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9
1부 219화
– 7 –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은 이제까지 수없이 내렸다. 하지만 법적 절차 없이 죽이라고 지시한 건 재위 12년 만에 처음이다. 의도적인 숙청, 사화 때는 물론이고 배목인 일당이 처음 시역을 도모해서 피바람이 몰아쳤을 때도 일단 재판은 거치게 했었다.
배목인 패거리 추적은 한 2년쯤 지속했던 것 같다. 그때는 공식적으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전국을 뒤졌다. 도망친 몇몇 간부들 행적을 악착같이 쫓아서 거의 다 잡았는데, 물론 못 잡은 자들도 있기는 있었다. 어제 척살명령을 내린 승려도 그 잔당일 수 있다.
지난밤 내내 그때 일을 생각하며 분노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서 조금 냉정을 찾고 생각해보니 그 승려를 바로 죽이기보다 붙잡아다 심문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깨달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승려는 배목인패거나 배목인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문 결과 배목인패 잔당이 아니라면 그냥 풀어주면 된다. 몸고생 마음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거야 사과와 더불어서 돈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
만약 배목인패 잔당이라면 필시 못된 짓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도망쳐서 숨어 살려고 들면 적당히 몸을 숨길 곳이 팔도에 널려 있다. 그런데 하필 도성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면? 무언가 뒤가 구린 일을 꾸미고 있다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늙은 승려 혼자서 음모를 꾸며봤자 실행할 수 없다. 그러니 필시 패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정호찬은 그 암자에 드나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한패가 있어 남몰래 연락하려고만 하면 방법은 분명 있을 테니까 말이다.
“형조참판 정호찬을 불러 들라 하라.”
“예, 전하.”
명령한 게 어제 오후인데 설마 벌써 처치하지는 않았겠지. 명령을 수정해서, 금위사 요원 대신 의금부 나장들을 보내서 정식으로 체포해오게 해야겠다.
일단 그 승려는 살려주기로 했지만 미륵신앙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륵신앙은 그냥 사회에 없는 게 더 나은 존재다. 대체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할 때 유행하는 게 그놈의 미륵신앙 아니던가?
과거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삼국시대, 사회 자체가 엉망진창이던 후삼국 시대에 미륵신앙이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도 미륵신앙이 퍼졌던 데는 거란, 몽골, 왜구 등이 줄줄이 침입하고 왕조 중후반에는 민란에 정변이 빈발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지금 내가 다스리는 이 조선은 절대 그런 불안한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미륵신앙을 퍼뜨리는 놈들은 다 혼란을 조장하여 그 틈에 한몫 잡으려는 불온세력이다. 배목인 일당처럼 말이다.
그동안은 흉년이 자꾸 이어지는데다 전쟁준비도 좀 바빠서 사회적인 문제 같은 건 좀 뒤로 미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은 지났다.
내년 봄부터 전국에서 미륵신앙은 뿌리를 뽑는다. 배목인처럼 미륵을 자칭하는 놈들은 죄다 잡아들이고, 그 교단에 속한 간부들까지 붙들어다가 은광에서 강제노동을 시킨다. 신도들에게 갈취한 재물과 약취한 여자들은 샅샅이 찾아내서 토해놓게 한다.
미륵불상을 모조리 파괴하고 탱화나 경전을 불태울 생각까지는 없다. 그것도 세월이 지나면 다 문화유산이 될 테니까. 그런 것들은 금물(禁物)로 규정해서 압수하고, 의금부에서 보관하게 하면 된다. 나중에 박물관 같은 게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리로 넘어가도록.
선량한 일반 신도들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겠다. 물론 교주에게 미혹되어서 반항하는 자들이 있다면 함께 처벌해야겠지. 별 수 없다.
정호찬이 들어오면 곧바로 전국 각지에 산재한 미륵교단의 수와 규모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려야겠다. 배목인 일당 수사가 끝나고서는 그쪽은 방치 상태였지 싶은데, 올해 중에 조사에 착수하면 내년에는 결과가 나오겠지 싶다. 그러면 바로 소탕에 들어가야지.
