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6
1부 216화
– 1 –
이번 전쟁에서는 인명 피해가 많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작년에 벌였던 니마차 토벌 때는 그래도 제법 피해가 났다. 행군 거리도 길었고 전투 양상도 혼전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척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공격하는 게릴라전에 당한 탓도 크다.
올해 규슈 원정도 원정 기간은 비슷했다. 다만 원정 기간 중 절반 가까이가 대마도 소탕에 소요된 탓으로 실제 행군 거리는 짧고 전투도 많지 않았다. 특히 이키, 규슈로 넘어가서 입은 손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투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상자는 대마도에서 나왔다. 대마도에서는 흩어져 매복한 쇼니 군이 게릴라전을 벌였고, 이걸 다 찾아 소탕하자면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규슈에 들어간 뒤로는 정말 쉽게 싸우고 쉽게 이겼다. 전사상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우리 군사들이 쇼니 땅으로 쳐들어가서 싸움을 벌였다면 이렇게 피해 없이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거다. 야전에서는 몰라도 적군도 통로에 매복한다거나, 밤중에 야습하는 식으로 반격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가진 화력 우위는 의외로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원정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비전투손실도 더 늘어난다. 다행히 이번에는 여름이라서 니마차 때처럼 동상자가 줄줄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정이 더 길어졌다면 동상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전염병이 언제 발생했을지 모른다, 동상은 적어도 전염은 안 된다!
아무리 물을 끓여서 먹게 하고 화장실을 만들고 음식에 신경을 써도 군대라는 집단 자체가 비위생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선보다 습기도 많은 일본이니 더 불안하다. 하다못해 이질 정도만 발생해도 끔찍한 결과가 빚어졌을 거다.
게다가 바다를 건너는 보급로를 유지하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석 달 정도 진행한 이번 원정에서, 우리 수군은 총 29척이나 되는 배를 잃었다. 익숙하지 않은 포구에다 배를 대려고 시도하다가 좌초한 배가 대부분이었다. 이로 인한 인명 손실만 93명.
이 문제는 꾸준히 일본 항로를 오가면서 뱃길을 익힌 선원들을 확보해야만 개선할 수 있다. 일단은 대마도인들을 기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조선인 선원들도 일본 해안을 지나는 항로를 제대로 알아두어야 하리라.
아, 대마도 하니 생각난 일이 있다. 쇼니 씨가 사죄문에서 약속한대로 자기들이 잡아갔던 대마도 백성들을 송환했다. 문제는 그 수가 5천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대마도에서 잡혀간 사람 수는 7천 명인데 말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왜 수가 2천 명이나 차이가 나는가? 당장 그 연유를 파악하라! 행여 저들이 우리를 속이고 사람을 빼돌린 것이 아닌가?”
돌아온 답은 엉뚱했다. 쇼니 씨는 대마도 주민들을 특정 지역에 집단으로 옮기지 않았다. 히젠 내 여러 도시와 마을에 각각 수십 명씩 할당해서 마치 공노비처럼 노역을 시켰는데, 이 마을들이 여진족 약탈부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대마도인들도 죽거나 잡혀갔다는 것이다.
쇼니 씨 측이 보낸 명부를 보니 각 마을에 배분한 대마도인들의 이름과 함께 해당 인물이 죽거나 잡혀갔는지 여부가 모두 기재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수를 범한 건 우리 쪽이지만, 스스로를 탓하기에는 면구스러웠다.
“그럼 야인들이 부여주로 끌어간 왜인들 중에 대마도인이 섞여 있었단 말인가?”
“5백여 명 정도 되는 듯하옵니다.”
“허허, 난감한 일이로구나.”
진즉에 알았으면 도성에서라도 골라내 대마도로 보냈을 텐데. 대마도는 은근히 큰 섬이라, 겨우 6천명밖에 안 되는 인구를 가지고는 관리가 힘들다. 아무래도 경상우수영, 아니 그보다 좌수영에 명해서 수군 파견대를 배치하고 정식으로 진포를 창설해야겠다.
“전하, 부여주병마사 동청례에게 대마도인을 가려내어 돌려보내라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다, 됐다.”
