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3
4부 467화(2083화)
3.
미하일 대공이 나를 개인적으로 찾아온 것과 달리, 김노프 백작이 가져온 청혼서는 정식 국서였다. 백작은 편전에 늘어앉은 우리 중신들 앞에서 당당한 태도로 이렇게 설명했다.
“차르께서는 대한과의 우호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데 아주 큰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우리 두 나라는 2백여 년에 걸친 교류의 역사를 쌓아왔으며, 기나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미 한 차례 국혼을 통해 피를 섞기도 했지요.”
김노프 백작은 자신의 가문이야말로 양국 간의 친교를 나타내는 생생한 증거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 말도 맞기는 맞았다. 한국계 러시아 귀족 가문이라니, 원래 역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존재인 건 맞으니까.
“루시아 황후께서 우리 황실에 남기신 유산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면서 한국과의 우호를 강화하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황실에 시집오신 지도 140년이 되었으니, 그 관계를 다시 한번 다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이 러시아에 공주를 한번 보냈으므로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보낼 차례라는 이야기도 했다. 국혼이 과연 그렇게 주고받기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인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김노프 백작은 러시아 측에서 얼마나 이 혼인에 관심을 쏟고 있는가에 대해서 아주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이야기가 끝났다.
“알겠소. 차르께서 어떤 생각으로 청혼을 넣으셨는지 알겠으니, 우리끼리 논의를 마친 후 답변을 드리도록 하리다.”
소문이 퍼지면서 조정에서 몇 번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혼담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미리 설레발을 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억눌러서 논의가 과열되는 건 회피했었다.
하지만 정식 청혼서까지 왔으니, 이제 다른 핑계를 댈 수가 없다. 어떤 결론이든 결론을 내놓기는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폐하. 답은 천천히 주셔도 괜찮습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요.”
김노프 백작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뭔가 기력이 확 빠지는 기분이었다.
“저 양반은 말이 좋아 한계(韓系)지, 순 루스인 다 된 거 아니오? 어째 입 밖에 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루스국 신하로서 하는 말이지 우리 대한을 위해서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구려. 하기야 생긴 모양부터가…..”
김노프 백작이 돌아가고 신하들의 의중을 정식으로 모으려는 참에 누군가가 빈정거렸다. 내가 짜증을 느끼고 한마디 하려는데 외무대신 박경완이 먼저 나서서 그자에게 날카롭게 한 마디 던졌다.
“루스에서 루스의 신하로 5대를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루스 차르에게 충성하는 게 본분 아닙니까? 귀공의 말대로라면, 장조 폐하 시절에 서반아에서 건너와 대한의 신하로 살아온 이들의 자손은 지금도 서반아 편을 들어야 합니까?”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마침 고개를 돌리고 있던 참이라 어느 놈이 그따위로 무식한 말을 지껄였는지 미처 못 봤지만, 외국 이민 1세대도 아니고 5세대에게 감히 모국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다니 미친 거 아닌가.
박경완이 지적했듯,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육군부 대신 서진흥은 스페인에서 온 조상을 둔 가문 출신 후손으로는 처음으로 대신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정신이 나갔나.
아니, 어쩌면 진심으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양에 집착하는 저 발언으로 보건대, 순전히 외모가 기준이라면 말이다. 내 옛날 신하, 알바레스의 직계 후손인 서진홍도 외모만 보면 그냥 대한인이다. 알바레스가 대체 언제 적 사람인가. 티가 안 날 만도 하지.
어색해진 분위기를 추스를 겸, 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생각 없는 소리를 지껄인 놈에게 일침을 날렸다.
“누가 입을 함부로 놀렸는지, 이번 한 번은 색출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그런 망발로 짐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모욕하는 자가 있다면 죄를 크게 물을 것이다. 다들 알겠는가?”
“…..명심하겠사옵니다.”
험한 말은 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문제를 두고 다퉈야 하는 판인데 괜히 조정을 뒤엎어서 좋을 게 뭐 있단 말인가. 다음에 또 나오면 엄벌하겠다고 공언하고 이번에 한 번은 경고로 넘어가도 족하다.
