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7
1부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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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군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용감히 앞으로 나갔다. 류조지 군이 무참히 패퇴한 모습을 보았지만 두려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무기가 형편없어도, 적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면 그렇게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긴 창을 들고 줄지어 돌격하면 반드시 이긴다. 눈앞에 보이는 적 ? 류조지 군을 공격했으니 분명 적이다 ? 은 짧은 창을 들었다. 게다가 병력도 둘로 나눴다. 저런 짧은 창을 든 1만 명 따위, 상대도 안 된다. 왼쪽에 있는 5천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된다.
“진격하라! 진격하라!”
지휘하는 무사들이 선창하는 데 따라서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 소리도 한층 더 높아졌다. 창은 아직 눕히지 않았다. 세워들고 있는 편이 훨씬 힘이 덜 들뿐더러, 날아오는 화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은 애초에 내리치는 거지 찌르는 게 아니다.
창이 닿을 거리까지 적이 다가오면 그대로 창을 내리쳐 적의 머리와 어깨, 팔을 후려친다. 묵직한 창날과 창대가 주는 타격은 투구를 쓰고 있다고 해서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적 창병이 들고 있는 창대 자체도 타격 목표다. 창병진이 하는 역할은 적이 짠 전열을 무너뜨리는 일이고, 적병을 쳐서 쓰러트리건 창을 때려서 놓치게 만들건 결과는 같다. 일단 대열이 무너지면 그 뒤에 찾아오는 건 전군 붕괴뿐이다.
진형을 바꾸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대열 가운데를 뾰족하게 내밀어서 적진 중앙을 돌파하는 진형이 만들어졌다. 이대로 돌입하면 적진 가운데가 돌파되면서 분단된 적이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헌데 쇼니 군 병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먼저, 둘로 갈라진 적진 양 끝에서 각각 기병들이 한 무리씩 출격했다. 이제까지 여러 차례 싸움에 나섰지만 저만큼 많은 기병을 적은 본 적이 없었다. 동국(東國, 혼슈 동부)이라면 혹시 모를까 이곳 규슈에는 저런 대규모 기병을 가진 세력이 없으니까 말이다.
일본에서 기병은 실질적인 전력이 아니게 된지 오래다. 수백 년 전에는 분명 중갑옷을 입은 궁기병이 주력이었지만 지금은 보병인 아시가루가 주된 전력이다. 남아 있는 기병은 지휘관과 그 호위를 담당하는 일부 무사 정도다.
그나마 전투에 임하게 되면 대개 말에서 내려서 싸운다. 기마 상태로 전투에 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천여 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규모 기병이라니? 더구나 손에 창도, 활도 들고 있지 않았다. 아까 류조지 군을 추격할 때는 분명 무기를 들었었는데.
전열 중앙부에 위치한 창병들로서는 크게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적군 기병이 후방으로 돈다 한들, 그 전에 적 창병대가 먼저 붕괴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진형을 재편성해서 적이 추격하지 못하게 막으며 히젠으로 물러날 수 있다.
한참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데 두 번째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적진에서 이상한 통을 실은 이륜차가 앞으로 나와 움직였다.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펑 소리가 울리면서 불꽃이 일더니 흰 연기가 십여 개 치솟았다.
그 연기 속에서 뭔가 시커먼 점이 하늘로 치솟다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날아오던 점은 점점 커지더니 대열 앞뒤에 떨어졌다. 떨어진 물건은 사람 머리통 정도 되는 둥그런 쇳덩어리였다. 하늘로 곧추선 창대를 부러뜨리면서 대열 중간에 떨어진 것도 몇 개 있었다.
재수 없게 직격당한 병사 몇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지만 창병 대열은 별 동요 없이 계속 앞으로 나갔다. 야전에서는 보기 드물어도, 공성전에서 돌덩이가 날아와 병사들을 쓰러트리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연기나 폭음은 좀 낯설었지만 그게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니까.
이제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면 적과 창을 맞댈 수 있다. 헌데 선두에 선 창병들은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적 선두 대열에 서있던 창병, 그나마 짧은 창이라도 들고 있던 창병들이 어느새 뒤로 빠지고 이상한 쇠대롱을 든 병사들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쇠대롱 끝에 짧은 날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길이는 앞서 창병들이 들고 있던 것보다 더 짧았다. 한쪽 무릎을 꿇거나 두 발로 선 적병들이 그 대롱을 겨누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저게 무슨 짓일까 쇼니 군 병사들이 궁금해 하는 순간 화염과 굉음이 그들을 덮쳤다.
“으아아아악!”
