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45
4부 429화(2045화)
13.
프로이센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을 때, 나는 숙부 전왕과 따로 만나서 누벨 프랑스와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참이었다. 공사관과 익문사를 통한 공식적인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직접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법이니까.
“황제가 눈을 감은 지 몇 달이 지났어도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온 천하에서 죽은 황제를 기리는 이들이 찾아와 영전에 무릎을 꿇고 그 복을 빌었습니다.”
누벨 프랑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남북 아메리카 전역, 그리고 전 유럽에서 나폴레옹의 무덤 앞에 초를 밝히러 몰려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서서 움직일 공간이 부족할 지경으로 촛대가 늘어서 있었다나.
나폴레옹이 묻힌 무덤은 누벨 앵발리드라고, 파리에 있는 원조 앵발리드와 구조는 똑같지 않으나 용도는 비슷한 건물이다. 누벨 프랑스를 위해 군사적인 위업을 세운 이들을 정중히 매장하기 위한 기념 시설로, 이미 많은 이들이 묻혀 있다.
새 수도에 지은 새 건물이니까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으리라. 나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텐데 굳이 파리에 있는 원조와 같은 이름을 붙인 걸 보면, 나폴레옹 본인도 파리를 꽤 그리워하긴 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뭐…..
“사원 건물 정중앙에 황제의 무덤이 있고, 그 팔방에는 유주에서 황제를 따라 신대륙으로 건너온 여덟 원수를 위한 관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중심에 있는 황제의 관을 둘러싸도록 배열한 모양이 마치 팔괘와 비슷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차마 황제에게 발을 내밀 수 없다는 이유로 나폴레옹의 관을 둘러싼 원수들의 관은 죽은 이의 머리를 나폴레옹쪽으로 두도록 배열되어 있다고 했다. 마치 꼭….태양문(太陽紋)처럼 말이다. 태양을 둘러싼 햇살처럼.
“유주에서는 그런 식으로 관을 놓는 습속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신으로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을 신성하게 여기는 인디언들이 미친 영향일까. 누벨 프랑스는 인디언들도 꽤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니까 말이다. 인디언 연대가 즐비한 군대는 물론이거니와 국회에 들어간 인디언 출신 의원도 여럿이다.
다만 인디언 출신 의원은 거의 작위를 받아서 귀족 신분으로 상원에 들어간 추장들이다. 하원은 인구 비례로 각 주에 인원이 배정되는 데다, 인디언들이 유럽식 투표와 선거에 관한 인식이 아직 좀 부족한 탓으로 인디언 출신 의원은 거의 없다.
“그래도 충신들이 죽어서까지 임금을 모신다고 하니 그 뜻은 무척 가상하다 하겠습니다. 여섯 사람은 이미 죽어서 묻혔고, 남은 두 사람은 며칠마다 찾아와 황제의 영면을 천주에게 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벨 프랑스로 따라간 여덟 원수 중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쉬셰였다. 그 뒤로 베르티에, 주르당 등이 차례로 먼저 떠났다. 이들은 본래 누벨 오를레앙에 무덤이 있었지만 신수도가 건설되고 누벨 앵발리드가 세워지면서 모두 이장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은 작년에 죽은 베르나도트였다. 원래 역사에서는 나폴레옹이 최악의 배신자로 간주했던 그 베르나도트가 이쪽 세계에서는 나폴레옹이 죽기 직전까지 그 부하로 충성을 다했다니, 이것도 참 황당한 일이다.
베르나도트가 사망한 건 작년 3월로, 나폴레옹보다 5개월 전이었다. 나폴레옹은 신대륙에 와서도 충실하게 자신을 따른 수하를 자기가 묻힐 무덤 옆에 매장하는 자리에 직접 나와서 지켜보았고, 몇 달 뒤에 그 뒤를 따랐다.
나폴레옹이 죽었을 때 외젠과 함께 그 관을 뒤따른 생존자 두 명은 그루시와 술트였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은 나폴레옹의 수하 중에 가장 유능한 이들은 아니었지만, 가장 우직하게 충성했던 이들이기는 했다.
그루시는 정말 돌쇠처럼 충성했고, 술트는 그야말로 개국공신이었다. 술트가 데리고 와서 나폴레옹에게 헌납한 5만 명의 병사가 아니었다면, 과연 누벨 프랑스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겠나 말이다.
그 5만 명은 누벨 프랑스 군대의 중핵이었다. 이제 30년이 지나간 탓에 지금은 퇴역하여 민간인으로 돌아간 이들이 많지만, 지금도 그들은 ‘첫 번째 군단(La Premiere Legion)’으로 불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생존자들도 당연히 장례 행렬을 따랐다.
나폴레옹은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누벨 앵발리드의 자기 묘역에 묻혔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묻힌 수천 명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를 신대륙의 황제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운 부하들에게 말이다.