지금 부여주는 마적떼가 설쳐서 난리가 났다. 작년에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 땅을 차지하고 있던 니마차와 남눌 등 여러 올적합 부족들은 그 힘이 무척 약해졌다. 게다가 남은 전사들 중 가장 강건한 자들이 원정군으로 뽑혀 바다를 건너갔다.
이는 부여주 일원이 사실상 공백지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지난번 전쟁 때 우리 토벌 대상이 아니었던 다른 올적합 부족들, 그리고 서쪽에 있는 건주위 부족들, 북서쪽에 있는 몽골족까지 수많은 도둑놈들이 부여주에 침입해서 빈집털이를 했다. 아주 잔치가 열려 버렸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동청례 직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도리 군은 일본에 보내지 않았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함경도 기병도 2천 기나 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도적들이 너무 많았다. 일일이 다 찾아서 잡거나 쫓을 수가 없었다.
부여주로 돌아간 야인들은 자기들이 바다 건너 전쟁터에 다녀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지금 길길이 날뛰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잡아서 집에까지 데려온 포로를 내놓으라고 하면 정말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깟 왜인 5백 명 정도는 야인들에게 가지라고 줘 버려라. 혹시 대마도에서 항의하는 말이 나오거든 야인들이 분명히 잡아가기는 하였으나, 저들이 포로를 하도 혹독하게 다루는 바람에 이미 다 죽어버렸다고 전해라.”
“예, 전하.”
알 게 뭐야. 지들이 두만강 건너까지 가서 직접 확인하겠어, 어쩌겠어. 그리고 행여 저들이 사실을 안다고 한들, 설마 그것 때문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하진 않겠지.
– 2 –
비변사는 아직 해산하지 않았다. 전쟁 지도라는 최우선 당면 과제는 이제 끝났지만, 지나간 일들을 살펴 교훈을 도출하고 앞으로 실행할 개선방안을 수립한다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치중을 쌓아둔 구역에는 불을 환히 밝히고 그늘진 곳이 없게 하여 누군가가 숨어들 여지를 아예 없애야 합니다. 또한 야경(夜警)을 도는 군사는 태도를 엄중히 하게 하여 적들이 숨어들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신수근이 힘써 말했다. 그날 밤 방화사건이 지금 주제였다.
만약 그날 다른 화약더미까지 모조리 터졌다면, 자다가 죽은 사람 숫자가 절대 두 자릿수로 끝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적어도 백 단위 숫자로 사망자가 나왔을 거고, 박원종이 오우치 군을 찾아가 배짱을 부리며 보상금을 긁어내지도 못했을 거다.
내 판단으로는 오우치가 양보한 결정적인 이유가 우리 편에 화약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한을 품은 농민들’이 제대로 불을 질러서 우리 보급품이 모조리 재가 되어버렸다면, 아마 꼬락서니 한번 처량해졌을 거다.
화약도 식량도 없는 우리 원정군은 오우치 군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우치가 그 기회를 살려 공격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우리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뒀겠지. 그러면 우리 군사들은 보상금은커녕 그저 거지꼴로 돌아왔을 공산이 크다.
“이제까지 우리 군사들이 진을 칠 때는 화약을 실은 수레가 이슬에 젖지 않도록 짚을 엮어 덮기만 했습니다. 행군 도중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좌하성에서처럼 오래 머무를 진영을 세울 때는 무기고를 짓고 그 안에 화약을 보관함이 어떻겠습니까.”
좌찬성 김감이 의견을 냈다. 헌데 내가 듣기에는 그 의견이 좀 비현실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짐이 많은 우리 군사들에게 무기고 짓는데 쓸 돌과 기와, 재목까지 가지고 움직이라는 말인가? 화약 수천 근과 군량 수천 석을 넣으려면 얼마나 큰 창고를 지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무기고를 짓는다 한들 건물 째로 불을 질러버리면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
방화성능을 충분히 갖추려면 100% 돌과 흙으로 겉을 둘러서 무기고를 짓는 수밖에 없다. 국내에 건설해 놓은 주둔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야전에서 그런 걸 뚝딱 만든다는 건 무리다.
