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6
1부 2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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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초연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바람이 불어 와서 짙은 연기를 날려 보내기는 했지만, 타버린 화약에서 나오는 매캐한 냄새가 전장에 가득 남아 있었다. 수천 명이 흘린 피 냄새를 덮고도 넘칠 정도였다.
“정말 놀랍습니다, 조총이라는 물건.”
스에 오키후사가 탄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란히 말을 타고 움직이던 박원종이 호쾌하게 웃었다.
“이게 다 우리 주상께서 직접 만드신 병기라오. 여기 조총도, 소가 끄는 야포도 말이오.”
“정말 비범하신 전하시군요.”
박원종과 함께 진두에 서 있던 오키후사와 그가 거느린 무사들은 조총과 야포가 불을 뿜기 전에 조선군이 보유한 화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 유순정은 입이 무거운 편이라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일체 입을 열지 않았지만 박원종은 달랐다.
아마 우군이라 여겨서 경계심이 옅어진 모양인데, 오키후사로서는 정말로 고마운 정보였다. 본진으로 복귀하는 대로 요시오키에게 보고해서 추후 대처방안 수립에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전령군관이 달려와서 박원종에게 지시를 청했다.
“대감, 살아남은 왜놈들이 계속 좌하성 성문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공성을 진행할지 여부에 대해서 명을 내려주소서.”
사가 성 서문 앞쪽에는 피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집중사격을 받은 쇼니 군 병사 수백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고, 비명과 신음 소리가 귀를 찔렀다. 조선군이 다가가지 않자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일부 병사들은 늦게라도 몸을 일으켜 성문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좌하성은 대내전의 군사가 지키고 있고 소이전이 공성을 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성문을 열어 패잔병들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니 성이 이미 함락된 듯합니다. 공성을 진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음, 이놈 저놈 다 왜놈이니 구분이 힘들긴 하다. 그대 말대로 곧바로 공성을 벌임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말을 타고 달려온 부하 장수에게 질문을 받은 박원종이 인상을 찌푸렸다. 통역에게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를 들은 오키후사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제지했다.
“아니, 공성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기 널려 있는 공성구들을 보십시오. 저건 화살을 막는 방패, 저건 성벽을 기어오르는 사다리입니다. 수비군을 내려다보며 활을 쏘기 위한 공성탑이 그대로 성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박원종이 고개를 움직여 성벽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미심쩍어하는 박원종의 얼굴을 본 오키후사가 추가로 설명했다.
“설사 공성구는 방치했다 하더라도, 성이 떨어졌다면 깃발이 바뀌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 성 위에 걸린 깃발은 분명 우리 요시오키 님의 깃발입니다. 성이 떨어졌다면 스케모토가 분명 자기 깃발을 내걸었을 겁니다.”
박원종은 아직도 확실히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왜 패잔병들을 받아들였지? 왜국은 전장에서 적을 살려서 포로로 잡는 관습이 없다 하지 않았소? 본관은 성이 소이전 군의 손에 있기에 저들을 합류시킨 게 틀림없다고 보는데.”
“그건 제가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 오키후사가 손짓으로 자기 부하 한 사람을 불렀다.
“이와가리(岩狩)! 사가 성으로 가서 내 이름을 대고 이 군대는 주군이신 요시오키 님을 돕기 위해서 온 조선군이라고 알려라. 그리고 즉시 성문을 열어 맞이하고, 성벽 위에 걸린 깃발을 힘차게 흔들게 해라. 지금 성내로 들어간 적병은…일단 모조리 묶어두도록 하라.”
“존명!”
지시를 받은 무사는 곧바로 말을 몰아 서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 등에서는 물론 오키후사의 가몬을 그린 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마 성에 있는 병사들은 귀군이 화포를 쏘면서 뿜어대는 화염과 초연을 보고 귀신이라고 오해했을 겁니다. 때문에 적이 성으로 도피해 오자, 같은 사람이 귀신에게 쫓긴다고 생각해서 측은지심으로 문을 열어주었겠지요.”
“그럴법한 설명이구려.”
