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72
4부 456화(2072화)
“하느님께서는 땅의 흙을 빚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인간이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고 속박하겠습니까? 마땅히 그 신분을 자유민으로 하고 본인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노동하게 함이 옳습니다!”
연단에 오른 초선 하원의원 다미앵 명혁 남, 한국식 이름으로 남명혁 다미앵은 가열하게 열변을 토했다. 노예제 폐지는 그가 기필코 이뤄내고 말겠다고 결심한 목표 중 하나다.
남명혁의 집안은 4대 전부터 루이지애나에 정착한 이주자였다. 남명혁의 고조부는 미주에 가면 본국에서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지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빚을 져 가며 뱃삯을 빌려 미주로 건너왔다. 하지만 정작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문서 없는 노비였다.
“10년 동안 열심히 머슴 노릇을 잘하면 그 뒤에 그대 몫의 땅을 내주겠다. 그러니 배정된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하라.”
아니, 이게 말인가 소인가. 나라와 지주가 백성을 속여 등쳐먹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어떻게 그 말을 믿는가.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진정 애민에 힘쓰는 사또도 있을 것이고 작인들을 위해 자기가 밥 한술 덜 뜨는 지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명혁의 고조부는 평생을 그런 인간들이라곤 통 보지를 못했다. 미주에 와서 배정받은 지주도 본국에서의 상전만큼 개 같은 인간이었다.
3년 동안 제대로 쉴 틈도 없이 개처럼 일한 남명혁의 고조부는 사방에 주인 없는 옥토가 널려 있다는 무릉도원, 미주대령 너머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농장을 빠져나와 무작정 동쪽을 향했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빠져나오기 전에 주인집 본가에 숨어들어 개 같은 주인을 개처럼 두드려 팬 뒤에 조총 한 자루와 화약, 보름치 식량에다 은화 조금을 털어 가지고 나오기는 했다. 3년 동안 새경도 없이 짐승처럼 일했는데 그 정도 보수는 받아야 할 게 아닌가.
다만 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오금족 토병들을 보내 뒤를 쫓았다. 가뜩이나 험한 산과 메마른 사막을 넘으며 들짐승과 도적들을 피해야 하는데 그 토병들까지 쫓아오니 정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천운이 따르지 않았으면 분명히 잡혔으리라.
몇 번이나 잡힐 뻔한 끝에 가까스로 미주대령, 로키산맥을 넘었다. 화약도 없는 빈 총을 지팡이처럼 짚고 거지꼴이 되어 산비탈을 내려오니, 정말로 거대한 강물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그곳에서 프랑스 관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환영하오! 땅은 얼마든지 줄 테니 여기서 행복하게 사시오.”
소설책으로 써도 될 만했던 고조부의 모험담은 그렇게 아칸소 한인촌에 정착하면서 끝을 맺었다. 일부 마을 사내들이 짝을 이룰 여자를 구하러 간다며 미주 대령 너머 동네를 털러 가는 작당을 할 때도 끼지 않았고, 그저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번성하는 일가를 이루었다.
그 후손인 남명혁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루이지애나 식민지에서는 머리가 좋아 봤자 성직자가 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고, 그래서 남명혁도 누벨 오를레앙에 있는 신학교에 진학했다. 교구 사제가 되어 고향인 아칸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폴레옹 황제가 바다를 건너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장악한 뒤 누벨 프랑스 제국을 건국하고 자신을 ‘누벨 프랑스인의 황제’로 선포했다.
“누벨 프랑스의 모든 자유민은 평등하다! 나는 그들을 모두 아우르는 군주가 될 것이다!”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데려온 부하들에게만 의존하지 않았다. 새로운 제국에서 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학교를 잇달아 열었다. 어린 신학생이던 남명혁은 거기서 자신에게 비치는 광영을 보았다. 그리고 신학교를 그만두고 그랑제콜에 들어갔다.
누벨 프랑스 제국에는 한국에서처럼 과거 시험이 없다. 대신 그랑제콜을 졸업한 학생들이 관리가 되어 각지로 보내진다. 고로 그랑제콜 입학시험이 과거를 대체하는 셈이고, 합격한 남명혁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등과(登科)’한 셈이었다.
그랑제콜에서는 유럽에서 온 교수와 학우들에게 온갖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배웠다. 그저 신학 지식 약간밖에 없었던 시골 출신 신학생은 새로운 세계를 접했고, 급속도로 새로 배운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행정관으로 금의환향했다.
