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78
4부 462화(2078화)
서원이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 토호들이 잇속을 차리는 소굴이 되는 건 본국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세금을 피하려고 토지 소유주를 서원으로 돌려놓는다거나 관아에서 내리는 조치에 저항하는 수단 중 하나로 서원 간의 연대를 활용하기도 한다.
조정에서는 현종 말기에 벌어진 이 동림서원 사건도 근본적으로는 본국 토호들의 행동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각 고을에 엄명을 내려 서원을 근거지로 모인 토호들이 이런 황당한 짓을 꾸미지 못하도록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벼슬 문제로 불만을 품은 자들도 난리를 크게 벌이지 못했다. 자기와 뜻이 통하는 주변 사람들만 모아서 소규모로 난동을 부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홍경래가 신불랑으로 도망가기 전에 벌였던 소동이 전형적인 사례다,
조정에서는 유화책도 내놓았다. 벼슬 문제에 대한 불만을 풀어주기 위해, 현령 같은 하급 수령의 자리나 대종관부, 지사부 내의 하급직에 파견되는 본국 출신 관리를 줄이고 향시를 통해 등용하는 향관의 비중을 늘렸다.
다만 이 조치는 미주 사대부들의 불만을 완전히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출사할 기회가 더 늘어난 건 확실히 반길 일이었지만, ‘고위직에 올라가고 싶다’라는 욕망을 해소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미주에서는 약간의 비아냥을 담아서 본국 출신 관리를 진관(眞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예전에는 하급직에도 미주 향관과 본국 출신인 진관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향관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본국 출신의 파견을 줄이니 하급직에는 향관들만 득실거리게 되었다.
하급직은 죄다 향관이다. 본국에서 온 진관들은 대부분 고위직에만 있다. 고로 미주인들 눈에 보이는 차별성이 더 강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하지만 본국 조정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미주 출신 대과 합격자의 숫자가 많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출신지가 어디이건, 시험을 통과해서 실력을 입증한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벼슬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풍산백 이용갑이 여기 있었다고 해도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이용갑 본인이 그 험한 등용문을 뚫고 당당히 출세한 장본인이다. 과거에 실제로 그리 말했듯, 전에 내가 했으니 다른 놈들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이나 했을 거다.
“그 문제에 관해서 미주인들의 불만은 여전히 상당하오. 허나 실력 없는 사람을 합격시킬 수 없다는 조정과 중추원의 중론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바, 이번에 세울 대학이 미주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거요.”
모두가 박성일에게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주지사 전원이 본국 출신 진관이니 본국 조정과 같은 시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설립하기로 예정된 대학은 북미주•중미주•남미주에만 총 6개소다. 각 주에서 하나씩 관립대학을 설립하고, 유지들이 돈을 츄렴해 세우기로 한 사립대학이 셋이다. 인구가 가장 많고 부유한 남미주에서 사립대학 둘, 그다음인 북미주에서 하나를 세우기로 계획했다.
부지를 마련해서 건물을 짓고 교수 인원을 구하는 등 사전 작업이 많아서 아직 개교하진 못했다. 그래도 박성일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는 여섯 곳 모두 문을 열 예정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동림서원 사건 때는 없었던 공화당이라는 자들이 대학에서 둥지를 틀고 나쁜 물을 퍼뜨리는 거요. 요즘 간간이 안좋은 소리가 들리오.”
“소인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감.”
‘공화당’이라는 당파가 있는 건 아니다. 불랑국 혁명의 영향을 받아서 온갖 헛생각을 하는 자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호칭이 공화당이다.
요즘 미주에서는 신불랑과 합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온갖 다양한 사상을 가진 공화당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미주 경영에 있어서 향회의 목소리를 더 반영해 달라는 정도야 뭐 들어줄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차마 입 밖에 내기도 망측한 생각을 하는 놈들도 있다.
다행히 아직 그들이 별다른 소요 사태를 일으킨 사례는 없다. 하지만 관부에서는 이들이 불랑국이나 합중국에서처럼 대규모 변란을 일으키려고 시도하지는 않을지 경계하고 있다. 미주는 그렇게 잃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귀중한 땅인 까닭이다.
