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07
4부 491화(2107화)
9,
새 군제개편은 각 도에 별도로 있던 병영을 통합해서 동부ㆍ중부ㆍ남부ㆍ북부 4개 사령부로 구성하는 게 핵심이다. 각 사령부는 담당구역 내에서 지구 단위로 소집, 훈련, 지역 방어를 담당하며 중앙군은 공세를 맡은 전력으로써 해외 원정 및 전략예비대 역할을 한다.
가장 담당구역이 넓은 지구는 당연히 청나라와 러시아에 육지로 접하는 북부방위사령부, 일명 현무군이다. 예전 대한북병사에 속한 부대들과 관할구역을 거의 그대로 승계해서 양강 이북 북한 지역 대부분이 담당구역이다.
여기는 4개 지역사령부 중 육지로 가상적과 국경을 접하는 유일한 사령부다. 물론 현재는 청나라와 러시아는 모두 우리 우호국이다. 하지만 만사 철저히 대비해서 나쁠 건 없고, 이 북쪽은 이제나저제나 백정을 비롯한 도적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라 늘 소란하다.
바로 옆이지만 가장 조용한 곳이 북한 지역 중 현토도까지 포함하는 연해주 일대를 맡을 동부방위사령부, 별칭 청룡군이다. 이쪽은 이웃이라고 해야 아모국밖에 없어 할 일도 없는 한가한 곳이다. 한직에서 쉬고 싶은 장교들을 보내기 딱 좋은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예전에 대한남병사 관할이던 양강 이남 한반도 지역도 담당 사령부가 두 개 설치되었다. 다만 이쪽은 북한보다는 양자의 균형이 좀 더 맞는다.
먼저 일본과 가까운 삼남 방면은 제주도, 대마도에 일기도까지 묶어서 남부방위사령부로 편제되었다. 별칭은 주작군이며 이들은 삼남 지방의 방어와 더불어 유사시 일본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삼남을 제외한 한반도 북부 지역은 중부방위사령부 예하에 들어간다. 수도 한성이 속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남북 두 사령부의 예비대 역할인 셈이다. 하지만 한성을 포함하는 경기도 일대에는 삼군부 직할인 오군영 예하 중앙군이 다수 주둔하므로 다소 의미가 퇴색된다.
이 ‘중부’라는 지역구분이 참웃긴 게…만주가 북한이라고 불리니 본래 세계에서 북한이던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우리 대한의 ‘중부지방’이 되고 말았다. 지도를 보다가 현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가끔 피식 웃곤 하는 원인 중 하나다.
다만 중부방위사령부라고 해서 별칭이 황룡군인 건 아니다. 중부방위사령부는 별칭으로 서방을 상징하는 백호를 쓴다. 이유인즉슨 간단한 것이, 황룡은 임금의 상징이니 지역 단위 사령부에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각 지역 사령관의 호칭은 ‘0부대장군’이다. 예전 ‘대한0병사’와 마찬가지로 정2품 상장 계급이 임명되는 보직으로, 고려 때 무관 벼슬인 대장군과 조선에 들어와서 그 이름을 바꾼 대호군(大護軍)이 종3품이던 데 비해서는 품계가 크게 올랐다.
사실 고위직이 이처럼 늘어난 데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데 대한 고위 무관들의 불만을 수습하려면 퇴직하는 장수들을 중추원에다 넣어주는 정도로는 턱도 없었기 때문이다. 눈길을 확 끌 수 있는 미끼가 필요했고, 이게 대장군 자리였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자리가 많이 늘었다. 두 개였던 사령부가 네 개가 됐고, 당연히 각 사령부에는 행정조직과 참모부가 별도로 설치됐다. 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기는 하지만 기구가 늘어나면 당연히 인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군과 지방군 모두 연대 위에 사단 또는 여단이 편성되며, 중앙군은 전원이 상비군으로 편성되나 지방군은 기간이 되는 상비군 일부에 다수의 예비군이 편성되는 체제로 간다.
본국 인근 속주인 대남과 누손, 북구주도 각 주 병영에 속한 병력을 순검대와 지역방위를 맡은 예비군으로 개편했다. 이 지역들도 미주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정규전이 일어날 위험은 별로 없고, 평시 치안 유지 작업에 투입할 경무장한 치안부대 쪽이 더 유용해서다.