“다미앵이 관리가 돼서 돌아왔어요!”
“뭐? 조선인 행정관이라고….?!”
금실로 장식하고 금단추를 단 제복을 입고 나타난 남명혁을 보고 동네 프랑스인들이 더 놀랐다. 여태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바깥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라, 루이지애나도 자기들만 다스리는 땅이라고만 생각해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게 나폴레옹 황제 폐하의 뜻입니다! 프랑스인이든 조선인이든, 이 제국에 전력을 다해 충성하는 자라면 기꺼이 등용하시겠다는 게 말입니다!”
단상에 올라선 남명혁이 당당히 선포했다. 한인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프랑스인들은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폭동을 일으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폴레옹이 특별히 딸려준 근위대 병사들이 남명혁의 뒤에 죽 늘어선 덕을 보았으리라.
그 뒤로 남명혁은 12년 동안 고향에서 행정관으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황제가 붕어한 뒤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정관은 아무리 권한이 강해도 만들어진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의원이 되면 법 자체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제가 12년 동안 우리 고장을 위해 한 일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제국 전체를 위해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누벨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따라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과 병역 의무를 동시에 부여한다. 프랑스나 미국 출신 백인들만이 아니라 남명혁처럼 ‘노란 피부’로 불리는 한국계 이주민이나 ‘붉은 피부’로 불리는 원주민들도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다.
다만 이는 ‘자유민’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권리로, 시민권이 없는 흑인 노예들이나 쿨리는 투표권이 없다. 따라서 병역의 의무도 없다.
물론 노예도 주인의 허락을 받아서 해방되거나 군대에 입대하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관리가 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뿐이지.
쿨리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권을 따면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모두 행사할 수 있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시민권을 따려고 안달인 유럽 출신 이주민들과 달리, 중국인 쿨리들은 시민권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군대에 가느니 그동안 돈을 더 벌겠다는 주의다.
어쨌든 시민권을 따기만 하면 누구든 투표할 수 있다. 이웃한 미국에서도 주마다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재산 소유액이 투표권의 기준인 주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누벨 프랑스가 훨씬 앞서간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남씨 집안이 그동안 지역에서 쌓아 올린 인덕에다, 남명혁 본인이 행정관으로 복무하면서 얻은 평판 덕분에 선거는 승리했다. 상대인 프랑스인 현역의원이 무려 4선을 달성한 강력한 적수였는데도 말이다.
2년 임기의 하원의원이 된 남명혁은 ‘불의를 참지 않았던’ 고조부의 피를 받았는지 아주 정열적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다. 황제의 붕어로 인해 나라 전체가 우울해진 분위기였지만 그가 품은 열의는 퇴색하지 않았다.
하원의원이 된 남명혁이 누벨 아작시오에 있는 의사당에 들어간 1844년 겨울, 의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의제가 바로 노예 문제였다. 남명혁은 건국 이후로 계속 뜨거운 감자였던 이 문제를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받아들었다. 당연히 노예제 폐지를 외치면서 말이다.
“우리가 모두 신앙하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르더라도 노예제는 죄악입니다. 그리고 종교가 아닌 외교와 정치와 경제의 관점에서도 노예제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남명혁은 오늘 연설을 작심하고 준비했다. 프랑스인인 정계 거물도 아니고, 하원에 몇 명 되지도 않는 한국계 의원의 연설 한 번으로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연설은 기록으로 남아서 자신이 노예제 폐지를 위해 한 노력을 후세에 전하리라.
“여기 계신 의원 여러분, 여러분은 쿨리들에게 작업량에 따른 포상을 약속하는 쪽이 같은 수의 노예를 부릴 때보다 성과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 쿨리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요. 하지만 그건 쿨리가 많으면 해결됩니다.”
그 쿨리들을 꼭 시니카에서 수입할 필요는 없다.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을 쿨리로 전환하면 되는 문제니까. 아니면 소작농으로 들이거나.
“또한 우리 누벨 프랑스의 인구 통계를 보면, 대략 20%가 노예들입니다. 20%에 달하는 인구가 납세도, 병역도 치르지 않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저들이 돈을 벌어서 세금을 내고, 군대에 복무하면 우리는 인구가 바로 25%가 늘어나는 효과를 봅니다!”
