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44
4부 428화(2044화)
11.
태평천국군은 전투에서 우리 귀차를 파괴하지 못했다. 대포는 발사하기 전에 회선포에서 탄환을 퍼부어 제압해 버리고, 총알은 아무리 맞혀도 소용이 없다.
제대로 싸워서 소용이 없으면 변칙적인 방법을 쓰게 된다. 밤에 우리 군이 쉬고 있을 때 진영 내에 침입해서 방화를 시도한다거나 화약으로 귀차를 폭파하려고 노리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개중에 아주 용감한 태평군 병사 몇몇은 폭탄을 가지고 우리 진격로에 매복하고 있었다. 폭탄을 우리 귀차에 던질 생각이었는지 안고 뛰어들어 자폭할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놈들이 귀차에 다가가기도 전에 주변을 에워싼 우리 보병들이 발견해서 사살했으니 말이다.
전차는 주변을 보는 시야가 제한되므로 위험을 피하려면 보병의 지원을 꼭 받아야 한다. 그게 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상식이었다. 그래서 토적군에 명을 내려 두었다. 귀차가 움직일 때는 꼭 충분한 숫자의 보병이 수반해야 한다고 말이다.
“보병 없이 귀차를 움직이다가 적의 공격을 받아 손실하는 사태가 터진다면, 크게 문책할 것이오. 이는 추후에도 귀차 운영의 기본 방침이 되어야 하오.”
“예, 폐하.”
갖가지 방식으로 시도한 직접적인 공격에도 실패하자, 이제 태평군은 아예 귀차가 자기네 진영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바위나 돌, 벽돌, 흙 따위로 벽을 쌓거나 아예 큰 구덩이를 파서 길을 끊는다. 강에 걸린 다리를 파괴하는 거야 기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우리 군대의 진격을 막지 못한다. 우리 군대는 잘 훈련된 공병대를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공병은 경인왜란 시절부터 그 전통을 계승해 내린 유서 깊은 부대가 아닌가.
미주원호군도 마찬가지다. 그쪽은 각 연대에 공병이 딸려 있는데, 버지니아 연대가 다른 두 연대를 능가하는 우수한 공병을 보유하고 있다. 연대장 리 대령부터가 공병 출신이니까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처럼 우수한 공병이 있으니, 우리 귀차를 저지하려는 적의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가곤 한다. 길이 파여 있으면 메운다. 메우기에 너무 깊은 호라면 목재를 엮어서 다리를 놓는다. 헐어서 치우기 힘든 장애물이라면 폭파한다.
우리 군대가 진격하는데 이런 공병의 활동은 필수다. 남부 중국의 지형은 산, 하천, 습지, 호수가 사방에 널려 있어 공병이 없으면 진격로 확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귀차만이 아니라 보병도, 기병도, 포병도, 치중대도 그렇게 확보한 진격로를 통해 진군한다.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후송군은 전문적인 공병이 없고 그때그때 보병들을 대충 동원해서 일을 시킨다. 그것도 일손은 일손이니 써먹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성은 떨어진다.
어디 전문성뿐인가. 토적군에서 올린 보고에 따르면, 놀고먹던 요주도통부 관병들보다는 일상에서 노동하다가 모인 단련병들이 일을 시키기에는 차라리 더 낫다고 한다. 그들 중에 태평천국 동조자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만 빼면 말이다.
요주도통부는 내륙에 위치해서 외부와 직접 접하지 않는 유일한 도통부였다. 그래서 이번 난리 이전부터 요주도통부 군사들은 후송 전체에서 가장 훈련이 안 되고 기강이 형편없는 군사들이라고 악평이 자자했다. 황실도 굳이 그들을 가다듬으려고 하지 않았고.
바로 그 형편없는 기강 때문에 배상제회 토벌 명령을 받고 잡으라는 배상제회는 안 잡고 덕성도를 때려잡았고, 본래 그만큼 커지지 않았을 난리 규모를 몇 배나 키웠다. 본격적으로 난리가 터진 뒤에도 정신을 못 차려서 담당 구역인 강서성을 절반 가까이 잃었었고.
