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42
4부 426화(2042화)
9.
“아무래도 용 아니겠습니까? 날아다니면서 불을 뿜는다고 하면 말이지요.”
대전을 찾아온 외숙부 김좌근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여전히 판내직부사 자리에 있으면서 내 제일가는 측근 역할을 하고 있다.
“불을 뿜으면 곤란합니다, 내구. 천천히 돌아다녀야 하는 비행선이 불을 뿜는다면, 화재가 발생해서 추락한다는 뜻 아닙니까.”
“아니지요. 사고가 나는 상황을 가리켜 불을 뿜는다고 말씀하시는 건 적당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그 위를 기어다니는 미물들에게 연자포를 쏘거나 진천뢰를 던지는 행동이야말로 불을 뿜는다는 표현에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김좌근도 비행선을 타본 적이 몇 번 있다. 본래 판내직부사가 그런 일에 관여하는 직책은 아니지만, 임금의 하나뿐인 진짜 외숙 아닌가. 더구나 그 자신이 놀기 좋아하고 신기한 일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니 비행선 시험에 시승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
“본래 사람이란 남들이 못하는 짓을 하게 되면 발밑에 있는 자들에게 그 재주를 과시하고 싶어지는 법이지요. 도적들의 머리 위에 날아간 비행선 승무원들이 어찌 그런 욕심을 아니 품겠습니까?”
“일전에 친위대장이 하던 말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디에고가 비행선을 처음 타고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갈로도에서 모로족 마을을 찾으러 다닐 때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그놈들 머리 위에 불벼락을 던져주고 싶다고 했었지.
디에고는 지금도 종2품 부장으로 친위대장 자리에 있다. 나와의 깊은 친분에 더해 술루국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빨리 승진하기는 했지만, 그 끝도 빨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 고위직인 삼군부 도종사나 대한금위대총사까지 오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저도 그건 압니다, 내구. 그래서 정찰에만 투입하고 절대 적을 공습하러 나가지는 말라고 지시한 겁니다.”
일단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폭탄을 던지거나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하면, 정확히 맞힐 욕심을 품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손으로 던지는 폭탄 따위가 조준한 대로 떨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고도를 낮추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상에서 날아드는 대공사격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처음에야 그저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것만 봐도 겁을 먹겠지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익숙해지면서 공포감이 사라질 테니까. 공습을 당한다면 공포감과 더불어 적대감도 생길 테고.
“아닙니다, 폐하. 정확히 맞히려고 하지 말고, 총알이 아예 닿지도 않을 높이에서 폭탄을 적당히 내던지고 오게 하면 충분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김좌근은 즉석에서 석묵필로 간단한 장치를 그려 보였다. 비행선 한가운데에 폭탄을 담은 상자를 달고, 적의 머리 위에서 탑승원이 손잡이를 당기면 상자 바닥에 설치한 문이 열리며 그 속에 든 폭탄이 그대로 땅에 흩뿌려지는 장치였다. 그렇다. 폭격기용 폭탄창이었다.
순간적으로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김좌근이 시대를 앞선 천재인가, 아니면 적의 머리에 폭탄을 떨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김좌근이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우리 비승군 군사들은 안전하게 돌아오면서 적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그렇게 정식으로 무장을 갖춰 보내시는 편이 자기들 마음대로 임의로 날뛸 여지를 주기보다 나으실 겁니다.”
“흠, 그렇습니까.”
확실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김좌근이 죽은 김유근보다 뒤떨어지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그 자신도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대화였다. 게다가 아무래도 내 외숙이다 보니 좀 더 편하게 직언을 건넬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다른 대신들은 내가 ‘공연히 홍적을 공격하겠답시고 괜히 만용을 부리지 못하게 하시오’라고 한마디 하니 바로 그 문제에 입을 닫았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온 건 아니지만, 따로 찾아온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배짱에는 외숙이라는 지위가 작용했으리라.
