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교황령과 나폴리가 확실히 전쟁 중인지 아닌지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듣자니 교황군 근위대라고는 해도 봉급은 얼마 안 된다던데, 수입을 보충할 방안이 꼭 필요했다.
순수한 기병이 3천이다. 말과 장비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비용만 따져도 상당한 액수가 들 테고, 가족을 얻어서 정착하려면 당연히 돈이 더 필요하다. 과연 교황이 이 망명자들에게 그만한 돈을 안정적으로 지급해 줄까?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