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68
4부 452화(2068화)
22.
본래는 매일 접하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사이였다. 하지만 본의 아닌 사정으로 여러 해 헤어져 있다가 고국에 돌아와서야 겨우 만났다. 훔볼트는 그와 해후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호밀방이 얼마나 그립던지 말입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빵은 오직 프랑스식 빵밖에 없었다. 러시아식 호밀빵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면 나름대로 향수를 달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 있는 러시아인들은 호밀빵 따위 먹지 않았다. 그자들도 죄다 프랑스식으로 구운 흰 빵만 먹었다.
“한국에서는 호밀을 구할 수 없어서 그렇겠지. 그렇지 않소?”
“그 영향이 크긴 할 겁니다.”
사실 훔볼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다들 귀족입네 하며 젠체하는 이들밖에 없었던 탓입니다.’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역시 호밀빵은 안 먹고 흰 빵만먹고 있을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모욕하는 게 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프랑스식 빵만 먹다가 본국에 돌아와서 호밀빵을 먹고 있으려니, 괴테 선생이 생전에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하하, 그 이야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지. 본인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발미 전투 때 붙잡은 프랑스인 포로 두 사람에게 식사로 시커먼 호밀빵을 주었더니 당장 도망가 버렸다는 그 이야기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폐하. 그 맛있는 빵을 겨우 한 번 먹어보고 도망을 가다니요. 저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그 프랑스인들을 꽁꽁 묶어 놓고 일주일쯤 먹여서 맛을 들였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농담을 건넸었습니다.”
독일 역사상 최고의 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눈을 감은 지도 벌써 13년이나 되었다. 비록 괴테가 프로이센이 아니라 바이에른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들 두 사람은 모두 생전의 괴테를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함께 만난 건 아니고 각자 별도로 말이다.
그때 괴테는 앞으로의 세계는 유럽만이 중심은 아닐 거라고, 아메리카와 아시아가 세상을 이끄는 세 축을 하나씩 맡게 될 거라고 했다. 물론 아시아의 중심은 두 대륙에 걸친 영토를 보유하고 북태평양을 내해로 두고 있는 한국이고.
훔볼트야 굳이 괴테의 말이 아니었어도 한국에 갔으리라. 그가 원하는 건 과학 연구였고, 한국이 정치적으로 어떤 위상을 확보하건 별로 달라질 게 없었다.
하지만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달랐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별 관심이 없었던 부왕과 달리 국왕은 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오랜 역사에 관해 알게 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괴테 선생한테도 들은 이야기지만, 한국은 역사가 4천 년이 넘는 나라라고 하던데?”
“예. 한국 학자들의 연대 계산을 그대로 신용한다면 그 기원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절과 비슷할 겁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오래된 것들을 선호했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오랜 건물이나 골동품은 물론이고 전통과 내력이 있는 가문도 좋아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훨씬 긴 역사를 지닌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이 개인적 호감이 프로이센과 아무 상관도 없는 중국 부두교 반란 응징군 파병 동참으로 이어졌다. 아시아에 식민지도 없고 외부에서 들어온 노동력도 없는 프로이센은 그 쿨리들의 폭동으로 아무 피해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전한 데는 국왕의 영향이 컸다.
“내가 순전히 내 기분으로 참전하자고 결정한 건 아니오. 한국과 같은 편으로 동참하면 우리도 얻을 것이 많다고 보아서 참전한 것이지.”
동방의 대국인 한국과 좋은 관계를 수립하고, 이를 통해 동방에 영향력을 뻗칠 교두보를 얻는다. 여기는 영국이나 네덜란드처럼 아시아에 식민지를 확보하겠다는 목적까지는 없다. 식민지 따위 보유 해 봐야 관리하기만 힘들다. 상업적인 이권 확보면 충분하다.
이런 의견은 이미 참모본부와 정부에서 모두 내놓은 것이긴 했다. 하지만 국왕이 찬성을 표하지 않았다면 실행하기 어려웠을 거다. 프로이센의 군대는 왕의 군대고, 관료들은 왕의 신하니까 말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다.
부왕은 한국과의 교류 확대에 소극적이었고 그나마도 양국 사이에 있는 러시아의 심기를 지나치게 살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부왕처럼 러시아에 중개를 맡기면 양국이 가까워지지 않게 최대한 훼방을 놓을 게 뻔한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
그게 러시아가 특별히 못되고 사악한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니다. 예로부터 중개자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렇게 행동하게 되어있다. 그래야 중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동서양의 직접 교역을 방해하던 아랍인들처럼 말이다.
“그건 그냥 피해 가면 되는 것이지. 싸우거나 할 게 아니라.”
경력은 부족하나 능력이 좋아 국왕의 눈에 든 젊은 외교관, 비스마르크를 한국에 파견한 것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거기서 경력을 쌓게 한 뒤 다시 유럽으로 불러들여서 다른 중책을 맡길 예정이다.
실제로 수교와 직접 교류를 시작하면서 교역도 늘었다. 일본군에 이어 한국군도 프로이센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만큼 국가적인 위신도 올랐다.