거리만 놓고 보면 구주총관부가 남부방위사령부 관할로 들어가는 게 적절해 보인다. 허나 일본과 우리가 북구주를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는 상황도 아닌데 우리가 북구주에 군사적인 변화를 먼저 초래할 필요는 없기에 그대로 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사령부가 어쩌고 담당구역이 어쩌고 하는 거야 사실 군역을 수행하는 백성들 입장에서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겪은 예전 세상에서든, 이쪽 세상에서든 일반인이 군대 문제로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이거니까 말이지.
“뭐? 군역 기간이 늘었다고??!”
10.
오늘은 평범한 군관복 차림으로 슬그머니 암행을 나왔다. 반촌다점에 들어가서 가배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으려니 비분강개한 국자감 유생들의 성토가 귓가에 들려온다.
“아니, 1년만 하면 되던 군역을 2년으로 늘리다니, 그게 될 말인가!”
“그러게나 말일세! 사지 멀쩡한 모든 장정이 1년씩 복역하는 것이 본래 이 나라의 법도가 아니 었는가!”
슬쩍 훑어보니 스물 남짓한 젊은이들이다. 국자감에 합격했으니 일반 병역은 면제됐지만 향도로 대체복무를 해야 할 터, 그 기간이 늘어나는 게 싫은 게다.
“그것도 약과일세. 5년 뒤부터는 3년으로 늘어난다지 않는가!”
그중 한 사람이 나서서 탄식했다. 다른 이들도 한숨을 토하며 동조했다.
“3년씩이나 군역을 치러야 한다니 ….세상에나.”
“1년으로 되어 있는 병역 기한을 일거에 세 곱절이나 늘린다고 하면 백성들의 반발이 클 텐데.”
복무기간 연장 문제를 건의하러 온 몰트케에게 내가 건넨 첫마디는 회의적이었다. 허나 예상한 반응이었는지 몰트케는 당황하지 않았다.
“겨우 1년 동안 복무하는 병사들은 민병대나 다름없습니다. 대한이 오랫동안 평화를 누린 탓으로 군대를 정예화할 필요성이 적었던 것은 이해합니다만, 날로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고려하신다면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연장하셔야 합니다.”
몰트케는 고문관으로서 많은 군영을 살피며 다녔다. 최고급 정예부대인 금군이나 도감군, 등선군만 보고 다닌 게 아니라 여러 도 병영에 속한 지방군이나 예비군 부대도 살폈다.
그러면서 우리 대한군이 계약을 맺고 5년 동안 복무하는 고병(雇兵)을 사실상 주력으로 삼고 있으며 징병된 일반 군사들은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을 맡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연구 끝에 올린 게 복무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라는 건의였다.
“짐도 복무기간이 길면 숙련도를 올리기 유리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1년이던 병역을 3년으로 늘린다면 백성들의 원성이 치솟을 터, 그 문제를 어찌할 생각인가. 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나도 군대 다녀왔다. 그런데 갑자기 복무기간이 늘어날 거라고 하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제대한 뒤 군번부터라면 어디 X 돼보라면서 낄낄거리고 비웃겠지만, 그 희생자가 내 동생이나 아들이나 조카가 되면 또 문제가 곤란해진다.
하지만 몰트케는 그 정도 반발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복무기간 연장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는 논리였다.
“복무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전체 병력 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니, 어차피 징집할 인원을 어로 줄여야 합니다. 복무가 면제되는 이들은 새 병역법을 반길 테니 복무기간이 늘어나는 데 대한 저항은 크게 줄어들 겁니다.”
몰트케는 징집 인원을 줄이고 복무기간은 연장하는 조치가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가장 질 좋은 자원만 골라 선발할 수 있고, 이들에게 한층 더 질 높은 훈련을 시행하면 그만큼 정예병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5년 복무 직업군인 자원은 하사관으로 돌리면 됩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징 병 인원을 줄인다면 신체 건강한 모든 백성이 평등하게 군역을 치른다는 기본 이념이 무너지게 되고, 유사시에 다수의 예비군을 충원하는 체제도 유지하기 어려워지오.”
