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5
4부 469화(2085화)
6.
어느덧 5월, 양력으로는 6월이 되었다. 거의 석 달 가까이 이 문제를 두고 조정에서 패가 나뉘어 벌이는 논쟁을 듣고 쏟아지는 상소를 받으며 시보 기사들을 읽고 암행을 나가 세상 민심을 살핀 끝에 이 문제에 관해 결정을 내렸다.
“루스에서 온 청혼을 받아들이고자 하오.”
신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럴 수는 없다며 비분강개하기도 하고,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드러내는 자들도 있다. 개중에는 제일처럼 환호하며 기뻐하는 자도 있었다.
여기서 내가 먼저 신경을 써야 할 건 당연히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다. 나중 둘은 지금 일이 진행되는 방향에 동의하는 방향이니, 당장 다독일 필요는 없다.
“나도 알고 있소. 태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이래 계속된 관습을 깨는 일임을 내가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이 대한의 사직을 위해서, 만백성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해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오. 역대 선황들께서도 그리하셨듯이 말이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부터 시작해서 관례를 깨고 그때까지 아무도 안 했던 일을 한 역대 임금들의 사례를 하나씩 나열했다. 물론 내가 한 일들이 가장 많이 언급되기는 했다. 실제 내가 뒤엎은 전례가 많기도 했고….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던가, 뭐.
“이처럼 열성조께서도 필요하면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행하기를 망설이지 않으셨소. 이번 루스와의 국혼에 관한 일도 그처럼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하였으니, 그대들의 생각에는 탐탁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따라주기를 바라오.”
“하오나 폐하, 원자께서 10년이나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기다리셔야 하는 건 해도 너무한 조건이 아니옵니까?”
예무대신 권승경이 주저하면서 호소했다. 예무대신이라는 직책에 어울리게 반대파의 핵심 중 하나였던 사람이다.
“10년이나 약혼 기간을 잡으면 원자께서는 무려 스무 살이 되어야만 혼례를 올리실 수 있게 되시옵니다! 어찌 그런 일을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약혼을 줄이면 되는 일 아니오. 내 차르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릴 것이오. 공주가 만 8세가 되면 시녀를 딸려 동방으로 보내라 할 것이고, 우리 황실에서 2년을 가르친 뒤에 10세가 되면 혼례를 치를 것이라고. 물론 후사를 보는 건 그보다는 3~4년 정도 뒤겠고.”
한마디로 민며느리가 되라는 이야기다. 저쪽이 수락하면 청혼을 받아들일 것이고 싫다고 하면 그대로 거절이다. 우리랑 혼인하고 싶으면 우리 풍습에 맞추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지?
대신 어린 몸에 임신과 출산이 부담인 거야 자명하므로, 합궁은 좀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그걸 돌려서 표현한 게 후사를 3~4년 뒤에야 보게 되리라는 언급이다.
“폐하. 10세라 해도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이미 다 전례가 있소. 세조께서 정희왕후를 세자빈으로 맞아들이실 때 그분의 나이가 딱 10세셨고, 성종께서 제헌왕후를 맞아들이셨을 때도 10세셨소. 그리고 무종께서 문정왕후를 맞아들이셨을 때 그분 역시 10세셨소.”
여기서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은 아직 수양대군이던 세조는 11세, 자을산군이던 성종도 10세, 유일하게 세자로서 세자빈을 맞아들인 무종 역시 겨우 11세였다는 거다. 양쪽 모두가 열 살 남짓, 부부 양쪽이 다 운우지정을 잘 모르는 어린애였다.
이런 식의 조혼은 이제 황실에서도 잘 안 한다. 황태자만 아니면 적어도 14~15세 정도는 된 뒤에 한다.
민간에서도 여자들의 일반적인 결혼 연령은 10대 중반이다. 남자들은 군대를 마친 다음에 결혼하는 게 보통이다. 후손이 엄청 급한 집에서는 아직 미필인 아들도 장가보내곤 하는데, 그럴수록 며느리는 나이가 더 많게 마련이다. 확실하게 애를 가져야 하니까.