홍수전이 항양성을 함락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이룬 지도 어느덧 6년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요주도통부는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렸고, 우리 본군이나 미주원호군과 함께 출동하지 않으면 태평군에게 지고 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적도들과 만나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 군사들에게 날아드는 총알을 나눠 맞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본래 그자들의 싸움이니 그 정도는 해야지.”
후송 조정에서는 우리가 그냥 반군을 다 때려잡아 줬으면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애초에 후송 내의 반란 진압 아닌가. 그러니 후송 관병이 주력으로 나서지는 못해도 한몫 끼기는 해야 하는 게 맞다. 같이 싸우면서 총알받이 노릇이라도 해야지.
“저들의 싸움에서 저들은 상하지 않고 우리 군사들만 죽고 다친다면 그게 무슨 불합리한 일인가. 마땅히 자기네 싸움에 힘써 임하도록 도와야 할 일이다.”
당연한,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에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자기네 싸움에는 당연히 자기네가 피를 흘려야지. 그리고 우리가 대신 흘려준 피에 대한 대가는 당연히 비싸게 치러야 하고.
“헌데 그 대가를 지금 미리 받으려는 놈들 때문에 골치로군.”
미주원호군 소속 의용군들. 그놈들 때문에 나오는 잡음은 토적군 지휘부에 시름을 안기고 있다. 이게, 세 연대 모두 돌아가는 내부 사정이 생판 다르다 보니 지휘부에서 조율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일단 루이지애나 연대는 가장 무난하다. 말이 의용군이지 실상은 정식으로 파견된 정규군 아닌가. 게다가 연대장인 드 뤼옹 대령이 개인적으로도 나하고 잘 아는 사이다 보니 기강도 살아 있고 협력도 잘 된다. 병력이 일부 교체되면서도 그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진짜 의용군들인 버지니아 연대는 수시로 사고를 치곤 한다. ‘후송군의 요청에 따를 뿐’이라는 핑계로 수시로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휩쓰는 것도 여전하다.
이게, 우리 쪽에서 계도하고 한국계인 존 화이트 소령이 힘써 타 이른 뒤에는 좀 조용해진 상태긴 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면서 일부 병력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그들과 교대할 인원이 새로 왔는데, 이 신병들이 문제였다. 2년 전에 본대가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짓을 했다.
후송 조정에서야 아무 항의도 하지 않았다. 강서의 시골 마을 몇 개 따위야 불타든 말든 조정으로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주도통부 측이 ‘반적들의 소굴을 토벌했다’라고 보고서 까지 써서 올리지 않았는가. 정당한 ‘토벌’에 항의할 리가.
그나마 버지니아 연대는 좀 나은 거였다. 산티아고 연대는 거쳐 가는 모든 마을을 메뚜기 떼처럼 대놓고 약탈했다. 우리가 그러지 좀 말라고 하는데도 이놈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그저 기가 막혔다.
“산티아고 연대 장졸들에게는 아직도 녹봉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고 합니다, 폐하. 벌써 1년 가까이 녹이 끊겼다고 합니다.”
루이지애나 연대와 버지니아 연대는 본국에서 봉급이 온다. 누벨 프랑스 정부에서 조직한 의용군이라는 형식인 루이지애나 연대는 누벨 프랑스 정부에서, 후원회가 결성된 버지니아 연대는 후원회에서 돈을 보낸다. 후송 현지에서 풍족하게 지내기에는 중분한 액수다.
하지만 산티아고 연대는 한 푼도 보수가 없었다. 그저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려고 병력을 파견한 본국 정부들은 나폴레옹이 죽은 뒤로 의용군단에도 관심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봉급 따위를 챙겨줄 리 없었다. 심지어 교대할 인원도 오지 않는다.
식량은 후송 측에서 최소한은 제공받고 있으니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명석이 전쟁터에 왔는데 보수가 한 푼도 없다. 교대할 인원을 보내지도 않는다. 병사들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 연대 병사들이 그렇게 약탈에 열중하는 거였다.