남은 두 원수도 죽을 날이 머지않았으니 곧 그 옆에 눕게 되리라.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신이 신불패에 있는 동안 들은 바에 따르면, 외수터국에서 사신이 와서 이리 전했다고 합니다. 자기들 땅에 묻혀 있는 신불랑 황태 자의 시신을 아버지 곁에 묻을 수 있게 보내줄 테니, 받을 준비를 하라고요.”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원래 역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은 나폴레옹 2세의 유해를 프랑스로 보내지 않았다. 일단 프랑스에서 보나파르트 가문이 쫓겨난 탓도 있고, 그를 나폴레옹의 후계자가 아니라 프란츠 2세의 외손자로만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합스부르크 황족의 예로 매장했다.
나폴레옹 2세의 무덤이 아버지 곁에 묻히게 된 건 2차 세계대전 때다. 프랑스를 항복시킨 히틀러가 선심을 써서 이장해 준 덕분이다. 그런데 참, 지금 보내주다니.
“외수터국이 신불랑과 화해하고 싶은 모양이군요.”
나폴레옹 생전에는 양국의 화해가 절대 불가능했었다. 나폴레옹이 자기 아들을 ‘데려가서 죽인’ 장인 프란츠 2세는 물론이거니와 후계자인 처남 페르디난트 1세도 죽도록 미워했기 때문이다.
아, 페르디난트 1세는 원수가 아니라 미워할 가치도 없는 바보 취급이었던가? 그거야 뭐 중요하지 않고. 어차피 오스트리아 정치는 메테르니히가 다 하니까.
하여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라면 이를 갈면서 저주했다. 그러니 오스트리아 측도 손을 내밀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테르니히도 누벨 프랑스 정도 되는 나라와 계속 적대적으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기회가 생긴 김에 손을 펼친 게지.
나폴레옹 2세의 시신을 보내준다니, 돈 한 푼 안 들면서도 기막히게 효과적인 방법이다. 양국이 적대관계를 끝내고 수교하기에 그만큼 좋은 명분도 없다. 시기도 딱 기가 막히고.
“다만, 마타모로스 공작이 좀 아쉬울 듯합니다. 미리 무덤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거야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황태자가 옆에 묻히는데 자기는 묻히지 못한다면…..”
“본인도 이해할 겁니다. 황제도 바라지 않았겠지요.”
나폴레옹이 외젠의 무덤을 자기 무덤 옆에다 만들지 않은 건 외젠이 그루시나 술트보다 못나서가 아니다. 아들이 아니지만 아들처럼 여겼던 아이에게, 차마 나중에 여기 묻히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였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흥겨운 마음으로 자기 아들의 무덤을 만든단 말이오.’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아무리 내 밑에서 용명을 떨친 장군이었다고 해도 내 아들에게 ‘죽은 다음에 내 옆에 묻히도록 해라’라면서 내 무덤 옆에 묫자리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거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하나.
그래서 나폴레옹은 외젠의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 어디에 묻힐지, 온전히 외젠의 선택에 맡겼다. 만약 본인이 원한다면 가족이 있는 바이에른으로 돌아갈 수도 있도록.
전왕은 그 외에도 누벨 프랑스에서 보고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귀로에 하와이에 들렀을 때 이야기 역시. 하진교 녀석도 나폴레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배를 타고 조문하러 갔었으니까 서로 나눌 얘깃거리는 많았으리라.
중요한 건 돌아오는 길에 들른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다. 누벨 프랑스에서 만난 외젠 이하 요인들이 건넨 인사는 앞으로도 나폴레옹 생전 시기처럼 잘 지내고 싶다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대군이 언명하기를, 존왕파라 하는 자들이 바라는 건 정말로 존 왕하는 게 아니라 존왕을 구실로 삼아 정권을 잡고 싶을 뿐이라 하였습니다. 250년 동안 일본을 평화롭게 다스려 온 막부를 축출하고 권력을 얻고자 할 뿐이니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 그놈들이 집권하는 걸 막기 위해서 일본 황실 혈통 보완계획까지 같이 세웠잖은가. 하지만 이에츠구 쪽에서는 그래도 아직 일말의 불안감이 남은 모양이다. 이렇게 기회 있을 때마다 근왕파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만약 근왕파가 집권하면, 분명히 북구주 반환을 요구하고 유구도 내놓으라고 할 거라고 하면서 크게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막부를 몰아내고 집권한 만큼 막부가 과거 시행한 모든 정책을 부정할 거라면서 말입니다.”
“그자들은 그러리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숙부.”
사실 이에츠구가 걱정하는 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조야에서는 은근히 근왕파를 동정하는 움직임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 다른 거 없다. 그냥 ‘근왕파’라서 그런 거다. 성리학 원칙에 따라서 충성의 대상은 오직 임금이어야 하는데, 일본의 임금은 우리가 왜황이라고 부르는 천황 아닌가. 그러니 그 충성을 천황에게 바치겠다는 논리 자체는 우리 쪽에서도 거부감을 사지 않는다.
이에츠구는 비록 우리 사회 일각이기는 해도 존왕파를 우호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놈들과 어울리는 게 우리 이익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거고.
“대군의 새 세사(世銅)는 잘 있습니까? 만나보셨는지요?”
“예. 대군이 열어준 연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제법 영민해 보였습니다.”
