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61
4부 445화(2061화)
10.
“나라자체가 인질이 되었군.”
럭더훈이 한숨을 쉬었다. 주변을 에워싼 신하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2년 전 종식된 내란은 후금에 많은 타격을 주었다. 6백만을 어림하던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영토는 전체 면적만 보면 별로 줄지 않았지만 가장 풍요로운 땅이 참전의 보상으로 한국으로 넘어갔다. 인구도 2백만이 넘게 넘어갔다.
청나라는 영토는 가져가지 않았다. 하지만 150만에 달하는 만주인과 왜인 인구가 청으로 넘어갔다. 한국으로 넘어간 인구가 대부분 한족이었고 몽골인이 일부 섞여 있었을 뿐인데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타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도인 상도 일대로 데려온다고 한들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다. 영토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인 요서가 한국에 넘어갔으니 말이다.
상도 주변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일부 농지가 남았다고는 하나, 그 정도로는 남은 이들을 부양하기에도 넉넉하지 않다. 후금이라는 나라 자체를 청나라나 한국의 자비에만 의존하는 거지들의 나라로 만들 수 없는 이상, 그들을 붙들어 놓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대칸. 이제 우리는 남조의 번국에 불과하니까요.”
공식적으로 대금국의 대칸을 칭하던 시절에는 당당한 청나라의 형제국으로서 청나라만이 아니라 한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맺은 조약이 심양회맹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제는 그게 끝나버렸다. 몇 년에 걸친 내란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고, 남은 이들은 거개가 몽골인이다. 럭더훈이 받은 보고에 따르면 현재 후금 인구는 왜인을 포함한 만주인이 대략 50만, 몽골인이 130만, 한족이 40만이었다.
250만에 달하던 한족 대부분이 요서 땅에서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넘어갔다. 몽골인들은 서부의 목초지를 주로 터전으로 삼기 때문에 감소가 적었다. 남은 만주인과 왜인도 수도인 상도 주변에서 거주하던 이들이 차마 떠나지 못하고 남은 게 대부분이었다.
영토와 인구가 줄어들자 후금은 정말로 청나라에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 예전에는 적어도 군사력의 핵심인 만주인과 몽골인 인구는 청나라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번 내란으로 인하여 인구가 격감했다. 이제는 도저히 청나라에 맞설 국력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굴마훈 그 역적놈이 대칸이 되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보는 한이 있더라도 선대에서 내려온 유업을 지켰어야 했는데…..”
럭더훈은 본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굴마훈 군과 치열하게 싸우던 내전 시기가 차라리 지금보다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 보니 이런 탄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연히 신하들이 기겁했다.
“말도 안 됩니다, 대칸! 저희가 어찌 그 역도를 대칸으로 받들겠습니까?”
“그런 사악한 자를 군주로 받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굴마훈이 대칸 자리를 얻기 위해 어떤 모략을 벌였는지 이제는 모두가 안다. 그 밑에서 신하 노릇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그렇게 큰 죄를 저지른 주제에 로마에 건너가서 교황을 지키는 기사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후금인들로서는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대칸. 기운을 내십시오. 일단 지금은 남은 것들을 지킬 방안을 강구할때입니다.”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아직은 청나라, 한국, 심왕부 등지에서 구휼을 위한 물자와 자금이 상당량 들어오고 있다. 덕분에 내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되돌리는 데 크게 도움을 받았다.
물론 이런 도움이 영원히 계속될 리는 없다. 특히 청나라는 남쪽에 나타난 홍서당이라는 이단자 놈들을 때려잡느라 돈과 물자를 들이고 있어서 여력이 부족하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곧 원조를 끊겠다는 통보나 다름없기에 신하들은 걱정이 컸다.
“우리가 원병을 좀 파견하고 대신 물자를 받아오면 어떻겠습니까?”
“이미 150만이나 되는 사람이 그쪽으로 넘어갔는데 원병을 더 보내서 뭘 어쩌자는 거요.”
럭더훈은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 자기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정해서 청나라 황제의 깃발 아래서 장군 노릇이나 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동맹, 동맹….동맹을 만들려면 역시 결혼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겠지.”