내가 그동안 몇 번이나 복무기간을 좀 연장하고 싶었으면서도 결국 1년 복무를 유지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이거였다. 공정성 문제.
어떤 이유에서건 면제받는 놈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병역을 ‘회피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거 없애려고 장조 때는 상류층 자제들이 이름만 걸어둔 채로 놀아나는 부대였던 족친위를 전선에 밀어 넣어 떼죽음까지 시키지 않았었나.
임금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종친을 군대에 집어넣을 수 있었던 것도 대한의 모든 사내는 사지만 멀쩡하면 군역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그 원칙이 사라지면 또 대대적인 병역기피가 시작될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입대하는 병사 태반이 대학생인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입영하는 장병 9할은 이미 성인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다가 오는 사람이다. 이미 혼인해서 처자가 딸린 사례도 있다. 그런 이들을 3년 동안 가족으로부터 떼어놓아야 하는 거다.
옛날 번상병제 군대에서야 매년 두어 달씩 번을 설 때만 복무하니까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 군대에서는 병사들이 3년 동안 꼼짝없이 군대에 붙박여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합지졸, 이 표현이 맞지요, 폐하? 공평한 복무로 그런 까마귀 떼와 같은 군대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공평해질 소지가 있더라도 장기간 복무하여 숙련된 병사들로서 군대를 구성하는 편이 낫습니다. 선발을 공정하게 할수록 불공평은 덜해질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기야 지난 수백 년 동안 ‘사지 멀쩡한 대한의 사내라면 당연히 군역을 치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유지해 왔으니 지금 입영 대상자를 좀 축소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아마 징병검사에 탈락한 녀석들을 반푼이 취급하지 않을까.
물론 정상적으로 군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사회적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 관해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예비전력 문제는, 현역병 입영 대상은 아니지만 군 복무에 문제가 없는 이들에게 자원을 받아 예비연대를 편성하고 조금 짧게 복무하게 하시지요. 지원하는 인원이 모자라면 정원을 채울 만큼은 징병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주방위군처럼 자원한 상근예비역으로 구성한 연대를 만들라는 말이로군. 하긴 현대 한국군도 80년대까지 방위병으로 구성된 전투부대들이 여럿 있었지. 딱 그거구먼.
결국 복무기간을 연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단박에 1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건 아무래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타협안을 구상했다.
“일단은 2년으로 하고, 사람들이 좀 익숙해지면 다시 3년으로 늘리는 게 좋겠소.”
“그건 폐하께서 선택하실 일이지요.”
그렇게 해서 육군부와 비변사, 중추원 등에서 몇 년에 걸쳐 이 문제로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가 올해 입대하는 인원들부터 2년을 복무하는 거다. 임자년(1852)부터는 3년이고.
당연한 소리지만 이건 지금 갑자기 발표된 게 아니다. 백성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 조보를 통해 미리 공지도 나갔다. 저 유생들은 그 문제에 관해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지금 군역이 눈앞이라 당황해하는 것이리라.
입대를 미루려면 대과 준비라는 명분으로 초모에 응하지 않고 몇 년쯤은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 자칫 실패하면 2년이 아니라 3년을 복무해야 한다.
“안됐구먼, 젊은것들이. 그러게, 열여덟이 되자마자 초모에 응했으면 딱 1년 구르고 아주 깔끔하게 끝냈을 것 아닌가. 외무협판처럼.”
지금 외무협판은 박규수다. 미주에서 봄에 귀국한 뒤 한동안 사가 독서를 받아서 쉬다가 얼마 전 조정으로 복귀했다. 이제 내 측근으로 아주 열심히 일해줄 날만 남았다.
“군역을 힘들게 여기는 건 당연한 심리 아니겠습니까, 나리. 저희 같은 놈들을 빼고는…..”
내 호위를 맡아 따라온 선전관 이종무(李宗武)가 넉살 좋게 웃었다. 그동안 북한 쪽에서 주로 경력을 쌓다가 얼마 전에 경군으로 왔고, 용력이 무척 뛰어난 데다 경력도 꽤 좋아서 선전관으로 기용되었다.
