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9
4부 473화(2089화)
12.
한성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은 우리와 러시아 사이의 혼담이 성립되지 않으리라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와 러시아 사이가 너무 깊어지면 자기들과는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신중히 판단하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은근한 압력을 넣어 훼방을 놓으려고 들지도 않았다.
물론 영국, 프랑스에 청나라 공사까지 함께 찾아와 혼담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해서 우리가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반대하는 쪽에 섰던 중신들도 그런 식의 간섭은 우리 주체성에 대한 침해라고 보고 기분 나빠했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있을 수 없으리라 여긴 일’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한성의 외교가는 발칵 뒤집혔다. 다들 이 사태를 본국에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난리가 났다. 예상한 바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으니, 다들 변명할 말을 찾느라 바쁘리라.
그나마 우리와 러시아의 혼담은 당장 어딘가에 불을 지르는 문제는 아니다. 혼인한다고 해서 당장 동맹을 맺고 전쟁을 시작할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혼담은 아직 약혼 서류에 도장도 안 찍은 상태란 말이다.
약혼이 정식으로 맺어져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약혼이란 건 언제나 깨질 위험 있는 법 아니던가.
그게 우리나 러시아가 일부러 깨려고 해서만 깨지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 중 한쪽이 병에 걸려서 갑자기 죽는다거나 해도 약혼은 무산될 수 있다. 뭐, 그렇게 되는 걸 내가 바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지.
하여튼 우리가 정말 러시아 공주를 황태자비로 들이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러니 국제 외교에서 이 문제가 당장 불타오르진 않을 거다. 당장 불탈 건은 그것보다는 청나라 측에서 제안한 혼담이다. 아니, 이건 그냥 안팎으로 불이 활활 타오를 건수다.
당장 시보 기사를 본 백성들이 난리가 났다.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 제호들이 시중의 여론을 대변했다.
「희정공주 자가 이래 250년 만에 이어진 인연!」
「청태자 도성 방문, 얼마 만인가?」
「혼례 날짜는 올해 가을」
청나라 공사가 대놓고 터트린 내용에 살이 붙었다. 이미 혼약이 다 맺어졌다고 받아들인 백성들도 많았다. 러시아 때는 저들이 청혼한 게 사실이 맞느냐는 의구심부터 퍼졌던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미 장조 시절의 전례가 있는 탓인지 반발은 별로 없었다. 반발은커녕 열광적인 반응이 도성을 휩쓸었다. 청나라 쪽에서 ‘공주를 황태자비로 모셔가고 싶다’라고 간절하게 요청하는 형식이 되자, 백성들의 눈에는 청나라가 화번공주를 보내달라는 모습으로 비친 거다.
청나라가 우리와 심양회맹을 맺은 동맹이고 중원의 절반을 다스리는 대국이라지만, 우리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청나라를 우리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본다. 그러니 청나라 쪽의 국혼 요청을 화번공주를 보내달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청나라 측이 본래 의도한 건 어느 정도 동등한 관계로 진행하는 혼인이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백성들은 그 본의를 모르고 알아서 좋을 대로 해석해 버렸다. 러시아가 혼담을 넣었을 때와 같은 반응인 셈이다.
「아니, 청나라가 아무리 황제국이라지만 근본은 오랑캐 아니오?」
「후궁 소생 옹주도 아니고, 중전께서 낳으신 공주를 달라니 그런 건방진 말을!」
「그동안 우리 쪽에서 아우 나라로 대접해 줬으면 그 정도로 만족할 줄 알아야지….」
경화사족을 중심으로 하는 양반층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산림들도 일부 가세해서 반대 상소를 올렸다. 요지는 이쪽도 같았다. 이제까지 중전 소생 공주를 외국으로 시집을 보낸 전례가 없으며, 청나라는 그 격이 우리보다 낮다는 거였다.
분명 청나라를 우리보다 낮게 보는 성향이 크게 작용한 건 맞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 하나뿐인 적통 공주의 부마가 되어 황실과 인연을 맺을 기회가 날아가는 게 배가 아파서 그러는 자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어찌 그걸 아십니까, 폐하?”
