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74
4부 458화(2074화)
32.
총성이 치열하게 울렸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납덩이가 우그러지며 기둥에 박혔다. 그 뒤에 숨은 적이 다시 몸을 내밀고 총을 쏘았다.
“제기랄!”
미주순검대 부위 김주성이 잠깐 고개를 수그렸다. 그리고 바로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고 육혈포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김주성을 향해서 총을 쏜 맥비가 춤이라도 추듯이 풀썩 쓰러졌다.
“제기랄, 아버지랑 누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김주성이 이를 갈았다. 미주가 본국보다 확실히 좋은 점이 군역을 안 진다는 건데, 망할 아버지 때문에 이런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누이 때문에.
“뒈져라, 이 도적놈들아!”
그새 중절(中節)을 꺾어 탄통을 새것으로 교체한 김주성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부옇게 퍼지는 초연 사이로 탄환이 연달아 날아갔으나 이번에는 적이 쓰러지지 않았다. 놈은 창틀 안쪽으로 몸을 숨기더니 다시 총구를 내밀어 반격을 가했다. 무척 끈질겼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저보고 순검대에 들어가라고요?”
“그래.”
김주성은 임금의 장인인 태원백 김재정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김재정은 동비로 책봉된 딸 덕분에 미주에서 제일가는 권세를 만끽할 수 있었고, 당연히 하나뿐인 아들인 김주성도 그 혜택을 담뿍 누렸다.
그는 처음부터 외아들은 아니었다. 본래 형이 셋이나 있었는데, 전부 어려서 죽는 바람에 그저 넷째였던 김주성은 어느새 외아들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이날까지 평생을 천하에서 가장 귀한 아들로 살았다.
하지만 부친의 과욕이 화를 불러왔다. 본인은 딱히 역심을 품은 게 아니었지만, ‘주상께서 미주에 오셔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신다면 좋지 않겠소?’라면서 연명 상소를 받으러 다닌 게 역모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주상 폐하께서 직접 보내셨다는 소환장이 날아들었을 때는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당장에 짐을 꾸려서 신불랑으로 도망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논이 분분했다. 하지만 부친은 고개를 저었다. 한양에 있는 누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다면서 말이다.
배에 오르는 부친의 뒷모습을 일가친척 모두 불안한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자칫하면 집안이 송두리째 멸문당할지 모른다고 공포에 떨며 보내던 중에 반가운 편지가 왔다. 전부 용서받았다고, 상감께서 자비를 베푸셨다고.
다행스럽게 여기는 중에 뒷부분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본국에서 배울 것이 많은 탓에 몇 달 머물다가 돌아가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가족들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랜만에 딸을 만났으니 그 옆에서 잘 지내다 오시겠거니 했다, 다들.
부친은 약속대로 본국에서 좀 오래 머물다가 미주로 돌아왔다. 정말로 무사히 잘 지냈고 학식도 부쩍 늘었다. 부친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더니 마당을 채울 만큼 많은 손님이 몰려와서 먹고 마셨을 정도다.
문제는 잔치를 연 다음 날 아침이었다. 김주성을 부른 부친이 순검대에 들어가라고 했다.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불똥이 튀자 고작 17세였던 김주성은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도 평생 군적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군역 따위와 무관하게 사셨으면서 왜 제게는 순검대에 들어가라고 하시는 건가요?”
미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는 대갓집 도령이다. 그러니 굳이 뭔가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 임금의 총애받는 후궁인 누이가 있었고 백작에 봉해진 아비가 있었다. 어설픈 토관들 정도가 아니라 본국에서 온 관리라도 김주성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사대부 소리는 들어야 하니 향교에 이름은 걸어놓았다. 하지만 공부는 국문과 산술(算術)을 익히는 정도로 대충 끝냈다. 천자문조차 확실히 떼지 못했다. 그래도 김주성이 한량으로 사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당연히 대과는커녕 향시 준비도 하지 않았다. 집안 재산이 썩어날 만큼 있는데 그깟 녹봉 몇 푼 때문에 윗사람들한테 굽실거리면서 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말과 총은 능숙하게 다뤘다. 하지만 그건 무관 따위가 되려고 배운 게 아니다.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을 즐겨야 하니까 익힌 것이지. 그런데 부친은 그 말 타고 총 쏘는 재주를 써서 순검대에서 도적이나 쫓으라고 하니, 어이가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번에 도성에 가서 크게 깨달았다. 상감마마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것은 바로 충(忠)이다! 그리고 충신으로서 해야 할 의무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군역이니, 피하려 하지 말고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요! 아버지께서도 안 하셨고 숙부님들이나 당숙부님들도 전부 군대라고는 냄새도 안 맡으셨는데 왜 제게는 순검대에 들어가라시는 겁니까!”
