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0
4부 464화(2080화)
39.
본래 외부인인 이교도보다는 내부의 배신자인 이단자 쪽이 원한을 사는 법이다. 술루국이 적을 구분하는 기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홍서당 원정군에 기꺼이 대군을 파병한 이유도 놈들이 이단이기 때문이다. 술루국은 묘노를 쓰지 않으므로 묘노들의 반란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놈들이 감히 예수의 형제를 자처하는 무엄한 꼬락서니를 그냥 보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술루군은 대한 본국군이나 다른 번국에서 보낸 병력에 비해서 태평군 포로를 훨씬 가혹하게 다루는 편이다. 애초에 포로 자체를 잘 잡지도 않고, 붙잡은 포로에게 가톨릭으로 귀의할 기회를 한 차례 줘서 거절하면 곧바로 총살해 버린다.
갈로도에서 잡은 모로족 포로들도 그렇게 바로 죽이지는 않는다. 개종을 거부한다고 해도 노예로 부릴 분이다. 하지만 이단자들에게는 총살도 지나치게 자비로운 처분이다.
“마땅히 화형에 처해 버려야 할 것들을 총살로 끝내려니 화가 납니다.”
“전장에서 땔감을 필요한 만큼 급히 구하기 힘드니 할 수 없잖소. 그놈들은 필시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는 날까지 지옥에서 유황불에 타게 될 터이니, 현세에서는 참도록 합시다.”
사람을 제대로 태우려면 꽤 많은 땔감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그슬려 놓기만 하면 보기에 좋지 않고, 냄새도 나쁘다. 그러느니 총으로 한 발에 끝낸 다음 한꺼번에 파묻는 편이 낫다.
“하지만 우리 술루 본국에서는 다르지. 태워서 뼈까지 가루로 만들 여유가 충분하니까.”
올해로 40세가 된 술루국 6대 국왕 가스파르 1세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씹듯이 뱉어냈다. 그가 술루국 왕좌에 오른 지도 벌써 17년째, 그 기간 대부분이 이교도와 이단자들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조상들이 그랬듯 그 역시 이교도와 싸우는 기사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하. 보르네오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 장작으로 쓰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나라에 발을 디디는 이단은 모조리 불태워 재를 바다에 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술루에 불태울 만한 이단자가 나타날 일이 있겠나 싶겠지만, 있다. 요즘 태평양 반대편, 제국의 일각인 미주 식민지에서 괴이한 이단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모르몬’이라 하는 괴이한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 넘어왔다고 한다.
말로는 자기들도 기독교도라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삼위일체조차 인정하지 않고 성서가 아닌 삿된 책을 가르치며 ‘선지자’를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무하마드 모시듯 한다. 그게 무슨 기독교인가? 개신교보다 못한, 갈 데 없는 이단이지.
가스파르 1세였다면 그자들을 모조리 체포해서 국경에서 싹 목을 매달았으리라. 미국으로 돌려보내지도 않았을 거다. 어디 악마를 숭배하다가 모국에서 쫓겨난 흉악한 죄인들 따위를 받아준다는 말인가.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임금 폐하께서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셔서 이단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모르고 받아들이신 겁니다. 그 불태워 마땅한 것들을…”
‘모르몬’이라는 이름부터가 성서에 나오는 악마의 하나인 ‘마몬’과 이름이 비슷하다. 그런 것을 보면 저들도 마몬의 특성인 탐욕을 숭배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요. 아내를 수십 명씩 거느리는 게 계율이라니, 그 큰 탐욕과 색욕이 어찌 악마의 수작이 아니겠습니까?”
“임금께서야 받아주셨다고 해도, 우리 술루 땅에는 발도 못 들이게 해야 할 겁니다. 단 한놈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본래 대한의 각 번국 사이에는 배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술루는 미주에서 오는 배를 철저하게 검색하여 허락받지 않은 입국을 막고 있다.
당연히 이는 이단자들인 모르몬 교단과 관련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혹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붙잡히면 술루법에 따라 처형당하게 되리라.
“그따위 이단자들을 받아들이느니 모로족을 받아들이는 편이 백 배는 낫습니다. 모로족이 아무리 비천하다고 해도 그런 악질 이단자들만큼 혐오스러운 존재들은 아니니까요.”