“임금께서 돌봐주시는 덕분에 제 놈들이 지금처럼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 같으니.”
님미주 지사 이유원이 여기 모인 고관들의 뜻을 대변했다. 실제로 사실이 그러하지 않나. 일부 공화당 종자들이 ‘외부의 위협도 없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주 땅’에 본국의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이가 없을 뿐이다.
미주 백성들이 군역을 질 필요가 없는 건 외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적이 없으니 지원하는 이들로 편성한 순검대 정도만 있어도 치안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 요즘도 가끔 속오군 소집이 있기는 하지만, 출동 이유는 맹웅(猛態) 토벌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외적은 왜 없는가? 그건 순전히 본국에서 다 처리해 줬기 때문이다. 중종 시절에 서반아를 격파해서 미주를 넘볼 수 없게 했으며, 금상께서 직접 왕림하시어 신불랑 황제와 우호 관계를 맺어 싸울 일을 없애셨다.
만약 본국이 뒷배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신불랑이 미주를 건드리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 차지한 것보다 넓은 땅을 얻기 위해, 당장 동미주와 서미주부터 칠 것이다. 그리고 대동양 해안에 거점을 마련하면 곧바로 남미주, 중미주, 북미주로 북진하리라.
그것도 이미 한참 전, 황제가 살아있을 때 벌써 해치웠을 거다. 황제가 유주에서 20여 년 동안 한 일이 전쟁이었는데 미주대령 이서 땅을 차지하는 것 정도가 뭐 어려웠겠는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순전히 미주가 대한 본국의 속령이었기 때문이다. 본국 덕에 외침을 겪지 않으면서 싸울 일도 없는 땅 운운하면 가소로울 수밖에 없다.
상업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본국에서는 미주를 한 나라로 취급해서 관세를 비롯한 세금을 따로 매기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공화당의 주장처럼 미주가 별개의 나라가 된다면 그대로 세금을 내야 한다. 아니, 교역 자체를 끊어버릴 수도 있다. 왜 반적들과 교역한단 말인가.
수시로 전쟁의 위협을 겪으며 본국과의 교역도 불안해질 장래를 그 공화당 놈들이 제대로 예상이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대다수 미주인은 임금의 은혜를 알고 충성하면서 지낸다. 한 줌도 안 되는 이상한 놈들이 문제일 뿐이다.
“대학에서 문제가 안 생기려면 교수를 잘 뽑아야 합니다. 합중국인이나 신불랑인, 유주인 학자들은 백이면 백 공화주의에 물들었을 테니, 필요한 교수들은 전원 본국에서 선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본국에서도 공화주의 사상에 관해서 학습한 자들이 일부 있다고 합니다. 본국 출신이라고 안심하고 수업을 맡겼다가 학생들을 물들이면 큰일입니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늘 다리만 두드리다가 건널 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본국에서도 대학 설립과 교육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죄다 의심만 해서야 어찌 대학을 세우겠습니까? 조심해 가면서 진행할 뿐이지요.”
미주인 학자도 교수로 기용하기로 했다. 대개는 본국에서 온 학자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분야와 개인에 따라서는 성취가 뛰어난 사람도 있기는 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차별 문제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고자 세우는 대학인데 그 대학에 들어갈 교수를 뽑으면서 미주인을 제외하면 말이 되겠는가. 불만만 더 커진다. 미주 출신 교수를 일부라도 선발해야만 한다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교수도 일종의 향관이니, 본국에서 부당하다는 이야기는 안 나올 겁니다.”
“자리를 채우느라 고용한 미주인 교수가 너무 무능해서 졸업하는 생도들 수준이 떨어지면 어쩌지요?”
“그런 일이 없게, 되도록 미주인이라도 실력이 우수한 사람을 고르도록 노력해 봅시다.”
박성일이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움직여 성호를 그었다. 그가 천주교도임은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아무도 그 정도를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십자가를 새긴 옥관자와 십자가가 달린 갓끈만 봐도 그건 알 수 있으니까.
