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00
4부 484화(2100화)
1.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애를 멀리 동방으로 보내신다고요? 폐하, 너무하십니다!”
“정말 미안하오, 마리야. 하지만 한국 임금이 그 나이에 아나스타샤를 보내지 않으면 약혼 제안을 받지 않겠다는데 어쩌겠소?”
니콜라이 1세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에게 딸을 결혼시키는 건 적어도 10년 뒤가 될 거라고 단단히 약속했었다. 그래서 황후는 멀리 시집가게 된 딸을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겨우 3년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결혼을 취소하면 되잖아요?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더러 다른 나라에 가서 신랑을 맞으라니, 그런 건 중세기에나 있었던 일이에요, 폐하!”
황후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딸을 어린 나이에 시집보내야 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을 어기려고 하는 게 더 화가 났다.
저쪽에서 결혼 시기를 당기자고 할 수는 있다. 그건 예상했다. 그래도 13세에서 14세쯤 됐을 때 혼인하자고 할 줄만 알았지, 겨우 8세가 되자마자 시댁으로 데려가서 10세가 되면 혼인시키겠다고 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한국 황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거야 저쪽 풍습에 따른 행동이니까. 하지만 차르가 그걸 넙죽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건 너무 빠르다, 적어도 3년에서 4년은 더 데리고 있겠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나스타샤는 우리한테 하나밖에 없는 딸이에요, 폐하! 자식이 열두 명이라고 해도 그중 하나를 세상 반대편으로 시집을 보내려면 가슴이 찢어질 텐데,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그것도 고작 여덟 살이 되면 한국으로 보내시겠다고요?”
한국 황태자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인 것도 참았다. 한국이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는 나라라서 여러 후궁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도 양해했다. 심지어 아나스타샤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후궁부터 들일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어차피 유럽에서도 결혼하기 전부터 정부를 두는 남자들은 많으니까요. 아샤가 한국으로 건너가서 혼례를 올리기 전에 황태자가 다른 여인들을 탐하는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어요.”
황후도 다 알았다. 자기 남편인 차르도 자기와 결혼하기 전부터 관계한 여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정부를 따로 두고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일부다처가 합법인 나라의 황태자인 사위가 약혼했다는 이유로 약혼녀가 건너오기를 기다리면서 수도승처럼 살 리 있겠는가.
차르가 처음 세운 계획대로 하면 아나스타샤의 결혼은 12년, 아니 그새 1년이 지났으니 이제 11년 뒤의 일이었다. 신랑인 한국 황태자는 만으로 21세가 된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21세가 되도록 여자에 손을 안 대고 산단 말인가. 그것도 권력과 돈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시어머니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태후는 한국 황태자가 차라리 후궁을 들여서 데리고 있는 편이 훨씬 낫다면서 황후를 다독였다. 후궁이 없으면 분명히 유럽의 왕자나 공자들이 흔히 하듯이 매춘부를 찾아다니면서 성욕을 풀 텐데, 그것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고.
그렇게 놀아나다가 황태자가 매독이라도 걸린다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유럽에서도 수많은 왕가와 명문 귀족 가문들이 매독 때문에 그 가계가 단절되거나 방계로 계승권이 넘어갔다. 방탕하게 놀다가 매독에 걸리는 바람에 불임이 된 가주가 후계자를 얻지 못해서 말이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도 매독에 걸린 요제프 1세가 아들을 못 얻은 탓에 일어났다. 기껏 세상 반대편으로 시집간 귀한 아이가 그런 불행한 운명을 맞게 할 수는 없었다.