“폐하. 차라리 노략질을 멈추는 조건으로 우리 측에서 급여를 주면 어떻겠습니까?”
“되었다. 그 뜻은 알겠으나, 그놈들은 이미 나쁜 물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보수를 준다고 하여 그놈들이 패악질을 멈추겠느냐? 출병 초기에 자기네 본국에서 아직 돈이 올 때도 즐겨 약탈하던 놈들 아니냐.”
그렇다. 산티아고 연대는 출정 초기부터 아주 신나게 약탈을 즐겼다. 하긴, 그때도 그놈들 봉급은 버지니아 연대 의용병들이 받는 돈에 비하면 30% 수준이긴 했었지.
“그리고 저들은 우리 지휘를 받기는 해도 우리 군사가 아니다. 그러니 송나라 관부 측의 안내도 없이 대놓고 화적질을 벌이지 않는 이상은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전선에는 절대로 내보내지 말라고 하라. 그런 자들을 두었다가 도리어 화가 되면 어쩌나 우려된다.”
싸울 의욕이라고는 없는 놈들을 전선에 내세웠다가 그놈들 자리에 구멍이라도 나면 그게 더 큰 일이다. 천 명도 안 되는 산티아고 연대 병력이 그렇게 긴요한 것도 아니고. 후방에 두면서 귀차 부대 주둔지 경비나 거들게 하면 그만이다.
그나저나 귀차는….언제까지나 보병을 따라다니게 할 수는 없다. 기병 대신 기동전력으로 써먹을 정도가 되면 운용 방법이 달라지긴 해야 한다. 그때는 보병이 아니라 전차가 작전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될 테니까.
하지만 두 발로 걷지 않는다 뿐이지 그때도 보병은 꼭 필요하다. 전차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보병전투차, 또는 장갑병력수송차에 탑승한 기계화보병이 필요해진다.
그게 가능해진, 그리고 필요한 시절이 왔는데도 ‘전차는 오직 보병을 지원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전차 성능과 운용 교리를 개선하지 않으면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 기동전에 박살이 난 연합군 꼴이 난다. 그건 피해야지.
하지만 비록 증기엔진을 달았다고는 해도 실용적인 전차가 원래 역사보다 70년이나 빨리 전장에 투입된 세상이다. 과연 이쪽 세상에서 기갑부대를 활용한 기동전 교리가 언제쯤이면 나타나려나. 내가 미리 관련 저술을 남겨둔다면 도움이 되려나.
어쨌든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한 문제다. 당장은 눈앞에 있는 태평천국과의 싸움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12.
중신들과 이미 수십 번이나 나눈 이야기지만, 우리 병사들의 피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출병한 직접적인 계기는 배상제회가 저지른 세계적인 테러지만, 그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과 상실된 인명에 대한 보상은 후송 조정이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송나라 조정에서는 어떻게 대가를 치르겠다는 확답이 없다고 하였겠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외무대신 박경완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 공사가 남•경에 있는 후송 조정에 직접 찾아가서 채근했으나 아직 확실한 답이 없다고 했다. 보답하기는 하겠지만, 홍서당 토벌이 아직 한창 진행되는 중인지라 논의에 나설 여유가 없다고 했다나.
“우리가 딱히 무리한 대가를 요구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폐하.”
우리 조정에서는 이번 출병의 대가로 광동에 있는 해릉도(海陸島)를 점찍었다. 이미 우리 영토인 뇌주와 마카오 한가운데 있는 섬이면서 거점으로 삼기에도 나쁘지 않다. 이번 일로 후송 조정이 우리한테 진 빚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여기에 뇌주도 좀 더 확장하기로 했다. 우리 소유인 항구를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경계선을 넓히기로 말이다. 뇌주반도 전체를 차지하겠다는 건 물론 아니고 말이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전쟁이 슬슬 3년째로 접어들고 보니, 다들 품고 있는 욕심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참이다.
