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62
4부 446화(2062화)
12.
왕실 간 혼인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다. 당장 현 차르인 니콜라이 1세의 할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오스트리아 공주였고, 모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프로이센 공주였으며, 황후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헤센 대공국 공녀 였다.
사실 니콜라이 1세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가 즉위하기 전해에 영국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춤도 추었고 상당한 호감도 느꼈다. 니콜라이가 21세, 빅토리아가 20세로 나이도 적당히 어울렸다.
하지만 부황인 알렉산드르 2세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국의 황후지 여왕의 남편이 아니다’라는 게 주된 반대 논리였다. 게다가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마음을 접은 니콜라이는 귀국하는 길에 헤센 대공국의 대공녀 마리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바로 결혼했다. 마리는 ‘마리야 알렉산드 로브나’라는 러시아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러시아 황실의 환영을 받았다.
다만, 알렉산드르 2세는 아들이 결혼한 바로 그해에 뱃놀이 도중에 연못에 빠지는 바람에 폐렴에 걸려 죽고 말았다. 예상보다 더 일찍 즉위하게 된 젊은 황제가 결혼을 1년만 미룰 걸 그랬다고 후회했을지 안 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니콜라이와 마리야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도 장차 나라 바깥에서 배우자를 찾을 공산이 크다. 그게 왕실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폐하, 굳이 황녀 전하를 아시아로 시집보내실 필요가 있습니까? 유럽에도 우리 황실과 혼사를 맺을 상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신하들 사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황실의 혼인은 당연히 외교적으로 좀 도움이 되는 상대와 맺는 게 맞다. 물론 한국이 중요하지 않은 상대라는 건 아니지만, 굳이 황녀를 시집보내야 할 만큼 중요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선대의 전례를 보면 러시아 황녀들은 대개 독일 지역의 왕국이나 공국으로 시집을 갔다. 그런 전례가 있는데 갑자기 머나먼 동방으로 딸을 보낸다니,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왕래만 하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 곳으로 말이다.
하지만 결혼 상대가 ‘아시아인’이라는 주장은 차르를 논파하기에 부족했다. 차르가 콧김을 뿜더니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한국 공주로서 차리나 자리에 오르신 루시아 표도로브나 황후 폐하를 무시하는 것인가?”
루시아 표도로브나 황후는 기사왕의 딸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외아들인 알렉세이 1세와 결혼, 여러 자손을 낳아 로마노프 황가가 번성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모든 황족의 조상인 그 루시아 표도로브나 황후를 무시한다면 그건 곧 황실 전체를 무시하는 게 된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신하들은 허겁지겁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차르의 비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 중 조상 중에 타타르인이나 한국인이 있는 사람이 여럿 있지 않은가?
내가 굳이 이름을 열거할 필요도 없을 듯한데.”
이반 4세 이래 역대 차르들은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새 정복지의 지배계층을 적극적으로 러시아 제국에 받아들였다. 그래서 타타르 귀족들이 러시아 귀족으로 다수 편입되었다.
이들은 러시아 귀족들과 통혼하면서 러시아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었고, 이제는 티도 나지 않는다. 표트르 시절에 루시아 황후와 함께 유입된 한국계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황실에서 온 공주가 우리 제국의 황후가 된 적이 있고, 우리 제국의 귀족 가문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왔는데, 우리 공주가 한국의 황후가 되지 못할 이유가 있소?”
니콜라이 1세는 한국과의 관계를 증진하고 싶다는 목표가 확고했다. 역대 차르들의 소망, 콘스탄티노플 탈환을 이루려면 후방인 아시아 방면의 안정이 필수인데 그걸 달성하려면 꼭 필요한 게 한국과의 우호 관계 유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번 카타이 내전 때도 개입을 포기한 것 아니었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면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충돌하기는 너무 부담스러웠으니까.”
황태자 시절에 시베리아 순행을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여전히 시베리아는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 근무지를 이탈한 카자크나 백정 산적들이 여기저기서 수시로 출몰한다. 이들을 때려잡고 치안을 확립하려면 양국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어디 그뿐인가. 근래 들어서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남진 시도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오스만과 페르시아를 도와 러시아의 남진을 막게 하려고 한다. 선황이 자신에게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하지 못하게 한 것도 그 탓이 컸다.