김주성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도성에 가서 대체 뭘 잘못 먹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주상의 충신이 되고 싶으면 자기가 하면 될 게 아닌가. 왜 애꿎은 아들을 팔아 임금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가.
“이놈! 이 아비가 벌써 쉰이 넘었느니라! 이 늙은 아비를 꼭 그런 고생을 시켜야겠느냐?”
“앞날이 창창한 아들을 고생시키는 건 괜찮으신가요!”
부자는 사랑채가 뒤흔들리도록 고함을 치며 싸웠다. 그리고 그때 백작부인이 나타났다.
“하인들이 다 듣습니다. 체통 없이 이게 무슨 짓들이십니까!”
이런 경우, 일반적인 어머니라면 당연히 아들 편을 들게 마련이다. 그동안 곱게 키워온 외아들을 갑자기 순검대에 처박으려고 하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가고 싶으면 당신이나 순검대로 꺼져버리라고 고함칠 수 있는 게 미주 여인들이다.
“너는 어찌 하늘 같은 아버지께 말을 그따위로 하느냐? 네가 비록 우리 집안의 대를 이을 외아들이라 하나, 그런 무도한 행동이 용서받을 줄아느냐!”
하지만 김주성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백작부인 홍씨는 김주성의 친모가 아니었다. 친모였던 박씨는 이미 10여 년 전에 병으로 죽었다. 홍씨는 부친이 5년 전에 맞아들인 후처로,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다. 누이 동빈과 동갑이었다.
“아버지께서 순검대에 들어가라 하시면 들어가는 것이지, 너는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네가 태어나 이제껏 누린 것이 다 네 아버지께서 마련해주신 것이고 상감께서 지켜주셨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은혜를 네가 모르느냐?”
김주성이 계모를 노려보았다. 필시 의붓아들을 싸움터에 보내 횡액을 당하게 만들고 자기 배로 낳은 아들이 집안을 계승하게 할 심산이리라. 아직은 하나도 없지만, 시간만 들인다면 자기도 아들 하나쯤은 낳을 수 있을 테니까.
“두말할 것 없다. 내가 미주대총관 영감에게 양해를 구해 두었으니, 네가 군영에 들어가면 바로 참위 계급은 줄 거다. 시중을 들어줄 하인들은 원하는 대로 데려가거라.”
“아버지! 하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닥쳐라! 네놈이 순검대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제까지 해주던 모든 지원을 끊겠다. 가을에 혼례를 치르기로 한 혼약도 취소해 버릴 테니 알아서 해라!”
“빌어먹을! 그게 외아들한테 할 말인가!”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렸다.
정말 만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가출해서 공화쟁이들이 종종 하듯이 기차를 타고 신불랑으로 도망가 버렸으리라. 하지만 다른건 다 버려도 정혼녀인 최씨네 규수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지선성에서 손꼽을 만한 미인이었던 탓이다.
데리고 도망갈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둘이 눈이 맞아서 하는 혼인이 아니라 양쪽 집안이 합의해서 맺어진 혼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에 대한 호감이 딱히 없을 최씨 규수가 정처 없는 방랑길을 따라나설 것 같지는 않았다.
끝내 김주성은 화가 나서 눈이 뒤집힌 부친의 명에 따라 순검대에 들어갔다. 대신 혼례는 본래 예정대로 가을에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인을 품에 안기는 했건만….그럼 뭐 하나? 한번 나오면 석 달씩 집에 못 들어가기 일쑤인데.
차라리 이질에 걸리거나 총이나 맞아서 몇 달쯤 집에 드러누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놈의 몸은 얼마나 건강한지 웅덩이에 고인 물을 그대로 퍼마셔도 멀쩡했고, 도적놈들이 쏘는 총알이나 화살은 죄다 빗나가기만 했다. 속 터질 노릇이었다.
“부위 나리, 놈들이 좀 수그러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조금 전 김주성의 총알을 피했던 맥비가 다시 창문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김주성이 놈을 겨냥하고 육혈포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기자, 탄환 한 발이 맥비의 미간에 적중했다. 그놈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김주성의 정확한 솜씨를 본 부하들이 환호했다. 그때 뒤쪽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나리 회선포가 왔습니다!”
“좋구나! 바로 설치해라!”
본국에서 제작한 회선포 대부분은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후송으로 갔다. 하지만 미주도 몇 문은 받았다. 미주순검대는 이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었다.
“갈겨라!”
김주성이 호령하자 탄환의 비가 삽시간에 오두막을 삽시간에 벌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위력에 질렸는지 오두막 안에서 버티던 맥비들이 일순간 사격을 멈췄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김주성이 부하들에게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뒤 서반아어로 고함을 쳤다.
“총 버려 손 들어! 밖으로 나와!”