조금 전 날아와 대열 중간 여기저기에 놓여 있던 쇠공들이 일제히 불꽃을 내뿜으며 터졌다. 폭발은 단지 빛과 열, 소리만 내놓지 않았다.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쇳조각들이 불꽃과 함께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수백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멈추지 마! 계속 전진하라!”
폭발을 접한 병사들이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지휘하는 무사들은 계속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사실 그들 역시 처음 보는 폭발에 당황했다. 하지만 후퇴 명령이 나온 것도 아닌데 병사들에게 멋대로 물러나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 역시 처음 보는, 낯선 무기에 대해 느끼는 공포보다는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익숙한 의무를 더 강하게 느꼈다. 잠시 멈출 듯하던 대열은 여기저기가 이가 빠진 채 다시 전진했다. 곧 뒤쪽 열에 있던 병사들이 앞으로 나와 빈자리를 메웠다.
내심이야 어쨌건 다시 열을 맞춰 전진하는 쇼니 군 창병대를 향해서 재차 연기가 뿜어졌다. 이번에는 그 연기가 무슨 뜻인지 전열에 선 창병들 모두가 알았다. 다만 숨죽이며 자기 머리 위에만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쇠공들은 모두 최선두를 지나 대열 안에 떨어졌다.
뒤쪽에서 폭음이 울리고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선두에 선 창병들은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보지 않았다. 그건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제 적진까지 거리는 4정(약 400m) 남았다. 걸음을 빠르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 창을 내리칠 시간이다.
적진 앞에서 또 커다란 포성과 함께 연기가 일었다. 선두 대열에서는 적이 던지는 쇳덩이가 이번에도 후열에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헌데 이번에 불꽃과 연기가 뿜어지는 방향은 아까와는 달리 위가 아닌 앞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폭풍이 선두 대열을 휩쓸었다.
이번에는 무엇에 맞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정면에서 불꽃을 보았나 싶은 순간 그대로 강한 힘이 병사들을 후려쳤다. 그 힘에 맞은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져서 비명을 질렀다. 갑옷에 구멍이 뚫리고 부러진 창대들이 주변으로 날아갔다.
타격은 측면에서도 날아왔다. 무시하려던 적 우익부대 정면에서도 연기가 뿜어졌다. 정면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측면을 드러낸 좌익부대 병사들이 수숫단처럼 거꾸러졌다.
수백 명이 쓰러졌는데도 쇼니 군 전열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휘관들은 필사적으로 고함을 지르면서 대열을 유지하게 했다. 배후에는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오우치 군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 후퇴한들 목숨을 지킬 길은 없다. 오우치 군에게 붙잡혀 수급이 될 뿐이다.
이들에게 살아날 길은 전방에 있는 정체불명의 적을 돌파해서 히젠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이제 와서 돌격 방향을 바꾼들 이미 늦었고, 지금 이대로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창병대는 뒤쪽에 있는 병사들을 다시 앞으로 내보냈다. 대열을 계속 복구하면서 전진하는데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적 보병 전열이 눈에 대고 있던 가는 대롱이 연기를 뿜었다. 수천 개나 되는 자잘한 연기와 함께 콩 볶는 듯 빵빵거리는 자잘한 폭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그 소리와 함께 대열 앞쪽에 서있던 창병들 수백 명이 또 줄줄이 쓰러졌다. 머리가 터지고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운 좋은 자들 몇은 갑주가 타격을 견뎌냈다.
충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자들 중 몇몇이 자기 갑옷에 작은 납덩이가 박힌 것을 깨달았다. 그럼 큰 불꽃도 비슷한 물건을 날렸다는 이야기다. 쇠든 납이든 말이다.
돌팔매라면 익숙하다. 쇼니 군에도 돌팔매병이 후열에 편재되어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납덩이를 날려 적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납 탄환을 이 거리에서 던져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저 불꽃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의문을 해소할 시간조차 없었다. 먼저 연기를 뿜은 전열에 이어, 일어서 있던 후열이 또 연기를 뿜었다. 아직 위치를 고수하고 있던 선두 대열 창병 수백 명이 또다시 피를 뿜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지휘하던 무사들도 숱하게 절명했다.
운이 좋은 자들은 아직도 자리를 지켰다. 주군인 스케모토가 자신들 뒤에 있었다. 살아남은 무사들이 나서서 잠시 멈췄던 창병진을 다시 앞으로 몰았지만 크고 작은 연기가 또 뿜어졌다. 살아남았던 수많은 병사들이 적이 날리는 탄환에 맞아 쓰러지면서 전진이 완전히 멈췄다.
선두 대열이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고 멍해져 있는 후방 대열 위에 터지는 쇠공이 떨어졌다. 진형 중간에 떨어져 터진 쇠공들이 수백 명을 휩쓸어 쓰러트리자 마침내 후퇴 신호가 올랐다. 철수하기 시작한 쇼니 군 대열은 적이 퍼부어댄 탄환 세례 덕분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 29 –
“용조사 군처럼 일거에 무너지지는 않는군.”
