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55
4부 439화(2055화)
31.
“폐하. 이 무도한 도적놈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음은 폐하께서도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적괴가 함부로 지껄이는 이 망발을 설마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 조정에 홍수전의 국서가 날아왔다고 하면 버선발로 달려올 사람 여기 있지. 한양에 주재하는 후송 공사 송문호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번 공사도 태후와 같은 집안인 송씨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도 지긋하고 무난한 수준으로 능력도 있는 사람이다.
“저들은 시간을 벌고자 우리를 이간질하고 있는 겁니다. 사죄와 배상을 하겠다고요? 혹시 폐하께서, 그리고 일본군과 잉글군이 물러나면 저들은 숨통이 트이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약속 따위는 그대로 무시할 게 분명합니다! 애초에 도적놈들 따위와 무슨 약속입니까!”
평소 진중한 편이던 송문호가 이렇게 흥분할 정도니, 후송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겠구나. 자칫하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영국군, 일본군까지 전열에서 이탈할지 모르니 초조해지긴 할 거다.
“저들은 근본적으로 사교(邪敎)의 무리입니다. 다스려 회유하는 게 불가능한 놈들이지요. 저런 놈들은 그저 기회가 왔을 때 발본색원하여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제발 놈들의 간악한 혓바닥에 넘어가지 말아주시옵소서.”
요즘 후송 조정은 생기가 살아나는 중이다. 비록 형주와 양양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보다 중요한 무한 삼진이 버티고 있는 데다, 중로군인 우리 토적군과 남로군인 영국군, 일본군이 꾸준히 진격하고 있어서다. 이대로만 밀어붙이면 이길 것 같으리라.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 기가 산 송태후가 이 난리를 승리로 마무리하고 나면 영국한테 홍콩을 돌려받을 수 없겠느냐고 중신들한테 의견을 물었다는 소문도 있다. 자기가 준 것도 아니고 백 년도 더 전에 서나라 황제가 준 땅을 무슨 명분으로 받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게 뜬소문 수준으로 그친 걸 보면 송태후가 실제로 저렇게 주장하진 않았거나, 혹시 제안했더라도 임칙서를 비롯한 측근들이 설득해서 공론화를 막는 데 성공했겠지 싶다.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싸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군사들도 많이 상하니, 폐하께서 마음이 상하실 것은 압니다. 하지만 부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천하의 대의를 위한 싸움이 아닙니까?”
자기들도 태평군 산하 장수들이나 군사들에 대한 설득 시도는 계속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받은 제안에만 쌍심지를 세우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하다. 만약 홍수전이 후송 조정에 서한을 보내 투항하겠다고 제안했으면 냉큼 받아들였을 거 아닌가.
“알겠으니 그만 돌아가 주시오. 나도 신하들과 의논해 보아야 하오.”
그냥 놓아두면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기세였다. 불의와 협력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설득한 끝에 겨우 돌려보냈다. 젠장, 상대국 외교관이 상주하는 게 좋기만 하지는 않구먼. 여차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곧장 보채니 말이다.
조정 분위기는 예상대로다. 송문호가 방청했으면 참 좋아했을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남의 나라, 아니 그것도 우리 한 나라에서만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천하만국에서 난동을 부려 세상을 적으로 돌린 주제에 지금 와서 강화를 맺자고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더구나 저 국서라는 물건의 방자한 문구를 보십시오! 예법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저것이 어찌 제대로 된 글이라 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 조정에서는 태평천국이 보낸 ‘국서’에 관해 비난 일색의 분위기가 연출됐다. 뻔뻔하게 남의 나라에서 내란에 준하는 사태를 일으켜 놓고도 겨우 형식적인 사과 몇 줄로 때우고 있을뿐더러, 그 사과문조차 제대로 된 예법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송문호가 이런 분위기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서로의 성향에 관해서 빤히 알고 있는 사이 아닌가. 한-청-후송 3개국은 유교에 바탕을 두고 성립한 동아시아의 제국으로서 서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애초에 저들은 옛 황건당과 마찬가지로 사교를 내세운 도적의 무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자들이 보낸 글월을 받아들여 성급하게 강화를 맺는다면 우리 조정이 누대에 걸쳐 비웃음을 살 겁니다.”
이처럼 홍서당, 태평천국에 관한 인식은 세 나라 모두가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쪽 전선을 담당하는 다른 둘은 우리하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영국은 홍콩이 불바다가 된 부분을 제외하면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 본국은 공격받지 않았으므로, 합리적인 액수의 보상안이 제시된다면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거다.
애초에 영국이 출병한 목적은 피해보상이 될 만큼 이권을 얻는 거였다. 지금까지 벌어진 싸움에서 영국군이 거둔 전과만 해도 그 정도 이권을 요구할 권리는 있을 거다. 여기에다 태평천국 측에서 내는 보상금까지 받아낼 수 있다면 거부할 리가 있겠는가.
