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14
4부 498화(2114화)
23.
조홀국에서 새 국왕이 즉위한 지도 벌써 3년째다. 선왕인 헌제왕(憲齊王) 정윤진이 잔치 자리에서 술병이 나서 죽었다는 황당한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그래도 그대가 상을 다 치르고 돌아와서 반갑구나.”
“저도 폐하를 다시 뵈어 영광이옵니다.”
조홀국의 왕자….아니, 이제는 왕제(王弟)가 된 파항공(破抗公) 정호찬이 정중하게 바닥에 엎드려 내게 절을 올렸다. 부왕의 삼년상을 치르고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다시 온 거다.
정호찬은 그간 있었던 조홀국 소식과 오면서 보고 들은 여러 나라 사정에 관해 보고했다. 공식적인 보고보다 좀 더 내밀한 사정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개중에는 안남 쪽 사정에 관한 이야기도 몇 가지 있었다.
“안남국왕은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다고 하옵니다.”
“그건 짐도 알고 있다. 어서 쾌차해야 할 텐데 말이다.”
안남을 족치는 일정을 홍콩에서의 강화조약 체결 이후로 미룬 이유 중 하나가 안남국왕의 건강이었다. 듣자니 병에 걸려 앓아누웠다는데, 알아보니까 이게 꾀병은 아니고 정말로 좀 아프긴 한 것 같았다.
지난번 표문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그 성의 없는 표문을 눈 감고 받아준 것도 국왕이 아프다는 소식 때문이 었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사정 좀 봐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명색이 상국인데 그만한 아량은 있어야지.
어차피 태평전쟁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데도 시간이 좀 남았으니 상관없었다. 우리 대한이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소규모라고 해도 한 번에 전선 두 개 굴리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거든. 괜히 주의가 분산된단 말이다.
물론 꼭 그래야 할 상황이라면 경인왜란 때처럼 한꺼번에 네 방면 전선을 챙겨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무리는 안 하는 편이 낫다. 안남이 대놓고 우리를 공격한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러니 완복선이 병석에서 일어날 때까지 정도는 기꺼이 기다려 줄 의사가 있다. 대신에 자리 털고 일어나면 본격적으로 밀린 계산을 치르게 해야지.
“그나저나, 일군과 그대들의 협력은 잘 되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태평천국 토벌에 동원됐던 일본군이 아체 방면으로 돌려진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지금 일본군은 조홀국을 거점으로 삼아 아체와 싸우고 있다. 조홀국은 일본군에 주둔지와 물자를 제공하면서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아체 원정에 투입된 일본군은 후송에서 빠져나온 막부 관군 2만에 미쓰이 용병 1만, 새로 추가된 불교 의용군 1만여 명까지 해서 약 4만 명이다. 그리고 나도 놀란 부분이지만, 우리 불교계에서도 승병군 2천 정도가 자진해서 참전했다.
「간악한 도적들이 감히 부처님의 길을 밟으러 가는 승도들을 죽이고 범하였으니 . 마땅히 지옥의 불길로 그자들의 죄를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이나 우리나 승병들이 순례단 보호를 맡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현대로 따지면 불교 교단이 일종의 I小40를 운영하는 셈이다. 이게 꼭 자기 나라 순례단만 지켜주는 건 아니라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상대국 신도들을 경호하거나 호송대를 혼성으로 편성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양측 간의 친분도 무척 두텁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면 함께 보복에 나서줄 만큼 말이다. 물론 출병 전에 내게 허가는 구했다. 무단으로 나간 건 아니다.
다만 이는 불교 교단 차원의 행동이지 우리가 공식적으로 참전한 건 아니다. 일본 측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일본 측에서 요청한 건 비행선으로 적진을 정찰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정도였고, 논의 끝에 본국에서 세 척을 파견하기로 했다. 곧 도착한다.
“술탄은 어찌 해적들 따위를 덮어주느라 고집을 부려 일을 이토록 크게 만들었는지.”
포로들을 살려서 몸값과 교환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도 모르는 멍청한 해적들이 었다. 술탄이 왜 그놈들을 덮어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혹시 그동안 우리나 네덜란드와 싸워서 정복 안 당하고 버텨 냈다고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거 품고 있나.