문제는 한국이 그 둘과도 퍽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는 거다. 아직 젊은 – 니콜라이보다는 두 살 많다 – 한국 황제가 혹시 영국이나 프랑스에 넘어가면, 러시아는 그동안 안정적이던 동쪽 국경에서 새로운 위협을 받게 된다. 세 방향에 적을 두게 되면 정말 힘들어진다.
니콜라이 1세는 결혼동맹을 맺음으로써 한국을 확실한 동맹으로, 동맹까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게 할 생각이었다. 독일 내 어느 소국의 대공비 따위로 만들기보다는 그편이 딸에게도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구상이 정부 각료들에게만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도 반발이 나오는 데 있었다. 혼인의 또 다른 당사자,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부터도 남편의 제안을 썩 좋은 태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애를 약혼시키겠다는 거야 뭐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상대가 사는 곳이 멀어도 너무 멀지 않아요?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 태평양 연안이라니! 우리 아샤(아나스타시아의 애칭)를 그렇게 먼 곳에 보낼 수는 없어요!”
“마리야. 내가 황태자 시절에 시베리아를 돌아보고 온 적이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한국은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나라는 아니오. 느긋하게 가도 석 달이면 도착할 수 있고, 그만한 거리라면 파리로 여행 가는 거나 비슷하단 말이오.”
부부는 혼인한 지 6년이 되었지만 이제 겨우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래서 황후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둘밖에 없는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한성에 머물다가 온 푸시킨 경의 이야기를 들었잖소? 한성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지지 않을 만큼 발전하고 번성하는 도시라고 했소. 그리고 한국은 무려 북태평양을 내해로 가진 나라란 말이오. 그런 나라의 황후 자리가 어찌 가벼운 자리라고 생각하시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흑해와 발트해를 탐냈다. 러시아가 대서양으로, 지중해로 나가도록 해줄 통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예 북태평양이라는 대양을 소유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 자체를 가진 건 아니지만, 그 바다를 둘러싼 모든 육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바다를 소유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푸시킨은 한성에 4년이나 머물다가 돌아왔다. 차르는 푸시킨이 수도를 비운 사이에 그의 아내인 나탈랴 곤차로바와 몇 번쯤 밀회를 즐겼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푸시킨 경이 보고하기를, 한국의 황제와 황후는 모두 프랑스어에 능통하다고 했소. 그런 나라를 어찌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급으로 간주할 수 있겠소? 유럽에서 우리 이웃에 있는 나라들보다 뒤떨어질 게 없지 않소.”
황태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도 아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녀 역시 아직 어린 손녀딸을 멀리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 견해에는 동조하고 있었다.
“훔볼트 박사의 편지 때문에, 요즘 베를린에서는 한풍이 새삼 유행한다고 하더군요. 한국 황실은 소비에스키 대왕의 후손이라는 그 오랜 속설도 더불어서.”
한국 황실에 소비에스키 왕가의 피가 섞였다는 설이 대중적으로 퍼진 건 비발디가 작곡한 오페라 때문이다. 소비에스키의 외증손녀였던 폴란드 왕비 예카테리나가 후원해서 제작한 이 오페라는 처음부터 그런 오해를 유발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는 했다.
덕분에 그보다 이전, 맹호왕의 사자들이 유럽을 방문하던 시절부터 생긴 한국인들이 실은 백인이라는 설도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황태후도 그 주장을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훔볼트 박사는 그 설을 부정했더군요. 현지에 머물면서 한국인들과 그 문제로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눠 봤지만, 한국인들은 코카서스인이 아닌 몽골인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한국인이 백인인 것 같다는 보고가 그렇게 넘쳐나는데.”