“제대로 된 창고를 만드는 건 무리라 하나, 담을 쌓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옵니다.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사옵니다.”
신임 병조판서, 원정군 도원수로서 군사를 이끌었던 유순정이 조용히 말했다.
“지붕을 얹지 않고 흙으로 담장만 두른다고 해도 적이 침입하기 힘들고, 만약 적이 침입에 성공해서 불을 지른다고 해도 화재가 번지기 힘듭니다. 추후 원정에서는 1장 높이로 토담을 쌓아 물자를 보호토록 하소서. 그 구역을 나누고 문에 군사를 배치하면 됩니다.”
1장(丈)은 10자, 대략 3미터다. 과연 그만한 담이라면 몸이 날랜 무사라고 해도 넘어가기 쉽지 않을 거다. 두께가 만만치 않을 테니 구멍을 파서 침입하기도 힘들 테고.
“좋은 방안이다. 병조에는 그에 관한 인재가 충분치 않을 터이니, 공조에서 땅을 파고 담을 쌓는 일을 많이 해본 이들을 데려다가 자문을 청하도록 하라. 토담은 어느 정도 두께로 쌓을 것이며 문은 어떻게 내어야 방호하기 좋으면서 물자 출납에 용이할지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젠 야전공병까지 창설해야겠구나. 야지에서 사격전 벌이려면 호 파고 흉벽 쌓는 일도 해야 하고, 장차 공성전 벌이게 되면 포대를 쌓거나 공성탑도 만들어야 하니까.
공성탑은 보통 궁수를 올려서 수비대를 제압하는데 쓴다. 일본 전국시대에는 조총병도 위에 올렸지만, 불랑기나 진천뢰를 든 포병도 올리면 좋겠다 싶다. 너무 센 포를 얹었다가는 반동 때문에 탑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불랑기면 충분하지 않을까?
불랑기가 좋은 점은 후장식이라 속사가 가능하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장점을, 그리고 대략적인 구조를 알면서도 불랑기를 만들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뒤가 터질 위험성 때문에 크기가 같은 보통 전장포보다 위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먼 거리에서 한 발이라도 정확하게 쏘는 편을 선호한다. 야포든 공성포든, 적과 멀리 떨어질수록 내 편이 덜 죽으니 말이다. 물론 발사속도가 늦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사정거리가 길어진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공성탑에 ‘올리는’ 포는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단 성벽을 부수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위력이 아주 강력할 필요가 없다. 그건 공성포 ? 아직은 없지만 장래에 만들 – 가 담당할 영역이다. 공성탑 쪽에서 성벽에 달라붙기 때문에 사정거리가 길 필요도 없다.
공성탑 탑재포가 할 일은 공성탑에서 성벽 위에 도개교를 내리기 전에 성벽을 지키는 적군 수비대를 화력으로 제압하는 거다. 그러려면 짧은 시간에 많이 퍼붓는 게 중요하며 위력은 딱 사람을 잡을 만큼이면 된다. 불랑기에 산탄 넣고 연사하는 이상으로 확실한 방안이 없다.
이번 전쟁에서는 공성전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무조건 사다리만 들고 성벽에 달라붙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난 김에 물어보았다.
“병조판서. 왜성은 성벽 구조가 어찌 되어 있었는가?”
“평지에 있는 성도 그저 땅 위에 담을 쌓은 것이 아니고, 둔덕을 이용하여 땅을 돋우고 그 겉을 돌로 막아 벽을 쌓았습니다. 부수고 오르기가 쉬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역시나 공성탑이 필요하겠다. 진천뢰만 퍼붓는다고 해서 수비하던 적이 손을 들고 나오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불화살을 막을 수 있도록 생가죽이나 철판을 씌우고, 대포로 성벽 위에서 지키는 적병들을 쓸어낸다면…그거, 탱크로구먼.