주기만 한 것도 아니다. 프로이센이 받아들인 것도 많다. 공사관 소속 주재무관인 몰트케 중령은 한국군의 장점을 빼곡하게 적은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보냈다. 프로이센군이 배워서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 많았다.
몰트케의 건의를 받아들여 추가로 파견한 교관진은 한국군 장교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게 임무가 아니다. 프로이센이 받아들일 한국군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조사관 역할도 중요한 임무다.
“거기에, 한국에서 개발한 새로운 병기 도입 안건도 있소. 박사는 그쪽은 잘 모르겠지만.”
“예, 저는 군인이 아니라 학자니까요. 그래도 보도는 접했습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장갑차와 비행선, 기관총은 참으로 놀라운 병기였다. 몰트케는 전선에서 직접 관찰한 그 병기들의 성능과 이들이 발휘하는 효과를 상세하게 분석해서 보고했다. 그 내용을 직접 읽어 본 국왕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나폴레옹이 몰고 온 증기차는 철판 따위 붙이지 않아도 툭하면 주저앉곤 했었지. 하지만 한국군이 제작한 장갑차는 그렇지 않더군. 속도도 그만하면 괜찮고.”
장갑차는 이동하면서 보병을 지원하는 보루 역할을 한다. 고로 행군하는 보병들의 이동 속도에 뒤처지지만 않으면 충분하다는 게 참모본부의 견해였다.
도로를 중심으로 기동해야 하고 험한 지형을 통과할 수 없다는 약점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주력부대는 그런 험한 길로 안갈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선과 기관총의 장점은 굳이 열거할 것도 없다. 적진 상공을 자유로이 날면서 아래를 살필 수 있는 열기구와 전장식 소총 백 자루와 맞먹는 화력을 발휘하는 총이 어찌 쓸모가 없겠는가.
“비행선에 기관총을 달고 지상에 있는 행군 대열에 퍼부으면 정말 무서울 것 같지 않소?”
“끔찍할 것 같습니다.”
훔볼트는 성경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리는 불벼락을 떠올렸다. 과연 그 총탄 세례가 어느 군대를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끔찍한 참상이 펼쳐질 듯했다.
“아, 그리고 한국 임금이 우리 프로이센에 무척 좋은 감정을 풀었더란 말이지.”
그리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한국에 호감을 품은 이유는 또 있었다. 군사적이나 상업적인 이득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임금이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다. 자기 나라 좋아한다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엄밀히 말하면 프로이센보다는 독일에 대한 호감과 지식이 풍부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습니다만. 제가 환담을 나눌 때 괴테 선생을 언급했더니, 자기도 그분이 저술한 《젊은 베 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서 화답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 책이 한국에서 발간된 건 처음 출판한 지 50년이 넘게 지난 뒤였다. 선대 임금이 유럽 문화를 무척 좋아해서, 즉위한 얼마 뒤부터 서양 문학을 번역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는데, 그 일환이었다고 했다.
임금은 괴테 외에 쉴러의 《빌헬름 텔》이나 그림 형제의 동화집,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까지 알고 있었다.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에 관해서도 꽤 박식했다. 그들 중에 프로이센인은 호프만밖에 없었지만, 국왕은 충분히 만족했다.
“좋아. 그만하면 충분하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다소 막연하기는 해도 언젠가 독일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면 바이에른 출신인 괴테나 작센 출신인 바흐도 모조리 독일의 위인이 될 터, 그럼 된 거 아닌가.
아직 오스트리아가 독일 전체를 이끄는 영도자 노릇을 하며 으스대고 있기는 하다. 허나 그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프로이센이 그 자리를 빼앗고 말 테니까.
왕의 자리는 신이 내리신 것, 즉 하늘의 뜻이다. 그러니 신께서는 프로이센 국왕이 독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분명히 도와주시리라. 비록 내 대에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다음 대나 다다음 대에는 꼭.
23.
스페인 왕실은 페르난도 6세가 나폴레옹에게 잡혀 프랑스로 끌려갔던 일을 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여긴다. 페르난도 6세는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아비뇽에서 병사했다.
아니, 병으로 죽었다기보다는 분사(憤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부왕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호세 페르난도 2세는 그 분노를 그대로 느꼈고, 다시는 자기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공화주의라는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추종하는 것들은 모조리 처형 하거나 추방하라. 절대 그따위 것들이 내 왕국의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
지금 유럽에 있는 군주 중에서 반동주의 성향을 띠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여기 호세 페르난도 2세만큼 강경한 사람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혁명 때문에 부왕을 잃은 셈이니, 혁명가들을 개인적으로도 원수로 여겨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엄밀하게 따졌을 때 그의 원한은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나폴레옹을 향해야 한다. 하지만 호세 페르난도 2세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나폴레옹 추종자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전부 세상을 뒤집으려는 역도들이고 천하의 개자식들이었다.
그래서 호세 페르난도 2세가 통치하는 스페인은 전 유럽에서 공화주의자에 대한 처벌이 가장 가혹했다. 가장 가벼운 벌이 채석장에서 10년 동안 노역하는 형벌일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국왕이 가장 증오하는 나라는 당연히 누벨 프랑스였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나폴레옹이 처음 루이지애나로 도주했을 때, 바로 쳐들어가서 붙잡지 못했던 게 지금도 한일 정도니까.