「귀한 집에서 자란 믿을 수 있는 처녀가 후궁으로 들어온다면 도리어 다행한 일이지요. 황태자가 몹쓸 병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한국 황태자가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후궁부터 먼저 들이더라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한국을 너무나도 좋게 보는 황태후를 보고 기가 막혔던 황후가 다시 한번 물었다. 황태자가 후궁에게 홀딱 빠져서 아나스타샤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황후. 한국도 제위 계승권은 적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했잖아요? 후궁들이 낳은 아들이 1개 연대라고 해도 우리 아샤가 적자만 낳으면 끝이에요. 후계자로 뽑히는 건 무조건 아샤의 아들이니까.」
「태후 폐하, 황태자가 25년 전에 돌아가신 콘스탄틴 대공처럼 후궁들에게 깊이 빠져서 아샤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요? 그러면 적자를 낳을 기회조차 없을 텐데요.」
콘스탄틴 대공은 니콜라이 1세의 조부인 표트르 3세의 막냇동생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표트르 3세의 유일한 남자 형제였지만, 엽색행각에 빠져서 아내를 팽개치고 평생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래서 적자를 남기지 못해 대공가가 단절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가 표트르 3세의 외아들이고 표트르 3세의 선대인 알렉산드르 1세에게도 남자 형제가 없었으므로, 현재 러시아 황실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족은 알렉산드르 1세의 숙부이자 표트르 2세의 동생인 파벨 대공의 가계뿐이다. 니콜라이 1세에게는 10촌이 된다.
「한국 황실은 서자에게도 계승권을 인정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제 서자가 제위를 물려받은 적은 없어요.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황태자는 분명히 우리 아샤의 몸에서 적자를 얻을 겁니다. 총애하는 후궁이 몇 명이든 상관없이요.」
시어머니인 황태후가 언제 그렇게 한국 황실의 역사에 대해 해박 해졌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국에 꽤 오래 머물다 온 푸시킨을 요즘 자주 황궁으로 불러들이더니 그에게 배웠는지, 황실에서 시녀로 있는 한국계 귀족 가문 부인들로부터 배웠는지.
차라리 한국 측이 혼담을 거절해 줬으면 참 좋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한 황후였다. 하지만 남편도, 시어머니도 이 결혼을 진심으로 바랐다. 며느리인 황후는 결국 시어머니의 주장에 수긍하고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집갈 때까지 10년은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는 말은 믿었는데, 그게 단 3년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폐하! 이럴 수는 없어요!”
“마리야. 차르로서의 내 체면은 중요하지 않소? 어차피 할 결혼인데 몇 년쯤 앞당기는 게 싫다고 취소하면 나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돼요. 게다가 한국 황실과의 혼인은 우리 러시아에 아주 큰 득이 된단 말이오.”
차르는 필사적으로 아내를 설득했다. 정부 관료나 귀족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차르가 호통 한번 치면 끝난다. 그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군주, 차르의 신하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내인 황후는 다르다. 공주의 어머니로서 차르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혼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큰 몫을 한다. 그래서 차르는 황후의 동의를 얻기 위해 한참 옛날에 한국으로 유학했던 알렉세이 2세의 사례까지 끄집어냈다.
“알렉세이 2세 폐하께서 한양에 유학하셨을 때, 그때 딱 만으로 8세가 되셨었소. 그분도 8세에 부모 곁을 떠나 한양까지 가셨는데 아샤라고 못하겠소?”
“잠시 공부하러 가신 알렉세이 2세 폐하를 어떻게 타국에 결혼하러 가는 아이와 똑같이 볼 수 있습니까?”
차르가 무슨 논리를 들이대도 황후는 안 된다고 버텼다. 결국 차르의 분노가 폭발했다.
“나라고 딸을 멀리 보내는 게 달가운 줄 아시오? 하지만 이 제국의 번영을 위해 필요해서 이 혼사를 결정한 거요!”
차르는 한국과 혼인을 맺음으로써 러시아 측이 얻을 수 있는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이점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차르의 말이 너무 빠르기도 해서 황후는 그중 절반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정말로 큰 이익이 된다는 건 알수 있었다.
“지금 황태자비 자리를 잡지 않으면, 늘 그랬듯이 그 자리는 한국 귀족들이 차지하고 말 거요. 그러면 지금과 똑같은 상태가 이어질뿐, 우리에게는 아무 이득도 없어요!”
“알아요, 안다고요!”
마음이 상한 황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나스타샤와 한국 황태자의 결혼이 국가적으로 큰 이익이 된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어린 딸을 내보내기 싫은 건 모성의 영역이었다. 국가적인 이익 운운하는 소리와는 아예 분야가 다르다.
