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13
4부 497화(2113화)
20,
“공주 전하의 전족 말씀이십니까…?”
중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자꾸 머릿속에서 전족 이야기가 맴돌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생각났다. 그 문제를 문의해 볼 사람이 코앞에 하나 더 있지 않은가! 더구나 송문호는 태후의 일가붙이이니 황궁 출입도 자주 했을 테고 조카손녀인 공주에 대해서도 알 테니까.
그래서 불러들였다. 그리고 물어봤다. 창이한테 시집보낸다던 공주는 과연 전족을 했는지, 했다면 대체 몇 살부터 했는지.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폐하…송구하오나 공주께서는 전족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화공주 전하만 안 하시는 게 아니고, 본래 황실의 공주는 누구도 전족을 하지 않습니다.”
거울을 본 건 아니지만, 아마 이 말을 들은 순간의 내 표정은 근래 보인 적이 없을 만큼 멍청했을 것 같다. 내 표정을 무슨 의미로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문호가 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이….세간에서 전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소인의 처와 딸과 손녀까지 모두 전족을 했을 만큼 전족이 흔한 풍습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황실에서는 전족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황실의 관습입니다.”
“지난번에 특사로 온 하 공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모르겠다고만 하던데?”
“그건 그저 하 대인이 여인들의 습속에 관해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뿐입니다. 아마 하 대인은 자기 처가 밥을 숟가락으로 먹는지 젓가락으로 먹는지도 모를 겁니다.”
중국에서는 본래 한국에서처럼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과의 교류가 늘면서 한국식 숟가락을 쓰는 사람도 생겼다. 이것도 문화적 영향이라면 영향이겠다.
“전족은….전족을 해야만 좋은 집안에 시집갈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겁니다. 하지만 황실의 공주를 배필로 맞는다면, 어찌 전족이 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그 혼사를 거부하겠습니까? 황은을 입어 황실과 연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해야지요.”
아, 그러니까….후송 황실이 공주들에게 전족을 시키지 않는 건 그게 안 예뻐서가 아니라 일종의 배짱을 부린다는 소리였다. 남들은 다 하지만 황실은 안 하는 것, 이런 거 안 해도 너희는 황실과의 혼인을 거부할 수 없다는 여유.
이렇게 된 시초는 역시 조승복이 었다고 한다. 조승복 자신은 발을 싸맨 후궁을 여럿이나 들였으면서도 자기 딸과 손녀들에게는 전족을 금지했다. 그리고 모두 후송 유수의 명문가에 시집을 보냈다.
아마 조승복은 자기를 염상(鹽商) 출신이라고 깔보는 ‘고귀하신 분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어떻게 엿을 먹이면 좋을지를 궁리하다가 저런 생각을 해낸 모양이다. ‘전족 안 한 공주를 아내로 맞을래, 칼맞고 죽을래?’하고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준 셈이다.
“그래서 그 뒤로 황실의 공주들은 민간에서의 관습과는 별개로 발을 묶지 않는 게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한가.”
내가 왜 대체 이걸 몰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단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아니, 후송 황실하고 혼인할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는데 걔네 딸들이 발을 천으로 싸매는지 안 싸매는지 궁금하게 여길 이유가 뭔가.
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족이 좋은 풍습 같으면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는지 궁금했겠지만 참으로 야만스러운 사람 잡는 풍속이 아닌가. 그렇다 보니 아예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내게 귀띔해 주지 않았고.
“공주들만이 아니고 궁녀들도 발을 싸매지 않습니다.”
“그야 궁녀들은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 하니까 그렇겠지.”
거 참 별 거를 가지고 황실의 권위를 세우는구나 싶으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이한테 시집을 공주와 공주가 데려오는 궁녀들이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불구가 아니라 멀쩡한 몸으로 온다는 말이니까.
말이야 바른말이지, 영화공주가 전족한 발로 비틀거리면서 입궐하는 광경이 사람들 눈에 띄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순(一旬, 10일) 안에 도성은 고사하고 전국에 ‘송나라 놈들이 태자 전하께 병신 공주를 보냈다!’라는 소문이 퍼지고도 남는다. 그런 일이 터져도 되겠는가?
그런 소문은 후송 황실뿐만이 아니라 우리 황실 체면도 깎아내린다. 그래서 예절 강사로 보낸 상궁들을 통해 전족을 이미 했으면 풀고 오라고 전한 거기도 하다.
성급하게 굴지 말고 상궁들이 첫 보고서를 보낼 때까지 기다렸으면 괜히 송문호 앞에서 멍청한 꼴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낯이 좀 따갑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살다 보면 이런 실수도 하는거지.
21.
한왕 조심원은 송태후가 계속해 부르는데도 여전히 남경에 안 가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옆에 여전히 측근으로 붙어 있는 상장군 고문휘의 영향이 크다.
“그 늙은이, 벌써 여든이 훌쩍 넘지 않았는가?”
“여든은 아직 안 되었습니다. 올해 일흔아홉일 겁니다.”
