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6
4부 470화(2086화)
8.
차르가 보낸 혼담에 관해서 청나라 공사관에서 정보 수집을 잘못한건 아니다. 분명히 이 국혼에 관한 시중의 여론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우세한 편이 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반대하는 편에 선 시보 중에는 지면에 이런 소리를 당당하게 실은 놈들도 있었다. 정말이지 오늘만 사는 놈들인 모양이다. 혼담이 깨지면 모를까, 성립되면 대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열성조께서 후손의 얼굴을 못 알아보시는 사태가 벌어질까 두렵다」
「우리 대한이 무엇이 부족하여 외이(外夷)를 중전으로 모셔야 하는가?」
이런 반응을 뻔히 보았으니, 영린을 비롯한 청나라 공사관원들이 이번 러시아 측의 청혼 역시 퇴짜를 맞으리라고 예상했던 건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찬성하는 쪽의 여론은 무시했을 거고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확증편향이라고 봐야 하려나.
사실 청나라 쪽에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방해 공작을 시도했다면 이번 사태의 향방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다. 기왕 외국 황실과 혼인한다면 후보자의 나이라거나, 문화적인 유사성 같은 데서 청나라 공주가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청나라와 우리는 이미 두 차례 국혼을 맺기도 했다. 선례가 있으니만큼 반발도 더 적었을 거다. 그러니 청나라에서 작심하고 황태자비 자리 쟁탈전에 뛰어들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겠지만, 그들의 방심 혹은 확신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나라 측이 자기네 실수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건 물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완전히 물러나는 게 아니고 뭐? 공주를 황태자비로 달라고?
청나라 황태자 영록은 무자년(1828)생이다. 태어난 순서로만 보면 첫째가 아니지만, 먼저 태어난 이복형들이 죄 일찍 죽었거나 자질이 영 별로거나 해서 순조롭게 황태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후궁 소생은 아니고, 황후 소생이다.
친왕비도 아니고 황태자비로 데려갈 정도면 서출인 옹주나 방계에서 입양한 양녀를 새로 공주로 책봉해서 보내는 편법은 절대 안 통한다. 애초에 우리 황실 법도나 서열 같은 기초 정보는 청나라 황실에서도 다 알고 있다.
청나라에서는 정실 황후가 아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황자녀도 다 적손으로 인정하니까 우리도 후궁 소생 옹주를 보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바본가? 유럽 왕실에서 국왕의 사생아 아들이나 딸을 두고 ‘한국 법도로는 이들도 왕자, 왕녀’라면서 국혼을 맺자고 하면 할 건가?
고로 청나라 측의 요구에 맞출 수 있는 후보는 단 하나뿐이다. 내 유일한 적녀, 정현공주 현지 말이다. 당황스러웠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공사?”
“그렇습니다, 폐하. 정현공주께서는 어머니이신 황후 폐하의 미모와 자질을 그대로 빼닮은 재원이시라는 평을 줄곧 듣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분이 우리 청나라의 국모가 되신다면 우리 청나라 황실에는 무궁한 빛이 비칠 터, 꼭 모셔가고 싶습니다.”
그렇지. 미모와 자질은 중전을 꼭 빼닮기는 했지. 문제는 성격이…. 아이고.
철이 좀 들었는지 옛날보다는 그나마 차분해졌다. 중전이 그동안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다독이고 가르친 덕분에 만으로 열셋이 된 지금은 적어도 부모인 나와 중전, 원자인 남동생 창이한테는 쌀쌀하기는 할지언정 예의를 지켜 대하고 함부로 굴지 않는다.
다만…아랫사람에게는 참지 않는다. 그리고 이 대궐에서 현지보다 윗사람은 우리 부부와 창이를 빼면 아무도 없다. 더 어른인 태후는 쾌적하고 편안한 창덕궁에서 유유자적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현지의 그런 성격은 소문이 안 날 수밖에 없다. 몸이 약한 탓에 조모가 세운 여학교에도 안 나갈 만큼 대궐 안에 콕 처박혀 살았으니까. 어쩌다 황실 내부 행사에나 잠깐 나가는 것 말고는 가족들과 직접 모시는 궁인들 정도만 얼굴을 보고 산다.