럭더훈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정략결혼, 결혼동맹의 의미조차 모를 정도는 아니다. 지금처럼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후금으로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고, 결혼 역시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다행히 럭더훈에게는 나이도 적당하고 용모도 그럭저럭 괜찮은 딸이 두 명 있기는 했다. 청나라로 급하게 도망갈 때 어쩔 수 없이 상도에 두고 갔었는데, 굴마훈이 여차하면 인질로 써먹을 심산으로 당장 해를 끼치지는 않고 보호해 두었다. 다행히 무사히 되찾았다.
“어디로 보내는 편이 좋겠는가. 황제께 후궁으로 바칠까? 아니면 황태자에게?”
기왕이면 덕명의 후궁으로 바치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도 좋으리라. 신하들도 대부분 그 의견에 찬성했지만 몇몇은 망설였다.
“심왕부나….한국으로 보내는 방안도 고려해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그 혼인을 빌미로 삼아 남조에서 대칸의 후계자 자리를 갖겠다고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 신하들은 아직 있는 것마저 청나라한테 뺏길 위험을 두려워했다. 럭더훈 역시 비슷한 위험을 떠올렸기에 그들이 품은 우려를 비웃지 못했다. 마주 앉은 군신이 함께 깊은 한숨을 토하던 중에 누군 가가 애절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다.
“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이시여. 여기 가엾은 이들이 있어 주님께 은총을 바라오니…..”
11.
“국혼을 통해서 군주 간에, 그리고 군주와 신하가 연을 맺는 것은 살기 위해 서로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시미노미야 가문 출신인 ‘누이를 좋아하는 친왕 전하’ 아키라가 부상군에 속한 일본인 용병들 앞에서 술을 마시며 열변을 토했다. 같이 술을 마시던 용병들이 웃으며 호응했다.
“옳습니다!”
본래 일본 황족들은 이름을 두 글자로 짓는다. 아키라도 어릴 때는 시즈노미야(靜宮)라는 멋진 궁호가 있었고, 8세의 나이로 카쥬지(勸修寺)를 상속받아서 출가했을 때는 카쥬지미야 사이반 입도친왕(勸修寺宮濟範入道親王)으로 불리기도 했다.
선대 천황인 고카쿠 천황의 유자(猶子)가 되어 정식 입양은 아니지만 아들이나 다름없는 관계도 되고, 2품 친왕에 책봉되어 신나게 활개 치며 살았다. 하지만 그 좋은 세월은 겨우 17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교토를 발칵 뒤집어 놓은 그 추문 때문이다.
키사노미야 타카코(幾佐宮隆子) 여왕은 아키라보다 두 살이 어린 고모, 혹은 이복누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혼도 못 하고 아키라처럼 황실과 연이 있는 사원을 상속받아서 독립하지도 못했다. 정말로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처지였다.
어쩌다 보니 눈이 맞았다. 마음이 통했다. 그래서 궁에서 데리고 나와 며칠 동안 바람을 쐬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몸도 좀 통했다. 그리고 다시 궁으로 데려다주었는데 붙잡히면서 사달이 났다.
덕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고카쿠 천황의 유자 지위도 박탈되고 후시미노미야 가문에서는 절연당했다. 카쥬지에 거주할 권한도 정지되었다. 옛날 다이고 천황이 생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성스러운 사찰에 너 같은 놈을 둘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이름도 잃었다. 원래 이름 대신에 ‘아키라(晃)’라는 외자 이름을 성도 없이 쓰게 되었다. 그리고 교토 동부에 소재한 다른 절인 쿄고코쿠지(敎王護國寺), 일명 토지(東寺)에 감금되어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거기서는 한동안 얌전히 지내며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2년을 보낸 후에 감시하는 이들이 방심한 틈에 담을 넘었다. 그리고 타카코가 감금된 오우미의 사이류지(端龍寺)까지 찾아가 타카코를 빼내는 데 성공했고, 그대로 오사카로 가서 중국으로 오는 배를 탔다.
황족이 아니라 다이묘, 일반 사무라이였다고 해도 이쯤 되면 미친 짓을 저질렀다는 말을 들을 거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서 전쟁터를 구르는 낭인들은 이 정도 일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까짓거, 사내가 마음에 든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물론 그 여자가 고모 혹은 누이동생이라면 주변에서 보기에도 좀 당황스러운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본인이 전혀 거리낌이 없는데 뭐 어떤가?
“허나 우리 일본국에서는 예로부터 고귀한 피를 밖으로 부리지 않고 한데 모으는 관습이 있지 않았나? 애초에 우리 일본국을 낳은 태초의 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부부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남매조차 아닌 쌍둥이 친남매였다!”