황후는 차르의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한참을 울었다. 차르는 자기가 울린 아내를 차마 나서서 위로하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어머니!”
“아, 아샤?”
어느새 나타난 아나스타샤가 어머니에게 달려와 매달렸다. 파랗고 예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아샤가 갈게요. 아샤가 갈 테니까 어머니 울지 마세요.”
“아샤…!”
자기가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자기가 갈 테니 울지 말라면서 슬퍼하는 어머니를 달랬다. 잠시 멍하니 딸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후의 두 눈에서 또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샤, 아샤! 내 딸, 내 딸…”
딸을 꼭 끌어안은 황후가 오열하듯이 흐느꼈다. 아나스타샤는 영문도 모르면서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 차르도 그 모습을 차마 정면으로 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돌려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췄다. 그리고 애써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마리야, 그만 울어요. 당신 배 속에 있는 아샤의 동생도 생각해야지…”
하지만 멈추고 싶다고 눈물이 멈춰지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황후는 딸을 꼭 끌어안은 채 한참을 더 울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알겠다고, 차르의 뜻에 따르겠다고.
2,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황실이 태자비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는 동안 북경의 청나라 황실에서는 태자비를 맞아들일 실질적인 준비를 슬슬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황실 역사상 가장 대단한 태자비를 모시게 되었구나.”
가정제 덕명의 발언 내용은 비장했으나 어조는 전혀 비장하지 않았다. 덕명은 지금 탁자 앞에 몸을 기대고 앉아 땅콩을 씹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땅콩은 화북에서도 강남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작물이다. 고구마와 땅콩으로 연명한다고 알려진 후송 농민들보다야 화북 쪽 사정이 낫긴 하지만, 그래도 땅콩은 유용한 작물이다. 밀과 더불어 한국에 수출하는 중요한 상품이기도 하다.
물론 중요한 상품이라고 해서 꼭 고급스러운 물건인 건 아니다. 땅콩은 백성들이 흔하게 먹는 싸구려 작물이다. 그런데 덕명은 황제라는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땅콩을 간식으로 즐겼다. 그것도 그냥 간단히 삶아서 소금만 살짝 친 물건을 말이다.
“너는 어떠냐. 대단하신 아내를 받들고 잘살아 볼 자신이 있느냐?”
“황가의 부부생활이야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황태자 영록은 부친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부황은 조부의 난데없는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보위에 오른 뒤에 만사를 가볍게 보지 않게 되었다.
부황이 즉위할 때 영록은 11세였다. 부황이 황위를 지키기 위해서 숱한 역적들을 쳐내는 모습을 모두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황제로서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리려면 무슨 일이든 하고 말겠다고.
“부황께서 치르신 고생에 비하면 혼인 정도야 쉬운 일입니다. 듣자니 한의 공주는 아직 어리지만 재색을 겸비한 재원이라 하더군요. 그렇다면 황실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법도는 잘 익히고 있을 터, 이곳 북경에 와서도 훌륭하게 태자비 노릇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영록이 약혼자인 한의 정현공주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용모도 전혀 모르다가 약혼이 성립된 후에 초상화를 교환하면서 처음 얼굴을 보았다.
어려서 몸이 약했다고 하더니, 과연 마르고 가냘픈 몸이었다. 그렇지만 눈동자에는 마치 강철 칼날이 숨겨진 듯한 예리함이 엿보였다. 그 예리함이 마음에 들었다.
“몸이야 나이가 들면서 건강해지면 되는 것이지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느긋하게 굴어서는 공주가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을 거다.”
지금 청나라는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려 있다. 후금 내란에 개입해서 건주를 재통합한 건 좋았으나 막대한 비용을 치 렀다. 홍수로 초토화된 남부 지방을 수습하지 못했고, 수도인 개봉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다. 홍수가 휩쓴 남부에는 도적들이 들끓었다.
다행히 적수인 후송도 도적들의 반란으로 골머리를 앓는 상황인건 마찬가지라 놈들에게 공격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남과 북모두 자기 일에 바빴다.
한성 주재 공사인 양우성이 후송 공사와 남몰래 회동하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놓아두었던 것도 그가 하려는 바가 북경에서 의도하는 정책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현시점에서 후송과 싸우지 않고 내부적인 조치를 우선하는 것, 그게 덕명의 목표였다.