우리가 그동안 아체를 정복 안 한 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을 뿐이다. 미개척지는 누손과 조홀국에도 아직 잔뜩 있는데 굳이 아체까지 먹으려고 할 이유도 없었고, 해사도와 조홀국을 얻었으니 항로 확보 때문에 아체를 노릴 이유도 없고.
“그대로 갈 수 있었는데 어리석은 술탄 때문에 일본국에만 좋은 일이 되었구나.”
대군을 출병시켜 아체 원정을 감행한 쇼군이 사과만 받고 물러날 리 있는가. 당연히 종전 조건으로 막대한 이권을 뜯어낼 게 분명하다. 일본에는 그만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도 있고, 그게 지금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기본적인 행동 방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거슬리는 건, 지난 250년 동안 유지되던 일본의 대외진출 제한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동안 에도 막부는 해외에 나간 세력이 본국과의 연계를 끊고 독립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해서 대외진출 시도를 극도로 억제했는데, 그게 끝날지도 모른다.
“신이 만나본 일본군 장수 몇이 공공연하게 말하기를, 아체 땅 절반은 배상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거야 허언이겠지만, 적어도 항구 몇 개 정도는 내놓으라고 하겠지.”
일본이 지금 우리와 적대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놈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면 위신 때문에라도 우리도 뭔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어딘가에 새로 깃발을 꽂음으로써 대한의 국위를 선양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명분이 생길 만한땅이 어디 있으려나….”
인사를 다 받은 정호찬을 내보냈다. 그리고 손에 든 석묵필을 돌려 잡고 지우개 부분으로 지도를 짚었다. 명분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건 내키지 않으니 확실한 명분은 잡은 다음에 일을 벌여야 하는데 지금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안남은 논외다. 안남은 본래 우리 번국 아닌가. 자랑할 깃발은 새 땅에 꽂아야 한다.
“240년인지 250년인지 전 일을 가지고 오스만이랑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목가사변. 지금 그때 같은 일이 터지면 곧바로 오스만에 선전포고하고 만 단위 원정군을 보내도 이상할 게 없다. 메카나 메디나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페르시아만 – 나는 거기를 ‘걸프’라고 부르는 게 참 싫더라 – 연안 지역 절반쯤은 전리품으로 뺏고도 남겠지.
우리 사회가 석유를 모르던 옛날 같았으면 그 모래땅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아무도 이해를 못 했으리라. 게다가 너무 멀어서 관리도 제대로 안 됐을 거고. 하지만 이제는 기술 발달 덕분에 교통과 통신을 유지하기도 쉬워졌고 석유도 캘 수 있다.
원래 세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석유 생산지로는 이 페르시아만 일대가 세계 최강이다. 여기를 손에 넣으면 전 세계 석유 공급을 좌우할 수 있다.
문제는 손에 넣는 방법이다. 지금은 오스만도 우리에 관해서 잘 안다. 그러니 목가사변 때처럼 오스만 측에서 나서서 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떻게 너무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우리 쪽에 피해가 되도록 적은 명분을 만들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겠다. 그런데 페르시아만이 지금도 오스만 영토이긴 하던가?
24,
청나라 공사 영린이 찾아왔다. 그리고 황태자 영록이 한성에 머무를 일정을 정리한 표를 내놓았다.
“곧 치러질 국혼을 위해 태자 전하께서 열차편으로 한성을 찾아오실 예정입니다. 겨울은 한성에서 보내고 내년 봄에 북경으로 떠나실 텐데, 혼례를 치르기 전에 한 달 정도 전부터 한성에 머물 테니 폐하께서 적절한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숙소를 마련해 달라는 소리는 아니다. 혼례식 전까지는 서평관에서 지낼 것이고, 혼례를 치른 뒤에는 경복궁 안에 마련한 신혼집에서 지낼 테니까. 그건 이미 다 얘기가 되어 있다.
본래 공주를 시집보낼 때 법도대로 하면 도성 안에 저택을 한 채 마련해주는 게 관례다. 하지만 현지는 이제 북경으로 떠날 게 아닌가. 빈집으로 남게 될 저택을 굳이 사들이느니 그냥 경복궁에서 지내고, 그 돈을 북경으로 가져갈 혼수품 마련에 보태는 게 훨씬 낫다.