어떻게 보면 이번 혼인은 황태자도 남들과 비슷한 연령에 혼인하도록 살짝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황태자비 후보가 너무 어려 기다리느라 늦어지는 거지만, 다음 대에는 당연하게 10대 중반에 혼인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만 혼례를 올리는 시점에 이미 15세가 되어 남성호르몬이 치솟을 창이가 10세밖에 안 된 신부가 자랄 때까지 적어도 3년에서 4년을 기다려야 하는 부분은 좀 힘들 거긴 하다. 그 나이 때는 정말 여자에 환장할 나이니까.
창이 본인이 별 필요 없다고 하면야 그냥 놔두면 되지만, 혹시라도 필요한 기색을 보이면 후궁을 들여 품게 해주는 수밖에 없으리라. 차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양해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 하니, 그 문제를 들고나와서 외교 분쟁을 일으킨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건 혼례를 치른 뒤에 고민할 문제다. 지금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혼례로 가는 과정이다. 이것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혼례를 치를 수 있다.
“그대들이 걱정했듯이, 루스 황녀는 우리 대한의 말과 풍습에는 백지상태일 게 분명하오. 루스에서 선생을 두고 배운다고 해 봐야 수박 겉핥기로나 배울 수 있을 터, 일찌감치 궁에 들어와 배우는 것보다 못할 수밖에 없소. 그러니 일찌감치 입궁하라 하는 게 당연하오.”
“루스에서 황녀가 아직 어려 보내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면 어쩔 셈이십니까?”
“만약 차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혼담은 없던 일로 할 거요. 딸을 우리 황실에 시집보내고 싶다고 한 건 차르이니, 그 정도 조건은 맞추는 게 그쪽에서 할 도리가 아니겠소?”
내가 이 정도 배짱은 튕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확실하다. 그건 바로 러시아 내부의 여론이다.
일단, 러시아에서라고 이 혼사를 적극적으로 환영했을 리가 없다. 귀족들이든 관료들이든 백성들이든 다들 꺼리는 이들이 더 많을 거다. 그동안 양국 사이에 쌓인 친분은 친분이지만 일단 ‘동방의 이교도 나라’ 아닌가. 그 근본적인 한계를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국서에서 차르의 뜻 외에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사정 따위는 전혀 묘사하지 않았으니 내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는 반대 여론이 더 강했으리라. ‘이교도한테 공주님을 시집보낼 거면 차라리 나한테 줘요’에 가깝지 않을까.
관료들은 상당수 동의했을 것 같다. 우리와의 외교적인 연계가 러시아의 입지에 미칠 수 있는 영향 같은 데 가장 민감한 이들이 관료들일 테니 말이지.
민간의 여론은 아마 아직 존재하지도 않을 듯하다. 러시아가 어디 이런 일을 방방곡곡에 떠들어대면서 진행하는 나라던가. 백성들한테는 여태 공표하지도 않았을걸?
나중에 국혼이 성사된 뒤에는 혹시 우리 쪽에서 먼저 청혼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질 수도 있겠지만….그것까지 나서서 뭐라고 하진 말아야겠다. 러시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주장한다면 항의해야겠지만, 민간의 소문까지 트집을 잡긴 좀 그렇지.
어쨌든 이 결혼에 관해서 여론의 전폭적인 찬성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고, 차르가 공식적으로 국서를 보내려면 수많은 반대를 억누르면서 돌파해야 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추진한 국혼을 내가 내건 ‘별것 아닌’ 조건 때문에 취소한다면 차르의 체면은?
내 외숙부인 김좌근은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그야 똥통에 처박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차르는 딸을 시집보낼 거면 일찍 보내라는 내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대신 유모와 시녀들이나 잔뜩 딸려서 보낼 수밖에 없을 거고.
“그러니, 이 혼사가 지금 확정되었다고 하기는 좀 어렵소. 루스에서 답이 올 때까지는.”