한국인들이 이웃 나라인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 키가 크고 자세가 곧으며 피부가 희다는 이야기는 수백 년 전부터 한국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다. 물론 햇빛 아래 나가서 노동하는 하층민들은 볕에 타서 까맣지만, 그건 유럽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한국인들은 유독 더 백인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한국에 찾아간 여행객 중 많은 수가 한국인은 백인이 틀림없다면서 사라진 이스라엘 열 지파라느니,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대라느니, 크라수스의 군단병들이라느니, 바이킹이라느니 하며 그 뿌리를 추측했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에 처음으로 가톨릭을 전한 선교사, 세스페데스는 ‘한국 임금이야말로 사제왕 요한의 후손이 분명하다’라는 보고서를 로마에 보내기도 했다. 그 보고서의 사본은 지금도 유럽 전역을 떠돌면서 한국인이 백인이라는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한 훔볼트는 그 모든 추론을 부정하고 한국인은 분명 아시아인이 맞는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임금과의 대화 및 한국 학자들과의 토론을 거쳐 도출한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훔볼트의 다른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이 인종에 관한 연구 결과는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야 뭐 각자 다르겠지만.
“차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은 유럽이나 마찬가지인 나라예요. 게다가 종교의 자유도 있으니, 아샤를 보낸다고 해서 그렇게 힘든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아샤가 낳을 아이들이 이교도로 자라야 할 건 마음이 좀 아프지만…..”
익숙한 일이다. 독일로 시집간 황녀들은 본인은 계속 정교도로 살더라도 자식들은 시가의 종교에 따라서 키운다고 약속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로 시집을 오는 외국 공주들도 자식들을 정교도로 키운다. 여기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종파가 다르더라도 일단 크리스트교 신자이긴 한 것과 아예 이교도가 되는 건 전혀 다른 일이기는 하다. 이 종교 문제는 각료들 사이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지만, 차르는 이게 도리어 훗날 한국을 정교회 국가로 만들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받아쳤었다.
“모후께서 말씀하신 바가 맞소. 비록 아샤가 낳은 아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이교도가 되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 마음에는 신앙이 있을 거요. 그리고 한국에는 이미 성당이 들어섰고 수천 명에 달하는 신도가 있으니 그들 역시 아샤의 도움을 받아 번창할 수 있고…..”
하지만 황후는 선뜻 그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주장에 선뜻 의견을 맞추기에는 어린 딸을 향한 애착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는 너무 어려요. 이제 겨우 네 살이 된 아이를…”
“마리야, 내가 임금에게 제안하려는 건 약혼이지 결혼이 아니오. 우리가 결혼할 때 당신이 몇 살이었는지 잊었소? 아샤가 결혼하려면 적어도 12년은 흘러야 할 거요.”
황후와 황제가 처음 만났을 때 황후는 15세였다. 결혼은 1년 뒤에 했고. 고로 지금 4세인 아나스타시아가 결혼하려면 12년은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한국이 좀 멀다는 문제는 곧 해결될 거요. 철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까. 12년 뒤에는 열차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서 한성까지 갈 수 있을 거요. 아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이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러시아 쪽 구간은 꽤 오랫동안 그 종단점이 카잔에 머물러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역대 차르들이 철도 건설보다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를 무찌르면서 제국의 영토를 남으로 넓히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던 탓이다.
선황 알렉산드르 2세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완공하기보다는 오스만과 페르시아를 향한 남진을 우선했다. 황태자 시절의 니콜라이 1세가 철도 공사를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가 그럴 돈이 있으면 남진에 한 푼이라도 더 써야 한다고 핀잔을 들은 건 덤이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는 한국과의 교류 확대가 당장 오스만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철도 건설에 노력을 기울였고, 카잔에 멈춰 있던 철도는 이제 예카테린부르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측에서도 곧 바이칼호에 철로가 닿는다고 했다. 그러면 전체 구간의 ⅓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정도라면 자본만 조달할 수 있으면 12년 안에 완공하고도 남으리라.
“혼례식을 치르러 갈 때도 편안하게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소. 지금처럼 계속 배와 썰매와 수레를 갈아타며 움직이지 않아도 되오.”
차르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황후의 얼굴은 굳어진 채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치지요, 폐하. 그런데…혹시 저쪽에서 거부한다면요?”