박성일이 천주교도인 건 합중국 및 신불랑과의 외교, 그리고 동미주와 서미주에 꽤 많은 수가 사는 서반아계 및 멕시코계 주민들을 다스릴 때도 유용했다. 주상이 박성일을 미주에 보낸 배경이 그저 학무대신이라서가 아닌 것 같다고 다들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각 주에 배정된 오도리들은 잘 적응하고 있소이까?”
이번에 일족이 한꺼번에 건너온 오도리들은 서미주에만 안 갔다. 다른 네 주와 동변에만 분산해서 배치되었다. 다들 잘 적응한다고 대답했지만, 박규수는 한 가지 문제점을 알렸다.
“저희 지역에 온 오도리들은 더위 탓에 좀 힘겨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동미주는 북한과 기후가 많이 달라서요.”
“그건 어쩔 수가 없구려. 다른 주들은 잘 지낸다니 다행이지만.”
각 주는 배치된 오도리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를 영지를 내줘야 했다. 이들은 황실의 사병이자 사실상 대한의 유일한 군반씨족으로서 본국에서도 태조 시절부터 내려오는 봉토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권리는 미주에 건너와서도 유지되었다.
“이런 시기에 오도리 군사를 이리 대규모로 보내신 걸 보면, 폐하께서도 공화당이 난리를 일으키지 않을지 크게 걱정하시는 듯하오. 미주에서 난이 크게 일어난다면, 아무래도 미주 군사들은 나서서 진압하기를 꺼릴 수도 있으니 말이오.”
오금족과 같은 토인들이야 되려 거리낌 없이 관군 편을 들 거다. 하지만 미주인 병사들은 아무래도 조금은 불안하다. 하지만 오도리라면 그런 불안감은 전혀 필요가 없다. 되려 너무 잔혹하게 굴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 목적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소관이 듣자니, 이번에 건너온 오도리 중 다수가 영지를 얻고자 도해(渡海)를 자원한 듯합니다. 소관이 예전에 북한에서 수령으로 있었을 때도 본 바지만, 오도리부 땅이 좁아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북미주 지사 강세일은 오도리 인구가 계속 느는데 이들의 원래 거주지역인 북한 내에서 영지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알렸다. 오도리가 아무리 임금의 활이라고 해도 백성들 땅을 뺏어서까지 이들에게 줄 수는 없는 까닭이다.
황실에서 공표한 바는 없지만, 현재 오도리의 수는 전사만 6만 명 이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일부를 미주로 보내 본국에서 이들을 유지할 부담을 줄이는 것도 할 만한 일이다.
“저들을 계속 내탕금으로만 먹여 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부를 덜어 미주로 보내 새 영지를 주고 북한 내 영지는 다른 부족들에게 재분배하실 심산일지도 모르지요. 폐하로서는 일거양득이 아니 시겠습니까?”
미주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한다. 그에 더해 영지 부족에 대한 오도리들의 불만도 없앤다. 둘 다 임금에게는 확실하게 이익이 되는 조치다.
다만 주상이 칙서에서 대놓고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으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이들이 한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더 길게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들은 여기서 일단 회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태원백 김재정이 연회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자제분께서 아주 열심히 복무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대총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태원백 김재정은 자기 외아들을 순검대에 넣음으로써 한때 의심 받았던 충성심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김주성은 입대 초부터 이런저런 험한 일을 가리지 않고 수행했고, 최근에는 순환 근무로 가장 험한 근무처인 동미주에까지 갔다. 실로 타의 모범이 되는 군자의 표상이었다.
“귀한 몸이니, 그쯤 하면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저기 박 지사가 귀경할 때 그 수행원으로 본국에 다녀오게 하려는데 공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예? 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입니다!”
아들 김주성을 본국에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김재정이 뛸 듯이 기뻐했다. 말이 좋아서 박규수의 수행원이지, 임금의 눈에 들어 출세할 기회를 준다는 말임을 뻔히 아는 까닭이다.
