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65
4부 449화(2065화)
16.
앨버트 공은 영국에서 공식적인 직함이 하나도 없다. ‘여왕의 남편’이라는 자리조차 받지 못했다. 오직 본래 가지고 있었던 독일 공자의 지위에 따라서 ‘HRH(His Royal Highness)’, ‘앨버트 공 전하’로 불릴 뿐이다.
이렇게 된 데는 그동안 여왕의 남편이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한 선례가 별로 없었던 탓이 크다. 정복왕 윌리엄 이후 제대로 통치한 여왕은 네 사람에 불과했고, 그들 중 앨버트 공 같은 남편을 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여왕이었던 메리 여왕의 남편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다. 당대 최강국이던 스페인의 국왕에게 영국에서 부여할 지위가 있을 리 없고, 본인이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는 아예 죽을 때까지 결혼을 안 했다. 남편이 없으니 무슨 지위를 부여할지를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세 번째 여왕인 메리 2세의 남편, 네덜란드 총독 빌럼 3세는 그 역시 영국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아예 윌리엄 3세라는 이름으로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 역시 여왕의 남편으로서의 칭호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네 번째 여왕인 소피아 여왕의 남편,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즉위 시점에 이미 늙어 죽은 지 오래였다. 엘리자베스 1세 때와 원인은 달라도 결과는 같았다.
앨버트 공은 여왕이 될 뻔했던 앤 공주의 남편, 덴마크의 조지 왕자만 한 배경도 없었다. 당시 덴마크는 영국의 중요한 동맹이었다. 하지만 앨버트 공은 영국보다 훨씬 작은 소국인 작센-코부르크 & 고타 공국의 둘째 공자 출신이다. 좋은 대우를 받기가 어렵다.
심지어 군대 경험도 없다. 그래도 육군에서는 여왕의 위신을 생각해서 앨버트 공의 육군 원수 임명을 받아들였지만, 해군은 딱 잘라서 총사령관 취임을 거절했다.
상황이 이러니 세간에서는 앨버트 공을 ‘뚱뚱한 여왕의 두둑한 지갑을 노리고 온 얼굴만 번드르르한 가난뱅이 독일 귀족’ 정도로 취급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앨버트 공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가 맡은 가장 기본적인 일은 물론 여왕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할 역할이다. 하지만 앨버트 공은 군대 훈련이나 장비 개발에도 관심이 많았다.
분명 여왕과 결혼할 때까지는 군대 경험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라도 총사령관이 된 이상 없는 것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최대한 자주 훈련장을 찾아 참관하거나 무기 개발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따로 공부도 했다.
“이번 전쟁에서 한국군이 동원한 신무기가 이런 것들이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전하.”
후장식 소종 정도야 이쪽에서도 제작한 물건이다. 하지만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장갑차, 여러 개의 총열이 돌아가면서 탄환을 발사하는 기관총,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상으로 폭탄을 떨어트리는 비행선. 이런 것들은 모두 영국에서는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건들이다.
한국군을 따라갔던 관전무관이 그려온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본 앨버트 공은 꽤 유용한 물건들이라고 생각했다. 적군의 사격을 튕겨 내며 진격하는 수레와 적이 한 발을 쏠 때 백여 발을 쏘는 총, 적의 머리 위에서 폭탄을 던질 수 있는 탈것이 쓸모가 없을 수가 없다.
“우리도 이런 것들을 똑같이 만들 수 있지 않소?”
“똑같이는 만들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자기들이 개발한 이 신무기들을 모조리 특허를 걸었습니다. 물론 돈을 내면 얼마든지 판매한다고 합니다.”
병기부 총사령관(Master General of the Ordnance)인 조지 머레이 경이 대답했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훈장도 여러 개나 받았던 명장이다. 비록 70세가 넘은 나이 때문에 옛날만큼 영민하지는 못했지만 사리 판단은 명확했다.
“전하께서 우리 육군에 이 장비들을 지급하고자 원하신다면, 한국 측에 대금을 지급하고 완제품이나 생산권을 사들이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구조는 물론이고 부품 하나까지 모조리 원본과 다른 모양으로 만든다면 가능합니다.”
