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3
1부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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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당황해하던 오키후사가 곧 평정을 찾았다. 이제 겨우 서른 살밖에 안 된 젊은이지만, 오우치 씨 산하에서 제일가는 용장이자 지장이다. 설마 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도 이미 상정해 놓았다.
“이건 믿기 곤란하군. 귀군이 범인을 현장에서 잡았다는 말도 사실인지 알 수 없고, 누군가 정말 잡았다고 해도 그자가 진짜 범인인지도 알 수 없소. 방화 현장을 목격하셨소?”
“현장은 잡지 못했소. 하지만 우리 진영에서 발화한 직후 그 외인들이 몸을 빼어 도주하는 모습이 마침 순시 중이던 여기 이 종사관에게 포착되었소.”
박원종이 손짓으로 이장곤을 불러냈다. 장막 안까지 들어와 있던 이장곤이 앞으로 나서서 지난 밤 있었던 일을 증언했다.
“대감께 아룁니다. 진영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폭발을 보았습니다. 곧바로 진영으로 복귀하던 중 진지 방향에서 달려오는 왜인 5명을 만났습니다. 헌데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데다, 소관과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몸을 숨기려 하기에 수상하게 여겨 바로 붙잡았습니다.”
오키후사는 이장곤의 말을 들으면서도 선뜻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그저 조선군이 무서워서 숨으려 했을 수도 있잖소? 그런데 활과 총으로 쏘았단 말이오?”
이장곤은 통변을 통해 오키후사에게 질문을 받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 박원종이 손짓하자 그제야 박원종을 향해 대답했다. 자기는 철저히 오키후사를 무시하겠다는 태도였다.
“그자들이 먼저 우리 군사가 탄 말의 다리를 낫으로 베어 쓰러트렸습니다. 다행히 낙마한 군사는 경상으로 그쳤으나, 바로 그때부터 소관은 그 왜인들을 확실한 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겨누었을 뿐입니다.”
거짓이었다. 영생이 말에서 떨어진 진짜 이유는 말이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도랑에 빠져 다리가 부러진 탓이었다. 하지만 붙잡은 왜인들이 낫을 가지고 있었음은 사실이고, 둘러댄다 한들 오키후사가 실상을 알 턱도 없었다.
예상대로 말문이 막힌 오키후사가 입을 다물었다. 박원종이 밀어붙였다.
“들었소? 방화범이 아니라면 무기를 휘두르며 우리 군사들을 해쳤을 리가 없소. 이는 분명 놈들이 죄가 있다는 이야기요. 더구나 붙잡힌 자가 주장했듯 평범한 농민이라면 이런 간 큰 일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소. 배후에 누가 있을지, 그대는 잘 알 거요.”
말을 타고 쫓는 이장곤으로부터 피하는 몸놀림, 그것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농민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잡힌 놈이 혹독한 문초를 받으면서도 당장 불지 않고 버텼다는 점을 보아도 그랬다. 창대로 40여 대를 맞고서야 자기와 일당들의 이름, 출신지를 불었을 정도였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허나 여기 적힌 자들 다섯이 정말로 귀군 진영에 불을 지른 범인이 맞다 해도, 우리 군에 소속된 병사는 아니잖소. 책임을 지라 함은 과한 조치요.”
“맞소. 귀하는 속으로 안도하겠지. 분명 지난밤 사건을 저지른 게 귀측의 사주라는 확증은 없소. 하지만 방증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무엇보다 범인이 이 일대 백성이란 말이오. 본관이 지금 여기 와 있는 것도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한 결과임을 알아두시오.”
박원종이 적의가 명백한 목소리로 위협을 계속했다. 오키후사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본관은 당장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그대들을 쳐서 앙갚음하자 했소. 간밤 화재로 잃은 화약이 상당하지만, 아직 남은 화약으로도 귀군 정도는 쳐부술 수 있소. 결전을 벌이기 꺼려진다면 소이전에게 했듯이 야인들을 풀어버리는 방법도 있소.”
야인들이 기껏 약탈해 모은 노획물은 단 하룻밤 만에 절반 가까이 없어졌다. 지금 야인들은 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1만 필에 달하던 소와 말이 4천 필도 안 남았다. 땅이 진동하는 충격에다가 굉음과 불꽃이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불똥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이 부여주에서 직접 끌고 온 전마 5천 필 중에서도 2천 필 가까이가 없어져 버렸다.
