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30
2부 0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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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들을 평정하느라 치쿠젠노카미께서 고생이 많으셨소.”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노부카츠 님.”
하시바 히데요시, 본래 일반 아시가루 출신이었으나 지금은 오다 가에 속한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 중 하나다. 젊은 시절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만들었던 원숭이처럼 생긴 얼굴과 자그마한 체구는 여전했지만, 이제 그를 비웃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치쿠젠노카미는 히데요시의 직책명이다. 조정에서 좀 더 높은 관등을 받아내면 그에 따라서 호칭도 바뀌겠지만 아직은 그날이 오지 않았다.
“아케치가 감히 그런 배반을 꾸미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요. 어찌 섬기던 주군에게 그리 쉽게 칼을 들이댈 수가 있는지, 쯧.”
히데요시와 나란히 앉은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 노부오키가 혀를 차면서 이제 죽어 세상에 없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비난했다. 노부오키는 전에 키타바타케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가독을 상속했기 때문에 일단은 오다 가 사람이 아니지만, 그거야 형식에 불과했다.
이제까지 오다 가의 주류는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차남인데다 평소 부친에게도 바보 소리를 들었고, 다른 가문에 양자로 가기까지 한 노부오키는 아무래도 비주류였다. 하지만 이제 노부타다가 없으니 노부오키에게도 기회가 온 상황이다.
“아직 믿지 않는 자들도 있지만, 노부나가 님께서 카와치로 쫓아낸 요시아키 님이 아케치를 부추긴 게 확실합니다. 본래 그자는 요시아키 님의 신하, 옛 주군이 부추긴다면 그 정도 일은 충분히 저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히데요시의 주군이자 노부카츠의 부친,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다이묘였다. 본래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놀라운 재능으로 상대 세력을 쓰러트리기 시작하여 일본을 지배하는 패자로서의 지위를 쌓아올렸다.
갑작스럽게 주요 세력으로 부상한 노부나가를 막아서고 쓰러트리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심지어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노부나가를 잡으려고 여러 다이묘들을 포섭해서 구축한 포위망까지 분쇄하고, 음모꾼인 요시아키를 아예 교토에서 추방해 버렸다.
이제까지의 관례대로라면 노부나가도 쇼군 일가 중 누군가를 허수아비로 세우고 그 밑에서 권력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아예 막부를 해체해 버리고 직접 철권을 휘둘렀다. 일본의 중심, 교토를 비롯한 기나이(畿?) 일대가 모조리 오다 가의 천하가 되었다.
이제 그 팽창이 주고쿠, 그리고 혼슈를 벗어나 시코쿠 방향을 향할 참이었다. 모리 방면을 히데요시가, 그리고 시코쿠 방면을 이 자리에 아직 오지 않은 삼남 노부타카가 맡았다. 형과 마찬가지로 노부타카 역시 간베 가에 양자로 들어가 간베 노부타카가 되어 있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올해 안에 양 방면 정벌이 모두 마무리되었을 텐데. 그럼 내년 봄에는 규슈나 호쿠리쿠를 칠 수 있고, 적어도 5년 안에 천하가 우리 발밑에 놓일 수 있었을 거요.”
아케치 미츠히데가 혼노지에서 일으킨 반란 때문에 모든 정복사업이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반란을 진압하고 그 뒷수습, 그리고 그에 따른 논공행상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허나 치쿠젠노카미께선 유독 큰 공을 세우셨소. 모리에게는 사실을 숨기고 협상해서 빗츄 다카마츠 성을 개성하게 하고, 반역도인 아케치 토벌전에서도 선두에 섰으니까. 휘하 병력이 도망가서 전열을 꾸리지 못한 노부타카나, 늦게 도착한 귀신 시바타보다 훨씬 큰 공이오.”
아케치가 노부나가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코쿠로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던 노부타카 휘하 원정군은 와해되었다. 오다 가 최강의 맹장으로서 귀신이라 불리는 시바타 가쓰이에도 우에스기 씨의 잔당을 토벌하느라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착은 히데요시였다.