박원종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좌우 양 방향에서 기병 한 명씩이 급히 달려왔다. 성벽 북쪽과 남쪽으로 흩어져 도망친 소이전의 패잔병을 쫓던 좌우익 기병에서 하나씩 달려온 전령이었다.
“대감! 만여 명을 넘는 적 본대가 성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할지 명을 내려주소서!”
“만여 명이라고!”
박원종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오키후사가 빠르게 대답했다.
“스케모토가 거느린 본진이 분명합니다. 필시 저 건너편에 요시오키 님께서 군대를 이끌고 도착해 계신 모양이지요. 놈은 요시오키 님과 대치하다가, 성이 위험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돌아오는 길일 겁니다. 성을 돌아 놈을 치신다면 요시오키 님과 협공하실 수 있습니다.”
박원종이 고개를 돌리자 전령으로 온 기병이 숨 가쁘게 외쳤다.
“적이 오는 뒤편에 확실히 다른 대군이 있습니다! 적어도 2만 명은 넘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분명 요시오키 님이 오셨습니다.”
오키후사가 힘을 주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박원종도 입을 앙다물었다. 마침 사가 성 서문도 활짝 열렸고 성벽 위에 걸려 있던 오우치 깃발도 펄럭였다.
“좋아. 어차피 싸우러 온 참이니 확실히 해치워 주지. 여봐라, 명을 내려라! 좌군과 중군은 성 북쪽, 우군은 남쪽으로 돌아 적을 맞이하라!”
북쪽 산악지대와 성벽 사이가 바다와 남쪽 성벽 사이보다 더 넓다. 보다 넓은 쪽에 더 많은 병력을 두어 길을 막는 게 당연하다.
오키후사는 박원종 옆에 선 채 사가 성 북쪽 성벽을 지나쳤다. 성벽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병사들이 ‘요시오키 님이 불을 내뿜는 도깨비 군대와 동맹을 맺었단 말인가!’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 25 –
분명히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산이 터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듯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 스케모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급히 답했다.
“천둥소리인 듯합니다.”
“이 맑은 하늘에 무슨 천둥이라는 거냐!”
스케모토가 벌컥 화를 냈다. 지금 3만은 되는 오우치 군이 추격해 오고 있는데 그런 황당한 소리를 듣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 화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소리가 난다면, 하늘에서 천둥이 울린다고 밖에는 할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둬!”
동쪽에는 오우치 군 3만이 있다. 사가 성 너머에는 정체불명의 적 2만이 있다. 어서 서쪽의 이에카네 군과 합류해서 지쿠고가와(筑後川)를 건너 야나가와로 도망쳐야 할 판국에, 천둥이니 날벼락이니 할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에카네가 어서 달려오지 않는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이쪽은 요시오키 군에게 뒷덜미를 잡힌 거나 마찬가지라 빨리 움직일 수가 없다. 게다가 탈출 방향인 야나가와는 남동쪽이므로 서쪽으로 많이 갈수록 불리하다. 그러니 이에카네 쪽에서 맞으러 나와야만 한다.
때문에 공성구고 진영이고 다 버리고 이쪽으로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사자를 분명히 보냈다. 연락을 받지 못했나? 혹시 전령무사가 급한 마음에 성벽에서 너무 가까운 길로 말을 달리다가 성에서 쏘는 화살에 맞아 죽기라도 한 건가?
“주군! 류조지 군이 보입니다! 그런데 어째 상태가…?”
이제야 오는구나. 무거운 짐은 분명히 버리고 오라고 했고, 부상자도 스스로 걷지 못하면 두고 오라고 했다. 그러니 상태가 좀 어수선해 보일 수는 있겠다. 급히 시선을 돌려 기다리던 아군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려고 하는데 보고를 하던 근습 무사가 질겁하여 소리쳤다.
“류조지 군이 궤주하고 있습니다! 배후에 소속을 알 수 없는 기병들이 쫓아옵니다!”
“뭣이라고!”
깜짝 놀란 스케모토가 안장 위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앞에 있는 병사에게 가려 보이지 않던 사가 성 좌우편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천여 명 가까운 류조지 병사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역시 천여 기 정도 되는, 생전 처음 보는 갑주를 갖춘 기병들이 쫓아오며 아군을 살육하고 있었다. 칼과 화살과 도리깨가 병사들에게서 피를 뽑아내고 생명을 앗아갔다.