미주에서 손꼽는 유력자의 외아들이다. 적과 싸워서 전공도 제법 세웠다. 심지어 임금이 총애하는 후궁의 친동생이다. 여기에 대총관의 추천이 더해진다면 출세가 꿈이 아니다.
이 정도면 ‘무과대장군’ 권훤에 버금가는 배경이다. 자기 아들이 그만큼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흥분했는지 김재정이 얼른 주전자를 들어 직접 술을 따랐다.
“감사합니다, 대종관 대감!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너무 이러시면 부담스럽소.”
박규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올해 초에 동미주로 배속된 김주성이 꽤 유능한 건 그도 안다. 하지만 임금 앞에 나설 만큼 예의와 도리를 익혔냐고 하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배 안에서 독선생 노릇을 해야 할 듯했다.
36.
중미주는 남미주와 북미주 사이에 낀 형태로 된 지방이라 면적도 좁고 인구도 적다. 개척 자체가 덕진성과 지선성이라는 중요 항구가 위치한 두 지역에서 먼저 진행된 뒤에 후순위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중미주는 다른 두 지역에 없는 자원이 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다. 바로 현종 시기에 발견된 철광이다.
장조 때부터 수백 년 동안 미주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이 철이었다. 철을 찾겠다면서 땅을 파면 철보다 금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듣는 곳이 미주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게 미주 땅의 부유함을 부러워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주에서는 정작 필요한 게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었다. 그러다가 현종 때 드디어 철광이 발견되었다.
그전까지 미주에서 쓰는 모든 철재는 본국에서 들여왔다. 가격은 둘째치더라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배가 제때 안 들어오면 그때마다 철재 공급이 끊어져서 난리가 났다.
그런데 이제 직접 철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당장에 소요량 전량을 생산할 수는 없지만, 생산 기반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당장에 본국에서 시키는 대로 끌려다닐 수 없다는 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것부터가 철광 개발 이후였다.
본국에서 보내주는 철이 없으면 못 하나 만들 수 없던 시절에는 혹시 본국 조정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떡하나 하면서 다들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철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자신감들이 확 올라갔다.
물론 고급 강철이나 기계류는 여전히 전량이 본국에서 온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철재도 절반은 여전히 본국산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중미주에서 생산한 철이다.
“그 나머지 물량까지 전부 우리가 차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미주의 제철업자 중 가장 규모가 큰 용광로를 소유한 자, 김철원이 석묵필을 손에 들고 고민에 빠졌다. 본국산 철이 원체 싸게 들어오니 경쟁에 한계가 있는 까닭이다.
본국에서 오는 철이 싼 건, 상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목조선은 무게중심을 잡느라고 배 밑바닥에 저중물(底重物)이라고 하는 무거운 바닥짐을 싣고 다닌다. 본국에서 오는 배들은 저중물로 쇳덩이를 싣고 와서 파니, 싼 것도 당연하다.
“나리. 그래도 지금 버는 벌이로도 상당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미주 전역에 철을 팔 뿐만 아니라 신불랑과 맥고국에도 팔고 있는데요.”
“신불랑에서도 자기네 땅에 철공장을 새로 지으려고 하고 있고, 그게 없어도 합중국에서 만드는 철이랑도 경쟁해야 하는데 좋을 건 뭔가. 앞으로도 벌이가 줄기만 할 텐데.”
김철원이 투덜거렸다. 아, 대미주 전체의 철 생산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도리어 본국에 철을 수출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본국에서보다 싸고 질 좋은 철을 만들면 본국 시장도 제패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미주 내에서의 철 생산도 독점하지 못하고, 가까운 하와국에도 철을 팔지 못한다. 판매처를 늘려보려고 하와국에 철 판매를 제안했을 때 돌아온 답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했다.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는 말이었다.
‘미주에서 만든 싸구려 철 따위 필요 없으니, 너희나 써라.’
하와국왕의 모욕적인 회답을 떠올린 김철원의 손에 쥔 석묵필이 뚝 부러졌다. 그때 들은 그 말이야말로 김철원에게는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젠가 꼭 본국에서 만든 것만큼 질 좋은 철을 만들고 말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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