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5
1부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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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네 번째 개선식이다. 수적 주력이었던 경상도 병사들 및 전라도, 충청도 병사들은 대부분 동래에 도착하자마자 부대를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질적 주력이었던 경군 및 어차피 북으로 가야 하는 여진족 기병들은 모두 도성 근교까지 올라왔다.
2만 명 가까이 되는 왜인 포로들도 그 뒤를 따라 북으로 올라왔다. 이제까지 이만큼 포로가 대량으로 끌려오는 광경을 본 적이 없는 도성 백성들이 그 광경을 보고 불쌍해서 연민을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절반은 여자들이었으니, 더 불쌍하게 여길 법도 했다.
이번에는 개선식 장소도 바꾸었다. 이제까지는 도성 안에서 개선식을 거행했지만, 이번엔 규모가 커져도 너무 커졌다. 우리 군사들 말고도 포로, 노획한 무기에다 가축들까지. 그래서 한강 백사장 앞에 내가 올라갈 단을 세우고 그 앞에서 개선식을 거행했다.
기획하고 보니, 한강변 개선식은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었다. 마침 강물이 한참 불어 있어서, 한강을 따라 수군 군선들을 올라오게 해서 관함식까지 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말이 좋아서 관함식이지, 전선 열 척 정도 세워 놓고 온갖 기를 달아놓은 게 전부지만.
도성 백성들은 평소에도 한강을 왕래하는 배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그건 다 장삿배들이고, 전선들이 무장과 기치를 갖추고 늘어서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이것도 구경거리였고, 함포로 축포를 쏘게 했더니 그 소리에 놀라는 사람도 많았다.
다만 조선시대 연안항해라는 게 사고가 날 위험이 제법 높고, 익숙하지 않은 뱃길이라면 더 심하다. 그래서 남해에서 여기까지 배를 직접 가져오지는 않고 사람만 육로로 데려왔다. 배는 가까운 경기수영 배를 가져다 쓰도록 했다.
단 위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보려니 아주 뿌듯했다. 강물 위에 늘어선 전선들은 축포를 쏘고, 군사들은 발을 맞추어서 행진했다. 경군은 전쟁을 치를 때마다 이 짓을 했더니 이젠 아주 몸놀림이 능숙했다. 구경나온 백성들이 천세를 연호했다.
대열 마지막에는 야인 기병들이 의기양양하게 행진했다. 이놈들, 이 도둑놈들이 명령이라곤 죽어라 안 따르고 난리를 쳤음은 장계를 통해서 아주 잘 전달받았다. 앞으로 철저하게 다스려 어명이라면 벌벌 떨면서 받아들이게 만들어 주마.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이들이 잡은 일본인 1만 명과 가축 4천 두는 부여주로 끌고 가게 해 줄 생각이다. 본래는 절반 정도를 내 몫으로 뗄 생각이었지만, 유순정과 박원종이 머리를 써서 그만큼을 은으로 바꿔 가지고 왔으니 그 은을 내 몫으로 넣으면 되겠다.
은 2만 냥! 갑자기 생긴 목돈이다. 이 돈으로 무슨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생각하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새 군함을 만들까? 벽돌 가마를 세워서 도성을 포장할까? 전국을 새로 연결하는 포장도로를 만들까?
중국에서 조선기술자를 데려다가 정크선을 건조해서 원양 항해용으로 쓰면 어떨까도 싶다. 중국은 지금도 동중국해를 직항으로 횡단해서 일본과 무역한다. 그 선원들을 그대로 고용하면 제주도 남쪽으로 해서 유구까지 동중국해를 곧바로 종단할 수 있지 않을까?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군사들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일제히 나를 향해 천세를 연호했다. 나도 흐뭇한 마음으로 내려다보며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내 군대다. 지난 십여 년, 열심히 양성했고 내가 바라는 대로 잘 싸워 주었다. 이제 당분간 싸울 일은 없으니, 훈련이나 열심히 하면서 푹 쉬어라. 한동안은 내정모드로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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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도원수 유순정을 병조판서로 명하고 청천군(菁川君)에 봉한다. 부원수 박원종은 벼슬은 도총관으로 그대로 두어 높이지 않으나, 대신 평성군(平城君)을 봉한다.”