이에츠구의 장남이 원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차자인 무네타케가 장남 노릇을 했었다. 나와 같이 본국 방문도 하고 조부한테 인사도 했었다. 자질이 꽤 괜찮아 보여 훗날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어나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그만 병으로 죽어버렸다. 4년 전에.
막부 측에서 공표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모른다. 새어 나온 이야기로는 피를 토했다고 하는데, 결핵이 아닐까. 결핵은 우리 쪽에서도 가끔 발병하는 불치병이다. 걸리면 앓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겨우 스물이었는데, 참 아깝게 죽었다.
이에츠구의 셋째 아들도 이미 죽은 지 오래라서 이에츠구에게는 지금 올해 만으로 열여섯 살이 된 막내아들 이에사토(家達) 하나밖에 없다. 무네타케가 살아있었으면 스물네 살이라 든든한 후계자가 되었겠지만, 열여섯은 좀 부족하다. 그러니 걱정되는 거겠지.
이런 판에 내가 지지 대상을 근왕파로 바꾼다면 막부는 비상이 걸린다. 정권 유지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못할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그쪽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애를 쓰는 거지. 나도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되도록 많은 존왕파 인사들을 국외로 내보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죄다 송나라 싸움터에 가서 홍서당이나 잡다가 죽어버리면 온 천하에 잘된 일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렇기는 하지요.”
지금 태평천국 전선에 있는 일본인 용병 숫자가 얼마나 될까. 한 10만 명은 되지 않을까.
물론 그게 다 일본 정부가 보낸 병력은 아니다. 가장 많은 집단은 후송 조정이 고용해서 편성한 부상군이지만, 나머지는 사방에 흩어져 있다. 우리 토적군에는 없지만 영국군이나 네덜란드군, 포르투갈 군에도 왜병이 있을 정도니까. 심지어 태평군에도.
분명 태평군은 거병 초기에 외국인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였었다. 그게 국제적으로 공격을 받은 원인이기도 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알고 보니 자기들이 고용한 외국인은 별도였다. 무기를 팔고 묘노를 사러 찾아오는 상인들이나 무기 사용법, 제조법 등을 가르치는 용병은 얼마든지 받아들여서 태평군에 넣었다. 당연히 왜병도 다수 있었다.
지역 민병대인 소천병들만 상대로 싸운 우리 쪽에는 왜병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면들, 남쪽이나 북쪽 전선에서는 꽤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 강남에서 칼 들고 있는 왜병 숫자가 대중 10만은 된다. 그 말인즉슨 그놈들 대가리들이 한데 모여 쑥덕거리고 작당하면 자기들끼리 중국에서 군벌 하나 정도는 너끈히 만들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게 이에츠구가 세운 큰 그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놈들이 중국에서 존왕파만 모인 새 나라를 세우고 사는 거. 꽤 전부터 그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존왕파 세력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폐하. 가장 거칠고 반항적인 자들부터 붙잡아서 강남으로 추방하고 있으니, 일본 국내에서 존왕파가 득세할 일은 없다고, 부디 안심하시라고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태평천국을 토벌해 준 대가로 해남도 전체가 아니라 항구 하나랑 그 주변 땅만 먹겠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이에츠구가 우리 눈치를 심하게 본다는 느낌이다. 하기야 막부가 우리랑 싸우면 존왕파만 어부지리를 볼 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에야스 시절부터 그랬다. 막부는 도쿠가와가 지배하는 일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해외 진출을 통제한 것도 그래서였다.
나로서도 일본이 원래 역사에서처럼 미쳐 날뛰는 꼴을 보느니 막부라는, 명분상으로 약간 켕기는 부분이 있는 정권이 계속 지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막부의 지배권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당히 배려하는 선에서 양국 관계가 유지되도록 했었고.
일단 지금까지는 그런 설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도 잘 될지는 모르지만 잘되도록 해봐야겠지. 어차피 양국이 대놓고 싸우면 비용과 손실이 엄청나게 나올 건 분명하니까.
프로이센 ‘의용군’이 왔다는 전문이 제물포에서 도착한 건 부상군에 지원한 일본인 중에 황족이 한 놈 있는데, 그놈이 평소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러 서복을 보낸 땅이 일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쯤이었다. 그놈의 불로초 전설 참 많이도 퍼졌다.
“포뢰선 공사관에는 소식이 들어갔는가?”
“전보로 왔으니 바로 들어갔을 것이옵니다.”
또 숙소를 마련해줘야 하게 생겼군. 이번에는 어디에 두면 좋으려나. 저번처럼 수원으로 보내기에는 좀 멀지.
“인천에 있는 대붕영 5연대 병영에 넣도록 하라. 5연대 군사 대부분이 강남으로 출정해서 막사가 비어있을 테니, 거기가 적당하리라. 그리고 포뢰선 공사관에는 중대장 이상 군관만 데려와서 알현토록 하라 이르라.”
“예, 폐하.”
일단 의용군으로 우리 군을 지원한다는 형식이니만큼 인사하러 오기는 하리라. 굳이 길게 끌 필요는 없으니까 얼른 보고 강남으로 보내야겠지. 아, 몰트케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는 휴식을 취하게 할 겸 기다려 주는 게 당연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