“조정과 중추원에서 반대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혼인할 나이가 된 아들, 손자, 조카가 있는 자들인데 어찌 그 음흉한 속내를 못 들여다 보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김좌근이 폭소를 터트렸다. 김좌근의 머리 위에 달린 새장 속에서 앵무새가 주인의 웃음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다. 자기가 지내는 사랑방에서 앵무새를 키우는 건 제법 많은 사대부가 즐기는 취미다.
“하기야 부마로 간택되면 부마 본인은 평생 한량이 되지만 집안은 큰 혜택을 받으니까요. 하나뿐인 중전마마 소생 공주와 연을 맺을 기회를 다들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부마라고 꼭 한량이 되지도 않는다. 현재까지는 같은 사례가 없기는 하지만, 본의 아니게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숱한 관직을 역임했으며 러시아에서 보스토크 백작 작위까지 받았던 고령위 박문수의 전례가 있지 않은가. 부마도 직접 출세할 기회는 있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비 자리를 이미 러시아 공주에게 빼앗긴 참이다. 그런데 정실 공주의 남편인 부마 자리까지 청나라 태자에게 내주게 생겼다. 그동안 주로 황실과 혼인하던 경화사족들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태후께서는 뭐라 하시었사옵니까? 창덕궁으로 따로 부르셨다면 서요.”
“장공주를 청나라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상한 용건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정현공주는 몸이 좋지 않으니, 신체 건강한 화선장공주 쪽이 시집보내기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다만 괜히 서두르다가 제가 역정을 내게 해서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으신지,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하긴 하셨습니다.”
태후는 시보를 통해서 소식을 접하고도 한동안 바로 나서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청나라 측과 이미 사전 교섭을 마쳐 놓은 거라면 자기가 매달려 봐야 소용없을 테고, 현지의 혼사에 훼방을 놨다고 내게 미움만 살 거라고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실상은 나조차도 청나라 측의 책동에 앞통수를 맞은 상황이었다. 태후 역시 잠시 상황을 살피면서 이를 파악했고, 그럼 자기 딸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를 창덕궁으로 불러들인 거다. 그래도 태도는 조심했고.
“예전에 선황께서 남기신 유훈에 따라 유구 왕세자빈 자리를 제안했을 때는 그렇게 싫은 티를 내시더니 말이지요.”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폐하. 겨우 일개 고을에 불과한 인민을 다스리는 유구 국왕과 1억이 넘는 백성을 거느린 청나라 황제가 같은 위치에 있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후금이 땅은 넓어도 인구는 얼마 안 됐던 탓으로, 후금을 흡수하고도 청나라 인구는 별로 늘지 않았다. 하지만 화북을 통으로 차지 한 만큼 본래 인구가 적지 않다.
다만 말이 좋아 1억이지,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백성의 수가 그만큼 될지는 나도 정확하겐 모르겠다. 지난번 대홍수 이후 청나라 남부가 혼란에 빠졌으니 말이다. 태평천국이 장악한 지역 말고, 나머지 지역도 행정이 혼란스러워진 곳이 많다.
당시에 덕명이 혼란을 수습하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 덕명은 건주를 다시 하나로 합친다는 집념에 불타고 있었고, 남방의 숙적인 후송은 태평천국의 난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사태를 방치했다.
덕분에 후금을 완전히 무릎 꿇리고 후금의 만주인과 왜인 인구 대부분을 관내로 들였다. 허나 그 대가로 그동안 방치한 남부는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 됐다. 북상한 태평군이 허창 인근까지 넘보는 결과가 왔으니 그 일을 어쩔 것인가.
그런데 전부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태평군이 사천으로 밀고 들어가니까 사천에서 청나라 측의 지배력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태평군에게 ‘신벌’을 당하기 싫은 사천 지역 향신들이 청군에 구원을 청한 덕분이다.
마침 후금 내전이 끝난 뒤라 다소 여유가 생긴 참이었던 덕명은 태평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은 한중을 통해 사천으로 병력을 투입했고, 성도 일대는 청나라 세력권으로 계속 확보할 수 있었다. 태평군은 중경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부 일대를 차지하는 데서 멈췄다.