그 나이를 먹도록 조정에 출사하는 사람은 종종 있어도 그 나이를 먹도록 전장을 누비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염파와 같은 장수는 보기 힘들다. 당장 우리 대한만 해도 아무리 늦어도 일흔쯤이면 다들 퇴직하지 않는가.
하지만 고문휘는 여전히 조심원을 수행하며 그 주변을 챙기고 있다. 후송 조정에서 그도 조심원과 함께 복권해 준 덕분에 정식 상장군 직함을 달고 말이다.
이들이 복권되면서 덕을 본 사람으로는 이들의 탈출을 도운 죄로 사실상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던 예전 회주도통사 장문성도 있다. 임칙서에게 기용되어 강용군 참모장 노릇을 맡았던 이 노장도 백의종군 8년째에 접어든 올해 복권되어 고문휘와 같은 상장군 품계를 받았다.
“어떤가. 헌왕이 정말 조정에 반기를 들려는 자들과 손을 잡으려는 기색이 보이는가?”
우리 쪽에서도 송태후만큼이나 조심원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뭘 믿고서 그 녀석을 자유롭게 풀어두겠는가. 처자식을 볼모로 잡아뒀다고는 해도, 조심원이 대업을 위해서라면 부모라도 팽개칠 수 있는 유방 같은 심성을 가졌다면 아무 소용 없다.
조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누가 그를 찾아와 어떤 제안을 건네는지 정도는 확인하고 있다. 현재 조심원의 상황에 관해서 묻자 바로 답이 돌아왔다.
“광주의 공행(公行)들이 보낸 사자가 헌왕의 진영을 몇 차례 드나들었습니다. 양광총독부 쪽과 미리 논의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송나라 조정이 짐에게 특사까지 보내서 아예 헛소리를 지껄인 건 아니었구먼. 양광총독부가 정말 역심을 품기는 한 게로군.”
헌왕 주변에 붙여놓은 우리 끄나풀들은 유능했다. 광주에서 온 사자의 광주 방언까지 잘 알아듣고 그 내용을 우리 쪽에 전했다.
“공행들은 그저 장사나 하면서 풍요롭게 살고 싶어 하는데, 멀리 떨어진 남경의 조정에서 현지 사정도 모르고 이래라저래라하며 간섭하는 게 싫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헌왕에게 양광 땅을 바치겠다며, 보위에 올라 평화를 내려달라며 부추기고 있습니다.”
“양광총독부는? 헌왕이 광주에서 황제가 되면 임 총독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권력을 잃는 게 아닌가.”
“광주에서 수집한 첩보에 따르면, 헌왕을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하고 그 밑에서 실권을 쥘 생각인 듯하였습니다.”
하기야 조심원에게는 양광 땅에 기반이 전혀 없다. 그러니 공행과 총독부 측에서 펼치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다면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이번 전쟁으로 명성은 제법 높아졌지만 실제로 손에 쥔 건 아직 없지 않은가.
“공연히 역적이 되어 좋을 건 없으니, 섣불리 넘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라. 비록 송국 조정이 이번 난리로 크게 지치긴 하였으나, 작정하고 양광을 정벌하면 양광총독부가 거느린 군사로 막아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전하고.”
“예, 폐하.”
문제는 그 ‘작정’을 할 수 있냐는 부분이지. 후송 조정은 최대 강적인 청나라의 동향에도 신경을 써야만 하고, 부상군이나 공화주의 자들과 같은 내부의 불만 세력도 아직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강화를 맺었다고는 해도 태평천국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또 대규모 내란을 일으키기는 좀 부담스러울 거다. 내륙에 봉쇄할 수 있기라도 한 태평 천국과 달리, 양광총독부는 봉쇄할 수도 없다. 가장 개항장이 많이 들어선 지역이 양광 땅인데 후송 수군이 무슨 수로 그걸 다 막겠는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착상이긴 했지만, 헌왕을 월왕으로 책봉하라고 권하면서 그런 점까지 고려한 건 맞다. 광동 측에서는 남경 조정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적당히 자율성을 누릴 수만 있으면 꼭 독립하지는 않아도 만족하겠다는 분위기거든.
그리고 후송 조정 측은 이미 태평천국을 진압하는 데 실패한 터라, 두 번째 반란까지 못 막게 되면 위신에 엄청난 타격이 온다. 그래서 황족을 번왕으로 봉하는 형식을 빌려서라도 당장 양광이 진짜 반기를 드는 사태를 막고 체면을 차리는 쪽이 나은 것이고.
지금 조심원은 후송 황실에서 사실상 황제 다음가는 서열이다. 본래 법도대로라면 당연히 황태자가 황제 다음이겠지만, 적자가 없다는 이유로 함화제가 황태자 책봉을 극력 거부하고 있어서다. 서자 중 딱히 후계자로 거론되는 황자도 없다.
송태후가 요즘 보이는 태도를 보면 함화제를 폐위하고 아예 조심원을 새 황제로 올리려는 생각도 없지는 않은 듯하다. 남경으로 불러들여 안심시킨 후 은밀히 암살할 생각이라기에는 조심원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극진해 보이니 말이다.
“태제로 책봉하려는 생각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폐하?”