신들의 사례만 있는 게 아니다, 황실 내에서도 남매가 혼인한 숱한 사례가 있다면서 지난 천여 년 동안 황자와 황녀들 간에 있었던 숱한 염문에 관해 줄줄이 늘어놓았다. 낭인들이야 지금 열거하는 이름들이 누가 누군지 단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공부를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일본 황실은 2500년에 걸친 역사가 있다. 역시 그대들이 알지 못할 수많은 신들의 혈통이 모여 진무 천황께서 탄생하셨고, 그분께서 남기신 혈통에 중국 진시황의 피가 섞여 만들어진 게 우리 황실의 핏줄이다!”
“우와아아!”
아키라가 일본 황실에 진시황의 피가 섞였다는 설에 관해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토지에서 만난 묘운(明雲)이라는 승려가 암자 안에 갇힌 그를 찾아와서 핏대를 올려 가면서 설파한 이야기였다.
“우리 절에서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의 칙명을 받아서 불로초를 찾으러 온 서복 일행에 진시황의 일곱째 공자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공자가 일본 땅에 정착하여 딸을 낳았고, 그 딸이 바로 9대 천황이신 가이카(開化) 천황의 모후이십니다.”
토지는 본래 정식 명칭이 코고코쿠지(敎王護國寺)일 만큼 황실과 관계가 밀접한 절이다. 그만큼 황실과 관련된 기록과 전설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승려들도 황실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성향도 존 왕파에 가까웠다.
“황실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진시황의 후손인 가문은 하타(秦) 가문과 초소카베(長宗我部) 가문 아닌가?”
“그들은 모두 사칭, 가짜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건 요즘 황실에 그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고대에는 기록도 많지 않았으니, 더더욱 알기 어렵지요.”
묘운은 곰팡내가 나는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이게 그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아키라로서는 그 고문(古文)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제가 내용을 알려드리면 되니 상관없습니다. 개략적인 요지는 이미 제가 앞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우리 황실에는 진시황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2년 동안, 묘운은 아키라에게 들러붙어 이 자기가 만든 ‘서복동래설(徐福東來說)’에 관해 가르쳤다. 그리고 자기한테 왜 이런 걸 가르치느냐는 아키라의 질문을 받고 ‘지금 황실에서 진시황과 진무 천황의 기상을 가진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말을 건넸다.
“지금 황실은 과거의 용맹을 잊고 막부에서 뿌려주는 잔돈푼에 눈이 먼 상태입니다. 이런 치욕을 씻고 황실의 권위를 되찾을 충신은 전하분이십니다.”
“과연, 알겠소.”
묘운이 바랐던 건 아키라가 존왕파의 수장이 되어 막부를 쓰러트리기 위한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 것이었다. 제2의 구스노기 마사시 게가 되라는 뜻이다. 구스노기 마사시게는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충신으로, 미토학에서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다.
비록 황실에서 절연되기는 했지만, 아키라는 황족이다. 고로 막부의 견제를 덜 받으면서 존왕파의 영수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묘운이 아키라에게 기대를 걸었던 거다. 그가 황족이면서도 학문보다는 술과 여색, 말과 활에 능숙한 악동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해서.
다만 아키라는 그의 소원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황실의 권위를 되살리는 거야 좋지만 그걸 위해서 막부와 정면으로 맞붙다니, 그게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그것도 그 선봉에 자기가 서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그래서 묘운의 도움을 받아 토지에서 탈출했으면서도 묘운이 은밀히 건네준 존왕파들의 은신처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곧장 타카코 여왕이 갇혀 있는 사이류지로 갔다. 그것 역시 묘운이 알려 준 정보였지만, 그게 대수인가.
대담하게 잠입해서 타카코 여왕을 구출하자 곧바로 오사카로 도망쳤다. 존왕파와의 접선 따위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 한 건 오직 두 사람이 붙잡힐 위험 없이 자유롭게 함께 있을 장소뿐이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배만 타면 그리고 갈 수 있었다.
탈출은 성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유를 얻었다. 본국에서 아예 장례까지 치러줬다고 하니, 더욱더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역사 깊은 서양의 대국, 애집투에서도 황제는 언제나 누이를 황후로 맞았다. 그러니 어찌 내가 한 일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고귀한 피는 흩뜨리는 게 아니라 모아야 하는 법, 어찌 그 고귀한 피를 함부로 바깥에 흘리겠는가!”