남명혁은 쏟아지는 환호와 야유 속에서 꿋꿋하게 발표를 계속했다. 준비한 연설문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쪽입니다. 국제적인 노예무역은 완전히 금지된 지 오래고, 아프리카 해안에는 각국이 파견한 함대가 밀무역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CEA 가맹국들도 우리 말고는 모두 노예제를 폐지한 지 오래입니다. 단 하나만 빼고요.” 국제 노예무역 금지를 주도한 영국은 1833년에 자국 내 노예제를 폐지했다. 1843년에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인 인도의 무굴제국에서도 노예제를 폐지했다.
프랑스도 올해 여름에 본국에서의 노예제를 폐지했다. 식민지에서는 아직 유지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CEA 가맹국 중 가장 비중이 큰 나라인 멕시코는 독립하자 바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시몬 볼리바르가 해방한 그란 콜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노예제를 유지하는 남아메리카의 독립국은 브라질 정도다. 그나마 브라질은 CEA 가맹국이 아니다.
누벨 프랑스를 제외하고, CEA 가맹국 중 유일하게 노예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자유를 외치며 건국한 공화국이 정작 국내에서는 흑인을 노예로 부리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 아닌가.
“그 미국조차 아프리카에 함대를 파견해서 영국 해군과 합동으로 노예 밀무역을 단속하고 있습니다. 저들도 노예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서쪽에 있는 한국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무관한 아시아 국가면서 이미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런데도 누벨 프랑스가 노예제를 유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런 여러 요인을 미루어 볼 때 노예제는 폐지함이 옳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남명혁의 열변은 이번에도 함성과 야유를 동시에 불렀다. 그때 아주 크고 똑똑한 소리로 질문이 날아들었다.
“노예 한 명은 수백에서 수천 달러의 가치가 있소! 그런 노예들을 해방한다면 그 손해는 노예주가 전적으로 부담하라는 거요?”
“아니, 아닙니다. 그건 부당한 일이지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행 과정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 생기면 안 될 겁니다. 저는 그 문제를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첫째, 영국 정부에서 했듯이 노예상과 노예주들에게 정부가 직접 보상한다. 둘째, 해방된 노예들이 원래 주인에게 자기 몸값을 직접 갚는다.
“물론 그만한 돈을 가진 노예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노예들을 쿨리나 소작인으로 들여 고용하고 돈을 벌게 한 뒤에 그 몸값을 소득에서 공제하면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빚에 묶인 해방노예들이 사실상 채무노예가 될 수 있다는 부분은 알고 있다. 게다가 채무노예가 받는 대우는 진짜 노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 보여 준 전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노예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 앞서 말했든 모두 같은 신의 피조물로서 죄악을 범하는 일일뿐더러, 국가적으로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쪽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남명혁은 아주 강력한 목소리로 이를 알렸다.
“흠. 어떻습니까, 그루시 후작. 저 젊은이는 쓸만한가요.”
“아니요. 달마티 공작, 잘 보시오. 저 사람은 한국계란 말이오. 크리올도 아니고 한국계를 집정관으로 올리기는 무리요.”
신대륙까지 나폴레옹을 따라온 여덟 원수 중 마지막 남은 두 사람, 에마뉘엘 드 그루시와 장드디외 술트가 의사당 방청석에 앉아 회의를 방청하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달마티 공작은 술트의 작위고, 그루시는 본래 부르봉 왕조 시절부터 내려온 그루시 후작이다.
이들은 나폴레옹 생전에 황제에 의해 상원의원으로 지명되었다. 상원은 칙선으로 뽑히는 12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종신이다. 황제가 사망한 뒤에 몇 생긴 결원은 황제의 대리인 마타모로스 공작이 선정한 사람들이 메우고 있다.
물론 이들은 황제를 직접 보필하던 노장들이므로 다른 의원들과는 격이 다르다. 마차에는 오직 두 사람만 달 수 있는 장식물을 달고 이들이 지나가면 군인들이 경례를 올리며 관리와 의원들은 허리를 숙인다. 이들 외에는 집정관 마타모로스 공작이나 받는 예우다.
상원 의사당에서도 이들은 특별히 꾸민 전용석을 배당받는다. 먼저 떠난 여섯 원수에게도 각자 전용석이 있었지만, 이제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들 모두 벽 밑으로 옮겨져 조용히 회의를 지켜볼 분이다.
다만 하원에서 진행되는 회의를 방청하는 건 다른 문제다. 두 사람은 평범한 방청석에서 회의를 참관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종신 원수에게 부여된 혜택으로, 신변을 보호하는 전속부관과 호위병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는 하다.
“흠, 말주변은 확실히 우수한데.”
