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77
4부 461화(2077화)
광중(壙中)에 들어간 시신은 관과 함께 썩는 게 자연의 섭리다. 시신이 썩지 않는다는 건 그 땅이 엄청난 흉지(凶地)임을 뜻한다. 좋은 곳을 일부러 찾아 무덤을 썼는데 시신이 썩지 않으면 후손으로서는 엄청난 횡액이 될 수밖에 없다.
박성일은 소싯적에 마포에 있던 그 장의사가 불타는 현장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본인은 불구경만 했다고 하지만, 모를 일이다. 젊은 혈기에 횃불은 몰라도 몽둥이쯤은 손에 들었을지도.
“그때는 다들 그 잉글인 염꾼들이 하도 솜씨가 좋아 딱 땅에 묻기 전까지만 시신이 썩지 않는 줄 알았잖소. 땅에 묻고서도 안 썩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 미주에서는 아직도 그 장사를 하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다들 그랬지요. 하하.”
그 사건 이후 본국에서는 시신 보존업이 다시 들어서지 못했다. 다만 미주에서는 당국의 묵인하에 합중국 출신 업자 일부가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인들은 여전히 이들을 꺼리긴 하지만, 어차피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장사이므로 작업장과 가게를 불태우지는 않는다.
미주에서 이들이 여전히 영업하는 건 신불랑과 합중국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 때문이다. 이들이 미주에서 병이나 사고로 사망하면 시신을 본국에 가져가서 장례를 치러야 하므로, 그동안 시신을 보존하려는 수요가 있다.
사실 과거에 마포에 있었던 잉글인 장의사도 한인보다 한성에 머무는 서양인들을 상대로 더 큰 매출을 올렸었다. 그들이라고 고국에 묻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지라, 관이 본국에 도착할 때까지 시신을 보존해 주는 이 장사에 열광적으로 몰려들었었다.
“그래도 내 이용하지는 않을 생각이오. 초분(草壇)을 만들어 임시로 묻어두면 자연스럽게 육탈(肉脫)이 될 테고, 그 뒤에 아들이나 손자가 와서 뼈를 거두면 그만이니.”
박성일은 여기서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이 박규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지사'(동미주 주지사)는 이제 5년을 다 채웠구려. 곧 귀경하지 않소? 나보다 먼저 집에 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부럽소.”
“예,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박규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상감을 따라 미주로 건너온 게 지난 흥선 6년(1840)이었으니, 5년을 꽉 채우고도 우수리가 남았다. 봄이 되면 후임자가 도착한다고 했으니, 인수인계를 마친 뒤에 돌아가면 되리라.
사실 예전 중종 시기 김성권처럼 20년을 머무르게 되는 건 아니려나 싶어 좀 걱정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예정보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귀국은 한다.
그래도 지난 5년이 허술했던 건 아니었다. 훌쩍 버리고 간 주상이 원망스러울 만큼 온갖 고난으로 점철된 5년이었다.
마흔도 안 된, 아니 서른을 넘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에 주지사로 부임하다니 이런 전례는 없었다. 성친왕이던 시절의 중종이 잠시 동변관리사를 맡은 이래, 박규수보다 젊은 주지사나 동변관리사는 없었다.
하지만 전임자인 이용갑은 박규수가 젊다고 해서 무시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박규수의 능력을 인정해서라기보다는 박규수가 태후 쪽 외척으로 주상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 컸다.
“걱정하지 마시구려. 내 수하 관원들에게 새 주지사가 젊다고 해서 얕보다가는 폐하께서 내리시는 치도곤을 맛보게 되리라고 단단히 일러둘 터이니.”
“가….감사합니다. 지사또 나리.”
박규수가 알기로는 이용갑은 이미 주상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굳이 자기를 통해서 더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이용갑은 그 이상을 원하는 듯했다. 박규수가 예상했던 선임자로서 부리는 텃세는 하나도 없었을분더러,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애를 썼다. 주지사 업무 인수인계만 해도 무려 4개월에 걸쳐서 진행했다.