“한국도 옛날과 퍽 달라졌구려. 예전에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도 아예 외부에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만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대표적인 물건이 ‘무종탄(Mekong ball)’이다. 강선총에 쓰기 적합한 그 탄환이 한국에서 처음 발명된 시기는 무려 3백 50여 년쯤 전, 번개왕 시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탄환의 형태를 군사기밀로 취급해서 꼭꼭 감췄다. 무려 2백여 년이나.
무종탄의 실물이 유럽인들의 손에 처음 들어온 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같은 시기에 따로 진행된 한국-스페인 전쟁 때였다. 멕시코에서 한국군이 철수할 때 흘리고 간 탄환을 스페인군이 주운 게 시초였다. 그 뒤로 서양에서도 그 탄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인들은 ‘무종탄’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야 당연히 ‘ball’이라는 말이 갖는 다른 뜻 때문이다. 그거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그것 외에도 한국에서 처음 만들었으면서 외부로 퍼뜨리지 않은 무기체계는 여럿 있었다. 앨버트 공은 그에 관한 문헌을 읽으면서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유럽인들이라면 당연히 특허를 내서 세상에 팔아먹을 궁리부터 할 텐데, 왜 그리 꼭꼭 감춘 건지.
그 질문을 받은 리처드 웰즐리 후작 – 초대 주한 영국 공사 – 은 이렇게 대답했다. 본래 한국인들은 주변국이 자기네 신무기를 훔쳐 사용하는 걸 병적으로 경계했다고. 적이 한국식 특수 화살을 사용하는 법을 배울까 봐 국경지대에서는 활도 마음대로 못 쏘게 했다고.
‘로마인들이 그리스의 불 만드는 법을 비밀로 하던 것과 비슷하군요.’
‘적절한 비유이십니다.’
웰즐리 후작은 5년 동안 한국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관한 책도 썼다. 장기간 인도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어 앨버트 공에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관한 지식을 전해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다만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고, 3년 전 향년 82세로 눈을 감았다.
“그러면 돈을 주고서라도 도입합시다. 이 새 무기들은 우리 여왕 폐하의 군대를 한층 더 강력하게 해줄 겁니다.”
앨버트 공은 이 무기들이 새로운 군사적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아내인 여왕도 자기를 지지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왕의 판단조차 거부할 수 있는 엄청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안 됩니다, 폐하.”
앨버트 공의 제안을 들은 빅토리아 여왕은 육군 총사령관(Commander-in-Chief of the Forces) 웰링턴 공작을 불러들여 뜻을 전했다. 하지만 앨버트 공과 마찬가지로 육군 원수 계급을 가지고 있는 웰링턴 공작은 일언지하에 여왕의 뜻을 거부했다.
“아무리 차체에 철판을 둘러 총알을 막아낸다고 해도 필요할 때 필요한 장소에 위치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영국에도 증기차는 있다. 하지만 마차와 비교하면 당연히 고장이 잦을뿐더러 연기를 뿜고 재와 불똥을 흘리며 운행하는 탓에 시중의 원성이 심하다. 그래서 증기차가 운행할 때는 꼭 붉은 기를 든 기수가 선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됐을 정도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증기차 따위에 철판을 더 붙이다니, 망가지라고 애걸하는 짓밖에 안 됩니다. 연료가 부족해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적이 함정을 파면 그대로 걸리며 가지 못하는 지형도 많은데 속도도 사람이 걷는 속도밖에 안 된다면, 말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웰링턴은 나폴레옹 전쟁 때 고장이 나서 길에 버려진 프랑스군의 증기기관 포차를 숱하게 보았다. 그 경험 탓에 지금도 증기차를 신뢰하지 않았고, 영국군에 증기 포차를 도입하는 것도 반대했다. 그런 까닭으로 영국군에서는 여전히 모든 화포와 수레를 말이 끈다.
그래서 웰링턴 공작은 장갑차 한 대를 제작할 비용으로 기병 10기를 양성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투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비판은 비행선으로도 이어졌다. 웰링턴 자신이 전장에서 열기구를 정찰용으로 운용해 본 경험이 역시 바탕이 되었다.