“주군을 섬기는 신하로써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히데요시가 점잔을 뺐다. 상대는 노부나가의 차자다. 아직 오다 가문을 확실히 계승한 것도 아니고 재능도 별로 없지만, 엄연한 오다 가문 아들로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장차 운이 따른다면 가문을 이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한다.
“노부타카 님이 오셨습니다.”
시종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히데요시는 잠시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하지만 노부오키는 굳이 몸가짐을 바꾸지 않았다. 손아래 동생이 들어오는데 굳이 주의할 필요가 없었다.
“먼저 와 계셨소.”
시바타 가쓰이에를 거느리고 들어온 노부타카가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역적 아케치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권위가 필요했던 히데요시는 아케치를 칠 때 노부타카를 명목상 지휘자로 예우했다. 하지만 그걸로 공을 세웠다고 할 수는 없었고, 심사가 불편해진 노부타카는 같은 처지인 가쓰이에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두 사람 모두 출신이 천한 히데요시를 처음부터 싫어했다는 점도 같았다.
“그래, 왔는가.”
형제라고 해 봐야 나이도 같고 어머니는 다르다. 태어난 순서에 따른 서열은 분명 있지만 지금은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둘 다 가문도 하나씩 계승한 터, 서로 대등한 입장이다. 당연히 관계는 전혀 좋지 않았다. 짧은 인사가 오간 뒤에는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노부타카 님께서는….”
그나마 넷 중 가장 붙임성이 좋은 히데요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필 이때 밖에서 시종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군께서 들어오십니다!”
네 사람은 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문이 열리자 지금 일본 최강의 권력자, 오다 노부나가가 당당히 걸어 들어왔다. 다른 신하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지난 5월. 아케치 미츠히데는 모리를 공격하는 히데요시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지시였지만 곧바로 휘하 병력 1만 3천을 동원한 미츠히데는 주고쿠 전선이 아닌 교토를 향했다.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사열을 받고 출발하겠다는 이유였다.
6월 1일 밤, 교토에 도착한 미츠히데는 휘하 병력 중 3천을 이끌고 노부나가가 머무르고 있던 혼노지(本能寺)를 급습했다. 저항하는 노부나가 측 군세는 몇 안 되는 호위병뿐이었다.
비록 적의 수는 적었으나 싸움은 격렬했다. 그 와중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아케치군은 혼노지 밖으로 일단 물러나야 했다.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 폐허 속을 뒤졌지만 노부나가의 시체는 그 속에서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무리의 병사들이 밀려왔다. 묘가쿠지(妙?寺)에 머무르고 있던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의 병력이었다. 노부타다 옆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노부나가 본인이 서서 호령을 하고 있었다!
곧바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노부나가군은 얼마 가지 못해 밀리기 시작했다. 비록 노부나가가 직접 지휘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수가 너무 적었다. 게다가 지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아케치군 병사들도 필사적이었다.
시외에 대기하고 있던 아케치군 본대에서 지원이 도착하면서 전세는 점점 더 불리해졌다. 마침내 노부나가군은 싸움을 포기하고 묘가쿠지로 도로 철수를 시작했다.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 성으로 가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 탓이다.
묘가쿠지로 돌아온 노부나가에게는 4백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들 노부타다까지 잃었다. 후위에서 부친을 엄호하다가 총탄에 맞았던 것이다.
그 뒤로 엿새 가까이 전투가 이어졌다. 묘가쿠지를 물샐 틈 없이 포위한 아케치군은 맹공을 가했지만 오다군은 죽을 각오로 싸워 막아냈다. 적이 화공도 몇 차례 시도했지만 절의 승려와 하인들까지 달라붙어 간신히 불을 껐다.
하지만 탄약과 화살이 떨어졌다. 식량도 거의 떨어졌다. 포위가 엄중하여 구원병을 부르는 사자도 나가지 못하고, 최후가 눈앞에 다가온 그 순간에 히데요시군이 나타났다.