영국은 홍콩섬 북부에 있는 구룡반도를 차지해서 거점을 확장하려고 노리고 있다. 옆에서 나란히 싸우는 일본은 그동안 어중간한 일본의 세력권이던 해남도에 확고한 자기네 거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동안 해남도에 있던 일본 영향권은 토지를 임대해서 구축한 상관과 농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의 기본적인 해외 정책에 따라 적극적인 진출을 하지 않았고, 해외에 항구적인 영토도 획득하지 않았다. 토지 임대도 미쓰이 상회의 명의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이 중국 해안에 거점을 만들어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조금씩 부러워진 모양이다. 그러니 이참에 그동안 해남도에 구축한 거점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고 싶다는 거겠지.
“혹시 일본 막부는 해남도를 통째로 할양받기를 원하였습니까, 숙부?”
“그렇지는 않습니다, 폐하.”
이 질문에 답한 이는 박경완이 아니다. 미주에서 귀환하는 길에 일본에 들러 딸을 만나고 온 숙부 전왕이다. 처음에는 교토에 들러 황양공주만 만나고 올 생각이었는데, 요코하마에 배가 기항했을 때 쇼군 이에츠구의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에도에 들렀다가 가라는.
이에츠구는 마침 내게 이 문제로 전갈을 보내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전왕이 찾아와서 크게 반겼다고 한다. 그리고 전왕을 통해 구두로 내게 이 문제에 관한 자기 뜻을 전했다.
“해남도는 우리 경상도만큼 큰 섬인데, 어찌 그 큰 섬을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겠습니까? 그보다는 기존 자기 측 거점이 있는 섬 북부에, 항구를 조차지로 얻어 확보하고 싶어 하는 듯하였습니다.”
하기야 해남도는 뇌주반도 전체 면적보다 네 배는 되는 섬이다. 아무리 송태후라고 해도 그 큰 섬을 일본이 몽땅 먹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할 걸. 커도 너무 크지. 게다가 일본군이 세운 공적도 해남도를 달라고 할 만큼은 아니고.
그러면 섬 전체는 아니어도 일부 영토라면 할양받을 수도 있을 텐데 왜 조차를 원할까. 왜 영구적으로 자기 땅으로 만드는 대신 무기한 임대라는 형식으로 소유권은 후송 측에다 남겨두려는 걸까.
“소인도 궁금하여 물었사온데, 그건 후송 측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대군 본인이 직접 말하기를, 아예 빼앗는다면 송인들이 원한을 품고 되찾고자 칼을 갈겠지만 ‘그 땅을 우리는 빌려 쓸 뿐이라’라고 하면 그런 감정이 훨씬 덜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 폐하.”
신하들도 동의했다. 흠, 하지만 조차라고 해도 결국은 땅을 뺏긴다는 본질은 그대로인데 큰 의미가 있을까. 요시츠구가 생각보다 시야를 멀리 두고 본다는 건 알겠지만 그게 그자의 진심인지, 위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영국과 일본 외에 군대를 보낸 다른 나라들도 중국 해안에 거점 하나씩 얻겠다는 생각은 다 똑같다. 하지만 그쪽은 워낙 병력이 적어서 공을 인정받을지 모르겠다.
“내달군이나 백이의군이나…뭐 제대로 한 게 있는가?”
“별로 없습니다, 폐하.”
마카오에서 바로 올라간 포르투갈군은 다르다. 하지만 유럽에서 직접 건너온 다른 나라 군대들은 열대병 때문에 절반은 늘 침상에 누워 앓고 있다. 우리 측에서 제공하는 의료진과 의약품이 효과를 발휘해서 사망자는 꽤 줄였지만, 환자는 끝이 없다.
“유주 임금들이 내는 헛된 욕심 때문에 공적도 세우지 못하고 군사들이 죽는구려. 쯧쯧.”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헛된 욕심’으로 아시아로 건너온 유럽인들이 한 무리 제물포로 들어왔다. 전에 예고한, 몰트케가 지휘를 맡게 될 프로이센군 의용연대가 드디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