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
1부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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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되기 전에 모든 전투가 끝났다. 그때까지 이장곤은 좌하성 동서 양편에 펼쳐져 있는 피바다를 돌아보며 그 참상에 혀를 차고 있었다.
이제까지 결전을 경험해 보지 못한 건 아니다. 니마차 때도 결전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싸운 소이전 휘하 왜군은 그때 니마차 제부족이 결성한 연합군보다 한참 수가 많았다. 그리고 조선군 역시 그때보다 훨씬 대규모에, 동원한 조총과 야포도 훨씬 많았다.
게다가 왜군이 구성한 밀집대형도 문제였다. 니마차는 산산이 흩어진 산개대형으로 싸움에 임한 탓에 빗나가는 탄환이 많았다. 하지만 규율이 잡히고 잘 훈련된 왜군은 피해를 보면서도 병사들이 구성한 밀집대형을 흩뜨리지 않았다. 덕분에 화기가 최대한의 효과를 냈다.
고개를 드니 좌군 소속 창수들이 사로잡은 왜병들 한 무리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까 하나하나 결박하지도 않고 무리로 끌고 가는데, 그래도 한 놈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가고 있었다. 죄다 잔뜩 겁을 먹은 얼굴들이었다.
이장곤이 진천뢰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왜병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왜별장 종성가가 가까이 왔다. 왜별기는 대마도에서는 소이전 군을 몰아내기 위해 싸웠지만 구주에서는 전투가 아니라 통역과 안내를 주로 맡았다.
“종 별장, 수고가 많았네. 막판에 적병 8천을 무난히 투항시켰으니, 도원수께서 그 공을 높이 치실 걸세.”
“이 종사관도 도원수 대감을 돕느라 수고가 많으셨네.”
구주에 건너온 뒤에 이장곤이 맡은 역할도 주로 행정업무에서 유순정을 보좌하는 일이었다. 요동이나 대마도에서처럼 직접 전장을 누비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대내전 쪽이 보낸 여러 길잡이들이 초장부터 길을 안내하니 딱히 활약할 여지가 없었다.
다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유순정을 경호하는 표하군(標下軍)으로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이장곤이나 종성가나 처지는 비슷했다.
“참으로 잔인하네. 한나절 만에 수천 인명이 이리 쉽게 스러지다니.”
그것도 이리 일방적으로. 이장곤의 눈이 닿은 한에서, 조선군에는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었다. 소이전 군은 창날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오지도, 화살 하나 날리지도 못했다. 상호간에 동등하게 싸움을 한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살육만 당한 셈이다.
두 사람은 각기 선전관과 내금위로 근무하면서 안면을 많이 익혔다. 종종 술잔도 나누었고 서로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전장에서도 흉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종 별장, 그대에게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대열을 이룬 왜병들은 정말 규율이 엄정하구만. 화포가 자기들을 겨누고 있음을 알면서도 대열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다니.”
“왜국에서는 대개 같은 마을 출신 사내들끼리 부대를 편성하네. 그래서 자기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는 자는 고향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지.”
이미 한번 나눈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이장곤이 그 이야기를 꺼낸 건 그만큼 여기서 목격한 광경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도, 오늘 싸움을 겪은 자들은 다시는 화포 포구 앞에서 버티지 못할 거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버렸으니까.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종성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자신은 내금위에 있으면서 조총을 익혔다. 당연히 능숙하게 총을 다루었으며 그 위력도 잘 알았다. 때문에 휘하 대마도 군사들에게도 조선이 가진 화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가르쳤다. 물론 유순정은 이들에게 총을 주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오늘 살아남은 저들이 다시 우리에게 맞설 기회는 없을 거야. 도원수께 들으니 저들을 모두 조선으로 데려가실 모양이던데.”
종성가가 눈을 크게 떴다.
“붙잡은 왜병들을 조선으로 데려간다고 했나? 전부?”
“그렇다네. 대내전이 붙잡았으면 어차피 모두 목을 베었을 자들, 조선으로 데려가서 전하께 바치겠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종성가가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장곤이 왜 그러냐고 묻자 답답한 듯 토로했다.