“옳습니다, 전하!”
부상군 용병들이 환호했다. 지금 부상군은 무한삼진 서쪽 면양현에 본영을 두고 있으며, 병력은 대략 8만에 달한다. 최고 지휘부는 송나라 조정에서 내려보낸 대장군이 맡고 있지만 중간 장교급들은 전부 일본인이다. 아키라도 5백 명을 지휘하는 장교 직책을 맡고 있다.
물론 이 술자리에 모인 용병들이 전부 아키라의 직속 부하들은 아니었다. 아키라가 워낙 유명하고 인기가 좋다 보니 다른 부대 소속 병사들도 한데 모여 어울려 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는 자기들끼리 탁자에 모여 앉아 이렇게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부상군 내에 잠입한 존왕파 무사들이었다.
“정말 저 난봉꾼을 우리 상징으로 내세워도 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지 않소? 우리가 손을 내밀 수 있는 황족이라고는 저 사람밖에 없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군요.”
부상군에 들어와 있는 존왕파 지사의 수는 대략 3천 명 정도다. 막부가 겨눈 칼날을 피해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부상군 내에서 존왕사상을 퍼뜨려 권토중래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키라를 부추겨 천황가에 진나라 황실의 피가 섞여 있다고 떠들고 다니도록 설득한 것도 이들이다. 그래야 그 말을 들은 일본인 용병들이 아키라를 받들어 옛날 진나라 땅이 있었던 중국에서 터전을 만드는 작업에 동참할 게 아닌가.
이들 중 일부는 홍서당과도 손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위기에 몰린 홍서당을 도와주어 중국에서 확고한 발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얻자는 발상이다. 사방에서 공격을 가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적을 보면서 그 저력에 감탄해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이미 수천 명이나 되는 부상군이 저들과 싸우다 죽었다. 부상군이 죽인 홍서당도 수만 명이다. 서로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을 리 없다.
“어떻소, 이번에 보낸 제안을 혹시 저들이 받아들였소?”
“아니오. 전혀 믿지 않고 있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더군요.”
이들은 태평천국 측에 은밀히 밀서를 보냈다. 여기 건너온 일본인 다수는 잠시 피난처를 찾아왔을 뿐, 태평천국과 싸울 뜻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제안하기를, 만약 태평천국이 이들 존왕파에게 안식처를 주면 동맹을 맺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무참히 거절당했다.
“정확하게 옮기면, ‘개소리 말고 꺼져라, 이 귀신의 새끼들아!’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차던지…..”
태평천국에서는 일본인들을 귀신의 새끼(鬼子)라고 부른다. 상제를 유일신으로서 모시는 태평천국의 눈으로 판단할 때 일본의 수많은 신들은 그야말로 귀신에 불과하고,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 귀신의 후손이라 하므로 ‘귀신의 새끼’가틀림없다는 논리라고 알고 있다.
“그 무도한 놈들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감히 멀쩡한 남의 나라를 두고 귀신의 나라로 비하하다니, 이 얼마나 무례한 놈들인가. 여기저기서 욕이 튀어나오자 급히 다른 이들이 진정시켰다.
“그따위 놈들 도움 없이도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소. 이 중원 땅에다 나라를 세우고 기반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오.”
그 나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힘을 키워 일본으로 돌아가 막부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다만 그게 당장 이루어질 수는 없을 테니,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는 중원에서 세력을 키우고 힘을 기른다. 그게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동맹국도 필요하고, 동맹을 만들자면 왕실 간의 국혼도 필요한데…..”
지사 한 사람이 여전히 고귀한 피는 함부로 밖에 뿌리면 안 된다는 아키라를 흘긋거렸다.
“나라를 세워 옥좌에 앉힌 뒤에도 저 미친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자기 자식들끼리 결혼시키겠다면서?”
“그러지 못하게 해야지. 다른 나라 군주들 피도 우리 황실만큼은 아니어도 꽤 고귀하다고 설득해서라도 다른 나라와 혼사를 맺고 동맹 관계를 다져야 하오.”
이들은 이 문제도 심각하게 논의했다. 여차하면 한국, 송나라, 청나라, 태평천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인근에 있는 모든 국가와 국혼을 맺을 각오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쯤은 해낼 각오가 있어야 막부를 쓰러트리고 일본을 영광으로 이끌 수 있지 않겠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