– 8 –
“원자도 내년에는 6세가 되니, 세자로 책봉하면 어떨까 한다. 올해 동지사가 북경에 가서 상국에 세자 책봉을 위해 칙사를 보내주십사 청하면 어떻겠느냐.”
6살이면 조금 어리기는 해도 세자로 책봉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다른 적자가 있어서 경쟁을 시킬 것도 아니고, 후계구도를 확실히 해두면 추후 말썽이 생길 일도 없지 않을까.
“전하, 과거 사례를 보면 적어도 8세는 되어야 세자로 책봉함이 관례였습니다. 전하께서도 8세가 되었을 때 세자로 책봉되신 바 있으니, 2년 더 기다려서 세자를 책봉하시지요.”
이런 반대는 당연히 신수근한테서 먼저 나왔다. 여보쇼, 당신 걔 외삼촌이잖아. 자기 생질을 세자 자리에 올리겠다는데, 그것도 반대야?
인상을 찌푸리면서 도승지를 돌아보았다. 내 뜻을 눈치 챈 도승지가 급히 붓을 잡더니 바로 종이에 뭐라고 써서 가져왔다.
어디보자…조선이 생길 때 애초에 어른이었던 정종이나 태종은 빼고, 형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 다음 세자가 된 탓에 역시 어른이었던 세종대왕도 빼고, 세자가 아니었는데 왕이 된 성종도 빼고, 다들 몇 세에 세자가 됐지?
의외로 그렇게 어리진 않았구나. 양녕대군이 10살, 문종이 8살, 예종도 8살에 세자가 됐네? 나도 8살에 세자 자리에 올랐다고 했지 참. 그리고 왕위에서 쫓겨나 죽은 단종도 8살에 세자, 정확히 말하자면 왕세손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8세가 마지노선인가.
아, 전례 좀 깨면 어떠냐? 6살이면 뭐 어때?
“원자가 비록 나이는 좀 어리다 하나, 매우 영특하다. 세자로 책봉해도 가하다고 본다.”
“허나 아직 학문이 부족하십니다. 좀 더 공부를 하신 뒤에 세자로 올리심이 어떻겠습니까. 한 해 정도 지난 뒤에 세자로 책봉하셔도 가할 것이옵니다.”
“세자가 아직 학식이 부족함은 나도 안다. 하지만 공부란 어차피 평생 하는 것이고, 학식은 쌓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 말 말고 동지사 편에 보낼 주문을 준비하라.”
황이한테 무슨 장애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그렇지도 않은데 왜 세자 책봉을 일부러 늦춰야 한단 말인가? 학문이 부족하다지만 이제 다섯 살 먹은 아이가 천자문을 읽었으면 됐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충분하다고 할 텐가? 아, 천자문을 읽기는 해도 아직 외우지는 못한다.
“예, 전하.”
조정 의견을 다스려서 세자 책봉을 위한 주본을 쓰게 하고 나니 기분이 후련했다. 이로써 내 적장자인 황이에게 국제적으로 공인된 지위를 확보해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세자 책봉이 안 된 상태에서도 왕위는 계승할 수 있다. 성종이 그랬듯, 세자가 아니라 해도 일단 보위에 오른 다음 사후 승인만 받으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식 세자, 명나라가 승인한 공인된 후계자라는 자리는 얕볼만한 게 아니다.
더구나 중전이 회임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터다.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아들이라면 장차 황이를 보좌할 인재가 될 아이다. 그만큼 형의 자리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설마 둘째가 세자 자리를 넘볼 거라고 여기진 않지만.
– 9 –
“거, 고래장국 한 그릇 주시오.”
장터 국밥집에서 된장으로 간을 하고 기름이 둥둥 뜬 국밥이 나왔다. 목륜마를 옆에 세운 두 장꾼이 수저를 들고 평상에 마주앉더니 하나가 감탄했다.
“거 참, 살다 보니 바다짐승을 다 먹어보는구먼. 기름기가 진한 것이 참 좋네.”
“여름이라 몸을 보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이게 참 좋지. 어여 들게.”
일행은 이미 이 장국에 익숙한 듯 새우젓을 풀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숟가락을 꽂았다.