야전공병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생각하는 범주가 탱크 개발까지 확대되어 버렸다. 물론 저런 게 제대로 된 탱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좀 많이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이런 무기는 지금 기술 수준으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으면서 위력도 상당할 거다. 공성전 뿐 아니라 방어전에서도 쓸 수 있다. 다음 전쟁에서는 이런 포가 근접방어용으로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이번 전쟁에서는 첫 사용된 화포에 적응하지 못한 왜병들이 머뭇거리다 박살이 났다. 물론 이런 좋은 일이 매번 되풀이될 리는 없다. 저들이 아예 항복한다면 모를까, 싸우기로 결심한 한 다음 싸움에서는 파훼법을 연구할 게 분명하다.
내가 생각한 첫 번째 약점은 발사간격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전장식 총포는 한 번 쏘고서 재장전을 마치기까지 분 단위 시간이 걸린다. 포 한 발 쏘는 데 적어도 4~5분, 그나마 조총은 1분에 2발까지 쏠 수 있지만 그러면 조준을 제대로 못 한다.
두 번째 약점은 비가 오면 못 쏜다는 거다, 이번 원정에서도, 만약 전투현장에 비가 왔다면 우리 군사들은 사가 성 앞에서 대치하면서 날이 좋아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적이 선공을 가해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불랑기는 적어도 첫 번째 상황을 대비하는 무기로서는 충분한 효용을 갖는다. 적이 가까이 왔을 때 산탄을 써서 속사로 갈겨대면 놈들은 피떡이 될 테지. 그리고 적이 놀란 사이 우리는 재장전한 총포를 놈들에게 퍼부어줄 수 있다.
두 번째 상황을 대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이 있겠다. 하나는 현재처럼 창이나 칼로 무장한 살수를 계속 조총수와 혼합해서 편성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조총수를 살수만큼 싸울 수 있게 만드는 거다.
“병조판서, 이번 원정 중에 구주에서는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는가?”
“서너 번 정도 왔사옵니다. 허나 비가 오지 않더라도 무척 습윤한 곳이기에 화약이 습기를 먹지 않을까 걱정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비와 이슬을 막고자 짚을 넉넉히 엮어서 덮었더니 왜놈들이 숨어들어와 불을 지르는 바람에 또 크게 피해를 보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화재 문제로 또 화제가 돌아가 버렸다. 이거, 별로 즐거운 주제도 아니건만.
“알겠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구나.”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비 맞기를 면했으나, 추후에도 이런 운 좋은 일이 계속될 공산은 낮도다. 이제 저들도 화포를 쏘려면 불을 붙여야 함을 알았으니, 만약 싸우게 되면 비 오는 날을 노려 공격해올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설레발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사불여튼튼이라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준비한 계획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럴 때 쓰기 위하여 총에 창날을 꽂고, 군사들에게 총창술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임사홍이 평온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그래, 했지. 바로 임사홍이 병조판서일 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총창술은 단점이 있다. 아주 큰 단점이.
“비슷한 길이의 단창이나 장검과 겨루는 법은 가르쳤으되, 왜인들이 쓰는 것처럼 긴 창에 맞서서 싸우는 법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지 않느냐? 또한 장차 강한 기병을 보유한 적과 싸울 때를 대비하여 우리 살수들도 왜인들처럼 긴 창을 도입하여 쓸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내가 조총병과 창병을 혼합해서 진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건 스페인식 테르시오였다. 다만 창은 걔네들 것보다 훨씬 짧았는데, 우리 군사들이 새로 만든 긴 창을 받아 익숙하게 쓰도록 훈련시킬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몇 년은 전쟁을 쉴 거니까 완전한 새 군대를 편성할 여유가 있다. 적군 기병, 경무장한 여진 기병뿐 아니라 명나라 철기도 저지할 수 있고 일본 장창병대도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창병대를 만들 여유가 있다 그 말이다.
창 길이를 15자, 4.5m 정도로만 해도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상대가 없을 거다. 조총병대와 혼합해서 편성하면 적군을 말 그대로 휩쓸면서 다닐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라고 해도 적과 최소한 비기는 싸움은 할 수 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곧바로 안건에 올려야 하는 법이다. 잇달아서 내놓는 내 아이디어에 비변사 회의는 하염없이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