현재 술루국의 전체 인구는 대략 50만이다. 그리고 모로족이 포함되는 원주민이 20만을 좀 넘는다. 술루국 인구의 대략 절반인 셈이고, 술루에서 가장 머릿수가 많은 집단이기도 하다.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지위를 인정받은 일부 영주를 제외한 원주민 대다수는 농민이다. 반쯤 노예나 다름없는 농노 신세로 귀족들을 위해서 평생을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한다. 귀족들은 스페인계 외에도 다른 유럽계, 한인계, 일본계 등이 있다.
고위 귀족 대부분은 스페인계다. 하지만 술루 인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적다. 다른 유럽 국가 출신 혈통까지 다 포함해도 스페인계는 10%가 안 된다.
중하층 관료나 군인, 농민과 상공업자 등으로 구성된 한인계 인구는 스페인계의 세 배쯤 된다. 용병이나 상인 등으로 유입된 일본계 인구는 한국계보다는 적지만 스페인계보다는 더 많다. 난민으로 건너와 농업에 주로 종사하는 안남계는 스페인계와 규모가 비슷하다.
이 복잡한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들은 이교도와의 전쟁을 통한 영토 획득, 즉 ‘Conquista(정복)’를 숙명으로 여겼다. 주변 섬들을 지배하는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고 영토를 넓히며, 이들을 지배하는 종주국인 대한의 남방을 지켰다.
다만 스페인계 주민 중에는 ‘이교도’인 대한 국왕의 신하 노릇을 하는 게 싫다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본래 스페인령이던 필리핀을 대한이 무력으로 빼앗은 데 대한 원한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대한에 대한 반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술루 왕실 혈통부터가 대한 황실의 방계다. 그리고 술루 자체가 대한 본국의 지원 덕분에 유지되는 나라다. 게다가 만약 술루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곧바로 필리핀에 주둔하는 대한 육해군이 진압하러 출동할 텐데, 반란은 무슨 반란인가.
여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손님이 떠나야 하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볼온한 마음을 품은 자들이 적발되면 가차 없이 추방했다. 아니면 자기 발로 알아서 유럽이나 아메리카로 떠나도록 만들었다.
어쨌든 현재 술루인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다. 원주민 중 절반쯤만 이슬람교도다. 이들은 대개 술루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보르네오의 이슬람 영주들이 거느린 인구로, 국왕에게 충성의 표시로 병력을 제공하며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불만을 가진 이들은 있다. 신하 한 사람이 주장했다.
“전하. 지금 우리는 이단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참에 우리 내부에 있는 이교도의 경전과 사원도 모두 불태우고 성직자들의 수염을 밀어버린 뒤 세례를 받게 해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나,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금 우리 국력으로는 좀 부담스러운 일이오. 나중에, 그럴만한 여유가 생긴 뒤에 합시다.”
지금도 술루국은 세 방면에 군대를 보내고 있다. 홍서당 토벌군 외에 갈로도에 파견하는 수비대 지원이 있고, 보르네오에서는 브루나이 술탄국과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보르네오 방면에서 조금이라도 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뼈저린 노력이다.
술루군에 연패한 브루나이 술탄이 유럽인 용병까지 고용해서 응전하는 통에 요즘 전황은 좀 어렵다. 이 싸움도 벅찬 판에 이미 무릎을 꿇고 순종적으로 나오는 자들의 목을 치자고 내부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분란을 일으킬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대들도 알잖소? 이교도라 해도 시간을 두며 일단 개종을 권유하는 게 당장 쳐 죽이는 것보다는 낫소. 실제로 개종하는 자들도 제법 있지 않소.”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 10만 명이 그 사례다. 이들은 술루국과의 싸움에 패해서 사로잡힌 뒤 개종과 죽음 중에 선택한 자들이 다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신앙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항복했다가 그 뒤에 개종했다. 나머지도 개종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적은 둘이오. 하나는 브루나이의 술탄이고 하나는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악마의 수하들이오. 그러니 우리 내부에 있는 이교도들 정도는 참아줍시다. 이미 백여 년을 참아주고 있는데 조금 더 참아준들 대수겠소.”
가스파르 1세는 브루나이군을 지휘하는 영국인 용병대장, 제임스 브룩을 회유하는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었다. 그자 때문에 목표였던 아피아피1)를 함락하지 못하고 올해 내내 상당한 고전을 치른 까닭이다. 아피아피는 브루나이가 북부에서 유지하는 가장 큰 항구다.