하지만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국혼은 그동안 유지되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처음 소문이 돌았을 때만 해도 덕명도 믿지 않았다. 러시아가 국혼을 제안해 봐야 한국에서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과 동양은 아예 다른 세계 아니었던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안드는 제안이라면 딱 잘라 거절해 버리면 그만일 흥선제가 거절을 안하는 거다. 예전에 태자 시절 북경에서 만나봤을 때 파악한 바지만, 흥선제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제안을 질질 끌 사람이 아니었다.
혼담을 곧바로 거절하지 않았다는 건 받아들일 생각이 있거나,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그 제안을 이용해 뭔가 다른 일을 꾸민다는 의미다. 설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대비책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국이 러시아에서 태자비를 들인다면’ 우리도 한국 공주를 태자비로 데려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예상대로 귀족들과 중신들의 반발이 만만찮았다.
「한의 공주라면 모국을 뒤에 업고 국정을 전횡하려 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의 공주는 몸이 무척 약하다던데, 어찌 황후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반대하는 명목은 다양했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였다. 황후자리에 대한 욕심이다.
초대 황후인 조선 – 그때는 한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 출신의 효단장황후 이후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10명이다. 그중 만주 귀족 출신이 6명, 보르지긴 씨족의 몽골인이 2명, 후금 공주가 2명이었다. 즉, 대부분 황후가 만주 귀족 출신이다.
더구나 현재 황후인 덕명의 황후 효장문황후(孝莊文皇旨)가 두 번째 보르지긴 씨족 출신 황후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만주 귀족 가문중 황후가 나올 차례라고 예상하고 다들 단단히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미 후보 가문까지 몇 개 거론되는 상태였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 건 실위가한 륵극덕혼이었다. 옛 후금 지역의 존속을 위해, 자기 두 딸을 태자에게 바치겠다고 드러내놓고 북경으로 데려왔다. 그래서 이 자매 중 한 사람이 황태자비가 되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그러던 중에 황제가 이번 황태자비는 한국 공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으니, 조정에서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제는 러시아와 한국이 국혼으로 동맹을 맺는다면 사방이 포위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강변하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리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소. 한과 루스와 준가르와 남적이 한패가 되어 우리를 포위한다면 진실로 큰일이 아니오? 그러니 한과 루스의 국혼이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그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하오.」
「폐하. 그러면 한실(韓室)에서 확실하게 그 혼담을 거절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우리나라 안에서 황태자의 신붓감을 뽑아야지. 이건 어디까지나 한실이 루스 공주를 황태자비로 받아들일 때를 대비한 방안이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청나라 조정에서는 ‘러시아 공주가 한국의 황태자비가 된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한국 공주를 황태자비로 데려오는 계획이 극비리에 수립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 관여한중신들도 이를 실행하게 되리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 혼담이 성립될 리 없지 않은가? 기우일세, 기우라고.」
「폐하의 걱정에 잠시 어울려 드릴 뿐이지.」
황제 덕명도 확신은 못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설마 하던 예상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한양에서 온 ‘한루국혼성립’이라는 전문을 받고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조정에 앉아서 덕명이 단호하게 호통쳤다.
「그것 보시오! 어서 준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도록 합시다.」
중신들도 당황했지만 지금 상황은 절박했다. 혼인을 통한 한국과 의 동맹 강화의 의미는 모두 인정하는 이상, 반대할 수는 없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양우성을 소환하면서 곧바로 영린을 파견, 혼담을 넣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과감하게 움직인 결과로 그동안 천하의 어느 나라도 얻지 못하던 한의 공주를 얻어냈다. 그러니 이번 혼담은 청나라로서는 크나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네가 하기에 달렸다. 공주가 건너오면 잘 지내야 한다.”
“노력하겠습니다, 부황.”
후궁들과 한의 공주 사이를 조율하는 것도 큰일이다. 옛날 태종은 효단장황후를 총애하여 어떤 후궁도 황후의 권위를 넘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단속했다. 장차 영록도 그렇게 해야만 할 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