“박 공은 불랑국어는 할 수 있어도 서반아어는 못한다고 들었소. 여기 내가 부리던 통변 둘을 소개하니 잘 쓰시오. 억양이 좀 이상한 메히꼬 산적들 말투도 잘 알아듣소.”
“여기 순검대 지휘관들을 모두 불러 모았소. 본래 미주순검대는 미주대총관부에서 지휘를 직접 맡지만, 각 주에서 활동할 때는 지사부와 협력해서 움직이니 미리 얼굴을 익혀 두시는 편이 좋소.”
“알고 계시겠지만, 박 공이 직접 거느릴 관병으로는 지사부 순검대가 있소. 미주순검대가 대총관부 관할이라 각 주를 넘나들면서 일하는 데 반해, 지사부 순검대는 동미주 내에서만 움직이니 전적으로 박 공의 관할이오.”
본국에서도 각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들은 고을 규모에 따라서 순검들을 거느리며, 이들을 활용해서 경찰권을 행사한다. 이 순검들을 옛날식으로 ‘포졸’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아직 꽤 있다.
동미주 관할 순검대는 약 1천 명이라고 했다. 남한 지역의 두 배에 가까운 동미주 면적을 고려하면 모자란다고 해야겠지만, 대총관부 직할 미주순검대가 1만 명 넘게 따로 주둔하고 있으니 지사부 순검대 병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했다.
헌데 그 명단을 살펴보던 박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찌 순검대 군사 거의 전부가 아파치로 되어 있습니까?”
미주순검대 병력은 대부분 본국에서 이주한 한인의 후예인 미주인이고 일부 군관, 군교는 본국에서 온 무관들이다. 오도리나 왜인 여진 출신도 꽤 있다.
다른 주의 지사부 순검대는 미주인이 대부분이고 미주 토인들이 일부 섞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미주 순검대는 유독 토인이 많았다. 그것도 아파치들뿐이었다. 순검대장을 비롯한 고위 무관 몇 사람만 미주인이고 나머지는 다 아파치였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맥인(麥人)이고 약간의 토인과 극히 적은 숫자의 서반아인이 있소. 미주인은 사실상 아예 없지. 그중에 우리가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이들이 토인이니, 그들을 순검대로 쓰는 게 당연하지 않소.”
“예, 그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부족도 많은데 왜 하필….?”
“그만큼 그자들이 충성스럽고 경력도 있어서 그렇소. 믿고 맡겨보시구려.”
왜 그리 아파치를 싸고도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그렇게 4개월에 걸쳐서 인수인계를 받고 나니 겨우 업무를 넘겨받을 준비가 되었다. 남미주나 북미주처럼 체계가 잘 잡힌 곳이었으면 한 달이면 되었겠지만, 동미주는 새로 획득한 땅이라 챙길 게 많았다.
“자, 이제 내가 전할 건 다 전했소. 열심히 해보시오, 박 공.”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마침내 이용갑이 자기 본가가 있는 남미주로 돌아가고, 박규수가 전적으로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파치 순검 대의 진상도 알게 되었다.
“제기랄, 반 도적놈들이었잖아!”
순검대에 있는 아파치는 동미주 제패 과정에서 이용갑이 사적으로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맥비들을 소탕하면서 나오는 전리품을 나눠 가지면서 상부상조하다가, 지속적인 토벌 덕에 맥비의 수가 줄어들어 전리품 수입도 줄자 그걸 보충해 준다고 순검대로 채용한 거 였다.
맥비의 수가 줄어들었으면 계약을 종료하고 부대를 해산하면 그만 아닌가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용갑의 의도도 이해가 갔다. 몇 년 동안 맥비나 맥비를 지원하는 토호들을 털어 꽤 짭짤한 돈을 벌던 놈들이다. 해산하면 곧바로 자기들이 산적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컸다.
“할 수없지.”
타고난 난폭함에 수많은 전투 경험을 쌓았다. 이용갑의 배려로 장비까지 갖췄다. 지금에 와서 부대를 해산한다면 이용갑이 해산한 것보다 더 큰 화근덩어리가 되리라. 그렇다고 그 불안한 놈들을 계속 믿을 수도 없다. 자신은 이용갑처럼 그들과 친하지도 않으니까.