전쟁이 끝났으면 논공행상을 해야 하는 법. 최고위 지휘관이었던 두 사람에게는 지금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을 내렸다. 이제까지 조정을 몇 번 뒤집어엎으면서 정승?판서 급을 팍 젊은 층으로 끌어내렸더니 이 정도가 한계였다. 박원종 앉히자고 신수근을 자를 순 없잖은가.
박원종이 속으로 불만을 품을 것 같기는 하다. 사가 성 앞에서 전군을 지휘해서 쇼니 군을 격파한 주역이 박원종이고, 화재사건 후 오우치 군 진영에 단신으로 들어가 담판을 이끌어낸 장본인도 박원종이다. 그런데 벼슬 한 단계가 안 오른다면 서운하겠지.
하지만 주장인 유순정이 병조판서인데 부장인 박원종에게 그보다 더 높은 벼슬을 내려주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박원종이 공을 세운 건 눈에 띄는 전투지휘, 담판이었지만 그 외에 전략을 세우고 군대를 관리하는 사령관으로서의 임무는 유순정이 다 했다.
그걸 뻔히 아는 내 입장에서 어떻게 박원종을 유순정보다 높은 자리에 앉힌단 말인가, 대신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군호를 내리고, 저화를 잔뜩 내려주어 상으로 삼았다. 물론 박원종만 준 게 아니고 유순정에게도 줬다.
사실 도총관 중에 선임도총관 직을 명시적으로 만들어서 ? 지금은 가장 연장자인 유자광이 암묵적으로 선임자 노릇을 하고 있다 ? 그 자리를 박원종에게 주는 방안도 생각해 봤다. 직접 품계를 올리지는 않으면서 감투만 씌워주는 직책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내가 낸 이 아이디어는 홍문관에서 반발을 받았다. 애초에 도총부에 최고 우두머리를 두지 않고 다섯 도총관에게 동등한 지위를 준 것부터가 만약의 경우, 까놓고 말해 도총부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자는 의도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듣고 보니 그건 그랬다.
그 외에 적당한 벼슬이 떠오르지 않아서 박원종에게는 벼슬은 그대로, 대신 군호와 저화를 주는 포상이 나갔다.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시야가 좁고 욕심이 많은 박원종은 야전사령관으로 전선에 가기보다는, 수방사령관에 정치군인 노릇이나 하는 게 어울려 보인다.
장차 조선군을 이끌 야전사령관으로 내가 주목하는 장수는 유순정이다. 장차 권율 급까지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박원종은 기껏해야 전술적인 역량을 발휘할 뿐인데, 유순정은 조선이 가진 전략적 한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최고지휘관은 그저 싸움만 잘 해서는 안 된다. 싸움만 잘 하는 건 필부지용(匹夫之勇)일 뿐,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유순정은 처음에는 이극균의 보좌 역할이었지만,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직접 원정군을 이끌면서 자신이 가진 넓은 시야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장차 내가 또다시 대규모 원정을 한다면 한 번 더 유순정에게 맡겨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나이도 지금 48세에 불과하니, 충분히 젊지 않은가. 앞으로도 20년은 더 지휘관으로 싸움터를 누비면서 군대를 이끌 수 있을 거다. 참, 박원종은 40세다.
이들 두 사람 외에. 다른 장수와 군사들에게도 골고루 상이 내려갔다. 종군했던 장병들은 모두 원정공신(遠征功臣)으로 봉해 품계를 내렸고, 일개 병사들도 모두 이로써 품계를 받았다. 또한 신유년 때처럼, 남은 군량도 귀향길에 노자로 쓰도록 나눠주고 보너스로 저화도 주었다.
공을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도 경관직, 외관직으로 벼슬이 내려졌다. 그중에 특히 내가 직위 부여에 신경을 써야 할 이가 하나 있었다.
“이번 원정에 종사관으로 종군하였던 선전관 이장곤에게 원정공신 2등을 내린다. 이장곤은 대마도에서 직접 싸워 왜적의 수급 6급을 거두었으며, 좌하 성 앞에서는 진영에 방화한 왜적들을 붙잡아 그 진상을 밝히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또한 병조참의로 명한다.”
이장곤이 그동안 쌓은 관직 경력에다. 두 번이나 전쟁에 나가면서 쌓은 공훈을 합치면 정3품인 병조참의 벼슬 정도는 내리고도 남는다. 이장곤 역시 장차 훌륭한 무장으로 발전할 만한 자질이 있으니 유순정을 잇는 차세대 장수로 점찍어 둬도 좋을 듯하다. 33세니 나이도 젊고.