“그 장난감 같은 물건은 맞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날지 못할 거고, 보일러에서 불똥 하나만 잘못 튀어도 당장 불덩이가 되어 추락할 겁니다. 운이 없어 기낭에 총알구멍 하나만 뚫려도 바람이 빠져 땅바닥에 처박힐 거고요. 기낭에는 총알을 막을 철판도 못 붙입니다.”
“높은 곳에서 날면 총에 맞을 일도 없지 않소, 공작?”
“총에 안 맞을 만큼 높이 올라가면 당연히 떨어트리는 폭탄도 제대로 안 맞습니다, 폐하. 한국군이 비행선에서 떨어트린다는 폭탄의 효과는 분명 크게 과장되어 있을 겁니다.”
웰링턴 공작은 적의 비행선이 정 걱정된다면 방공용 기구를 띄운 뒤 그 기구에 라이플로 무장한 명사수를 태우면 충분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소총보다 훨씬 큰, 옛날에 수성용으로 쓰던 소구경 화포만큼 큰 총을 제작해서 다가오는 적 비행선의 기낭을 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총을 가진 사수들을 지상에 배치하고 비행선을 사냥하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 적이 비행선으로 아군 진영을 공습하러 온다고 해도 절대 낮은 고도에서 정확하게 폭탄을 던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 기관총이라는 물건도 그렇습니다. 미숙한 병사들이 탄약을 허 공에 부리도록 조장하는 헛된 기계일 뿐입니다.”
웰링턴 공작은 그렇게 부려대는 탄환 중 몇 발이나 표적에 명중하겠느냐고 했다. 제대로 조준도 안 한 상태로 흩뿌리는 총탄 백 발 중에 한 발이라도 사람에 맞으면 용한 거라면서 말이다.
“강선을 판 고급 총열을 열두 개나 사용한다지요. 차라리 그 총열로 같은 위력의 탄환을 쓰는 소총 열두 자루를 만들고 병사들에게 사격 훈련을 열심히 시켜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만드는 편이 훨씬 효율적으로 병력과 장비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갑차와 비행선과 기관총에 대해서, 영국군이 그런 낯선 장비들을 도입할 필요가 없는 이유에 관한 강변이 한참을 이어졌다.
올해 76세라고는 하지만 당당한 육군 원수에 현직 육군 총사령관이다. 게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쓰러트린 영국 제일의 영웅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무리 영국의 군주고 즉위한 지 9년째라고 해도 이제 겨우 26세, 웰링턴의 손녀뻘이다. 그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알겠소, 공작. 그러면 당장 도입하지는 않도록 하고, 흡족한 성능을 갖춘 물건이 나올 때까지 병기부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왕은 어떻게든 남편의 위신을 세우고 싶었다. 남편이 모처럼 공들여 제안한 사업이다. 반대자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웰링턴이라지만 아예 백지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웰링턴도 아주 꽉 막힌 태도로 나오지는 않았다. 여왕이 순순히 자기 말을 들어준 데 대한 자기 나름의 예가 아니려나 싶었다.
“무기는 늘 진보해 왔습니다. 장래에 사용하기 위한 연구는 해도 괜찮겠지요. 다만…..”
자기 생각에 장갑차나 비행선은 도무지 제대로 움직일 것 같지 않으니 병기부가 담당하는 본래 영역인 대포 개량에 그 노력을 쏟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 괴이한 신병기에는 프랑스 정부도 관심이 없을 겁니다.”
17.
“또 뭐가 남았나.”
“여기 있습니다, 각하. 모로코 술탄으로부터 온 우호 서한입니다.”
팔레 루아얄에 있는 프랑스 대통령, 시민 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오를레앙 공작’이라는 칭호는 공식적으로는 쓰지 않고 있다 – 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군이 발명한 신병기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을 만큼 해결을 기다리는 일이 너무 많았다.
“적당히 답신하도록. 저쪽에서 굽히고 나오는데 또 후려칠 필요는 없겠지.”
모로코의 술탄 아브드 알 라흐만은 프랑스에 저항하는 알제리인 들을 지원했다. 알제리를 완전히 평정하려면 배후에서 물자와 병력을 지원하는 모로코도 제압해야 했다.