청군이 대부분 녹영병이었으니, 태평군이 계속 밀어붙였으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태평군으로서도 계속 밀어붙일 수는 없었을 거다. 동쪽에서 토적연군이 계속 공세를 가하고 있었으니 말이지.
“그것도 이제 끝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폐하?”
“그럴 것 같습니다. 홍적놈들이 그만 끝내자고 계속 청하고 있기도 해서요.”
태평천국에서는 꾸준히 화친 제안을 보내오고 있다. 우리 땅에서 봉기를 획책한 책임자의 목이라면서 수급을 십여 개나 보내기도 했고, 선물로 금은보화와 골동품, 서화를 보내기도 했다. 홍수전의 친필 서한은 기본이다.
논지는 간단했다. 우리 영토 내에서 난리가 일어난 것은 자기네 본의가 아니었다, 군사를 물리고 내전에서 빠져 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우리 대한에 해가 될 일은 하지 않겠다, 추후 대한 태황께 조공을 바치고 신하의 예를 올리겠다 등등.
“그 난적들의 말을 믿으십니까, 폐하?”
“믿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 수급도 죄다 가짜일 것이 뻔한데요.”
무엇보다 신하의 예를 올리겠다는 부분. 태평천국은 신정국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로 신의 아들이자 대리인인 천왕이 다른 나라 군주의 신하가 되어서 충성한다는 건 교리상으로 말이 안 된다.
조정에서는 아직 주전론이 대세를 점하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내란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사태를 일으킨 주제에 뻔뻔하게 구는 도적놈들이라는 게 조정 중론이다. 저들이 처음 화친을 제안한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직접 나가 싸우는 군사들과 백성들이 슬슬 진력을 내는 건 사실이다. 공을 세워서 출세하겠다고 벼르는 군사들도 물론 많지만, 대부분은 전공이고 뭐고 일단은 무사히 살아서 귀향하고 싶어 하니까 말이다. 장수들과는 다르다.
“소신은 이제 군사를 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홍적은 송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도적이 아닙니까? 우리와 큰 상관이 있는 건 아니니 결국에는 남의 싸움인데, 남의 싸움에 나가서 죽고 싶어 하는 군사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다른 부서는 아니지만, 재무부에서는 전비 지출이 너무 많다면서 대체 싸움이 언제 끝나는지 계속 묻습니다. 확실히 말해줄 수 없으니, 저도 답답하지요.”
전비도 전비지만, 파견한 군사들을 주기적으로 교대시키는 과정에 생기는 문제점도 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겪었던 문제점들을 우리도 겪는 거다.
세상이 다르니 상관 살해나 병역 거부 같은 거야 없다. 하지만 갓 배치된 군사들이 현지 사정을 잘 몰라서 멍청한 짓을 벌이거나 귀국할 때가 된 군사들이 방심하다가 사고를 치는 사례는 종종 있다. 그렇다고 교대를 안 시킬 수도 없다 보니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송나라 쪽에서는 우리가 군사를 뺀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요. 지금 강남에서는 토적연군 전체가 전쟁에서 빠져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까지 빠진다고 하면 정말 자기들만 남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 예하에 있는 미군이나 누벨 프랑스군도 귀환할 조짐이 보인다. 다들 지친 거다.
그나마 루이지애나 연대는 부대 규모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버지니아 연대는 귀환하는 병력은 줄을 잇는데 올해부터 보충병이 거의 오지 않고 있다. 이제 루이지애나 연대보다 그 수가 더 적을 정도라고 했다.
“토적연군이 빠지면 순전히 송나라 관병으로만 홍적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게 쉽겠습니까. 송나라 조정에서 난리가 날 만하지요. 더구나 이런 판에 우리 황실이 청나라와 혼인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층 더 난리가 났을 겁니다.”
“우리가 청과 손을 잡고 자기네를 치려는 조짐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말이지요.”