“밀사를 보내 회유해 보았습니다만, 계약은 계약이라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작 작위를 제안했더니, 술탄은 자기를 라자로 봉해주었다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브루나이 술탄이 자기 영토 중 술루와 가장 멀리 있는 땅, 사라왁 일대를 봉토로 주면서 브룩을 라자 즉 왕으로 책봉했다고 한다. 사라왁 왕국은 술루국에 이어 아시아에 들어선 두 번째 백인 왕조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크리스트교도 주제에 이슬람 술탄의 편을 들어 우리에게 칼을 돌리다니. 용병이 되려면 차라리 조홀국에서 아체의 해적들이나 잡을 것이지.”
아체 술탄국은 공식적으로는 해적질을 그만두었다. 동인도제도 대부분 지역이 네덜란드의 세력권으로 정리되면서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이다.
다만 술탄이 직접 해적선을 내보내지 않을 분이지, 아체 항구를 근거지로 해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해적선은 아직 상당수다. 광동 일대에서 동남아시아에 걸친 바다에는 해적이 없는 해역이 없다.
지난 백여 년 동안 대한과 영국, 네덜란드가 해적을 쫓았다. 최근에는 프랑스까지 함대를 파견해서 해적을 토벌하고 있다. 그래도 어디선가에서 해적들이 또 기어 나오곤 한다.
해적들은 은밀한 후미에 숨어서 호위가 없는 적당한 먹이를 노린다. 얼러대면서 통과세만 요구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만만해 보이면 배를 통째로 뺏어버린다. 최근에도 일본 상선 한 척이 습격당해 승객이 전멸했다고 들었다.
“해사도에 있는 임금 폐하의 함대가 믈라카 해협을 순찰하는데도 그런 짓을 벌이다니, 참 대담한 놈들입니다.”
“그 넓은 해협에 숨을 곳이 어디 한둘이오. 상선 하나하나마다 호위함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군이 빈약한 술루국으로서는 믈라카 해협까지 해적을 소탕하러 나설 수는 없다. 그쪽은 조홀국에서 나서 줬으면 싶지만 아무래도 기대하기 힘든 일이리라.
40.
조홀국왕 정윤진이 싱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야, 이게 기린이로구나!”
눈앞에 커다란 짐승이 서 있었다. 스무 자는 될 것 같은 키, 주변을 둘러보는 눈이 정말 신기하다. 몸에 있는 무늬는 마치 갈색 몸에 하얀 그물을 두른 듯한 형상이다.
“뒤에 있는 것은 코뿔소이옵니다.”
“음, 음. 좋다. 정말 고생이 많았다.”
정윤진이 자기 지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다섯째 아들 정호찬을 크게 칭찬했다. 정호찬은 상국에 계시는 태황께 바칠 귀한 짐승을 구해오라는 부왕의 명을 받고 대상주, 아프리카에 다녀온 참이었다.
수년 전, 정윤진은 본국에서 대규모 주석광맥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주석 독점이 깨지는 상황을 우려하여 새로운 사업으로 고마나무 재배를 시작했다.
고마 재배는 나무가 자랄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액을 채취할 수 있을 만큼 나무가 자랐고, 고마 판매로 수익도 올리게 되었다.
이건 전부 한양에 계신 황상 폐하의 은덕이다. 그에게 고마나무를 심자고 한 사람은 세자 정호석이었지만, 세자가 고마에 관해 알게 된 건 한양에 가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땅히 황상께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고심하던 참에 개범 이야기를 들었지. 아주 잘된 일이었어.”
고민하는 중에 황상께서 천축에 개범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외수사를 통해서 들었다. 그리고 쾌재를 불렀다. 아, 황상께서는 신기한 짐승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본국에서는 살지도 않고 구하기도 힘든 신기한 짐승을 구해서 보내드리면 좋아하시겠지? 기린이 좋겠네! 기린은 본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타나는 짐승이니까!
물론 대상주에 서식하는 그 기린이라는 짐승이 전설 속의 그 영수(靈獸)가 아니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4백여 년 전 명나라 영락제가 보인 전례가 있잖은가. 그 짐승을 가져와서 기린이라고 선언하며 치세의 안정을 선전한 전과 말이다.