박규수는 아파치로 구성된 순검대를 해산하는 대신 본국에 표문을 올려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주상은 그 청을 받아들여 오도리 기병 3백 기를 그 가족과 함께 파견해서 박규수가 통제할 수 있게 해줬다. 이독제독, 독은 독으로 견제하는 조치였다.
동미주에만 오도리가 보내진 건 아니었다. 총 3천 기가 미주 각지에 배치되었다. 대부분 미주순검대에 들어갔지만, 동미주에서처럼 지사부 순검대에 들어간 인원도 있다.
오도리 파견이야 과거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내들만 건너와서 잠시 복무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주에서 새로 짝을 얻어 정착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일족을 전부 보냈다. 칙명이었다.
「….에서 2대만 지나면 오도리가 오도리가 아니라 그냥 미주인이 되니 쓸모가 없다. 이는 필시 미주의 풍토 탓도 있겠지만 모계를 통해 들어간 미주인 핏줄 탓도 있을 터, 아예 일족을 모두 함께 보내니 저들이 충심을 유지하도록 잘 보살피라.」
일반 관병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전가사변이라고 난리가 났으리라. 하지만 오도리들은 임금의 명이라 하니 서슴지 않고 남부여대하여 바다를 건넜다. 기병만 3천 기라 하면 그리 많은 수가 아닌 것 같지만, 딸린 가족과 하인들까지 계산하면 5만이 넘는 숫자가 말이다.
박규수가 받은 건 여기서 십분의 일이었다. 그만한 병력이라도 손에 쥐자 확실히 배짱이 두둑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아파치가 반기를 들면 어떡하느냐는 걱정도 안 하게 되었다. 그의 손에 오도리가 있었으니까.
그 뒤로 박규수는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동미주를 다스렸다.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지난 일이다. 내년 봄이 오면 본국으로 귀환할 테니까.
일 년에 한 번 있는 회의인데 시간에 딱 맞춰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하루쯤 여유를 두고 도착해서 별궁에서 쉬며 여독을 풀었다. 즉, 가장 마지막으로 회의장에 나타난 사람이 미주대총관 박성일과 남미주지사 이유원이다.
모두 모이고 예식 절차에 따라 북향사배(北向四拜)를 올렸다. 실제로 임금이 계시는 곳인 도성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에서 서쪽이지만, 군주는 북방에서 남면(南面)하여 다스린다고 보고 북쪽으로 절을 올리는 것이 예법이다.
필요한 의식을 모두 마친 뒤에 커다란 직사각형 탁자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잠시 한담을 나누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박규수가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배경은 또 확실하다 보니, 다행히 대화에서 소외되지는 않았다.
“자아, 이제 회의를 시작해 보십시다.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올 한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소이다.”
적당히 분위기가 풀어지자, 박성일이 입을 열어 개회를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겪은 여러 사건을 돌아보며 각 지역에서 이뤄낸 성과와 범한 과오를 정리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요즘도 어리석은 토인들을 속여 땅을 갈취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잡히는 대로 벌하고는 있으나 참으로 골치가 아픕니다.”
“편사(編詐, 사기꾼)는 본국에도 바글바글하지요. 남의 재산을 거저 가로채려는 도둑놈이 참 많아도 너무나 많으니…..”
순박한 토인들을 말로 속여 등쳐먹지 말라는 것은 처음 미주를 개척하면서부터 장조께서 내리신 엄명이다. 그 뒤로 즉위하신 역대 임금들께서 계속 ‘미주 토인들도 내 백성이다’라고 강조하고 계시지만, 그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끊이지 않았다.
미주 개척이 근 250년에 가까워진 만큼 이제는 토인들도 웬만한 부족은 다들 어느 정도 왕화를 입어 머리가 깼다. 하지만 아직 바깥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한 부족도 많고, 이미 세상을 접했더라도 닳고 닳은 한인들에게는 언변으로 상대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들이 사기꾼들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농락당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난데없는 빚더미를 잔뜩 끌어안게 된다. 대총관부와 지사부에서는 억울하게 속았다고 호소하는 토인 추장들의 서한이 매년 수백 통씩 밀려든다. 직접 찾아오는 자들도 수십이다.