생각이 짧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후송을 공격하려면 지금 건너간 토적군을 굳이 철수시킬 필요 없이 그대로 총구 방향만 돌리면 되지 않냐고 할 거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동이다. 그건 수만 군사를 적중에 고립시키는 길일 뿐이니까.
어제까지 우군이던 후송 관군을 공격하라는 명령까지야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 보급과 통신이 모두 끊긴다. 더구나 우리 군사들은 긴 싸움으로 지쳐있다. 탄약과 식량도 보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친 군사들이 맞을 결말은 빤하지 않은가.
고로, 진지하게 후송과 싸울 작정이라면 얼른 군사들을 밖으로 빼내야 한다. 그리고 쉬게 하면서 병기와 물자를 보충해야 한다. 그 이후에야 싸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후송 조정도 이를 알고 있으니 토적연군이 전부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는 데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다. 일차로는 버림받을 게 두려워서, 이차로는 우리가 후금을 흡수하는 작업을 마치고 남진을 준비하는 청나라와 손을 잡을 게 두려워서.
“송나라 정세를 파악할 겸, 공사를 한번 불러들여 봤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였습니까? 혹시 청과의 국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매달리던가요?”
“그랬다가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뻔히 알 텐데 그럴 리가요. 올해 강남에서는 농사가 풍작일 것 같다는 이야기만 하다가 갔습니다.”
송문호는 태후의 아재비뻘 되는 사람이다. 한국에 공사로 올 정도니 아예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올해 봄에 연달아 일어나는 사태들은 그를 거의 공황 상태에 빠트렸다.
일단 토적연군에 참여한 서양 각국이 싸움을 그만두고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홍적은 아직도 그 기세가 왕성한데 저들이 빠져나간다면 혼자 남게 되는 후송 조정으로서는 토벌을 자신할 수 없었다.
물론 외병(外兵) 덕분에 그동안 시간을 벌었고, 군비도 강화하긴 했다. 하지만 도적들을 막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소굴로 쳐들어가 토벌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혹시 할 수 있다고 쳐도 시간과 비용이 무척 많이 필요할 터였다.
그래서 송문호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외무부는 물론이고 한성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홍적 토벌이 완료될 때까지 싸워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심지어 숙적인 청나라 공사 양우성에게까지 도움을 청했다.
「우리 양국이 비록 쌓인 유감이 많기는 하나, 지금은 함께 상대할 도적이 있지 않소. 그 사특한 도적의 무리가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어찌 우리가 서로 싸울 틈이 있겠소?」
「옳으신 말씀이오. 묵은 원한은 일단 뒤로 미루도록 합시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다. 하지만 대층 이런 대화 또는 서신이 오간 건 분명했다. 서로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티가 났다.
양자의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려면 서로 싸울 여유가 없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자 본국에 보고서를 제출할 때마다 이렇게 썼다고 알고 있다.
「상대편에서는 굳이 싸움을 벌이려는 기색이 없다. 고로 우리는 남쪽/북쪽에서의 침공을 염려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준동하는 도적들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이런 협력이 계속 유지됐다면 아마 국혼 제안도 미리 귀띔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경에서는 귀신처럼 양우성을 소환해 버렸고, 송문호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폭탄처럼 터진 그 소식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송나라 공사는 우리와 루스 사이에 혼담이 맺어지면서 청나라 공사관이 발칵 뒤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청나라와도 혼약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혼백이 몸을 떠날 지경이었겠지요.”
내가 불러들였을 때도 이미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뒤로 남경에서 새 지시가 오지는 않았다지만, 지시를 기다리는 그 상황이 더 끔찍할 것이기에 지금 그 상태가 이해가 갔다.
“혹시 원한다면 한양에 눌러살아도 된다고 지나가듯이 한마디 했더니 잠시 화색이 돌다가 곧바로 죽을상이 되더군요.”
“잔인하십니다, 폐하.”
김좌근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머리 위의 앵무새가 똑같이 웃음소리를 흉내 내더니 김좌근의 목소리로 아주 우렁차게 외쳤다.
“얘들아, 출타할 테니 채비해라!”
아니, 김좌근이 얼마나 출타를 자주 했으면 앵무새가 저 말을 외운걸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