본래 김주성은 서반아어고 불랑국어고 한마디도 할 줄 몰랐었다. 하지만 미주순검대에서 6년을 구르고 나니 서반아어에 불랑국어에 합중국어에 토인들 쓰는 말까지 서너 가지는 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교양 있는 대화가 아니라 의사소통이나 서툴게 하는 수준이다.
“빨리! 망설이면 다 죽는다!”
한 번 더 재촉하자 오두막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살려줄 거냐?”
“그렇다! 태황 폐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오두막 문이 열렸다. 소총과 권종 대여섯 자루가 먼지 속으로 던져지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든 맥비들이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다 끝났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 갑자기 놈들이 땅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이 새끼들이!”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걸어 나오는 놈들 뒤에 불붙은 척탄을 든 놈이 하나 있었다. 놈이 회선포 방향으로 그 척탄을 던지려고 했다. 회선포는 무거워서 바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 순간 김주성이 육혈포를 겨눴다.
“내가 이래서 저 육시랄 놈의 자식들이 항복한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어!”
욕설과 함께 날아간 탄환이 맥비의 손목에 명중했다. 다음 순간 떨어진 척탄이 땅바닥을 굴렀다. 너나 할 것 없이 땅바닥에 엎드린 순간 폭음이 울렸다.
“내가 씨발 이놈의 새끼들을 진짜 아주…..”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난 김주성이 주변을 살폈다. 척탄이 터지면서 튄 파편은 자기를 들고 있던 주인만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항복하는 척하던 맥비들은 일이 그른 걸 알았는지 엎드린 채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도 빨리 엎드린 덕에 무사했다.
“이놈들 어쩔까요, 나리.”
자리에서 일어난 부하들이 포로들에게 총을 겨눈 채 질문했다. 김주성은 그 질문에 답을 하는데 단 1분도 망설이지 않았다.
“정말 항복했으면 약속대로 살려줬겠지만, 그놈들은 우릴 속였다. 전부 쏴버리고, 놈들의 말과 무기만 토벌의 증표로 챙겨라.”
“예, 나리!”
이런 상황이 익숙한 순검 대원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땅에 엎드린 맥비들의 등에 총을 겨눴다. 연이어 울리는 총성과 비명을 들으면서 김주성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내가 이따위 위험한 삶을 살게 된 건 다 아버지 때문이다. 아니, 누이 때문이다. 아니, 그 위에 있는 상감 때문이다. 임금 따위 없는 세상, 임금 눈치 따위 안 봐도 되는 세상에서 속 편하게 살았으면 정말로 좋겠다.
33.
대한인들은 임금이 없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 사정에 따라서 임금의 힘이 강한 나라도 있고 약한 나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임금은 당연히 있다고 본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는 임금이 없는 나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더 많아질 겁니다. 그게 역사의 추세입니다!”
미주에는 공화주의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야 당연히 이웃한 나라들, 신불랑과 미주합중국 두 나라와 서로 왕래하면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이들 두 나라가 대한인들에게 의도적으로 공화주의를 퍼뜨리고, 혁명을 일으켜 압제자인 임금을 몰아내라고 부추긴 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이룬 혁명에 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와 성과가 일부 대한인들의 호기심을 끌었고.
물론 대부분 대한인은 신불랑이나 미주합중국에서 그런 태도를 접하고도 아 저 양반들은 저러고 사나 보다 하고 만다. 저들의 나라는 지독한 암군이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나라를 뒤집은 것이고, 대한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우리 대한에서도 암군은 나올 수 있습니다. 임금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라선 신규필이 열변을 토했다.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을 막기 위해 고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회합하다 보니 제대로 된 연단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도 백성의 중의를 모아 나라를 다스리는 의회가 어서 국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임금께 바치는 충성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임금께서 도저히 홀로 만사를 결정할 수 없는 이 큰 나라를 좀 더 편안히 다스리시도록 돕자는 겁니다!”
신규필은 미주 출신으로 미주총관부의 여러 관직에 재직하면서 절대 지금처럼 계속할 수 없다는 확신을 품었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도 미주 각 지역에서는 한양에 있는 조정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향관과 주민들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고을이 수천 개다. 이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정에서 더 많은 관리를 보낸다? 아니다. 정답은 이곳에서 사는 백성들이 향회를 통해서 자기네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하고, 지방관도 직접 뽑는 체제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거다. 미주대총관까지 향관으로 뽑아 수행하게 하고, 본국에서는 보고만 받으면 되는 거다.
미주만 그렇게 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누손, 대남, 더 나가서 대한 본국까지 그렇게 하면, 잉글국처럼 의회가 국정을 맡게 하면 임금은 더 이상 국정에 관한 격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안히 백성들의 숭앙을 즐기시기만 하면 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그게 진짜 충성 아닙니까!”
“옳소!”
새로운 사상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들이 다수였다. 이들은 공화주의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사상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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