내 말이 끝나자, 국혼을 반대했던 이들의 얼굴에 잠시 희망의 빛이 피었다. 그런 조건은 곤란하다는 답이 러시아 쪽에서 온다면, 이 혼담은 깨지고 자연스럽게 예전 관례에 따르는 황태자비 간택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른 기대를 하는 이들도 있을 듯했다. 러시아 측이 내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약혼이 성립되더라도 약혼 기간이 최소한 앞으로 5년이니, 그동안 무슨 사고가 생겨 약혼이 파기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이들 말이다.
그거야 나로서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당장 내가 내일 아침에 해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법인데, 어떻게 5년 뒤의 일을 내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운명에 맡겨야지, 그런 건.
7.
이로써 러시아와의 국혼에 대한 조정 내에서의 논란은 대충 마무리가 됐다. 아직 약혼이 확실하게 맺어진 게 아니기에 조보에 실어 공표하지는 않았다. 약혼 공표는 내가 새로 붙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차르가 회답을 보냈을 때 한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약혼이 성립됐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시보들이 곧바로 중추원 동지사 모씨나 외무부 소속 관료 모씨를 출처로 작성한 기사를 쏟아냈으며 사람들은 기사를 바탕으로 마음껏 떠들어댔다.
황실의 혼사에 관한 일이다. 게다가 처음 소문이 퍼졌을 때부터 계산하면 다섯 달 가까이 도성 안팎을 뒤흔들었던 엄청난 사건이다. 사람들이 뒤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유주의 대국이 우리 대한에 공주를 바치다니!”
“우리 대한이 유주보다 위에 있는 나라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외인 황후마마는 좀 그렇지 않은가?”
“머리가 노리끼리하면 어떻고 눈이 푸르스름하면 또 어떤가? 황후마마 일만 잘하면 되지. 그리고 자네도 저번에 반촌에서 백면나인들 보고 ‘아 나도 저런 내자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부러워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원자마마께서 백면황태자비를 얻으시면 안 되나?”
“아, 거야 원자께서는 나 같은 여염의 사내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약혼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게 두드러졌다. 물론 탄식하는 이들도 많았다.
“허어, 우리 법도도 모르는 외인 황녀가 어찌 국모 노릇을 제대로 할지 모르겠소. 그리고 그렇게 어린 계집애를 데려다가 후사는 대체 언제나 보게 될 것이고…..”
“폐하께서 약혼 기간을 줄이고, 저들의 제안보다 일찍 데려와 예법과 도리를 가르치겠다 하지 않으셨소. 그러니 희망을 품고 기대해 봅시다.”
이런 우려는 공공연하게 나돌지는 않았다. 조정 방침이 정해진 이상, 대놓고 불만을 계속 제시하면 내 눈 밖에 날 수도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내게 달려와서 어찌 이러실 수 있냐고 대놓고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폐하!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대한과 우리 만주 사이의 깊은 친분은 무려 5백여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건만, 어찌 이런 식으로 저희에게 실망을 주실 수 있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건 유감으로 생각하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황궁으로 달려온 청나라 공사 영린(永球)은 꼭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그 실망감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저희 황제께서도 대한과의 국혼을 늘 꿈꾸셨습니다. 양국 황실의 피를 섞음으로써 더욱 단단한 연대를 이루자고 하셨지요. 하지만 폐하께서는 국초부터의 국시라고 하시며 통혼을 거부하셨습니다. 저희도 그런 줄만 알고 더 재촉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청나라는 은이 때 우리와 국혼을 맺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거부하면서 은이 대신 준이가 청나라 공주와 혼인하게 되었다. 그 후손이 지금 심왕가인 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
그 뒤로 청나라 쪽에서 국혼을 한 번도 제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황실에서 매번 거절했다. 겉으로 대는 핑계야 늘 달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였다. 외부에 강력한 외척을 만들 수는 없다는 바로 그것.
청나라는 분명 우리가 놓을 수 없는 동맹이기는 하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도, 후송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청나라와의 평화는 중요하다. 청나라와 싸우기 시작하면 우리는 바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미주고 뭐고, 다 관리하기 힘들어진다.