“소금에 절인 고기는 좀 비싸지만, 이 장국은 개장국보다도 헐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자, 어여 먹고 한 그릇씩 싸가세. 집에 있는 식구들도 먹여야지.”
두 사내가 급히 국밥을 퍼 넣었다. 줄줄이 들어오는 손님들도 너나 할 거 없이 이 국밥을 먹고 있었다.
“고래가 요즘 잘 팔린다고 들었다. 올해 수입이 어느 정도 되겠느냐?”
근래에 경상도 일대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고기가 고래고기가 되었다. 각 고을을 맡아서 다스리는 지방관들이나 시찰 나간 어사들의 보고가 모두 일치했다. 농축인 소를 그만큼 적게 잡아도 되니 참으로 잘된 일이다.
“올해는 고래를 팔아 얻는 수익이 5만 냥은 족히 되리라 사료됩니다. 고래를 잡은 마릿수는 작년과 거의 같으나, 고래에서 얻은 산물을 구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 시장에서 값이 계속해 오르고 있사옵니다.”
박이재는 어느새 조선에서 고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뭐 직접 고래를 잡아서 기름을 뽑는 일은 당연히 못 하겠지. 하지만 어느 해역에서 고래를 많이 볼 수 있는지, 시장에서 고래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등은 따라갈 이가 없다.
“기름을 뽑고 남은 비계찌꺼기도 시장에 팔고 있을 정도이옵니다. 싸게 팔기는 하나, 양이 꽤 많아 합치면 이것도 상당한 액수이옵니다.”
고래기름은 고래의 지방층을 끓는 물에 삶아서 얻는다. 장터 같은 곳에서 파는 고래장국에 들어가는 주재료가 바로 이 비계찌꺼기고, 박이재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장생포 일대에서는 이게 명물로 손꼽히는 음식이 되어버렸단다.
내 기억으로 서양 포경선에서는 이 지방 찌꺼기를 기름 채취하는 솥에다가 때는 땔감으로 썼다고 들었지만…뭐 식용으로 쓰려면 못 쓸 것도 없지. 어쨌거나 조선에서는 그걸 직접 불에 넣기보다 시장에 팔고 장작을 사서 때는 게 더 싸게 먹히니까.
제대로 된 고래고기는 소금에 절여서 비싸게 따로 파니까, 이 지방 찌꺼기가 싸게 풀려도 별 상관은 없다. 백성들이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고깃국을 값싸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고기가 부족한 조선이다.
“그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장생포 한 곳으로는 고래를 더 많이 잡을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래서 그대에게 포경촌을 더 세울 장소를 물색하라 하였는데, 적당한 후보지를 골랐느냐.”
“일단 가까운 구룡포가 좋을 듯합니다. 그 뒤에는 강원도 고성군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거 죄다 일제 강점기 포경항이었던 곳들이군. 좋다. 인력을 양성하는 대로 계속 포경촌을 늘려 나가도록 하자. 뭐니뭐니해도 돈이 되니까 말이다. 잡는 수도 고작해야 매년 수십 마리 정도니, 이 정도 가지고 한반도 주변에서 고래가 멸종하지는 않겠지.
“강원도 바다에도 고래가 많다 들었다. 추후 어장을 넓히면 좋은 성과가 있겠구나.”
“울산만큼 많지는 않으나, 제법 있습니다. 다만 울산에서처럼 해안 가까이까지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포경기지로 쓰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하나 생각났다. 고래가 들끓는 동해바다 딱 한가운데 있는 곳. 구한말에 러시아인들도 탐냈던 곳이다.
“무릉도에 정배된 죄인들로 하여금 고래잡이를 배워 고래를 잡아 바치게 하면 어떻겠느냐?”
“전하, 유배된 죄인들에게 공물을 바치게 하는 일은 없지 않았사옵니까?”
박이재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가능한 사악해 보이기를 바라면서 웃었다.
“지금 저들은 비옥한 섬에서 자기들끼리 편안히 살고 있지 않느냐. 비록 육지로 나올 수는 없다 하나, 조세도 없고 역도 지지 않는다. 이래서야 어찌 벌이라 하겠느냐!”