박원종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처음 싸웠던 소이전 쪽 별군, 용조사 군은 야포와 조총으로 일제사격을 두 번씩 퍼붓자 그대로 와해되었다. 진천뢰는 쓰지도 않았다.
헌데 적 본대는 진천뢰 일제사격 세 번에 야포와 조총은 너덧 번을 맞았는데도 질서가 무너지지 않았다. 상처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대열을 유지한 채 야포 사정거리 바깥까지 물러났다.
“후방에 총대장이 있으니 그 위용에 눌려 전열이 멋대로 철수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수가 많은 만큼 일부가 쓰러져도 나머지는 대열을 유지한 점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류조지 군은 본대를 피난처로 여길 수 있었지만 본대는 배후에 피할 곳이 없지요.”
박원종에게 천리경을 빌려 적 후방을 살핀 오키후사가 자기 견해를 설명했다.
“요시오키 님은 지금 강물을 장벽으로 삼아 쇼니 군을 가두어놓고 계십니다. 나가야스 군이 북쪽 산악지대로 가는 길을 막았고, 지쿠고가와 건너에는 요시오키 님의 본대가 있으니 이제 적은 전멸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천천히 진격하며 제압하시지요.”
“우리가 진격하면, 소이전은 어찌 반응하겠소?”
“버티다가 배를 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쩌면 싸우다가 죽겠다고 전군을 돌입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봐야 소용은 없겠지만 말이지요.”
박원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유순정을 따르는 종사관 이장곤이 뒤에서 나타났다.
“부원수 대감! 도원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 인명을 과도하게 해침은 하늘이 정한 도리에 어긋나니, 적을 사로잡을 수 있으면 사로잡으라 하십니다. 왜국 관습이 포로를 잡지 않는다고 하나 그건 왜국의 관습일 뿐, 우리가 따를 바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리 명하셨다고?”
주장(主將)의 명령이다. 훗날 뭔가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 책임은 유순정에게 있다. 피식 웃은 박원종이 휘하 장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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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고가와 동편 둑에 진을 친 요시오키 군은 서쪽에서 벌어진 참극을 두려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우치 요시오키 본인도 측근들을 거느리고 강둑에 올라서서 쇼니 군이 패퇴하는 장면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저건 지난 분키 원년에 나가야스가 보고했던 것보다 위력이 약한 듯하다. 조선군이 화포를 쏘면 천지가 흔들리고 군선이 조각난다 했는데, 지금 보니 그 정도는 아니구나. 게다가 손에 들고 쏘는 저 작은 화포에 대해서는 전혀 보고가 없었다.”
분키(文?) 원년이란 일본 연호로 지난 신유년을 가리킨다. 분키는 3년으로 끝났고, 지금은 에이쇼(永正) 3년이다. 일본에서는 천황이 바뀌지 않아도 연호가 자주 바뀐다.
“육지에서 수레에 실어 나르는 짐은 배에 싣는 것보다 가볍기 마련입니다. 그 탓이겠지요.”
무장 한 사람이 나름 설명을 제시했다. 그럴듯하기에 요시오키도 수긍했다. 그러자 중신 한 사람이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스케모토는 적어도 2,3천은 잃고 물러선 듯합니다. 게다가 남은 병사들도 크게 놀라 있을 테니, 지금 강을 건너 들이치면 쉽게 붙잡아 목을 벨 수 있을 겁니다. 진군하시겠습니까.”
쇼니 군은 존재 자체를 모르던 화포에 맞아 대손실을 입었다. 아직 대열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그 사기는 심히 떨어져 있을 게 분명하다. 지금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이번 싸움은 조선군이 화포 쓰는 법을 철저히 관찰하는 기회로 삼겠다. 계속 저들이 맡도록 이 싸움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장수들은 쇼니 군이 당하는 모습만 본 군사들이 기가 질려 사기가 떨어질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요시오키는 스케모토의 목을 베지 못해도 나쁠 거 없다는 말 한 마디를 던지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신하들은 수수께끼 같은 주군의 태도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31 –
“손실, 막대함! 이이즈카 대, 생환 134명!”
“야마사키 대, 생환 86명!”
“가나이시 대, 생환 53명!”
끔찍했다. 조선군이 쏘아대는 탄환과 불을 뿜는 쇠공 때문에 입은 피해는 그 숫자를 세기가 두려워질 정도였다.