“기왕 죽이지 않고 살린 거라면, 소이전에게 돌려주되 그 대신에 놈이 잡아간 내 백성들을 돌려받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 전하께서 병사를 내신 계기가 소이전이 대마도를 범한 탓이었는데, 우리 백성을 구함이 그 뜻에도 맞지 않겠는가.”
종성가는 진심으로 자기 동포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장곤은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움직여 그 마음에 동조함을 표했다.
“자네도 도원수 대감을 뵐 수 있지 않은가. 이번에 소이전 군을 무난하게 투항시킨 공훈이 있으니, 대감께서도 그대가 올리는 청을 묵살하지는 않으실 걸세. 적어도 붙잡은 왜인들 중에 일부는 대마도 백성들을 돌려받는 데 써주시겠지.”
“그러면 좋겠네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말을 탄 왜군 무사 한 떼가 갑자기 포로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깜짝 놀란 이장곤이 활집에 있는 활을 잡자 종성가가 붙잡아 제지했다. 옆을 스쳐 지나간 무사들이 등에 메고 있는 깃발 문양을 알아본 것이다.
“잠깐, 우리 편에 선 용조사 군이네! 저건 용조사 군 우두머리 가화(이에카즈)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렇군. 어딜 저리 급하게 가는 걸까?”
잠시 생각하던 이장곤이 주먹으로 왼쪽 손바닥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가화가 오늘 아침에 싸움이 시작되기 전 도원수께 부탁을 드렸었네. 무릎 꿇고 청하기를, 만약 싸움이 끝났을 때 동생인 가겸(이에카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부디 처단하지 말고 구명해 주십사 했었지.”
“대감께서 허락하셨는가?”
“물론이지. 가화가 세운 공이 원체 큰데다, 가겸도 그 주군에게 충성했을 뿐이지 무슨 죄가 있겠냐 하시며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네. 아마 지금 동생을 찾으러 가는 모양이지.”
두 사람은 멀어져 가는 이에카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포로들 앞에 도착한 류조지 휘하 무사들이 고함을 치며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에카네를 찾는 중이리라.
– 33 –
승전을 거둔 기쁜 날이다. 가세가와 앞쪽 평야로 진영을 옮긴 조선군 장졸들은 술과 고기를 준비해서 신나게 축하연을 벌였다. 오우치 군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정중하게 사양했기에 조선군끼리 벌이는 잔치였다.
“노획품은 망가지지 않은 것으로만 도(刀) 7642점, 장창 4625점, 장궁 1453장, 갑옷과 투구 6932벌, 말 136필입니다. 그 외에 각종 깃발 792개를 얻었습니다. 포로는 총 8396명입니다.”
이장곤이 노획물품 목록을 들고 나와 읽었다. 장수들은 흡족한 기분으로 보고를 들었다.
“포로를 우리가 데려가는 데 대해서 대내전 쪽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는가?”
“우리가 잡은 포로이니 처분은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합니다. 좌하성을 적에게서 구해준 데 대한 사례라 하였습니다.”
“참 값싼 사례로군.”
박원종이 한 말은 얼핏 농담처럼 들렸지만 명백한 야유였다. 빈정거리는 어조가 확연했다.
“수만 대군이 바다를 건너와서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겨우 이만한 포로를 가지고 입을 닦고 끝내다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저 왜놈들이 잡아서 넘겨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힘으로 잡은 포로를 가지고 생색은 저들이 내고 말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돈으로 고용된 것도 아닌데 보상의 다과를 가지고 논함은 옳지 않네.”
핀잔을 주던 유순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많은 무기를 얻고, 적병들을 사로잡은 건 잘하였네. 하지만 소이전을 놓친 게 아쉽구먼.”
쇼니 군은 완전히 궤멸됐다. 하지만 적장인 쇼니 스케모토는 배를 타고 남쪽 바다를 향해서 도망쳐버렸다. 종지부를 찍지 못한 승리를 상기한 다른 장수들도 대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독 박원종만은 딱히 아쉬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소이전은 감히 우리 전하께 도전하였소. 마땅히 붙잡아 그 죄를 빌게 했어야 하였건만.”
“우리가 왜인들의 생리를 아직 잘 알지 못한 탓입니다.”
유순정이 푸념하자 좌군 도절제사 성희안이 나서서 위로했다.