“폐하. 프랑스 국왕이 5만 병력을 보내고도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시도했어도…”
“그건 그 멍청이들이 누가 진짜 충신이고 누가 반역자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아무나 보낸 탓이었소. 짐의 군사들이라면 보나파르트 따위에게 투항하지 않았을 거요!”
하지만 그 당시 스페인에는 나폴레옹을 붙잡으러 갈 병력은커녕 중남미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병력도 없었다. 본국에서 제대로 원군을 보낼 수 없어서 진압군 병력도 거의 전부 중남미 현지에 거주하는 스페인계 혹은 혼혈인이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결국 총 20여 년에 걸쳐 벌어진 반란은 중남미에서 수백 년간 유지되던 스페인령 식민지 대부분이 국왕의 손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페인 국기가 아직 휘날리는 지역은 오직 두 곳,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뿐이었다.
호세 페르난도 2세는 격분했다. 하지만 반기를 든 옛 신하들을 징벌할 방법은 없었다. 그 나라들을 정식 국가로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분풀이만 할 따름이었다.
이제 그자들은 아메리카 국가 회의라는 허울 좋은 기구를 만들어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에 손대지 못하게 막고 있다. 아니, 스페인 본국에서 식민지를 탈환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 뒷배는 누벨 프랑스와 미국이 봐주고 있고.
“더러운 미국놈들! 제 놈들이 영국에서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카를로스 3세께서 군을 보내 지원해 주신 덕분 아니던가!”
“맞습니다, 폐하.”
카를로스 3세는 호세 페르난도 2세의 증조부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네덜란드와 손을 잡고 미국을 도왔다.
“그런데 그 은혜도 모르고 우리 땅을 노리다니, 배은망덕한 놈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스페인은 쿠바를 비워 두고 있다!’라면서 그 땅을 빼앗아 자기들이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아직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인 목소리가 나온 건 아니지만, 위험한 수준이었다.
반란을 일으켜 독립한 중남미 국가들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노리는 거야 이해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남은 스페인 식민지, 쿠바를 노리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아니, 미국인들이 정말 미친 거 아닌가.
“찢어 죽일 놈들….!”
“하지만 폐하, 미국인들이 정말 쿠바를 침공한다면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현재 쿠바 인구는 대략 80만이다. 하지만 여기서 30만은 흑인 노예고, 섬 각지 요충지에 주둔하고 있는 수비대 병력은 1만 명이 채 안 된다. 그 정도 전력으로는 인구가 수천만은 되는 미국이 침공하면 막을 수가 없다.
호세 페르난도 2세도 30년이 넘게 통치자 노릇을 했으니만큼 욕이나 하고 있어서는 적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장군들을 모아놓고 강력하게 선언했다.
“쿠바에 성채를 추가로 건설하고, 병력을 3만 명으로 늘리도록 하시오. 본국에서 조달할 수 있는 병력을 파견하는 외에 현지에서도 의용군을 모으는 거요. 노예라고 해도 군인으로 복무하겠다고 지원하면 해방하겠소.”
호세 페르난도 2세는 쿠바에 주둔하는 함대 규모도 세 배로 늘리라고 명령했다. 미국이 정말 쿠바를 침공한다고 해도 바다에서 막는다면 훨씬 피해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해군은 과거 나폴레옹 전쟁 당시 거의 소멸했었다. 프랑스 군에 양도되어 끌려가던 전열함 전부가 트라팔가에서 영국군에게 격침되거나 나포됐고, 나포된 함선들은 모두 영국 해군에 편입되었다. 영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 그 배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스페인 해군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사실상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해군의 전통도 있고 유지해야 할 식민지도 있는지라,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해군보다는 못해도 대체로 미국 해군보다는 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폐하. 분부하신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진행하기에는 비용이 부족 합니다.”
스페인의 재정 상태는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다. 기존 사업도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새 사업을 진행하라고 하면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요새 정도는 노예들한테 강제노동을 시켜서라도 지을 수 있다. 그 요새 창고에 채워 넣을 식량은 징발하면 된다. 하지만 화포와 탄약을 비롯한 물자는 돈이 있어야 획득할 수 있다. 요새를 지킬 병사들에게도 급료를 지급해야 한다.
돈 없이 그런 시도를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닥칠 건 필연이다. 그래서 장군들은 돈이 필요하다고 먼저 말했고, 다행히도 국왕은 장군들의 걱정을 받아들여 주었다.
“돈은 걱정하지 마시오. 마침 한국에서 태평양에 남은 우리 섬들을 사들이겠다는 연락이 들어왔으니, 그 대금을 받아 쿠바 총독부에 지급하겠소. 그 돈으로 요새를 건설하시오.”
“감사합니다, 폐하.”
장군들은 아직 미국의 쿠바 침공 우려를 현실적인 위협으로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웃 국가가 적대적인 태도를 자꾸 드러내고 있으니, 일단 적이 침공해 오는 상황을 대비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