포로로 잡은 왜인들 중에도 힘 있는 사내들은 혼란을 틈타서 거의 도망쳐 버렸다. 여인들도 다수가 도망쳐 남은 숫자는 1만 명, 처음 잡은 수에 비하면 절반 밖에 안 되었다.
도원수 유순정이 5천 군사를 배치해서 봉쇄하지 않았다면 야인들이 진영 밖으로 뛰쳐나와 일대에 있는 왜인 마을들을 휩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털어먹은 쇼니 측 영지 대신 아직 손대지 않은 오우치 쪽 영지를 덮칠 것도 확실하다.
“도원수 대감께서 말리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찾아와서 말로 하지도 않았을 거요. 당장에 야인들을 풀고 결진해서 귀군을 격파하러 나왔겠지. 가능한 부드럽게 대처한다 해도 야인들을 풀어 이 일대를 노략질하게 했을 거요. 그게 귀국의 법도에는 더 맞을 테니까. 그렇지 않소?”
지난번 오키후사가 야인들이 무단으로 이 일대 촌락을 약탈한 건으로 박원종을 공박했을 때, 박원종은 엄청난 굴욕을 겪었다. 그동안 자기보다 격이 낮다고 생각하던 상대에게 꼼짝도 못하고 비난을 당한 일은 실로 치욕이었다.
일본 영주들 중 유일하게 조선 품계가 있는 대마도주는 정3품 예조참의 정도 대우를 받는다. 이에 준해서, 그보다 세력이 크고 지위도 훨씬 높은 요시오키는 종2품 예조참판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이는 일본 조정에서 받는 품계와는 완전히 별개다.
요시오키의 신하인 오키후사는 당연히 그 아래로 취급받는다. 정2품 도총관에다가 임금에게 총애를 받는 권신인 박원종에게 있어서 오키후사는 비슷하게 비비댈 자격도 안 되는 자였다. 그런 상대가 빌미를 잡았다고 해서 동급인 것처럼 굴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회견이 끝나자마자 박원종은 종성가를 불러다가 일본에서 전투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약탈은 어떤 경우에만 허용되는지 등을 철저하게 들었다. 이제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한 마디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순순히 따르고 공물을 바치는 마을, 우호세력이 지배하는 마을은 약탈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력으로 반항하는 마을은 가차 없이 약탈한다. 이게 그대들이 따르는 법규 아니오? 우리들도 그리 하겠소. 최소한 해당 방화범들이 살았던 5개 마을은 모두 철저하게 그 잘못을 묻겠소.”
생포된 방화범은 자기를 비롯한 동료 5명이 모두 다른 마을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박원종은 왜 방화범들이 이런 구성으로 패를 짰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그건 중요한 논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징벌’이 그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도 대수롭지 않았다.
“우리는 선의로 좌하성을 해방해 주었건만 그 주민은 이를 원수로 갚았소. 이런 배은망덕한 태도에 누가 분노하지 않겠소? 만약 귀측이 이에 대해서 보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좌하성을 다시 돌려받아야겠소. 그리고 소이전이든 대우전이든, 비싸게 값을 치르는 자에게 넘기겠소.”
소이전은 쇼니 씨, 대우전(大友殿)은 오토모 씨를 가리킨다. 누가 사가 일대를 차지하더라도 오우치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다. 오키후사는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얼굴에 이미 낭패감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느새 어조가 다시 공손해졌다.
“부원수 대감, 차분하게 생각해 주시지요. 우리 측에서 굳이 귀군에게 손해를 입힐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귀국은 우리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대는 지난번 회견에서 본관에게 소이전과 싸우지 말라 했고,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했소. 그만하면 우리 군이 보유한 화약을 불태워 더 이상 싸우지 못하게 만들고자 시도할 연유는 충분하오.”
박원종은 단호했다. 오키후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을 계속했다.
“분명 더 이상 지원을 제공하기 힘들다고 통보하긴 했습니다만, 귀측이 쇼니와 더 싸운다고 해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귀측이 스스로 병사와 비용을 소모해서 쇼니를 약화시키는데 이는 사실상 차도살인지계입니다. 환영하면 했지 왜 나서서 방해를 하겠습니까?”
일리 있는 항변이었지만 박원종은 받아들여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타협의 여지라고는 없는 그 얼굴을 본 오키후사가 이를 악물더니 손짓으로 자기 시종을 불렀다.
“예의 그 문서를 가져와. 어젯밤, 취합한 것.”