“그러면 루스에서 보내온 국혼 제안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라. 그대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결정할 것이니.”
내가 논의를 시작해 보라고 허락하자 한 사람씩 나서서 찬반에 대한 자기 의견을 밝히고 그 논거를 제시했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을까 했는데, 들어보니 참신하게 새로운 주장은 없었다. 다 이미 들어본 이야기들이었다.
4.
외무부에서 이 문제에 관한 소식이 새어나가면서 지난 두 달 동안 세상이 난리가 났었다. 남순 도중에도 이 문제에 관한 상소를 현장에서 몇십 통은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남쪽에도 도성에서 신문이 배송되다 보니 당연히 이 문제에 관한 여론이 있었다.
「폐하. 평범한 상민의 혼사도 인륜지대사라 하여 전후좌우를 깊게 살피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찌 사직과 수천만 백성의 명운이 달린 국혼을 함부로 정하려 하시나이까. 이는 꼭 깊이 고려하고 판단하셔야…..」
의견을 낸 건 기특하다만, 내가 남쪽에 순행을 나갔던 건 국혼에 관한 여론을 수렴하려고 간 게 아니었다. 요즘 부쩍 늘어난 간척지 시찰과 더불어서 이민선 배표 살 돈 모으겠다고 면포공장에서 바짝 일하는 노동자들 실태를 보러 간 거였지. 강무 참관이야 여흥이었고.
요즘 남한 지역은 농업 생산량이 거의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어비 – 고래 내장 처리한 것도 어비로 친다 -, 골분, 축분 같은 천연 비료에 석탄가스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화학비료, 최근에 나우루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인광석 등등을 꾸준하게 투입해도 토지 면적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넘기 힘들다.
조부 시절만 해도 괜찮았다. 인구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던지라 본국에서 소비하는 식량 대부분은 본국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헌데 지난 15년 동안 사정이 달라졌다.
일단 그동안 날씨가 제법 좋았다. 흉년이 든 해도 두어 해뿐이었고, 그것도 미리 비축한 양곡과 수입량 증가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북한과 누손 등지에서 생산한 잉여 양곡도 순조롭게 들어왔다. 청과 후송, 안남 등지에서 들어오는 수입선도 원활했다.
그러다 보니 그 몇 년 사이에 남한 인구가 자체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러자 농민들의 삶이 점점 빡빡해졌고, 당연히 농지 수요가 늘었다. 간척과 개간을 통해서 농지를 넓히는 한편으로 배표 사려고 광산이나 공장에 취업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농한기에 공장과 광산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누손이나 미주에 갈 뱃삯을 벌 때까지 임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쪽은 아직도 토지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빈 땅이 많으니까. 게다가 누손은 벼 이기작이 기본에 삼기작까지 가능한 곳이니 말이다.
물론 북한으로 가는 이들도 있다. 사실 북한 쪽이 농지 면적이든 공업 기반이든 장래성이 더 있는 건 사실이니,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남북한 인구가 뒤집힐 건 분명하다. 원래 세계에서도 중국 동북지방 인구가 남북한 인구 합친 것보다 두 배는 많았으니까 뭐.
한 가지 특기할 건 요즘 북한에서는 대규모 기계화 농장이 유행한다는 거다. 이건 기계를 능숙하게 조작할 사람이 필요하다 보니 땅이 넓어서 이미 기계화된 미주에서 농기계를 이미 다뤄본 기술자들의 역이민이 또 상당수다.
그렇다고 남한 농민들이 북한으로 덜 가는 게 농기계를 다룰 줄 몰라서만은 아니다. 벼에 대한 집착으로 기왕이면 벼농사 짓기 좋은 지역으로 가려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앞에서도 벼 이기작, 삼기작 등을 언급하지 않았던가.
이런 거 보러 갔는데 국혼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상소가 들어오면 그걸 중요하게 보겠나. 받아서 승선들한테 넘기고 나는 안 보지. 어차피 빤한 내용.