“구석으로 몰아가며 위압하면 도망갈 길이 없으니 항복하리라 여겼는데, 배를 타고 도망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군사들은 모두 버리고 장수 혼자서 말입니다.”
“가주가 죽으면 가문이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종성가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이미 여러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일본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생각하는 방식을 조선인들이 잘 납득하지 못했다.
“왜국에서 영주들은 일개 장수가 아니라 신하들을 거느린 한 나라의 왕이나 마찬가집니다. 살아있으면 재기할 수 있지만, 패배해서 죽으면 다 끝입니다. 더구나 소이전은 지금 17세에 불과하여 후계자도 없습니다. 설사 본인이 죽겠다 해도 신하들이 도피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투항하여 구명을 청하면 되지 않는가?”
“싸우기 전이면 모를까, 이미 패한 싸움에서 투항한들 수급을 뺏길 뿐입니다. 또 항복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상대방의 신하가 되어야 하니, 어차피 가문이 끝나는 건 같습니다. 게다가 자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온 조선군이니, 항복한들 살려주리라고 생각지 않았겠지요.”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종성가가 항복을 권유하기도 전에 이미 스케모토가 탄 배는 바다 위에 떠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쪽에서도 배를 구했다면 추격해볼 수 있었겠지만 배가 없었다. 근처 해안에 있던 배는 스케모토가 모조리 몰고 가 버렸다. 아니면 부수거나.
“그보다 대감, 소이전이 잡아간 저희 대마도 백성들을 구출해낼 방안을 좀 강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획한 적의 병기나 병사를 일부 비전 측에 돌려주고, 그와 바꾸어 저희 백성들을 돌려받게 해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유순정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대답에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알겠소. 고려해 보지. 자, 제장들은 들으시오. 기왕 놓친 소이전은 어쩔 수 없으니, 다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함이 좋을 듯하오.”
장수들이 시선을 한데 모으자 유순정이 단호한 태도로 안건을 바꿨다. 들고 마시던 술잔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소이전을 쫓아 비전주 내부로 계속 진격하는 방안과 여기서 원정을 그치고 철수하는 방안, 두 가지 선택이 있소. 본관이 생각하는 바를 먼저 제장들에게 밝히자면, 이제 그만 고국으로 돌아감이 어떨까 하오.”
“돌아가자고 하셨습니까?”
장수들이 보인 반응은 놀라움 반, 불만 반이었다. 그중에도 부원수 박원종이 가장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직 유순정은 말을 다 끝내지 않았다.
“오늘은 벌써 6월 10일. 비전주 내로 진격하면 격전이 계속될 각오를 해야 하오. 이미 한번 승리를 거두어 소이전을 단단히 혼내주었으니 이만 돌아가도 되지 않겠소?”
“대감. 소이전을 멸망시킬 필요까지는 없지만, 다시는 우리에게 덤비지 못하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소이전이 가진 성 두어 개는 더 손에 넣어야 합니다.”
박원종은 강경하게 추가 공세에 나서자고 주장했다. 둘러앉은 장수들 중 반 정도가 박원종 편을 들었다. 유순정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딱 잘라 억누르지는 않았다. 두 사람 다 정2품이고, 심지어 먼저 정2품에 오른 쪽은 박원종이었기 때문이다.
“본관이 용조사 집안 형제를 찾아 직접 들었습니다. 소이전은 이번 싸움을 위해 가용병력을 닥닥 긁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소이전의 땅으로 진군해도 맞아 싸우러 나올 적의 대군 같은 건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립된 여러 성을 유유히 쳐서 무너뜨리기만 하면 됩니다.”
유순정이 천천히 대답했다. 내키지 않아 하는 투가 역력했다.
“부원수, 우리는 성벽을 깨트릴 만한 큰 화포도 가져오지 않았잖소. 겨우 야포 하나로 어찌 견고한 성벽을 깨겠소.”
“완구와 진천뢰가 있습니다. 성벽이야 부술 수 없겠지만, 진천뢰를 안으로 쏘아 넣으면 성 안이 통째로 불바다가 되는데 어찌 적이 버티겠습니까?”