사실, 이종무는 알고 보니 옛날 내 의형제였던 보리스의 후손이었다. 공부와 담을 쌓았던 조상과는 달리 강무관에 들어갈 정도의 학문은 익힌지라 당당하게 군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얼굴은 일반 한인과 별 차이가 없다. 애초에 보리스부터가 혼혈이었고, 그동안 피가 계속 섞인 탓이다. 그래도 체구는 보리스만큼은 아니어도 꽤 큰 편이다.
“어쩌시겠습니까, 저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렵니까? 녹봉도 예전보다 올랐고, 과거시험에서 점수도 더 붙여주니까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뜻 잘 다녀오라고요?”
“괜히 오지랖을 부릴 거 있느냐. 그냥 놔두고 나가면 그만이지.”
혹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가서 오늘 발언을 거론하며 놀려먹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나갈 시간이 다 됐는데 남의 가게 안에서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 쟤들 인생인데 저 정도 고민할 권리는 있지 왜.
다녀를 불러 계산을 치르고 유유히 문을 나섰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수수하게 차리고 장옷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부인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낯익은 시녀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건넸다.
“어서 오시지요, 마님. 극장에 가실 준비는 되셨는지요.”
“물론이오, 이 군관. 오늘 상연작은 무엇이오?”
“불랑국의 작가 뒤마가 쓴《삼총사》라는 소설을 연극으로 번안한 작이라 합니다.”
중전은 마치 정인과 밀회를 즐기는 양반집 아낙처럼 행동했고, 나도 장단을 맞췄다. 함께 외출할 때는 종종 이런 식으로 유희를 즐기곤한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마님. 표는 여기 준비해 놓았습니다.”
“고맙소이다.”
중전이 자기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고 확신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외출이다. 내가 다른 후궁들과는 절대 이런 식으로 놀지 않기 때문이다. 붉게 상기된 뺨이 참 고왔다.
11.
이처럼 몰트케는 우리 대한군의 운용 체제, 즉 소프트웨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센 참모본부의 총아다운 능력이다.
그리고 같은 프로이센 출신으로 우리 대한군의 하드웨어, 실제적인 설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하나 또 있다. 바로 훔볼트다.
자연과학자인 훔볼트가 대한군의 하드웨어에 영향을 미칠 게 뭐 있나 싶겠지만,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각 군영에 공급할 양회의 수급은 잘 되고 있는가.”
“순조롭사옵니다, 폐하.”
양회(洋灰)란 서양 회반죽, 즉 시멘트를 말한다. 그동안 우리 대한에서는 시멘트를 쓰지 않았었다. 만드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석회를 사용했으므로 시멘트를 아예 안 쓴 건 아니다. 훔볼트한테 전달받은 건 현대적인 유럽식 ‘포틀랜드 시멘트’를 만드는 방법이다. 다만 그 제조법이 영국 발명가에 의해 특허가 걸려 있어서 돈 주고 특허권을 사 오긴 해야 했다.
나야 그전에도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생산한다는 기본 원리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석회석을 가공해야 시멘트가 되는지를 잘 몰랐다. 생석회에 모래를 섞고 물을 부어본 적은 있는데, 그 결과물은 좀 애매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돌과 흙과 나무, 벽돌 같은 전통적인 건축 재료만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훔볼트가 왔다.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광물자원을 조사하더니 시멘트 제조에 쓸만한 석회석이 생각보다 여러 곳에 매장되어 있더라고 알려준 게 아닌가.
그래서 영국에서 특허권을 사들여서 시멘트 공장을 지었고, 직접 생산하는 과정에서 높은 온도로 석회석을 굽는 공정을 추가하여 품질을 더 끌어올렸다. 그리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한 게 철근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철근콘크리트가 시멘트가 보급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나 발명되었지만, 나는 그 역사를 다 알고 있으니 굳이 누군가 발명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내가 바로 철근 구조에 관한 특허를 냈다.
다이너마이트에 철근콘크리트까지 추가됐으니, 올해는 우리 대한의 토목에 있어서 확실한 신기원이 잡힌 해인 셈이다.
여기서 시멘트 초기 생산분을 군영에 공급하라고 한 건,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도 익힐 겸 그걸로 진지 구축을 해보라고 내가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자고로 군대 하면 ‘공구리’가 들어가는 법 아니겠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