더불어서 이장곤에게는 그 무엇보다 좋은 상이 있었다. 아마 본인도 좋아할 거다.
“신임 병조참의에게 묻겠노라. 그대는 서른을 한참 넘겼는데, 어찌 아직도 홀몸인고?”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전에 한번 슬쩍 들은 적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났다. 어려서 혼인한 아내가 죽고 재혼을 안 했다고 했던가? 아예 혼인한 적이 없을 리는 없다. 가난한 촌부(村夫)도 아니고 멀쩡한 양반 가문에서 아들 혼사를 까먹었을 리가 있는가.
어쨌든 지금은 홀몸이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관내에 독신자가 있다는 건 목민관으로서 매우 불미스러운 일이 된다. 조정은 가장 좁은 의미에서 내 임지라고 할 수 있으니, 이장곤이 계속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면 내 부덕함이 커지는 셈이다.
“나이가 들었으면 혼인을 하고 후손을 얻어야 하는 법이다. 자고로 백성이 혼사를 제때 치르게 함은 위정자로서의 의무일진데, 과인은 임금으로서 조정 내에서부터 혼사를 하지 못한 이를 그대로 두었으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대전에 선 임금이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하자 신하들이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벼르고 벼른 이벤트인지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한번쯤 이러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
“병조참의에게 묻겠다. 내 좋은 처녀를 찾아 중신을 서고자 하니, 그대로 받아들여 장가를 들겠느냐?”
이장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왜 그러는지 알만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아마도 이장곤은 지금 내가 도대체 어떤 양반집 딸을 짝지어줄 생각인가 싶으리라.
“어찌 대답이 없는가? 그대는 임금이 이어준 인연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가?”
“아, 아니옵니다. 어찌 주상께서 하해와 같은 은덕을 베풀어 후사를 잇게 해주심을 감사히 여기지 않겠나이까. 소신은 그저 전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눈물을 흘릴 뿐이옵니다.”
이장곤은 급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웃음을 참고 시선을 돌리니 대전 내에 들어찬 신하들이 서로 소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하지 못한 사태 전개에 놀란 신하들이 내가 어떤 집 딸을 이장곤의 처로 주려고 하는지 서로 탐색하고 있었다.
이건 임금이 직접 주관하는 혼사다. 왕실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정도로 높은 급은 아니지만, 아직 총신은 아니더라도 총신 후보는 충분히 되는 이장곤을 사위로 맞는다. 그것도 왕명으로! 이건 정치적으로 엄청난 이점이 될 게 분명했다.
대전 내에서 엄청난 눈치와 기대가 오가는 모습이 빤히 보였지만, 나는 짐짓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밖에 있는 내금위 참군 고다지를 들라 하라!”
참군은 정7품 무관이다. 다지는 그동안 쌓은 공훈을 인정받아 참군까지 승진했다. 더 높이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유순정이 다지를 자기 경호원으로 쓴 탓에 세운 공이 별로 없었다.
“그대는 올해 나이가 몇인가?”
“스물 셋입니다, 전하.”
대전 밖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가 갑자기 불려 들어온 다지는 내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놀란 듯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동안 다지가 대전에서 입을 연 일은 없었기에, 여기에 모인 중신들은 다들 그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대도 혼기를 놓쳤구나. 내 옆에 있는 이들의 혼기조차 챙기지 않다니, 과인의 죄가 실로 크다. 내 그대에게 집안 좋은 신랑을 구해주려 하니, 내가 주선해주는 이와 혼인하겠느냐?”
다지 역시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보고 있던 중신들 중에서도 얼굴이 굳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대부분은 설마 하는 표정이었지만.
“어찌 대답이 없느냐? 왕명으로 혼인하라 해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다지는 이장곤처럼 긴장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어느새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이렇게 대답했다.
“지아비를 맞는다 함은 소인의 평생을 건다는 뜻입니다. 전하께서 소인에게 배필을 마련해 주심은 실로 하해와 같은 은혜이오나, 신랑이 될 이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뭐라 말씀드릴 수 없겠나이다.”
대답의 가부를 떠나서 일단 격식을 갖춘 말을 이렇게 길게 할 수 있다는 데서 다지가 궁궐 물을 오래 먹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격은 여전하다 싶고.