“아버님, 보고 외울 책이 없는데 어찌 공부를 하겠습니까.”
“선비라 함은 책을 삼백 권은 외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책이 없다 하여 어찌 공부를 소홀히 하겠느냐. 따라 외어라!”
오두막 한편에 모여 앉은 아이들이 앞에 선 어른의 선창에 따라 논어를 외웠다.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앞에 선 어른이 그 뜻을 높은 소리로 가르쳤다.
“외딴섬에 있다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열심히 그 뜻을 익혀라.”
엄하게 소리치는 어른 앞에서 아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아버님,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저희는 과거도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과거를 보아 출세하고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란 성현이 남긴 말씀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울 생각일랑 하지 말고 어서 외어라!”
울릉도에 귀양간 놈들이 어떤 모양으로 사는지, 올해 봄에 강원도 관찰사가 올린 보고서를 보고 어이가 가출했던 생각이 난다. 관찰사도 기가 막혔는지, 보고서에다가 이런 꼴이 초래된 건 다 자기 잘못이라며, 마땅히 죄를 청한다고 썼다.
무오사화가 터진 게 벌써 8년이다. 그때는 양반, 선비들이 외딴섬에 살면서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히 큰 벌이라 여겼는데 이 보고서를 보고 생각이 확 달라졌다. 젠장, 내가 니들보고 후회하고 뉘우치라고 섬에 보냈지, 청학동 만들라고 보냈냐?
게다가 생계를 위한 농사나 어로활동은 죄다 데리고 들어간 노비들이 하고 있더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섬에 들어가면 반상이 뒤집혀 노비들이 그전처럼 주인을 모시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걸 노예근성이라고 해야 하나?
절망을 주고 고생을 시키려고 섬으로 보냈는데 유유자적 살고 있다면 실로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다. 내년부터라도 놈들에게 일을 시켜서 공물을 바치게 해야겠다.
“전하, 장생포에 있는 우리 경부(鯨夫)들도 고래잡이에 숙달되는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숙련된 어부들도 배우는데 여러 해가 걸렸는데, 배를 모는 재주조차 서투른 자들이 어찌 이 일을 하겠습니까. 더구나 고래를 잡으라고 준 배로 저들이 섬에서 탈주한다면 어쩌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다. 그 잘난 선비들이 놀고먹는 꼬라지에 배알이 꼴리긴 했다만, 이 문제는 애초에 울릉도를 개척할 생각으로 하인들까지 딸려서 보낸 내 쪽에도 원인이 있었다. 울릉도를 개발하든가, 죄인 놈들을 고생시키든가 하나만 해야 했다.
“네 말이 옳다. 고래는 빼고, 저들에게 물개를 바치도록 하자. 무릉도 일대에는 물개도 많이 살지 않느냐? 무릉도에 사는 죄인들에게 매년 물개 백 마리쯤 잡아서 바치게 하면 호조에서도 크게 환영하지 않겠느냐.”
정해진 양을 못 채우면 대신 같이 섬으로 들어가게 했던 여자들을 육지로 끌어내서 관비로 쓴다. 그리고 남정네들만 섬에 살게 해 주마. 만약 사내들끼리 섬에서 북적거리는 게 좋으면 명을 따르지 않을 테고,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내고 싶으면 열심히 물개잡이를 배우겠지.
아, 만약에 마누라나 딸들이 육지에서 편하게 지내기를 바라서 일부러 물개를 안 잡는다면? 기꺼이 그 소원을 들어줘야지. 사내들끼리 직접 옷 짓고 음식 마련하고 빨래하면서 얼마나 잘 지내는지 즐겁게 봐주도록 하마. 물론 밤일을 못하게 되는 건 덤이겠고.
“알겠습니다, 전하. 물개는 이제까지 각도에서 많이 잡았는데, 백성들에게 주는 부담이 무척 컸습니다. 무릉도에서 죄인들이 물개를 잡게 한다면 그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본의는 그게 아니지만 결과는 뭐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군. 참, 평양 쪽 일은 요즘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네? 한번 직접 행차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