이런 능력과 배짱을 알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안동 김씨 문중 일각에서는 김좌근이 여태 판내직부사 자리에 있는 걸 두고 투덜거리는 이들도 있긴 있는 모양이다. 내 외숙인 데다 안동 김문의 수장 노릇을 하는 사람에게 고작 판내직부사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김좌근 본인은 이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폐하, 그런 소리를 하는 자들은 사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12부 대신 중 폐하께서 겪으시는 온갖 고충을 덜어드리는 일을 하는데 판내직부사만큼 긴요한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좌근의 말대로다. 승선원, 내시부, 내수사를 비롯한 온갖 태황직할 관청이 전부 내직사 산하에 있다. 그러니 판내직부사는 문자 그대로 임금의 손발이 될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물론 국상이나 좌우 참정대신 자리에 오르기는 좀 힘들어진다. 하지만 임금의 뜻을 바로 접하고 수행하는 자리니만큼 실제 세도는 무척 강하다. 당연히 따로 떨어지는 고물의 양도 상당하다. 물론 말썽이 되지 않으려면 그것도 적당히 챙겨 먹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김좌근은 그 선을 절묘하게도 넘지 않았다. 내가 이놈의 외숙부를 내몰아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과도한 뇌물을 받거나 행정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걸 눈감아주는 대신에 나도 김좌근을 통해 내 개인적인 일을 적당히 처리하곤 한다. 오늘 김좌근이 입궐한 본래 용무와 같은 일 말이다.
“그, 석묵필 제조업자와의 특허 계약은 어찌 되었지요?”
“폐하의 설계에 따라 만든 석묵필을 생산할 권리는 송동상단 산하에 있는 송도필묵이라는 상행에 내주기로 했사옵니다. 장차 20년 동안 석묵필을 팔아서 버는 돈의 5푼을 직접 받고, 특허권을 팔고 받는 돈은 3할을 받으며, 그와 별도로 회사 주식의 2할을 받기로 했습지요.”
‘내 설계에 따라 만든 석묵필’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바로 뒤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대충 19세기 중반쯤 나왔던 것 같은데, 일단 아직은 안 나왔다. 내가 어릴 때 본 과학사 책에서는 어느 미국 소년이 만들었다고 한 것 같은데, 걔 태어나긴 했으려나.
이 간단한 물건을 아직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별거 없다. 대한에 고무 공급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중종 때까지는 고무라는 물건 자체가 거의 반입이 안 되니까 고무지우개도 없었고, 이번 생에서는 지우개가 있기는 한데 워낙 일이 많아 그런 건 떠올리지도 못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중종 때 압력솥 회사 주식처럼 자식들에게 물려 줄 뭔가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면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내 자식들한테 따로 물려주기도 편한 물건. 지우개 달린 연필.
자전거가 그게 안 됐던 건 내가 내수사 장인들을 시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수사 내에서 진행된 사업을 밖으로 빼돌리면 안 좋은 선례가 될 테니, 그건 수익금으로 현금이나 내주는 수밖에 없다. 대대로 누리게 해주려면 외가를 통해 세탁한 외부 회사 주식이 최고다.
분재한 재산은 4대 후에 종친 신분을 상실하면 회수하는 게 무종 때 내가 만든 법이다. 다만 그 대상은 토지, 염전, 어장, 광산 같은 고정자산이 주된 대상이고 변동이 심한 현금은 제외였다. 그래서 과거 종친들은 어떻게든 4대가 지나기 전에 재산을 늘리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제도도 살짝 바뀌었다. 일단 몇 대가 살아온 집을 내놓으라는 건 너무하다고 해서 저택이 반환 대상 재산에서 빠졌다. 그리고 아예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국유로 된 고정자산은 처음부터 내주지 않는 게 관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황자녀들이 혼인할 때는 내탕금 형식으로 내수사에서 현금만 준다. 그러면 당사자가 알아서 – 실제로는 내수사가 도와서 – 원하는 바에 따라 자산을 구성한다. 저택이나 농경지, 염전, 주식 등등을 말이다. 즉, 4대가 지나 종친 신분을 잃어도 재산을 반납할 필요 없다.