노예 해방 같은 내정 문제는 모두 하원에서만 관여한다. 상원은 외국과의 조약이나 전쟁, 황실에 관한 문제 등을 주로 다룬다. 근본적으로 황제의 자문기관으로 설립했기 때문이다. 내정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황제, 또는 집정관에게 자문은 할 수 있으나 의결권은 없다.
이 두 사람도 개인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했다. 이들만이 아니라 상원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노예제 폐지를 희망했다. 유럽 출신 군인과 지식인이 많아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노예제를 폐지하는 건 상원이 아니라 하원 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 말고도 여러 상원의원이 방청석에 앉아 회의를 방청하고 있다. 일행이 많은 탓으로 이들 두 사람이 유독 눈에 띌뿐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도 힘듭니다. 사방에서 반대가 빗발치면 마타모로스 공작이라고 해도 후계자로 뽑기 어려워요.”
누벨 프랑스를 주도하는 집단은 프랑스계다. 본토 출신이건 이곳 출신 크리올이건 모두가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통치자는 자신들과 같은 프랑스인이어야 한다는 거다.
두 원수 역시 본토 출신 프랑스인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외젠이 자기 후계자로 프랑스인 후보자를 택하길 원했다. 다만 그 선택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넓히도록 돕고자 의사당에서 의원들의 자질을 살피고 있다. 우수한 이를 찾아 외젠에게 추천하기 위해서 말이다.
“두 대공가의 대공자들은 아무리 봐도 글렀지요, 후작?”
“동의하오, 공작. 폐하께서 생전에 노예제를 반대하셨다는 걸 알면서도 노예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미주리 대공가의 대공자들이나, 아시아에서 아편 장사에 빠져서 본국에는 돌아올 생각도 안 하는 아칸소 대공자나….모두 황제로 생각도 못 할 사람들이오.”
두 사람은 제롬의 아내가 뷔르템베르크 왕가 출신인 건 용납할 수 있었다. 제롬이 결혼한 건 뷔르템베르크가 배반하기 전이고, 그것도 나폴레옹이 시켜서 한 결혼 아닌가. 그리고 몇 되지도 않는 나폴레옹의 핏줄인데, 그 조카들이 외가의 죄를 덮어쓰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노예제 유지를 찬성한다는 데서 두 원수는 제롬의 두 아들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렸다. 어떻게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사람들이 노예제를 찬성할 수 있는가! 그것도 미주리 농장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이들조차도 아편 장사에 몰두한다는 루이의 아들, 아칸소 대공자보다는 낫다. 그 정신 나간 작자가 백부의 이름을 어떻게 더럽히고 있는지 듣는 순간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졸도할 뻔했었다. 그따위 작자를 황제로 모시느니 나라를 공화국으로 바꾸는 게 낫다.
“한국계라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저 젊은이는 군대를 장악할 능력이 없다는 거요.”
그루시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남명혁은 아직도 단상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말도 잘하고, 행정관 경험도 있지만….군대 경험이 너무 없소. 이 누벨 프랑스에서 군대를 장악하고 지휘할 능력이 없는 통치자는 자리를 지킬 수 없소.”
나폴레옹부터가 군인황제였다. 뒤를 이은 외젠 역시 이 두 사람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던 군인이었다. 다음 황제, 아니 집정관도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나폴레옹의 조카들도 초급장교 정도로는 복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군대를 휘어잡기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하기 어렵다.
“하긴, 그래서 의용군을 지휘해서 시니카에 간 드 뤼옹 대령이 유력한 부집정관 후보라고 거론되는 걸지도 모르겠소. 마타모로스 공작 주변에서 일하는 보좌관들이 자주 그의 이름을 언급한다고 하더구려.”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 연줄은 있다. 집정관 관저 내의 소식도 들을 만큼 말이다.
“드 뤼옹 대령이라면 괜찮은 후보지요. 우리처럼 프랑스 본국 출신에, 라이프치히에서부터 숱한 전장을 누비며 경험도 쌓았고, 부하들에게도 인망이 높고, 외교에도 꽤 솜씨가 있고.”
외교에 솜씨가 있다는 건 한국 임금과 친분이 깊은 부분을 뜻한다. 누벨 프랑스의 안정은 한국과의 우호관계에 크게 의존하는 터, 집정관이 임금과 친하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작가의 말〉
* 앞에 미국 파트에서 언급을 빠트렸는데, 앤드루 잭슨은 몇 달 전인 1845년 6월에 사망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