본래도 궁궐에는 시집간 공주나 옹주들이 부마와 함께 입궐했을 때 묵는 용도로 지어둔 전각이 여럿 있다. 종종 때도 박문수와 함께 입궐한 연주가 종종 그런 데서 묵곤 했었다.
다만 그런 전각들은 죄다 창덕궁에 있다. 경복궁은 법도에 따라 좀 빡빡하게 건물을 채워 넣어서 그런 여유를 부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창덕궁은 태후의 거처 아닌가. 그래서 경복궁 내에서 내가 태손 시절에 사용하던 집경당과 함화당을 신방으로 꾸며놓았다. 향원지 옆이기도 하니 신혼부부가 지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다.
“염려하지 마시오. 준비해 놓았으니.”
2백 여 년간 유지 해 온 동맹 이다. 그 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하자면 새롭게 맞이하는 사위를 융승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한의 위상을 확실하게 해두려면 도성 시가지와 군영, 항구, 공장 등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황태자 영록은 무척 영특한 편이라고 하니, 양국 간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 편이 서로 이익이 되는지 잘 알 거다. 후금을 재통합하느라 청나라 남부가 심하게 혼란스러워진 지금은 더더욱.
청나라 조정에서 산동과 하남 일대를 안정시키느라 후금 출신 팔기를 다수 이주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이게 덕명이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만 진행된 건 또 아니라서 시끄러운 부분이 좀 있다.
그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불만이야 요서에서 가지고 있던 풍요로운 기반이 없어진 데 대한 상실감이다. 그래도 같은 핏줄이라고 대한으로 귀순하지 않고 청나라로 왔는데 예전에 가졌던 영지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땅들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다음은 예전부터 청나라 편에 있던 팔기와의 은근한 차별이다. 청나라 조정은 태평군에 대한 반격이나 산적 토벌에 녹영병과 더불어 후금 출신을 앞세웠다. 청나라 팔기는 직례와 산서 등지의 근거지에서 휴식하며 후금 내전에서 입은 손해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명분이야 후금 출신들이 더 잘 싸우기 때문이라는 데 있었다. 하지만 싸움터에 내몰리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후금 출신 팔기들은 내전 때 입은 손해가 없단 말인가?
처음 ‘데우스 불트’를 외치며 출전했을 때는 그래도 공을 세워 새 주군에게 인정받겠다는 심산으로 열심히들 싸웠지만, 그게 이미 4년째다. 그만하면 지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를 방관하던 청나라 조정은 올해 봄이 돼서야 서안을 비롯한 관중 일대의 병력을 빼서 하남으로 투입했다. 덕분에 본격적인 반격에 들어간 지 근 3년 만에 남양성을 탈환하면서 태평군을 남쪽으로 크게 밀어냈다.
하지만 주력 야전군으로 활용하던 구 후금군의 손실이 큰 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기도 높지 않다. 당연히 원군을 받았음에도 진격 속도가 느렸다.
이 틈에 태평군은 남쪽에서 후송과의 강화 분위기가 성립되면서 여유가 생긴 병력 일부를 북쪽으로 보냈다. 그 병력을 써서 급히 방어를 강화하면서 청군이 호북성으로 진입하는 건 막았고, 다시 전선은 정체되었다.
그러나 이제 홍콩에서 강화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됐으니, 남쪽에서 남는 병력을 북쪽으로 더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청군으로서는 아직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태자가 건너오면 극진히 대접하리다. 내 지난번 북경을 찾았을 때 황제께서 내게 베푸신 융숭한 대접을 잊지 않고 있소. 답례할 기회가 왔으니 기쁠 따름이오.”
이렇게 영록이 한번 다녀가면 다음에는 누이를 방문한다는 핑계로 창이가 북경에 다녀올 수도 있을 거다. 처가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에도 갈 수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이나 태자가 해외에 갈 수 없다는 관습도 깨지게 된다.