“죽거나 다쳐 돌아오지 못한 병사가 4천을 넘습니다. 남은 자들도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에카네를 비롯한 류조지 군 생존자들이 한 말대로 되었다. 이에카네는 스케모토를 붙들고 돌격해서는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었다. 적이 조선군이고 놈들에게 불을 뿜는 악귀가 있다는 이에카네의 말이 이렇게 입증되리라고는 스케모토로서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선에 선 병사들은 몰라도 스케모토를 비롯한 장수들, 심지어 이에카네도 조선군이 화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터지는 쇠공도 알았다. 하지만 수군에서나 쓸 줄 알았지 여기 육지에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스케모토도 이에카네의 보고를 무시했었다.
그저 짧은 창과 활만 보고 쉬운 상대라고 여기다가 포화를 뒤집어썼으니, 쇼니 군이 혼란에 빠진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뒤늦게 적이 가진 건 화포지 귀신이 아니라고 전파했으나 이미 전군에 공포가 퍼진 뒤였다. 고민에 빠져 있는 지휘부를 향해 계속 보고가 들어왔다.
“지쿠고가와 건너에 있는 요시오키 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산으로 가는 길을 막은 나가야스 군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시오키의 의도는 명확했다. 조선군에게 맡겨서 쇼니 군을 전멸시킬 생각이다. 스케모토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놈들이 가진 화포를 무릅쓰고 돌격할 수 없나? 조선군을 돌파하지 않으면 히젠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
중신들은 암담한 기분에 서로의 눈만 마주보았다. 스케모토가 노성을 발했다.
“우리가 패배한 건 중도에 놀라서 돌격을 멈췄기 때문이다. 화포라고 해도 위력이 강할 뿐, 평소에 화살과 돌이 날아오는 상황과 다를 게 없어! 병력을 집중해서 돌입하면 아군 선두는 피해를 입겠지만, 본대는 적이 다음 탄환을 장전하는 사이 적진에 뛰어들 수 있다!”
스케모토의 지시는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실천에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주군, 병사들은 지금 적에게는 악귀가 있다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모르고 맞서 싸웠지만, 그 앞에 다시 한 번 서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지….”
우물쭈물하는 신하를 향해 스케모토가 고함을 지르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진영 바깥쪽에서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지르는 비명이 울렸다. 여기에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까지 더해졌다.
“정면에서 적이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적 기병들이 우리 진영 양쪽 측면으로 달려와 우리 화살 사거리 밖에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전령무사 한 사람이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 화포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데, 조선군 기병조차 이쪽보다 먼 거리에서 화살을 날린다니 기가 찬 노릇이었다.
“주군, 일단 남쪽으로 피하십시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가문의 맥을 여기서 끊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남쪽으로 가 봐야 바다가 아니냐!”
“바다는 벽이 아닙니다. 그쪽도 사람이 다니는 길입니다!”
신하들은 망설이는 스케모토를 반쯤 끌다시피 해서 피하게 했다. 주군을 대하면서 취할만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쇼니 씨의 미래가 걸린 상황이다. 예의가 아니더라도 도리가 없었다.
쇼니 군은 방패와 창을 동원해서 조선군 기병들이 쏘아대는 화살을 막았다. 조금은 시간을 벌었지만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조선군 보병이 도착했고 손에 드는 작은 화포 사격이 다시 시작됐다. 스케모토의 지시대로 돌격 명령이 내려졌지만 병사들은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군은 아까처럼 일제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단지 한 번에 백여 발씩 허공에 포를 쏘면서 쇼니 군을 천천히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마치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몰아붙이듯, 바다 방향인 남쪽만 터놓고 쇼니 군을 그쪽으로 몰아갔다.
마침내 쇼니 군이 바닷가까지 몰렸다. 빽빽하게 밀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병사들이 죽을 각오를 했을 때 조선군 진영에서 조선 갑옷을 입은 장수 하나가 말을 타고 나왔다. 잠시 후 그 장수가 쓰시마 억양 일본어로 뜻밖의 말을 전했다.
“쇼니 군에게 알린다! 무기를 버리고 조선국왕 전하께 항복하라. 항복하는 자에게는 생명을 보장한다. 오우치에게 넘기지도 않겠다. 전하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이제 죽을 거라고 각오하고 있던 병사들이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무사들이 자리를 지키라고 악을 썼지만 이미 분위기는 흔들린 뒤였다. 조선군이 불을 뿜는 악귀를 부리는 자들이라 해도 국왕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까지 어기지는 않으리라고, 그렇게들 믿었다. 믿으려고 했다.
쇼니 군 병사들이 하나둘 창을 버리고 앞으로 나왔다. 무사 하나가 나서는 병사를 베었지만 바로 누군가가 그 등에 칼을 꽂았다. 항복하는 병사들 사이로 바다에 뜬 배 몇 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