하여간 러시아 측의 국혼 제안 문제를 두고 조야의 논란이 치열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논란이 치열했다고 해서 정확히 여론이 반반으로 패가 갈린 건 당연히 아니다. 수적으로만 보면 반대하는 쪽이 훨씬 많았다.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야 단순하다. 예전 영화고륜공주 때처럼, 외국 공주가 황후가 되면 외국에서 국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가장 가까운 전례였던 고려 때 충자 돌림 왕들의 사례도 든다. 외교적으로 러시아에 묶인다는 걱정도 크다.
인종과 문화가 전혀 다른 데서 오는 거부감도 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루시아 때는 루시아가 백인 혼혈이었던데다 우리가 보내는 쪽이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데려올 상황이 되니 문제가 좀 달라졌다.
“아니, 자네. 절대 안 될 건 또 뭔가. 요즘은 양반가에 첩실 자식 중에 어미의 피 때문에 눈이나 머리카락 색깔이 특이한 사람을 종종 보지 않는가?”
“그게 상감마마가 되실 분과 같은가! 그리고 양반님네들이 그런 피 섞인 자식한테 집안을 물려주는 거 봤는가?”
“아, 그거야 첩의 자식이니 그런 거고.”
잠행을 나가서 직접 살핀 바지만, 역설적으로 신분이 낮을수록 이런 식의 단순한 반감이 강했다. 자기들은 외국인과 가족을 이룰 일도 없는 보통 도성 백성들 말이다. 평소 접촉이 없으니 낯선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감이 더 큰 거다.
그전부터 백성들과 어울려 살아온 외국계 대한인이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하지만 만 리 떨어진 땅에서 오는 공주다. 백성들이 친근하게 느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하다.
“황후마마가 우리말도 모르는 사람이어서야 만백성의 국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서양인이면 당연히 예수교를 믿을 테고 제사도 제대로 안 지낼 텐데. 서양인 피가 섞인 다음다음 대 주상 폐하가 모든 백성에게 국법으로 예수교를 믿으라고 포고하면서 옛 의례도 다 폐지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외국에 자주 다니거나 견문을 통해 외국 사정을 잘 아는 식자층은 외국인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 실제 황후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적절한가를 중점적으로 따졌다. 나이에 관한 우려도 여기에 해당했다.
“루스 쪽에서 약혼 기간으로 10년을 제안했다던데, 그러면 황태자 전하께서 무려 스물이 되시도록 혼인도 못하고 지내셔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루빨리 후사를 얻어 국가의 근본을 다지셔야 하는데!”
이런 식의 차원이 좀 높은 반론은 대부분 경화사족 계층과 산림들, 그리고 이들이 관계한 시보에서 나왔다. 반대 상소를 올리는 자들도 주로 이쪽이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리라. 특히 이 혼담에 반대하는 경화사족 중 상당수는 장래의 국모 자리가 당연히 자기네 몫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반대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 저런 ‘명분’을 제시하는 것이고.
찬성하는 이들도 아마 저런 식의 꿍꿍이가 자기 나름대로 있으리라. 하지만 그 속셈들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고, 나로서도 저 들이 내세우는 명분을 정리할 따름이다.
아, 그전에 미리 말해둘 게 있다. 이들은 원래 세계 역사에서처럼 서양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을 품고 이 결혼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이쪽 세계에서 대한은 서양 열강과 비교해서 떨어질 게 없는 나라다. 당연히 유럽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열등감은커녕 이들이 러시아와의 국혼에 찬성하는 가장 큰 명분은 우월감이다. 러시아는 단순하게 ‘중종께서 의형제를 맺으셨던 나라’가 아니다. 유럽에서도 손꼽는 대국, ‘유주무쌍’ 나폴레옹을 쓰러트린 주역이다. 그런 나라가 국혼을 청해온 거다.
이쪽에서 청하지도 않았는데 유럽 유수의 대국이 먼저 국혼을 청해왔으니, 이는 대한의 국위가 유럽 열강이 우러러볼 만큼 높음을 의미한다. 어찌 대한의 백성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이 샘 솟지 않겠는가?