모로코 술탄은 과거 15년 전에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격퇴한 전력이 있었다. 그때 모로코 해적들이 오스트리아 상선을 나포했는데, 그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트리아 함대가 나타나서 모로코 항구를 공격했다. 피해는 모로코 측이 더 컸지만 어쨌든 막아내기는 했다.
그래서 술탄은 프랑스도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알제리인들을 지원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차지하면 모로코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 전역을 정복하려고 시도할 게 분명하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모로코가 계속 배후에서 알제리 저항군을 지원하는 한은 알제리 원정을 끝낼 수 없었다. 그래서 루이 필리프는 30척에 달하는 함대와 병력 3만 명을 동원해서 국경 연변에 주둔한 모로코군을 먼저 공격했다. 주력부대를 상실한 술탄은 평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프랑스로서도 모로코 술탄에게 저항군을 더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영토나 배상금을 요구하면 분명히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할 텐데, 아직 알제리 내부에 반란군이 득실대는 상황에서 적을 더 늘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적은 알제리 반란군만 있는 게 아니다. 육군이 알제리에 붙박여 있는 동안 해군은 올해 중에만 아르헨티나, 마다가스카르, 시니카 등지에 출동했다. 셋 모두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영국 해군과의 합동 작전이었다.
추가로 힘을 들여야 할 곳으로 레반트가 있었다. 이집트 정부는 어미에게 모이를 조르는 새끼 새처럼 계속 지원을 달라고 보챘고, 레바논에서는 또 기독교도 학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프랑스, 러시아 등이 비난했지만 오스만 정부는 자기네 내정이라면서 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삐를 잡고 있던 이집트군을 풀어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군하게 해야 그 도시에 있는 얼간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영국과 전쟁을 치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각하.”
“그렇겠지. 그놈들은 술탄의 중앙정부를 지원하고 있으니까.”
영국이 오스만을 지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 때문이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콘스탄티노플 탈환이야말로 자기들의 염원이라고 대놓고 천명했다. 그동안은 그저 상징적인 구호라고 치부했지만, 이제는 점점 그 광경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정말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손에 넣는다면, 그리고 흑해 이남 바다로 나올 문을 손에 넣는다면 지중해가 흔들린다. 그런 상황은 프랑스로서도 차마 바라지 않기는 했다.
“새와 조개가 싸우는 사이 어부만 이득을 보게 할 수는 없지.”
루이 필리프가 탄식했다.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견제하려면 적어도 지중해 지역에서는 영국과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내키지는 않으나 협력할 필요가 있다.
“시니카에 있는 우리 군대는 왜 그리 전투 의지가 없는가.”
“워낙….익숙하지 않은 기후 탓입니다, 각하.”
대답하는 장관들도, 질문하는 루이 필리프 본인도 궂은 날씨가 소극적인 군사행동의 진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핑계로 댈 만한 게 그것뿐이다.
“그놈들은 모조리 철수시켜서 알제리에 투입하고, 새로 병력을 구성해서 파견하시오.”
“예, 각하.”
그 빨갱이들의 반란으로 프랑스의 위신과 재산에 상당한 피해를 봤다. 그 대가를 치르게 하려면 프랑스군이 당당하게 그놈들을 짓밟아 줘야 하는데, 원정군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래서야 위대한 프랑스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낸단 말인가.
“폐하. 공화국수비대를 파견하시면….그 부대는 실로 최정예이니 정말 잘 싸울 겁니다.”
“안 되오.”
공화국수비대(Garde rdpublicaine)는 루이 필리프가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정예부대다.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루이 필리프 개인을 향한충성심이 핵심이다.
숫자는 4만이라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준비 중인 개헌 작업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소요를 제압하려면 그 부대가 꼭 손 닿는 곳에 있어야 했다.
지금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연속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고, 루이 필리프도 반대하지 않았었다. 반대했다면 대통령에 당선되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프랑스를 계속 통치하려면 헌법은 꼭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의회와 국민이 선뜻 개헌에 동의할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공화국수비대는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수에즈 운하라도 어서 완성되면 확실한 위업이 하나 생겨 고민할 필요가 줄어들 텐데…..”
루이 필리프가 탄식을 토했다. 대통령 취임 4년째, 늘어나는 건 한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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