물론 이런 관습이 확립되기 전, 몇 대 전에 분가한 종친들은 반납할 자산이 있는 경우도 꽤 된다. 그런 집안들은 반납 안 해도 되는 재산을 만드느라 여전히 낑낑거리며 바쁘다.
어떻게 보면 편법이다. 하지만 이건 본래 국고로 들어올 재산이 종친들에게 흘러 나가는 걸 막고자 했던 법이다. 이제 국가도 황실도 옛날보다 부유해져서 서로의 주머니에 손을 댈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기도 하니, 이게 어떻게 좋게 바뀌었다고 할 수 없겠는가.
10.
우여곡절 끝에 비행선이 강남으로 떠났다. 김좌근이 제안한 폭탄창 설치는 일단 안 하고 갔고, 대신 기본적인 임무는 정찰이지만 임무 수행 도중에 적을 발견하면 상공에서 폭탄을 던져도 좋다고 조건부로 승인했다.
조건은 간단하다. 싣고 다니는 폭탄은 10근짜리 진천뢰 12발로 제한하며, 고도는 적군이 쏘는 총포에 맞지 않도록 최저 5백 보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기압을 이용해서 고도를 측정하는 고도계는 이미 있다. 우리가 기구 비행을 해온 게 벌써 몇 년인데 그런 도구 하나 안 만들었겠는가.
유럽에서 들어온 기압계는 이미 중종 시기 날씨 관측, 항해 보조용 도구로 쓰고 있었다. 이후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지고 기압이 낮아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도계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기구 비행 때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상 상황에 따라 기압이 변화하는 점을 고려하여 비행 직전에 측정한 기압 값을 기준으로 잡고, 거기서 기압이 얼마나 내려가는가를 측정하여 기구가 있는 현재 고도로 환산해서 보여준다. 비행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대 고도계처럼 정확하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수십 보 정도 오차가 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략적인 고도 측정에는 충분하다.
여기에 보조적인 관찰 수단도 있다. 바로 숙련된 탑승원의 눈이다. 특정 고도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보이는 사람과 짐승, 건물 등의 크기를 보고 고도를 확인하는 거다. 이건 정말 지상 관측에 익숙한 숙련된 승무원만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며 아래를 살피고 폭탄을 떨구다니요. 저희도 이걸 타고 튀르크 놈들에게 폭탄을 던질 수 있다면 콘스탄티노플을 바로 탈환할 텐데요.”
내게 졸라 비행선을 타본 미하일 대공이 눈을 빛냈다. 아니, 어째 비행선에 타기만 하면 애고 어른이고 죄다 다들 아래쪽에 폭탄 던질 궁리만 하는 거냐? 혹시 여자들도 비행선에서 땅을 보면 뭘 던지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려나?
“하지만 임금 폐하. 미운 놈이 있으면 그놈의 머리통에 돌팔매라도 던지고 싶은 건 정말 당연한 욕심 아닙니까. 저는 맞지 않고 때릴 수 있다면 더 좋고요. 그 미운 놈의 팔이 닿지 않는 하늘에서 돌팔매질을 해댈 수 있다니, 천벌을 내리는 기분도 들 겁니다.”
그동안 미하일 대공은 운이와 함께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대한의 여러 문화를 실컷 만끽했다. 둘이 죽이 잘 맞아서 무척이나 즐거워했다고 들었다.
러시아는 옛날부터 우리와 가까웠고 교류도 무척 많았다. 하지만, 외국의 문화를 자국에 들여와서 즐기는 것과 본고장에 가서 즐기는 건 엄연히 느낌이 다른 법이다. 미하일 대공도 한국에 와서 그런 재 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운이와 함께 전국을 여행하고 다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설악산에서 총을 쏘아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라거나, 동해에서 포경선이 고래 잡는 광경을 보았다거나. 물론 미인을 만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순친왕 대공께서 안내해 주신 살롱 – 기루를 말한다 – 에서 만난 여인들도 아름다웠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본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은 공주 전하였던 듯합니다. 아직은 어리시지만 그 청초하고 가녀린 아름다움에 제가 잠시 넋을 놓았을 정도였습니다.”