“아까 좌하성에 들어가 보았소. 우리 땅에 지은 성과 달리 성 안에 구획이 나누어져 있고 그 경계에 둔덕과 담장이 있어 한 구획을 불태운다 해도 나머지 구역이 무너지지 않소. 모든 구역에 군사를 집어넣어 점거하지 않는 이상 함락시킬 수가 없소.”
일본은 성 구조가 조선과 전혀 다르다. 산성이건 평성이건 내부에 있는 공간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놓았다. 그 모든 공간을 하나하나 점령하지 않으면 성을 함락시킬 수 없고, 성 안쪽에 만들어둔 통로 위를 움직이려면 계속 화살을 맞게 되어 있다.
“우리 군사들은 준비가 안 되어 있소. 그동안 우리는 평야에서 진을 치고 적과 결전하도록 군사들을 조련했지, 성벽을 넘고 칼과 창을 휘둘러 싸울 준비는 시키지 않았소. 몇 년이 걸려 양성한 조총수들이오? 이들에게 총대를 휘두르며 싸우라고 명령할 수는 없소.”
조총수들도 총검과 개머리판을 사용해 적과 싸우는 훈련은 받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사시를 위한 교육이었지, 창칼을 든 적과 직접 싸우라고 내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궁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궁수도 양성에 여러 해가 걸리는 소중한 자원이다.
“어떤 성이든, 화포만으로 점령할 수는 없소. 성을 차지하려면 성벽을 무너트려야만 하고, 그러자면 피해를 입게 마련이오. 이미 소이전을 응징한다는 목표를 큰 손해 없이 달성했는데, 전하의 소중한 군사들을 더 죽게 해야 할 이유가 없소.”
“대군을 몰아 바다를 건넜습니다. 태풍이 불어 뱃길이 막히기까지 시간 여유도 넉넉합니다. 헌데 겨우 싸움 한 번만 치르고 돌아가다니요. 서너 번은 싸워야 저들이 우리 조선이 얼마나 강한 군사를 가졌는지 뼈에 새길 것입니다.”
박원종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 싸움은 단지 소이전 때문에 치르는 게 아닙니다. 대내전을 비롯해서 구주 전역에 있는 영주들 모두에게 우리 힘을 단단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그러자면 군사들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몇 번 더 싸워서 위용을 떨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한 번이면 족하오. 우리가 오늘 치른 싸움을 대내전 군 3만 명이 보았잖소. 우리가 어떻게 이겼는지, 소문은 금방 구주 전역에 퍼질 거요.”
두 장수 사이에 한참 동안 격론이 이어졌다. 하지만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 봐야 합의가 안 되겠다고 생각한 유순정이 회피를 시도했다.
“어차피 대내전도 바로 비전으로 진군하지는 않을 거요. 대내전이 어찌 움직이는지 보고 난 뒤 결정하는 건 어떻겠소?”
“그러시지요.”
오우치 군 없이 조선군만으로 히젠으로 밀고 들어가는 건 모험이다. 대마도 출신 길잡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길이 어둡다. 오우치가 길을 안내해주고 물자 보급로를 확보해 주지 않는다면 원정이 어렵다. 히젠 현지에서 조달하기는 한계가 있다.
“현지에서 군량을 구할 생각을 하다 보니 약탈하러 나선 야인 놈들이 생각나는군. 빌어먹을 그 도적놈들은 지금 도대체 어디쯤 있을까. 놈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여기를 쉽게 떠날 수는 없겠는걸.”
장수들을 다 내보내고 난 뒤 홀로 생각하던 유순정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유순정은 예전 야인들이 변경을 얼마나 잔혹하게 휩쓸었는지 떠올렸다. 굳이 공성 따위 하지 않아도, 야인을 풀어 비전을 휩쓸게만 해도 구주 전체가 공포에 떨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도둑놈들을 아까 떠올렸으면 좋았을 뻔했군. 부원수가 주장하듯이 우리 힘을 뼛속까지 각인시키자는 그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할 방법인데.”
아쉬웠지만 이미 지나간 뒤다. 유순정은 이 문제를 내일 다시 장수들과 논하기로 마음먹고 하인을 불러 갑옷을 벗었다. 인근에 적이 없으니 오늘밤은 좀 편히 잠들어도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