“주상께서 요구하시지도 않았는데 차르가 스스로 공주를 바치겠다고 나섰다니, 이는 마치 속국이 종주국에 보이는 예와 같지 않은가!”
“우리 대한이 옛날 대명에 공녀를 보낼 때도 자청해서 공주를 보내지는 않았거늘!”
니콜라이 1세가 기대한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겠지만, 황당하게 이런 식으로 자부심을 채운 이들이 찬성 여론을 만들었다. 나로서도 좀 떨떠름한 논거였다.
상대가 백인인 거? 이것도 이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황실에 백인 후비가 들어간 전례가 두 번이나 있지 않았는가. 비록 두 번 다 후궁이고 중전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 황실에서 백인을 들인 전례가 있다. 그리고 둘 다 천주교 신자였다.
“루스 차르가 천명하기를, ‘여자는 시댁의 법도를 따르는 법이라’라고 하면서 장차 황녀가 우리 법도를 거스르지 않으리라고 약속했다지 않소! 일국의 군주가 감히 허언할 리 없으니, 이는 곧 장차 태어나실 황손께서 옛 성현의 도리를 충실히 따르시리라는 이야기 아니겠소?”
“옳소! 비록 다음 황손께서 외인(外人)의 태를 빌려 태어나신다 해도, 어려서부터 황실의 법도에 따라 예의와 도리를 충실히 배우고 익히신다면 어찌 임금 노릇을 하는데 부족함이 있으시겠소?”
본래 성리학에서는 군자가 되는 데 자격이 필요 없다. 성품이 어질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학식을 쌓으면 누구든 군자가 될 수 있다. 설사 거지라고 해도 말이다.
이 논리가 러시아 황녀와의 국혼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깔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우고 익혀서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성과 인품을 익히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형태로 말이다.
나이가 어린 것도 상관없다고 했다. 다섯 살 차이면 엄청나게 나는 것도 아니고, 상호간 합의로 약혼 기간을 좀 짧게 잡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정 후사가 급하다면 태자가 후궁을 두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고.
물론 러시아와 국혼을 맺음으로써 생기는 외교적인 실리를 추구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미 평화롭긴 하지만….시베리아 쪽 국경에서 더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겠다거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 부설 사업을 더 빨리 추진하고 교역을 증진할 수 있겠다는 희망 같은 것 말이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리 사이 교역은 상당한 양이다. 하지만 철도가 아직 완전히 연결되지 않아서 중간 구간은 짐승의 등짐과 수로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교역량이 제한된다.
하지만 철도가 개통되면 훨씬 많은 양의 상품과 승객이 해로보다 훨씬 빨리 유럽과 대한 사이를 왕래할 수 있다. 물론 운송 단가는 그래도 해로가 더 쌀 테니까 해상 운송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말이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가 비록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근래에 시베리아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중심은 유럽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복해 말하지만, 러시아는 유럽 국가다. 그리고 이쪽 세계에서는 그 성격이 더 강해졌다. 바이칼호 이동, 극동 방면 영토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로 러시아는 가까운 우리 이웃이라고 할 수 없다. 전쟁을 벌이기에는 서로 먼 존재다. 그러니 교류하며 가까이 지내는 게 적절한 상대고, 국혼도 그 수단 중 하나라고 보는 거다.
이리 찬성을 표하는 이들은 대체로 도성을 비롯한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외부 사정에 밝은 이들이 많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놀라운 일이지만, 경화사족 중에도 이 국혼에 찬성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있다. 일부기는 하지만. 과연 무슨 궁리들일까.
찬반양론으로 나뉜 신하들이 꺼내는 의견들은 다들 이제까지 내가 이런저런 경로로 접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겨우 논의 한 번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기에 일단은 마음껏 발언하게 놓아두었다.
신하들의 주장을 듣다 보니 여기 없는 다른 이들이 이 문제를 두고 내게 밝힌 이야기들도 생각이 났다. 미안한 부분도 있고 공감할 부분도 있고 고마운 부분도 있고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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