이건 진심인가, 내 비위를 맞추려는 사탕발림인가. 내가 특별히 황실 행사에 초대했을 때 어쩌다 얼굴 한두 번 본 게 전부일 텐데 저런 말이 나오다니.
물론 현지가 중전을 닮아 키도 크고 꽤 예쁘기는 하다. 하지만 고작 열둘인 애를 두고서 자기가 본 최고 미인 어쩌고는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일단 건강부터 안 좋다니까.
“두 번째는 보르네오 공작의 딸인 듯합니다. 우연히 몇 번 만났는데 참 아름답더군요.”
그러면 그렇지. 이게 진심이었구먼. 디에고네 막내딸이 마음에 든다, 이거지?
‘보르네오 공작’은 내 친위대장 디에고를 의미한다. 술루국에서 전통적으로 둘째 왕자에게 내리는 작위인 ‘볼내공’이 보르네오섬의 공작이라는 뜻이다.
디에고에게는 자식이 셋이고, 그중 막내인 외동딸이 꽤 예쁘기는 하다. 왕실 시조인 ‘그’ 디에고와 도로테아가 웬만큼 선남선녀 커플이었어야지. 그 피를 받은 덕인지 술루 왕실에는 미모가 떨어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남자건, 여자건 말이다.
다만 그쪽은 암묵적으로 전주 이씨 분가로 취급되므로, 황실은 술루 왕가와 혼사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이게 이쪽으로 넘어가나.
잘하면 러시아 황실과 술루 왕가 사이에 국혼이 성립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이게 장차 우리한테 어떤 도움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황실하고 직접 혼사를 맺는 것보다야 물론 못하겠지만, 그래도 더 가까워지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대공. 그 소저가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건 좋지만, 괜한 욕심을 품어서 그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될 일이오. 주의하기를 권하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도 황족입니다, 폐하.”
그래, 그 황족이라는 점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로마노프 황실이 얼마나 바람기가 강한 집안인지 내가 뻔히 아는데? 루시아가 꽉 잡고 살았던 알렉세이 하나 빼고 나머지는 죄다 정부가 한둘이 아니었다. 차르만이 아니라 대공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괜히 디에고네 딸 유혹해서 건드리고 자기 혼자 러시아로 튀기라도 하면 그 꼴을 어떻게 보나. 그런 일 생기기 전에 미리 경고 정도는 줘야지.
그런 개인적인 사정과 별개로 미하일 대공은 비행선에 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가 이어졌다.
“폐하. 비행선을 타고 날아가 튀르크 군의 대열 상공에서 폭탄을 던지고 연자포를 쏘아서 놈들을 시체로 바꾸어 놓는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부디 러시아에서도 비행선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차르께서도 이 신기한 병기를 보시면 무척 반기실 겁니다.”
“신하들과 의논해 보리다.”
옛날 표트르와 알렉세이 시절에는 러시아가 체계가 아직 제대로 안 잡힌 탓인지 뭐든지 다 배워가려고 난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도 통치가 안정되며 웬만큼 틀이 잡힌지라, 예전처럼 다 배워가겠다는 식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비행선은 다른 모양이다.
아, 비행선에만 흥분한 게 아니다. 미하일 대공은 귀차를 보고도 눈을 번득였다.
“그런 게 있으면 어떤 적도 쳐부술 수 있겠습니다. 적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연자포에 총탄이 있는 한 죽을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가져가고 싶습니다.”
귀차는 따로 태워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시중에 깔린 신문만 봐도 강남으로 간 귀차가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굳이 타 봐야 위상을 알겠는가. 과장된 기사가 퍼뜨린 부풀린 환상을 믿으면 믿었지.
그나저나 우리 귀차들은 잘들 싸우고 있으려나. 듣자니까 태평군도 우리 귀차랑 후송군의 귀갑차 상대로 큰 피해를 본 나머지, 장갑 차량을 맞상대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을 구상해서 맞서는 모양이던데.
지금 태평군은 사천까지 들어가 세력권을 넓히고 있다. 솔직히 거기까지 쫓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