일본군도 큰 차이는 없다. 일본에서는 묘노 폭동으로 피해가 꽤 있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막부가 외부에서 군사력을 지나치게 소모해서는 안 된다는 다른 제약 하나가 더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군은 어느 시점부턴가 진격에 그다지 목을 매지 않고 있다. 전투는 계속하되 빠르게 진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병력을 보전하면서 현재 위치만 확보해서 협상력을 유지하자는 느낌이다.
이런 태도는 프로이센에서 지원군 1개 연대를 받고서도 바뀌지 않았다. 나도 소식을 받고 좀 놀라웠는데, 프로이센은 우리 쪽으로 병력을 보낸 지 석 달 뒤에 일본군에도 의용군 1개 연대, 1천 명을 보냈다. 이쪽은 일본에 들르지 않고 홍콩을 거쳐 바로 원정군에 합류했다.
이쪽 부대를 인솔해 온 지휘관은 에트빈 폰 만토이펠이라고 했는데, 누군지 통 모르겠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육군에서 하소 폰 만토이펠이라는 장성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혹시 그 사람 할아버지 정도되려나.
프로이센 파견군이 2개 연대가 되면서 이들은 일종의 통합 여단이 되었고, 몰트케는 먼저 편성된 포츠담 의용연대 연대장 겸 프로이센 여단장이 되어 일본군과도 협력하게 되었다. 두 연대가 별도로 움직이니만큼 저쪽 연대의 실질적인 지휘는 만토이펠이 하겠지 싶지만.
어쨌든 영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태평천국과의 사생결단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강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출병하면서 단독강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과연 누군가 먼저 손을 털고 나설지 기다려 볼 일이다.
32.
후송에서 상황이 묘하게 굴러가니 또 궁금해지는 부대가 있다. 규모도 작고 해서 전투는 별로 치르지 않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제법 의미가 있는 놈들이다.
“헌부군은 요즘 어떤가.”
“촌락을 돌아다니며 선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헌부군은 후송에서 망명한 헌왕, 즉 한왕 조심원이 모집한 중국인 부대에 붙인 이름이다. 처음 출정할 때는 대략 5백이었으나 지금은 인원을 더 충원해서 1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전선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대신 후방에서 치안 유지를 맡으면서 수장인 한왕 조심원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역할만 병행한다.
사실 조심원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런 시골에서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이름을 좀 알려야 고국으로 귀환해서 세력을 만들게 해줄 수가 있다. 그 과업을 진행 하도록 우리가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이고.
조심원의 군사들은 강서와 호남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한왕 전하가 돌아오셨다! 선황께서 정녕 아끼셨던 진짜 아들이 오셨다!’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홍서당의 역도들을 한왕이 직접 쳐부수고 있다는 칭송을 덧붙여서.
당연한 소리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헌부군은 전혀 전투에 나가지 않고 있다. 애초에 이들의 출정을 허용한 배경부터가 전투병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선전용으로 쓰기 위해서였으니까 말이다.
후송 정권을 완전히 교체하려고 시도해 볼지는 우리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웬만큼 큰 비용이 드는 일이어야 말이지.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는 명분도 부족하고. 벵골 때도 했던 말이지만, 타국의 내정에 우리 멋대로 개입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본국으로 귀환한 조심원이 지방정권이라도 세울 수 있다면야 그것도 괜찮다. 후송 조정을 견제하는 말로는 쏠쏠하게 쓸 수 있으니, 그것도 나름대로 쓸만한 결말이다.
2년 동안 그 선전을 계속했더니 이제 후송 서부 지역에는 조심원의 명성이 꽤 많이 퍼진 상태다. 실상은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우리 토적군에 묻어가고 있지만, 소문 속에서 한왕은 뛰어난 군재와 용기를 발휘해서 태평군을 연파한 영웅이 되어있다.
“실상은 어떠하오? 헌부군을 좀 지휘하기는 하오?”
“여전히 실제 군사들을 움직이는 일은 함께 건너온 상장군 고문휘가 맡고 있습니다. 경륜 있는 노장이라 군사들을 휘어잡는 솜씨가 엄청납니다.”
“듣자니 고문휘는 이미 여든이 다 되어간다고 하던데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오? 삼국지에 나오는 노장 황충도 그쯤이면 은퇴했을 것 같구먼.”
그러고 보니 북로군에 있는 임칙서 휘하 강용군의 지휘권을 쥐고 있는 장문성이라는 장수 역시 여든이 다 된 노장이라고 들었다. 고문휘와 장문성 두 사람이 옛날부터 막역지우라는 보고도 있던데, 어떻게 두 친구가 전부 말년을 힘들게 사는구먼.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밉보인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람과 그 친구이니 여생을 편하게 살기는 애초에 틀려먹기는 했으리라. 상황을 보니 조심원이 망명할 때 장문성도 개입한 게 분명해 보이고. 당연히 송태후에게 박대받았겠지.