이 중요한 변화의 첫발을 확실하게 내딛는 단계가 조만간 치러질 현지의 혼례다. 생각난 김에 준비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보러 가야겠다. 당연하지만 내가 말하는 ‘준비’란 혼수품 같은 물질적인 준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 왜 한숨이 날까.
25,
“오셨습니까, 폐하.”
바이올린을 들고 의자에 앉아있던 내 친누이, 화원장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예를 표했다. 그 앞에 마주 앉아있던 현지도 잠자코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아바마마.”
“편히 말씀하십시오, 누님. 괜찮습니다. 공주야, 너도 앉거라.”
손을 저어 만류하고 다들 다시 앉으라고 했다. 내관이 급하게 내가 앉을 의자 하나를 더 가져와 옆에 놓았다. 슬쩍 표정을 살피니 현지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많이 힘이 드느냐?”
“괜찮습니다, 아바마마.”
목소리가 딱딱하다. 젠장, 이거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았구먼.
어떻게 하면 현지가 청나라에 가서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식구들을 모아놓고 머리를 맞댔다. 태후 쪽 식구들은 빼고 진짜 내 일가붙이들, 누나인 화원장공주 부부와 나, 중전, 운이네 부부, 외숙부인 김좌근까지 딱 일곱 명이 모여서 회의했다.
“청나라 황실에 미리 연통을 넣어 ‘공주는 이제껏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아왔으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으니, 그냥 건드리지 말고 편히 지내도록 놓아두면 아무 문제 없을 거요’라고 전하면 어떻겠습니까? 폐하.”
김좌근은 성격답게 장난스러운 제안부터 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발언이었다.
“그건 안 됩니다, 내구. 내구께서는 우리 정현공주를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망나니라고 천하에 선포하실 생각입니까?”
내훈을 비롯한 책을 읽게 한다, 내명부와 외명부에서 나이가 지긋하고 덕망 있는 부인들 여럿을 모아 결혼생활에 관한 가르침을 받게 한다, 청나라의 역사와 양국 간의 관계에 대해 가르쳐서 황태자비로서 자신이 갖는 위치를 자각하게 한다….
많은 의견이 나왔다. 전부 그럴듯한 제안이고 필요한 이야기였는데, 화원장공주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으나 저는 부황께서 내리신 분부에 따라 공주 자가보다 어릴 때부터 양제금(洋提琴, 바이올린)을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퍽 힘겨웠지만, 계속 배우다 보니 마음이 편히 가라앉고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공주 자가께도 악기를 익히게 하시면 어떨지요.”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잘 생각해 보니 원래 세계에서도 음악을 익히게 해서 애들 심리를 안정시키거나 행동 교정을 이뤄내는 요법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괜찮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누님께서 맡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화원장공주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가 평소에 그나마 어른 취급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여 기 있는 일곱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일곱 사람 중 남을 가르칠 만큼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화원장공주 하나뿐이었다.
악기 다루는 재주만 본다면야 장악원 악공 중에 더 나은 사람이 있기는 할 거다. 하지만 장악원 악공 따위에게 현지를 가르치게 했다가는 수업 도중에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집안을 위한 일 아닙니까. 기꺼이 맡겠습니다.”
다행히 화원장공주는 선뜻 맡아주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내가 직접 연주는 못 해도 그동안 듣는 귀는 꽤 키웠다. 그런데 현지의 연주를 들어보니 솜씨가 꽤 괜찮았다. 바이올린을 배운 기간이 아직 1년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법 뛰어난 편이었다. 원래 재능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기술만 뛰어나지 표정은 딱딱했다. 아버지가 시키니까 하는 거지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기색이 얼굴에 대놓고 드러났다.
“그것은 옛날 인현황후께서 쓰시던 양제금이니 라. 처음 연습할 때 쓰던 것과 소리가 무척 다르지 않으냐.”
상희가 쓰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든 현지가 잠시 악기를 들여다 보았다.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 예상 밖이었다.
“소녀는 아직 귀가 어두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사옵니다. 명기(名器)를 구분할 줄 모르니, 그저 고모님께 배운 바에 따라 손에 쥔 악기로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옆에 선 화원장공주가 난처하게 웃었다. 자기로서는 최대한 노력했다는 그 표정을 보려니 나도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혼례식까지 5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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