“대형을 갖추어라! 아군을 받아들여라!”
생각할 틈도 없이 명령이 나갔다. 아군을 학살하는 저 기병들은 적이 틀림없다. 급하게라도 맞서서 아군을 구해야 한다. 휘하에 있는 장수들도 당황하면서도 명령에 따랐다.
이쪽에서 창병이 전개하고 궁대(弓隊)가 화살을 쏠 채비를 하자 적 기병들은 추격을 멈췄다. 이쪽에서 쏜 화살이 닿는 거리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대군에게 손을 대기를 두려워하는 듯했다. 간신히 살아난 류조지 군 생존자들은 그 틈을 타서 필사적으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이에카네가 있는지, 찾아보라! 그리고 당장 데리고 오라!”
부상자들을 제하고 멀쩡한 병사만 해도 5천은 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병력은 무기를 버리고 갑주를 벗어던진, 상처투성이 병사 1천밖에 되지 않았다.
개중에 몇몇 병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기병에게 따라잡히지 않고 도망쳤는지 신기할 정도로 중상을 입고 있었다. 본진에 도착한 뒤, 본진 병사들의 놀란 눈길을 보고서야 자기 몸을 보고 놀라 혼절하는 자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주군! 류조지 공을 찾았습니다!”
무사들이 이에카네를 부축해서 데리고 왔다. 이에카네는 갑옷은 입고 있었지만 투구는 한쪽 장식이 완전히 뜯겨 날아갔고 칼집은 비어 있었다. 투구 아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고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에카네! 어떻게 된 거냐! 네 병사는 다 어디로 갔느냐? 저 기병들은 뭔가!”
질책을 받자 비틀거리던 이에카네가 그대로 쓰러져 두 무릎을 꿇었다. 그 입에서 공포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주군, 어서 피하십시오! 서쪽에서 악귀들이 오고 있습니다!”
“악귀? 악귀라고?”
스케모토는 고개를 들어 서쪽을 보았다. 하지만 그 번쩍이는 이상한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일 뿐, 악귀가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시커먼 구름이나 번개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다.
“악귀라니! 그런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저 이상한 기병들이 적인가? 저들이 그대가 거느린 병사들을 섬멸한 장본인인가?”
“저놈들도 한패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악귀, 불과 연기를 뿜으며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들입니다!”
도대체 무슨 횡설수설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요괴가 나타났다는 징조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지금 스케모토의 눈과 귀에는 느껴지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잠깐 들리던 그 이상한 소리도 한참 전에 끊어졌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 하나만 묻겠다. 서쪽에 있는 적에게 패한 건가?”
“놈들은 악귀들입니다. 맞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에카네는 아직도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짜증이 난 스케모토가 고함을 치려는 참에 전령이 달려왔다.
“전방, 사가 성 남북 방향으로 적 발견! 북쪽에 1만, 남쪽에 5천입니다!”
흘깃 시선을 돌리자 역시 이상한 갑옷을 입고, 형편없이 짧은 창으로 무장한 적 보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스케모토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겨우 저런 놈들에게 졌단 말인가? 아무리 우리 병사 하나가 저놈들 서넛을 상대해야 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스케모토의 입에서 호령이 떨어졌다.
“사가 성 북쪽에 있는 저 적을 쳐부수고 히젠으로 돌아간다! 후방에 있는 오우치 군이 우리 대열을 따라잡기 전에 신속하게 쳐부숴야 하니 서둘러라!”
방금 오우치 군 좌익부대가 야나가와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 그쪽으로 탈출하기는 이미 늦었으니, 살 길은 전방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을 뚫고 나가는 것뿐이었다.
쇼니 군 주력 1만 3천이 진군 속도를 높였다. 적은 1만, 간단히 짓뭉개고 나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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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조선군이로군. 아까 그 포성은 조선군이 쏘는 화포 소리였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오우치 요시오키는 마상에서 고개를 꼿꼿이 든 채 쇼니 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동안 적이 보인 완만한 움직임을 보면 야나가와 방면 철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헌데 지금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히젠 방면으로, 사가 성 북쪽 길을 향해 급하게 움직였다.