“현 황제가 대체 언제 죽을 줄 알고 태제로 책봉하겠느냐. 되려 태제 운운은 헌왕을 괜히 역적으로 몰려 죽게 만드는 결과밖에 안 될 거다.”
송태후는 조심원을 어찌 처우하면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황제의 이름으로 남경으로 부르면 그만인데, 그걸 안 하고 있지 않은가. 호출에 따르면 충신이라고 보면 되고 거부하면 역적으로 규정하면 끝인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헌왕을 또 역적으로 규정하면 난리가 날 것 아닙니까.”
“그러하다. 그래서 송태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헌왕을 놓아만 두고 있는 것이고. 그러느니 차라리 헌왕에게 월왕을 봉하는 편이 낫다고 내가 권한 게 아니겠는가.”
양광 땅이 안정화되기를 바라는 건 그게 우리한테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양광 땅에 있는 우리 거점, 뇌주와 해릉도가 안정되어야만 그 남쪽에 있는 안남 방면에 제대로 신경을 써줄 수 있지 않나 말이다. 뒤통수가 근질거려서는 앞에 놓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22,
안남은 분명한 우리 번국이다. 하지만 후송에도 칭신하는 이중 번국이라 우리가 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좀 난감한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동안 역대 태황들은 안남인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짓을 하며 지지고 볶아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좀 컸다. 상국인 우리가, 아니 2번 상국인 후송 조정까지 전력을 다해 태평천국을 토벌하고 있는데 그 태평천국에 무기를 파는 놈들이 자기 땅에서 활동하는 걸 묵인했다.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하노이로 들여가는 물자와 인력이 전부 아편값으로 서나라에 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게 실은 태평천국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정말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안남국왕인 소치제 완복선은 본인은 국정에 바빠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줄 알지 못했고, 무기 밀매는 전적으로 불랑국인들이 멋대로 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기가 찬 변명이다.
“안남국왕은 이번에 보낸 우리 조회문에는 뭐라 답하였소?”
“예전과 같습니다.”
“아무리 내우외환으로 바쁘다 해도 성의가 없군. 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잖소.”
당장 잘못했다고 달려와 빌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 사람 좋은 송태후도 이런 상황에서는 참지 않을 텐데, 이런 식으로 오리발이라. 참고로 송태후는 도저히 안남까지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고 관심을 꺼버렸다. 뭐, 죽고 싶을 만큼 바브고 지쳤을 테니 이해는 한다.
하여간 그 후송과 공유하는 번국이라는 문제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예 대놓고 우리 밑에 있는 놈들이면 수도에 감관을 상주시키고 감시라도 했을 텐데, 후송하고 우리가 서로 눈치를 살피느라 어정쩡하게 손을 대지 않고 놔둔 통에 이 사달이 났다.
「폐하, 저희는 정말 그 사안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무기 밀수 건은 동인도회사 쪽에서 멋대로 저지른 겁니다.」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관에서는 이렇게 항변했다. 아예 계통이 다르니 자기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베트남 지사는 저희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됩니다. 저희로서도 베트남 지사가 무슨 생각으로 몇 년이나 그런 거래를 지속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물포 주재 프랑스 동인도회사 상관장도 똑같은 방식으로 꼬리를 잘랐다. 말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몰랐던 것 같기는 했다. 알면서 모른다고 둘러대면 아무래도 티가 나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이 문제의 책임을 따지려면 우리한테 들통이 나기 석 달쯤 전에 퇴임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나삼이 놈을 잡아서 추궁해야 한다. 그런데 이놈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백작은 불랑국 대총통의 최측근 중 한 사람 아닙 니까? 딱히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입증된 것도 아니니 우리가 백작을 죄인이라고 규정하며 인도하라고 해도 절대 넘기지 않을 겁니다.”
법무대신 박승길이 단호하게 확언했다. 혹시 나삼 그놈이 우리 본국에서 사건을 저지르고 도망간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안남에서 저지른 일을 두고 프랑스 본국에서 문제로 삼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프랑스 정부로서는 그저 그놈이 돈을 많이 벌었을 분 아닌가.
게다가 그 돈을 어디 나삼이 놈이 혼자 먹겠는가. 위에도 돌리고 아래에도 부리고 신나게 정치자금으로 쓰겠지. 그 수혜를 받을 놈들이 들러붙으면 더더욱 끌어내기 힘들어질 테고.
정말이지 안남을 그동안 어중간한 위치로 내버려 둔 게 후회가 되려고 한다. 마침 후송이 뭐라고 대들고 나서기 힘든 상황이 됐으니, 강화조약이 마무리되는 대로 안남을 좀 족치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원래 세계에서 베트남이 하던 걸 생각하면 족친다고 말을 잘 듣지도 않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안남에 크게 손을 안 댔던 이유 중 하나도 원래 역사에서 베트남이 프랑스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연달아 싸우면서도 버티는 걸 봤기 때문이었거든.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이제 신경을 좀 기울이기는 해야겠다. 그래야 안남도 가까이 있는 조홀국처럼 좀 제대로 말을 듣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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