주변을 쓱 둘러보니 대신들은 낯빛이 백짓장이 되어 있었다. 천한 백정 출신 계집 따위가, 감히 임금이 혼사를 주선한다는데 대놓고 반쯤 거부했으니 말이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단박에 저 방자한 계집을 벌하시라는 노성이 가득했겠지 싶다.
당연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고, 그러길 바랐다. 순순히 따르겠다고 했으면 도리어 실망이 컸을 거다.
“그래, 그건 중요한 일이지. 내가 너에게 주선하려는 신랑은 내가 주선하는 혼사는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으니, 너만 좋다면 되겠다. 거기, 지금 네 옆에 있는 병조참의는 낭군으로 함께 살만한 사내라고 생각하느냐?”
대전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눈동자들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당당한 양반가 후손인 현직 병조참의를, 임금을 모시는 무관이라고는 하나 백정 계집에게 짝지어주다니?
이런 일이 3년 전에만 벌어졌어도 조정이 뒤집혔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서 조정에서 버티고 있는 자들은 내가 뭔가 작정하고 일을 저지를 때 반대하고 나서면 어찌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전 안은 바늘 떨어트리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어서 대답하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리 말해도 좋다.”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다지가 조용히 대답했다.
“소관은 전하께서 주선하신 혼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수십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장곤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병조참의는 내가 주선하는 혼사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고 하였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장곤은 그저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지금은 얼굴에 홍조가 올라 있었다. 나도 그들 둘을 마주보며 웃었다.
“혼사 준비를 하여야겠구나. 일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궁에서 보유한 물품들을 내주어 쓰게 하겠으니, 좋은 날을 골라 날을 잡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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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사람이 짓궂어?”
상희를 안고 벽에 기대 앉아 있는데 상희가 내 가슴을 툭 치며 핀잔을 주었다. 나도 상희의 코끝을 살짝 누르며 응수했다.
“좋은 일 했는데 왜 그래? 걔들 둘, 벌써 한참 전부터 눈 맞은 거 다 알고 있었다고.”
작년 니마차 원정을 마치고 왔을 때부터 둘이서 썸 타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더니 선전관에 내금위로 궁궐 내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장곤이 자꾸만 다지를 쫓으면서 몸 달아 하는 티가 계속 났다. 다지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지만.
구경하는 재미에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더니 마침내 두 번째로 전쟁터에 같이 나갔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열심히 썸을 탔다.
“유순정이 돌아와서 따로 보고하더라. 둘이 틈만 나면 같이 돌아다니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다지는 싸우는 일 안 시켰대.”
“다지는 도원수가 여자라고 자길 무시하는 줄 알았겠지.”
상희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나도 절로 입매가 올라갔다.
“어차피 다지든 이장곤이든 제대로 지휘관 노릇은 못 하니까. 이장곤은 낙하산으로 떨어진 종사관이니 제대로 군사들이랑 얼굴 익힐 여유가 없었고, 다지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어.”
“맞아. 이 조선에서 어린 여자애가 장교라고 나서 봐야 병사들이 따를 리가 없지.”
상희가 한숨을 쉬었다. 조선에서 여자가 할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상희도 익히 아는 처지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장을 하고 살았다.
“다지가 전쟁터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처럼 특전사 노릇 정도지만, 대마도라면 몰라도 어차피 일본에서 그런 임무 수행하긴 힘들잖아. 지리도 전혀 모르는데.”
조선군도 대마도 지리는 5년 전부터 들쑤시고 다니면서 웬만큼 익혔다. 이제 복속시켰으니 안내인도 있다. 하지만 규슈에 가서는 길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어쨌든, 이틀 뒤에 결국 이장곤네 집에서 식을 올리게 됐어. 내 생각 같아서야 경복궁에서 치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그건 곤란하겠지.”
“종친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튼 다지는 좋겠다.”
상희의 목소리가 쓸쓸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작은 어깨를 안아주었다. 상희도 기댄 채로 가만히 있었다.
“궁에 들어오라면 여전히 거절할 거야?”
상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기다리자 작은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 나중에 대답할게.”
“그래.”
평생 혼인하지 않고 총이나 잡고 살 것 같았던 다지가 혼인을 한다니, 상희도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부디 마음을 바꿔 주면 좋으련만.
살짝 끌어안고 요 위에 누운 뒤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었다.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밤,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움직여 슬며시 상의의 옷고름을 풀며 몸 위로 올라갔다. 밤은 아직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