원교근공도 가까운 상대가 적당히 만만해서 두들겨 팰 수 있고 내가 다른 쪽에서 부담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거다. 단박에 쓰러트릴 수도 없고 때려서 얻는 이익보다 우리가 들이는 비용이 크다면 그건 손해다.
그렇다면 결혼동맹으로 아예 끈끈하게 묶어버리는 방법도 분명 쓸만하기는 하다. 하지만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고려 때 있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국제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황실 안팎에 모두 만연해 있어서 과거에는 그 길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중종 때 그걸 깨버렸다면 선례가 되어서 주변국과의 통혼이 좀 더 왕성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조차도 그건 좀 망설여졌었다. 그래서 결국 태자인 은이 대신 둘째인 준이를 내세워 청나라 황실과 혼인을 맺었고 말이다.
이번 대에도 청나라 쪽에서 살살 냄새는 피웠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에이 어차피 안할거 알면서 새삼스럽게 뭘…?’하는식으로 응대하니까 ‘어휴 다 알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이나 한번 해봤어~’하는 식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조용했는데…..
“너무하십니다, 폐하. 혹시 양국 간에 불편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스럽게 폐하께 뜻을 물어본 저희의 청은 무시하시고, 예의도 없이 대놓고 들이미는 루스의 요구는 받아들이려 하시다니요. 이게 점잖게 항의하는 손님은 무시하면서 탁자를 뒤엎는 건달에게는 쩔쩔매는 객잔 주인과 다를 게 뭡니까?”
졸지에 내가 진상 손님에게만 쩔쩔매고 점잖은 일반 손님은 무시하는 불량한 식당 주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청나라 쪽이 이렇게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어서 이 정도 항의는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우리 청나라는 대한의 오랜 우방이고, 신붓감인 고륜화정공주(固倫和靜公主)께서는 이미 나이도 열넷이나 되셔서 후세도 빨리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 살이나 어려서 애도 못 낳을 루스 공주 쪽으로 돌아서시다니요!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우리 청나라가 루스보다 못한 점이 대체 무엇입니까?”
처음 루스와의 국혼 이야기가 나돌았을 때는 청나라 쪽에서도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았다. 처음엔 소문에 불과했으므로 말을 자제했고, 정식으로 국서가 왔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그 문제로 시중의 여론이 발칵 뒤집혔어도 나서는 건 삼갔다.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우리가 계속 보인 태도에 있었다. 청나라 측의 국혼 제안을 매번 거부한 우리가 러시아가 제안했다고 받아들이겠냐고 속 편하게 생각한 탓이 크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가 정말 대놓고 돌직구를 질러버린 데다, 우리 조야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의외로 많더니 결국 받아들이겠다는 반응까지 나온 걸 보고 북경에서도 크게 당황한 모양이다. 이것도 전보가 만들어 낸 효과 중 하나다.
“귀국을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오. 다만 청나라와 우리는 이미 여러모로 끈끈하게 맺어진 사이지만 루스는 그렇지 않으니, 우리 대한이 유주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루스 측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도 괜찮겠다는 여론이 있을 분이지.”
그 외에도 몇 가지 말로 달래 보았다. 영린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황통에서 좀 멀어지긴 했어도 황족 방계인지라 청나라 본국에서도 꽤 말발이 서는 사람이다. 함부로 대해서 좋을 게 없다.
“알겠습니다. 인제 와서 생각을 바꿔 달라고, 고륜화정공주께 황태자비 자리를 달라고 또 청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봐야 우리 대청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행동일 분이니까요.”
“나로서도 그저 실망을 안겨주어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청나라 쪽에서 배 째고 드러누워서는 자기들이 먼저 국혼 제안을 넣었는데 러시아가 새치기했다고 난리를 치면 그건 그거대로 난감한 상황이니 말이다. 입을 닫고 조용히 물러간다면 고마운 일이지.
다만 이런 듣기 좋은 제안이 절대 공짜일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린은 우리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다른 요구를 내놓았다. 뭐? 청나라 황태자비로 우리 공주를 달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