몇 건 해먹은 다음에는 신불랑이나 합중국, 맥고국으로 도망갔다가 잠잠해지면 돌아오는 게 그놈들의 상투적인 습관이다. 이놈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안내 역할을 맡아주는 놈들이 백 정들이고.
“토인들을 속이는 자들은 열성조께서 중히 여기신 왕화를 방해하는 자들이오. 한인들에게 속아 피해를 본 토인들이 어찌 임금의 은혜를 떠올리며 기뻐할 수 있겠소? 폐하께서도 그런 역적들에게는 용서가 없으시니, 역모죄에 준해 벌하도록 할 것이오.”
“예, 대감.”
미주에서도 일반 재판은 순회하는 향판(鄕判)들이 맡는다. 하지만 2심은 지사부 판관이, 3심은 대총관부 판관이 맡으니 주지사와 대총관이 마음만 먹으면 판결을 좌우할 수 있다.
백정들이 날뛰는 문제는 순검대를 더 효과적으로 돌려 잡아보자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다음 과제, 학교 설립 건이 나왔다. 박성일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여기고 있으며 임금도 관심이 큰 사업이다.
각 주지사는 경쟁적으로 올해 자기가 맡은 주에서 소학당을 얼마나 열었는지, 교원은 몇 명이나 충원했는지 자랑했다. 박성일은 이들이 올린 성과 대부분을 칭찬했지만, 그 입에서 비판하는 말이 나올 때도 있었다.
“중미주는 새로 개설한 소학당은 예순두 개인데 충원한 교원은 일흔한 명이라니. 적어도 너무 적지 않소. 아무리 학당이 작다해도 최소한 학당 하나에 교원 두 명은 있어야 할 게 아니오? 그래야 혹시 한 사람이 병이 나도 학당이 굴러가지.”
“소, 송구하옵니다. 대감.”
미주에서 유일하게 대감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본인이 아무리 부드럽게 대한다고는 해도 상대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중미주 주지사 윤행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얼굴을 보더니 박성일이 위로하듯 이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
“이제 대학도 세우게 되었잖소. 하지만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게 소학당이오. 대학 때문에 소학당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게 조 심하시오.”
대학당은 본국에서도 이제 막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여러모로 본국보다 뒤떨어진 부분이 많은 미주의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 설립은 미주 백성들의 기분을 고취하는 데 비용은 적게 들면서 효과는 아주 좋은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여러분께서는 새로 세운 대학에서 교수와 생도들의 분위기를 잘 살피셔야 할 거요. 혹시 미주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신 상감께서 세우신 그 학교들이, 관리가 소홀한 탓에 자칫 역당의 소굴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오. 동림서원 사건을 늘 유념하시오.”
동림서원(凍林書院)은 남미주에 한때 있었던 서원이다. 미주 벼슬 아치들이 왜 죄다 본국 출신들에게 밀려 말직만 전전하느냐며, 난을 일으켜 미주를 휩쓸 궁리를 하다가 그 첩보가 새어나가서 출동한 관병에게 토벌당했다.
이 사건이 특별한 문제가 됐던 건, 신불랑에 가서 출세한 홍경래 때처럼 특정한 개인이 난리를 꾸민 게 아니고 서원 전체가 가담했다는 데 있었다. 서원에 속한 60여 명이나 되는 유생들이 전원 체포되어 빙주로 유배되고, 서원은 훼철(毁撤)되었다.
본국에서는 이 사건 역시 과거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기 싫은 게으른 놈들이 일으킨 소동 정도로 보았다. 다만 처벌이 좀 심한 편이었던 건, 이게 서원을 중심으로 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탓이다. 서원이라는 시설의 특성상, 해당 지역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때는 사건이 모의 단계에서 들통난 바람에 피를 보지 않고 진압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적절한 때를 놓쳤다면 수만 명에 달하는 고을 주민 전체가 얽히는 대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원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일벌백계를 시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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