헌왕이 서쪽에서 기반을 이뤄 지방정권이라도 세우게 된다면, 장문성 쪽에서도 지원을 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칙서도 조심원에게 유감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아는데, 과연 어떠려나.
33.
내가 내정과 외정으로 골치가 아픈 와중에도 내 주변에서 팔자 좋게 놀며 지내는 이들은 많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러시아에서 온 미하일 대공이다.
“폐하 덕분에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려.”
미하일 대공이 한성에 와서 머무른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한성 생활이 생각보다 즐거운지 통 러시아에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북평관에서 잘 지내는 것 같더니 올해 봄에 갑자기 도성 바깥에 저택을 한 채 샀을 때 알아봤어야 했나.
미하일 대공의 저택은 동대문 밖, 러시아 정교회 성당 근처다. 표트르 시절에 대한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의 후손을 중심으로 정교회 신자가 상당수 있어서 대공의 저택을 두기에는 어울리는 장소긴 하다.
웬만해서는 찾아올 일이 없는 서양 왕족이라 그런지 한양 사교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인인 한양 주재 외교관만이 아니라 종친이나 사대부들에게도.
「루스는 서양 열국 중에는 우리 대한과 가장 흡사한 나라이니 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좌근이 설명한 적이 있었다. 과거 몽골의 지배를 받은 역사에다가 중종 시절부터 본격화된 교류 덕분에 우리둘은 제도나 관습 등에서 가장 익숙한 상대라고 말이다. 우리에겐 서양 국가 중 러시아가, 러시아에는 동양 국가 중 한국이.
그렇다고 해도 미하일 대공이 참 오래 머무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체류하면서 쓰는 돈 대부분은 자기 돈 쓰는 거니까 내가 뭐라고 할 건 없는데, 너무 오래 머무르면 내가 불안한 생각이 든단 말이지. 혹시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서 그 책임이 나한테 돌아오면 어쩌냐고.
하지만 아직 젊은 대공은 내 걱정 따위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생글거리며 내 앞에 ‘좋은 소식’을 꺼내놓았다.
“기뻐해 주십시오, 폐하! 본국에 계시는 형님 폐하께서, 제 결혼을 승낙해 주셨습니다!”
“오, 그거 축하할 일이구려.”
미하일 대공이 디에고의 딸 꽁무니를 쫓아다닌 건 이미 한참 된 일이다. 서울에서 유럽계 처녀 구경하기 힘드니까 그런 게 아닌가 싶었는데 –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순혈 유럽계라면 대를 이어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백면나인들이 대부분이다 – 이게 생각보다 진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하일 대공이 배우들을 안 건드렸다는 건 아니다.
“뭐, 폐하께서 아시다시피 배우들에게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조상을 가진 이들에게 잠시 동정심을 품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과 일생을 걸고 하는 혼인은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배우들과의 만남은 그저 유흥이라는 소리였다. 로마노프 집안 남자다운 소리로구먼. 헌데 용케 디에고의 딸과는 결혼할 마음을 먹었네? 종교도 다른데.
대놓고 물어볼 건 아닌 것 같아 살짝 표현을 달리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한숨을 쉬며 이렇게 고백했다.
“보르네오 공작은 어떻게 넘겼는데, 두 공자가 저를 노려보는 눈길이 누이를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외치고 있더군요. 그러니 정식으로 결혼하는 방법 외에는 제가 무슨 일을 할수있겠습니까.”
디에고의 두 아들 역시 강무관을 졸업해서 무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그러니 그 기상이 이 귀한 도련님이 보기에는 흉흉해 보일 수밖에.
“차르께서 큰 결단을 내리셨구려. 얼굴 한 번 못 본 아가씨를 황실에 들이기로 하다니.”
“보통 집안 아가씨가 아닙니다. 한국 황실의 인척, 술루 왕가의 혈족인 보르네오 공작가의 공녀 아닙니까. 그만하면 제 아내가 될 자격은 중분하지요.”
그래도 허락을 받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는지, 미하일 대공은 한참 한숨을 쉬면서 편지를 보내 허락을 받은 그 험난한 과정에 관해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게 폭탄을 건넸다.
“그런데 폐하. 차르께서 제게 전하시길, 폐하와 사돈을 맺고 싶다고 하십니다. 제 조카딸 아나스타샤를 한국으로 시집보내고 싶다고 하시는데 폐하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뭐라고 하였소, 지금….?”
러시아 황녀를 우리 대한의 황태자비로 보내고 싶다고?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