“그러면 그냥 없던 일로 치면 되겠지. 진행하던 혼담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는 일쯤은 유럽에서도 비일비재하지 않소.”
황후는 그 이야기까지 듣고서야 마지못해 승낙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한국 측에서 이 혼담을 거절해 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짐이 그렇게 힘들게 이뤄낸 혼인 제안이오. 그러니 귀국 임금께서 어서 수락하시는 뜻을 보내주신다면 좋을 듯하오.”
러시아 주재 대한 공사, 권승현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선대 차르는 만사 차분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 차르는 젊어서 그런지 무척 성급했다. 자기가 할 생각이 있는 일은 전력으로 추진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버려둔다. 딸의 혼사도 그런 듯했다.
권승현으로서는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떠맡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차르가 몇 번이나 들었을 반론을 또 꺼내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폐하, 공주께서는 너무 어리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치를 혼인이라면 지금 정한다고 해서 나쁠 게 없지 않소. 그리고 결혼이 아니라 약혼이라니까? 한국 황태자도 올해 아홉 살이라지 않았소? 그러면 다섯 살 차이니, 나중에 결혼할 때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데.”
본국에서는 아직 이 문제를 두고 훈령을 보낸 게 없다. 그런데도 차르가 불러들여 이렇게 답을 재촉할 줄은 몰랐다. 청나라 주재 공사관처럼 전보를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최소한 바로 훈령을 청할 수 있을 테니.
차르가 왜 이리 조급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주의 나이도 어린데 이게 이렇게 서두를 일인가?
권승현에게는 당연히 이 문제를 두고 가부를 논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본국에 있는 조정 대신들이 이 사안을 접하고 내놓았을 게 분명한 반론만 일단 차르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폐하. 송구하지만 우리 대한의 조야에서는 폐하의 혼담을 썩 반갑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왜 그렇소? 이유를 대 보시오.”
“일단 공주께서 너무 어리십니다. 황실의 대를 잇자면 하루빨리 후사를 보아야만 하는데, 공주께서는 아직 어리시니 적어도 10년 이상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일반 반가의 혼사라면 정혼만 해두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도 있지만, 국가의 근본인 황실은 그게 어렵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혼인하는 사례가 흔한 유럽인 앞에서 이게 안 먹힐 핑계인 줄은 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도 없다.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테니까.
“종교 문제도 있습니다. 만약 훗날 태어나신 황태손께서 국가 제례에 참여를 거부하시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라가 뒤흔들릴 겁니다. 게다가 강대한 외국이 외척으로 있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우리 대한의 국초에서부터 내려온 국시 중 하나입니다.”
예상대로 반론이 있었다.
“그대와 같은 외교관들이 일러주면 되잖소? 유럽에서는 아무리 왕실 간에 혼인으로 연을 맺어도 그다음 대에서 어머니의 나라, 사촌의 나라와 서슴없이 전쟁을 벌이고 서로 국익을 두고 다툰다고 말이오.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소.”
“저 같은 사람은 압니다. 하지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차르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권승현이 조심스럽게 네 번째 이유를 밝혔다.
“우리 대한에는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 첩을 두는 관습이 있습니다. 공주께서 그 관습을 감내하실 수 있습니까? 교회의 율법이 인정하지 않을 텐데요?”
대한의 후궁을 두고 ‘술탄의 하렘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와 대한의 깊은 교류의 역사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이제 대한의 ‘후궁’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괜찮소. 러시아에서도 정부를 두는 차르는 많았으니까.”
그 자신도 황후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과는 별개로 은밀히 다른 여자들과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리고 한국제 조피도 종종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정식 아내도 아니고 그 자식에게 계승권도 없잖습니까. 하지만 후궁에서는 모든 관계가 합법이고 자식에게도 계승권이 있습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우선되는 건 정처와 적자의 권리 아니오? 그거면 충분하오.”
차르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겠다고 각오한 듯 권승현을 쥐어짰다. 녹초가 된 뒤에야 황궁 밖으로 빠져나온 권승현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 이 유주 천지에서 자기보다 고생하는 한인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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