과연 시집을 보낼 때까지 그 성격을 얼마나 순치(馴致)할 수 있을 지가 중전과 내 고민 중 하나였다. 유럽에서야 평생 결혼 안 하고 사는 공주들도 가끔 있지만, 동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지금 성격 그대로 시집을 가면 시댁을 초토화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하가(下緣)하더라도 공주는 공주, 남편이나 시부모보다 신분이 높다. 며느리가 성질을 부려도 시부모가 어찌할 수가 없다는 소리다. 실제로 그런 공주들의 전례가 몇 건 있었다.
다른 문제점이었던 건강은 그전보다는 나아졌다. 여전히 잔병치레는 종종 하지만, 툭하면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던 서너 해 전보다는 훨씬 낫다. 적어도 사람 구실 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작년에 사준 직륜거를 즐겨 타면서 운동을 많이 하게 된 덕을 봤는지….
그런 딸을 데려가겠다고 나서는 상대가 나타난 건 평소라면 환영할 일이겠지. 하지만 그 상대가 청나라 황실이라는, 무난하게 뒷수습을 시도할 수 없는 상대라면 이건 좀 곤란하다. 그 성질을 북경에 가서 부렸다간 양국 관계가 파탄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주는 아직 나이도 좀 어리고, 몸도 약한 편이라 일국의 황후 자리에 앉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소. 유감이지만 혼인은 좀 어려울 듯 싶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복누이인 화선장공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조금 어색했다. 내가 나서서 ‘대안을 제시’한다는 건 혼담을 받아들일 뜻이 있다고 바로 응답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루스 공주는 이제 다섯 살인데 혼담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까? 그에 비하면 열네 살이 되신 정현공주께서는 충분히 나이가 드셨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문제시라면 공주 전하를 평소 모시던 시의(侍醫)들이 함께 와도 괜찮습니다.”
차르의 청혼을 먼저 받아들인 게 자승자박이 되었다. 당장 받아칠 논리가 궁해져 대화를 돌렸다. 내가 즉위하고 올해로 13년째, 청나라 쪽에서는 그동안 우리와의 혼담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열성적으로 추진하게 됐느냐고.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심양회맹이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이며 이제 남은 회맹국도 우리 둘뿐이니, 두 나라 간에 더욱더 단단한 유대를 쌓을 수 있도록 혼인을 통해 관계를 가깝게 하자고 이번 일을 계기로 결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심양회맹에는 대한, 청, 후금 세 회맹국과 증인을 맡은 유구의 네 나라가 참여했다. 이 중 제일 먼저 이탈한 나라는 증인 역할이었던 유구다. 대한의 번국으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선황은 동군연합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양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다 번국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탈한 구성원이 후금이다. 후금은 지난번 내전으로 인해 대칸의 칭호를 잃고 청나라에 확실하게 종속된 번국이 되었으며, 당연히 다른 둘과 동등하게 심양회맹에 참여할 자격도 잃었다. 고로 정말 우리와 청나라, 둘만 남았다.
어떤 모임의 구성원이 셋이라면 어느 하나가 특별하게 튀려고 할 때 다른 둘이 합심해서 견제할 수 있다. 다른 둘이 힘을 합쳐 봤자 그 하나보다 확실하게 약할 수도 있지만, 2:1로 패가 갈리는 그 상황 자체부터 아무래도 골치가 아파진다.
하지만 딱 둘만 남게 되면 그 관계가 불안해진다. 조정자 노릇을 할 존재가 사라진 만큼 양자의 역학관계가 확실하게 더 드러나고, 강자는 확고한 우위를 쥐고 약자를 대하게 된다. 충돌이 일어날 여지도 좀 더 커진다.
그래서 이런 관계에 처한 약자는 좀 더 확실한, 상대가 쉽게 끊기 어려운 관계를 맺으려 시도하게 된다. 그게 지금 청나라로서는 국혼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와 러시아 사이에 국혼이 성립됐다고 해서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청나라를 배신했다고 받아들였나? 러시아와 혼인동맹을 맺고 청을 협공해서 청나라 땅을 빼앗으려는 의도라고 오해했나?