코뿔소는 동방에서도 흔하다. 다만 대상주의 코뿔소는 동방에 사는 것들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뿔도 길고 굵직하기에 한 마리 가져왔다. 타조, 악어 등 다른 동물도 십여 마리다.
지금 상국에서 기린이나 코뿔소로 백성들의 시선을 돌릴 만큼 민심이 불안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신기한 짐승을 보면 도성 백성들이 눈이 화등잔만 해질 테고, 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홍서당 토벌에 지겨워진 백성들이 관심을 돌릴 곳이 하나는 생기리라.
“아직도 싸움이 끝날 기약이 없습니까, 아바마마?”
“강남 땅이 원체 넓어야 말이지. 우리 군사들도 출정했지만, 도무지 끝이 안 난다.”
왕궁으로 돌아온 정윤진이 정호찬과 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아들이 든든해서인지, 속마음이 살짝 겉으로 나왔다.
조홀국은 태평천국 토벌에 군사 2천을 파병했다. 숙련된 왜병으로 골라서 보낸 만큼 적과 싸울 때는 용맹하고 전리품도 잘 챙기고 있다. 병력을 교대할 필요도 없고.
군역을 치르는 일반 군사들이라면 중간에 교대를 시켜줘야 하리라. 하지만 왜병들은 용병 아닌가. 보수만 제대로 지급하면 교대 따위 필요 없다. 조홀군이 2만 병력 전체를 용병으로 유지하는 이유다.
“하기야 중원에서는 난리가 한번 터졌다, 하면 몇 년씩 가는 게 기본이기는 했지요.”
역사책을 펼치기만 하면 그런 난리에 관한 기록이 줄을 잇는다. 아니다. 수백 년 전 일을 뒤질 것도 없다. 당장 50년 전만 해도 후송에서 덕성도의 난이 5년이나 끌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때 덕성도보다 지금 홍적의 세가 더 강하다.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셈이지. 이제 슬슬 물러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정윤진이 담배를 피워물었다. 장죽이 아니라 서양식 엽궐련이다.
“3년을 싸웠으면 이제 분풀이는 너끈히 한 셈이 아니냐. 이만하면 이제 홍적들이 바치는 사죄를 받고 그만 군사를 빼도 되지 않겠느냐.”
“소자의 생각에도 그렇기는 합니다.”
조홀국도 묘노들의 반란 때 별 피해를 보지 않은 건 술루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홍서당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술루국으로서야 공존할 수 없는 이단들일지 몰라도 조홀국에서는 그저 흔한 중원의 도적놈들일 뿐이다. 타협하려면 못 할 것도 없는.
상국인 대한에서 전쟁을 선포했으니 성의껏 따르기는 했다. 하지만 적당히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솔직히 드는 거다. 어차피 놈들을 쳐부수고 중원 땅을 정복할 것도 아니라면 웬만큼 싸운 뒤 군사를 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어차피 싸움이 끝나면 홍적이 차지했던 땅은 송나라 조정에 돌아갈 텐데 남 좋은 싸움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홍적과 바로 인접한 안남국에서도 그게 싫어서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구경만 하는 걸 텐데.”
안남이 초창기부터 참전했다면 태평천국은 큰 타격을 받았을 거다. 문자 그대로 사방이 포위되는 형국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남국왕은 국경을 지키는 병력만 강화했을 뿐 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기 나라 내정에만 신경을 썼다. 막대한 양의 서나라산 아편이 자기 나라에서 실려 나가는 중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불랑국 동인도회사는 안남의 항구를 거쳐 수출되는 아편에 수출세를 납부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안남국왕은 그 알량한 수출세의 대가로 불랑국의 아편 수출을 용인하는 셈이다.
프랑스 동인도회사 배로 운반되는 아편은 다른 나라가 건드리지 못한다. 상국에서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눈에 띄는 조치는 없다.
“하여튼, 며칠 쉬었다가 기린이 병이나 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한성에 가서 폐하께 네가 가져온 짐승들을 올리도록 하여라. 출발할 때 또 이야기하겠지만 중간에 안남에 기항하거든 그쪽 형편 좀 보고.”
“예, 아바마마.”
정호찬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서양 문물을 싫어하면서 불랑국과의 교류는 지속하는 그 모순적인 임금이 안남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으려나 궁금했다.
1) 아피아피 : 현재의 코타키나발루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