시종이 잠시 옆을 떠나자 오키후사가 다시 시선을 돌려 박원종을 마주보았다.
“이 일은 거론하지 않으려 했는데, 할 수 없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원종을 비롯한 조선 장수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곧 오키후사의 하인이 검은색 나무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오키후사가 상자를 열어 문서 몇 장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펼쳤다.
“사실 아까 붙잡힌 우리 농민이 말했다고 하는 자기 마을 이름과 자기 이름을 듣고서 바로 알았습니다만, 참담하신 심정을 감안하면 말하기 힘들어 그냥 있었습니다. 허나 이렇게까지 나오시니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 문서를 봐주십시오.”
박원종과 이장곤이 탁자 앞으로 다가섰다. 문서에는 일본인들이 쓰는 왜문(倭文)이 약간은 섞여 있었으나 대부분은 한문으로 적혀 있어 해독이 어렵지 않았다. 문서에는 백여 명은 되는 사람 이름이 각 마을별로 나뉘어 적혀 있었다. 오키후사가 개중 몇 곳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 보시지요. 출신 마을, 그리고 이름까지 귀측이 가져온 문서 속에 있는 그 범인이라는 자들과 일치합니다. 다섯 명 모두 맞지요?”
“그렇소. 그게 어쨌다는 거요?”
“이들은 모두 지난번 귀국 측 북방인들이 무단으로 벌인 약탈에서 집과 가족을 잃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귀국은 그 일에 대해서 사죄하기로 약속하고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박원종 쪽이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이 건은 그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던 일이니까 말이다. 공격이 잠시 멈추자 오키후사가 잽싸게 박원종에게 반격을 가했다.
“귀측에서는 무단으로 약탈해 간 재물을 돌려주고 죄인들을 처형하며 잘못을 보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원수 대감, 귀하 본인이요. 하지만 그중에 얼마나 실행이 되었습니까?”
이 일대에서 야인들이 약탈한 소와 말, 납치한 사람은 두 사람이 회견하고 이틀 뒤에 모두 반환했다. 하지만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보상은 아예 없었고, 최소 50여명은 될 가담자에 대한 처형도 이뤄지지 않았다. 겨우 두 명을 죽여 면피만 했을 뿐이다.
이는 당연히 박원종이 야인들에게 벌을 줄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호세력에 속했으니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대는 왜인들이다. 왜인을 약탈한 죄로 아군을 처형하라니,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단으로 진영을 벗어난 죄만 물어 두 명을 처형하고 그걸로 끝내버렸다.
“도적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복수와 보상을 바라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귀측에선 약속을 하고서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가능한 진정시키려 했습니다만, 복수에 눈이 뒤집힌 이들을 어찌 다 막겠습니까?”
“지금 귀하는 일개 농민이 우리 진영에 들키지 않고 숨어들었다고, 파수병이 물샐 틈 없이 경계를 서고 있던 화약더미에까지 접근해서 불을 붙이고 도주하는데 성공했다고, 그리고 우리 최정예인 백정 출신 내금위 무사들과 대등하게 맞싸우기까지 했다고 인정하라는 거요?”
박원종은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논쟁을 재개했다. 지금 상황은 이쪽이 먼저 굽히고 들어갈 입장이 전혀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오키후사라고 해서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아직 그로서도 할 말이 있었다.
“그 방화범들이 들고 싸운 무기가 낫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농민이라 제대로 된 무기가 없으니 농구를 들고 복수하러 나간 겁니다. 그리고 본래 인근 주민이라 지리에 밝아 은밀하게 침입할 수 있었고요. 하나도 부자연스러울 게 없습니다.”
단정적인 변호였다. 조선인들이 반론을 제기할 기색을 보이는데 오키후사가 선수를 쳐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물론 저들이 복수를 하더라도 그 대상은 북방인들이 되었어야만 했습니다. 조선군 본영에 불을 지른 건 착오였거나 잘못된 원한으로 비롯된 듯한데, 그 점은 요시오키 님을 대신해서 제가 분명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요시오키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지만 박원종은 받아들일 기색이 아니었다. 오키후사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언사가 더해졌을 뿐이었다.
“본관이 아는 바와 다르구려. 각 마을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고 있을 텐데? 더구나 지금 이 일대에는 소이전 군이 패하면서 흘린 무기가 아직도 널려 있소. 귀하가 주장한 대로 저들이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러 나섰다면, 더더욱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나서지 않았겠소?”