청이 러시아를 경계하는 거야 당연하다. 2백여 년 전부터 국경을 맞대고 소소하게 다투던 사이니까.
본래 러시아를 상대하는 건 건주 양국 중 후금의 몫이었다. 후금과 러시아 사이 국경에는 늘 어느 정도 긴장이 흘렀고, 간혹 전투도 있었다. 대개는 국경 일대에 거주하는 카자크와 몽골 부족들이 산발적으로 충돌하는 정도라 전쟁이라고 할 수준까진 아니긴 했지만.
하지만 독립국이던 준가르가 러시아의 종속국 신세가 되면서부터 청나라도 러시아 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금을 흡수하고부터는 대놓고 러시아와 맞닥뜨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물론 지금도 러시아 세력을 직접 대면하는 건 옛 후금을 통치하는 륵극덕혼이다. 후금은 그 세력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국경을 경비 할 정도의 전력은 보유하고 있다.
분명 후금이 보유한 남은 전력이 청나라 팔기의 예비전력으로 편제되기는 했다. 그렇다고 륵극덕혼이 그 병력을 지휘할 권한을 아예 잃은 건 아니다. 북경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평소에는 륵극덕혼이 칸으로서 지휘를 맡는다.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소소한 국경 층돌 정도야 륵극덕혼이 보유한 전력만으로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러시아 공주를 맞아들인 우리가 축이 되어 후송까지 동맹을 맺고 청을 포위한 상태가 된다면….?
여기에 러시아의 종속국인 준가르 본국까지 청나라 포위에 가담하면 문자 그대로 사방이 막히는 최악의 상황이 터진다. 청나라 쪽에서 이를 걱정하고 있다면, 우리와의 국혼이라는 방법으로 그 벽을 뚫어버리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혹시 우리가 루스와 연합하여 귀국을 치는 게 아닐지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절대로 그럴 의도가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없다는 점을 미리 강조하고 싶소만….”
“설마 저희가 그런 의심을 하겠습니까? 대한과 우리 청나라는 태조 – 누르하치 – 께서 천명을 받으시기 이전부터 끈끈한 인연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 청나라의 황실도 대한의 공주이신 효단장황후께서 낳으신 후손이니, 어찌 그 인연을 잊겠습니까.”
거봐, 사방으로 포위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걱정하는 거 맞잖아. 그래서 누르하치 때부터 이어지는 핏줄 운운하면서 서로 간의 인연을 강조하는 거고.
“귀국 황제께서 홀로 결심하셨는가? 아니면 신하들의 뜻을 모아 내리신 결정인가?”
“어찌 이런 중대사를 폐하께서 홀로 정하시겠습니까. 황실의 어른 들과 조정 중신들이 다 모여 의견을 나눈 끝에 정한 것입니다. 오로지 옛날 태종께서 대한에서 효단장황후 마마를 맞아들이셨던 그때처럼, 양국의 우호가 깊어지기를 바라서입니다.”
러시아 황녀와의 국혼으로 자기네를 물먹인데 대한 단순한 항의 방문이라고 생각했던 내 처음 생각은 잘못이었다. 청나라 측에서는 창이는 놓쳤어도 이 국혼은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아주 작심하고서 밀고 들어온 거였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만약 이 제안에 따라서 혼사를 치른다면 우리 황실로서는 러시아보다 청나라 쪽에 비중을 두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고? 그야 우리 눈으로 볼 때 며느리와 딸이 갖는 다른 의미 때문이다.
며느리는 우리 집안에 들어옴으로써 가족이 된다. 하지만 며느리의 친정인 사돈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필요할 때 서로 돕기는 하겠지만,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서로를 위해 희생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며느리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사돈네 집안을 물려받은 며느리의 오라비들이나 조카들은 내게 아무 의미 없는 남이다. 잘나가면 물론 좋지만 망해도 나한테는 별로 타격이 없다. 내 자식, 내 손자가 잘사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 황실에도 전례가 있다. 태종은 자기 처가와 아들 세종의 처가를 모두 박살을 냈으나 조선이라는 나라의 번성에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되려 세도를 부릴 수 있는 외척을 제거해 왕권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자기 처가는 말이다.