“조선군이 화포를 가진 걸 모르나 보군. 정면으로 도전하다니. 어차피 우리는 지쿠고가와를 건너야 하니 천천히 놈들을 조선군 정면으로 몬다. 다만 강 건너편의 나가야스에게는 사자를 보내서 급속히 전진하라고 명하라! 스케모토가 산으로 도망치는 길을 미리 막는다.”
조선군에게 화포 세례를 받고 와해된 쇼니 군이 흩어져서 산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 선수를 쳐서 앞을 막고 쇼니 스케모토를 잡으면 쇼니 씨는 끝장이다. 17세에 불과한 스케모토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 후계자가 없다. 형제들은 전멸한지 오래다.
“쇼니 군 격멸은 조선군에게 맡겨 보자. 다들 똑똑히 보아 두어라.”
조선군이 쏘아댈 화포가 좀 걱정이지만, 병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벗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제 쇼니가 어떻게 되는지, 구경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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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군 창병들이 넓게 전개했다. 1만 3천에 달하는 본대 병력이 창날을 곧추세우고 앞으로 나오면서 표출되는 위압감은 아까 별군 4천 명이 다가설 때와는 전혀 달랐다.
“저 길고 예리한 창, 저 숫자. 화포 없이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우리가 분명히 패하겠지.”
박원종은 눈앞에 있는 왜군을 상당히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스에 오키후사는 조선군 편이 좀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견해를 내놓았다.
“있는 무기를 일부러 빼고 생각할 건 없습니다. 화포는 조선군이 갖춘 무장 중 일부이고, 마땅히 전력을 가늠할 때 포함해야 합니다. 화포 없는 조선군을 상정한다면 일본군 역시 창이 없는 경우를 상정해야 하겠지요.”
오키후사는 담담하게 자기 의견을 밝혔다. 오우치 군에서 온 사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두 군대 사이에서 승부를 가늠하는 무장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적이 가진 창을 무력화하려면 더 긴 창을 들거나, 화포나 활을 대량으로 장비하면 됩니다. 이제까지 장창병대를 운용한 경험이 없는 조선군이 더 긴 창을 사용하기는 무리가 있을 테니, 활과 화포라는 기존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십시오.”
“고맙게 참고하겠소. 헌데, 만약 귀공이 우리 조선군과 싸우게 된다면 귀측이 가진 장점을 어떻게 활용하겠소?”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오키후사는 계면쩍은 웃음을 보이면서 슬쩍 답변을 회피했다.
“지금의 저라면 가능한 조선군과 싸우지 않겠습니다. 화포가 불을 뿜으면 아까 산산조각이 난 류조지 군처럼 될 텐데 어찌 싸움을 하겠습니까? 아마 쇼니 군 본대도 똑같이 될 겁니다.”
박원종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불벼락을 뒤집어쓴 왜군이 무너지는 광경은 그 역시 분명히 보았다. 오키후사가 화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건, 일선에 있는 병사들이 보이는 태도는 딱히 달라지지 않을 게 확실하다.
웃음을 그친 박원종은 곧바로 전투지휘를 시작했다. 조총수들이 다시 창을 든 살수 앞으로 나왔다. 비어 있던 총에다 탄환을 재고 전열은 슬사(膝射, 무릎쏴), 후열은 입사(立射, 서서쏴) 자세를 취했다.
조금 뒤처져 따라오던 총통들도 다시 전열 앞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야포뿐만 아니라 중완구들도 가담했다. 포수들이 목곡에 도화선을 감으며 점화 준비를 했다.
“우군에게는 합류하지 말라고 명하라. 적은 우리 중군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우군은 저들을 측면에서 쏘아 타격을 주고 크게 놀라게 하라.”
전령군관이 곧바로 명령을 전했다. 우군이 그 자리에서 전투태세를 갖추는 사이 적은 계속 중군을 향해 밀려왔다. 마침내 적 선두가 500보 거리에 도달하자 박원종이 당당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비격진천뢰를 쏘아라! 양익에서 기병을 내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