명백하게 비꼬는 어조였다. 순간적으로 항변할 말이 없어진 오키후사가 입을 콱 다물었다. 박원종이 느긋하게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본관이 판단하기에는, 방화범이 스스로 무사가 아니라 농민이라고 주장할 심산으로 일부러 낫 한 자루로만 무장했다고 생각하오. 당사자는 물론 부정했고 귀측에서도 부정하겠지만, 이 점에서는 본관이 추측한 바가 정확하리라고 생각되오.”
오키후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박원종은 승세를 타고 거침없이 오키후사를 몰아쳤다.
“더구나, 설사 도적질을 처벌하라는 요구를 본관이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해도 이런 짓이 용납되는 건 아니오. 만약 저들이 본관을 죽이려고 암습했다면 차라리 용납할 수 있었겠으나, 이 방화로 인해 우리 군이 입은 인명과 물자 손실은 도저히 용납할 수준이 아니오.”
개인에 대한 암살 시도라면 아량을 베풀어서 넘어갈 수도 있다. 주군인 지백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던 예양을 한 번은 용서한 조양자처럼, 가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던 왜인에게 아량을 베풀고 이를 다른 왜인들에게 과시할 수도 있다. 실패한 시도라면 말이다.
간밤에 일어난 일은 도저히 그렇게 좋게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설사 정말로 방화범들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오우치 측 전체에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다.
“귀하는 우리가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소.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싸워서 귀측 군사를 격파하고도 곧바로 박다(하카타)까지 진군하여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만큼의 화약은 가지고 있소. 시험해 보고 싶다면 해도 좋소.”
박원종이 부릅뜬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오키후사는 자기 잔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상황은 도저히 말로 뭐를 더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고생이 많았소.”
아침 일찍 진문(陣門)을 나선 박원종은 거의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끼니도 거르고 격론을 벌이다가 돌아온 부원수를 유순정이 나서서 치하했다.
“저들이 죄상을 인정하였소?”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인정하면 그 즉시 아군과 일전을 치러야 할 텐데 말입니다.”
박원종은 날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나게 퍼붓고 돌아왔지만 아직 분이 다 풀리지 않았다.
“소장이 생각하기에는 일전을 치러 대내전이 거느린 군사를 한번 쳐부순 뒤에 타협이 아닌 항복을 받아냄이 훨씬 나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일찍이 가능하면 대내전과 싸우지 말라 하셨고, 새로이 명을 받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유순정 역시 오우치를 한번 두들기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오우치 군을 격파한다고 하더라도 그 뒷일이 만만치 않을 게 분명했다. 가라쓰건, 하카타건 배가 닿을 수 있는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계속해서 사방이 위협받을 게 뻔하다. 게다가 군량도 넉넉하지 않다.
가급적이면 담판을 지어 결말을 내는 편이 나았다. 그 편이 저들에게 뭔가 뜯어내기도 훨씬 좋고 말이다.
“그래서, 받아내기로 한 배상은 얼마나 되오?”
“군량, 화약, 우마(牛馬), 노예를 잃은 손실에다가 성을 구원해준데 대한 보상까지 합쳐서 은 2만 냥을 받아내기로 했습니다. 보름 안에 당진(가라쓰)에서 인도하겠다고 합니다.”
“보름 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로군.”
그런 거액을 받는데 일부 군사만 보낼 수는 없다. 누가 습격해서 털어갈지 모르니 말이다. 오우치는 조선군을 물러가게 한다는 목적을 결국 달성하는 셈이다.
“그 외에 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없소?”
“소이전이 아직 유천(야나가와)에 머물러 있는데, 대내전과 맺을 화의 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웬만하면 우리에게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소이전과 화의를 체결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소이전과 화의를?”
유순정이 놀란 목소리로 묻자 박원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이전이 무단으로 대마도를 침범하여 싸움을 시작한 탓으로 우리가 정의로운 군사를 몰아 징벌에 나섰음을 명확히 적고, 소이전이 그에 대해 사죄하고 있음을 역시 글로 적어 명시하면 이번 출정이 정당한 싸움임을 길이 증명하리라 했습니다. 타당할 듯합니다.”
유순정이 듣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고개를 끄덕여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소. 대내전 쪽에 저들이 화의를 맺는 날짜를 알려 달라 하시오. 그 뒤에 우리도 문안을 준비하여 소이전 쪽이 수결(手決)하도록 하면 될 듯하오.”
“예, 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