하지만 딸은 다르다. 딸은 결혼하면 남의 집에 속한 사람이 된다지만, 시집간 딸이 낳은 외손자는 확실하게 내 피를 물려받는다. 며느리의 조카들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게 가까운 존재다. 그런 아이들이 망하는 건 나로서는 정말 큰 타격이 된다.
청나라에서도 그걸 노리고 있을 거다. 그래서 내 이복누이가 아닌 딸을 태자비로 달라고 요청했을 거고.
분명 나는 청나라와 결혼동맹을 체결하는 걸 꽤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게 내가 설계한 상황이 아니라 상대방의 설계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인 건 예상외였다.
“임금께서 이 자리에서 당장 답하기 어려우시리라는 건 저희도 압니다. 깊이 생각하시고 주변과 논의하신 뒤에 답을 주시옵소서. 황상께서는 폐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올해 가을에 바로 혼례를 올려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더 늦추셔도 됩니다.”
“귀국 황태자의 나이가 이미 적지 않은데 내 딸의 건강 때문에 자꾸 연기하게 만드는 건 도리가 아닌 듯하오만….”
다시 한번 은근하게 거절하고 싶은 뜻을 표해 보았다. 하지만 영린은 아주 결연한 표정을 하고 이런 대답을 했다.
“대한의 공주라는 존귀한 신분에, 자질과 미모가 모두 뛰어나신 분이 아닙니까. 그런 분을 황후로 모시려면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니콜라이 1세가 하는 짓을 보고 학습했는지 덕명이 던진 돌직구는 한술 더 떴다. 즉답할 수도 없어 알겠으니 이만 가보라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9.
청나라 공사관에서는 내게 와서 직접 호소하는 외에 외무부에 직접 청혼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모을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여유가 아니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몇 개 모으기도 전에 내 뒤통수, 아니 앞통수를 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속보! 루스에 이어 청국에서 국혼 요청!」
「독점 보도! 청국 공사의 직접 소명 최초 게재」
영린은 그저 내가 보내는 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우리 내부에서 여론전을 시작했다. 그것도 우리 언론을 이용해서.
공주를 외국에 보내서 혼인하게 한다면 그에 대해 우리 조야에서 갖는 전통적 인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국에 바치는 공녀고, 다른 하나는 번국에 보내는 화번공주다. 어느 쪽이든 우리 대한과 청나라 사이를 규정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장조 때 있었던 혜원이와 혜연이의 혼사는 후자에 가까웠다. 당시 건주위가 우리 번국은 아니었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우리보다 격이 낮았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종 때 치른 준이의 혼사는 우리가 받는 쪽이므로 고민할 게 적었고.
그래서 청나라 측에서는 이번 일을 꾸미며 양쪽에 다 걸리지 않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냈다. 공녀도 아니고 화번공주도 아니나 황후가 될 공주를 모셔갈 수 있는 형태로 말이다.
「….공주께서는 중전마마를 빼닮아 재색을 겸비하신 분으로, 일국의 국모가 되기에 전혀 부족한 점이 없다고 들었소이다. 그런 분을 황태자비로 모실 수 있다면 우리 청국으로서는 참으로 기쁜 일일터, 부디 임금께서 아량을 베푸시기를 바라며…..」
영린은 회견, 인터뷰 내내 대한과 청나라 사이의 깊은 인연을 거명하고 양국이 형제 같은 관계로 지냈음을 강조했다. 지금은 바쁘다 보니 없어졌지만, 과거 황제들이 즉위하기 전에 한양을 찾아 장조의 능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던 이야기도 했다.
「….임금께서 이 혼사를 허락하신다면, 태자께서는 기꺼이 옛 관습을 되살려 이곳 한양을 찾아 직접 신부를 영접하실 수도 있소. 그러면 장조께서도 기꺼워하실 것이며…..」
이 회견은 도성 안팎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런 난리를 일으켜 놓은 후 영린은 백주에 당당히 외무부를 방문해서 황제 덕명 명의의 청혼서를 건넸다. 숨기고 자시고 할 수도 없는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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