노부나가 부자가 이미 죽었다고 사방에 소문을 퍼뜨리고, 그 증거로 노부타다의 목을 베어 전시하고 있던 미츠히데는 히데요시가 이렇게 빨리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적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나타난 히데요시는 아케치군을 격파하고 노부나가를 구출할 수 있었다.
이로써 목숨을 건진 노부나가는 뒤늦게 달려온 다른 가신들 앞에서 히데요시의 공을 크게 치하했다. 그리고 아케치가 반기를 든 사연을 캐내고, 연루자를 체포하는 일도 히데요시에게 맡겼다. 그 결과 쫓겨난 쇼군 요시아키가 배후에서 조종했음이 판명되었다.
“모리가 조선에 원병을 청하는 사절을 보냈다고?”
“그렇다 합니다.”
시바타와 함께 오다 가문의 쌍벽으로 불리는 무장, 니와 나가히데가 답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문제는 교양과 외교에 도통한 아케치가 전담으로 맡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하시바에게 빗추 다카마츠 성을 잃고 곧 주고쿠가 뚫리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모양입니다. 류조지, 오토모, 시마즈 등 규슈에 있는 유력 다이묘들이 모두 뭉칠 기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조선이 더해진단 말이지.”
노부나가의 애초 계획에는 조선을 상대로 싸운다는 계산이 없었다. 물론 천하, 즉 일본을 통일한 뒤에는 조선과 그 뒤에 있는 명나라까지 원정한다는 결심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그건 일본 전역을 완전히 제압한 뒤에나 진행할 과업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모리가 보낸 요청에 응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모리는 이제까지 조선과 별다른 교류를 맺은 전적이 없고, 교역조차 직접 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이 그런 모리를 굳이 도우려 하겠습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노부나가는 조선이 가진 군사력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분명 조선은 다이묘 한둘 정도는 분명 능가하는 큰 나라다. 하지만 일본 66주가 하나가 되어 그 힘으로 맞선다면 대적이 불가능한 상대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조선군이 바다를 건너 이쪽으로 왔던 건 겨우 두 차례뿐이다. 아니, 사실 한 차례뿐이라고 할 수 있지. 에이쇼 3년 말이다. 지난 에이로쿠 7년에는 조선군이 아니라 도이들만 왔으니까. 그나마 두 번 다 규슈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도이(刀伊)는 여진족을 지칭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이들은 5백년도 더 넘는 옛날에 쓰시마, 이키 및 규슈 일부 해안지방을 휩쓸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나중에 고려를 통해 고려에서는 이들을 ‘되놈’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에서는 이 도둑놈들을 ‘도이’라고 불렀다.
에이쇼(永正) 3년과 에이로쿠(永?) 7년은 각각 1506년, 1564년에 해당한다. 두 사건 모두 제법 세월이 흐른 데다, 기나이에 자리한 오다 세력에게 머나먼 규슈에서 벌어진 사건은 크게 실감이 난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대들은 모리를 공격하다가 조선군과 싸우게 되면 어찌하겠는가?”
노부나가의 질문을 받자 가쓰이에가 가장 먼저 나서서 용맹하게 답했다.
“놈들을 바로 쳐부수겠습니다! 에이쇼 때 쇼니 군이 완패했던 이유는 조선군에게만 총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총이 있고, 수십만 정예병사가 있습니다. 전혀 적이 두렵지 않습니다.”
노부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다지 흡족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못마땅한 기분을 읽은 좌중이 얼어붙자 히데요시가 나섰다.
“조선에서 군대를 보내기에 주고쿠는 너무 멉니다. 제가 상인들을 통해 듣기로, 조선에서는 근래 흉년이 잦아 대군을 일으키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조선군은 평소 북방에서 도이들과 싸우는데 집중하는 바, 갑자기 이쪽으로 대군을 보내기도 힘들 것입니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살아난 데는 히데요시의 공헌이 컸다. 주고쿠로 가야 할 아케치군이 교토를 향하자, 아케치군 내에 침투해 있던 히데요시의 부하들이 바로 빠져나가 노부나가에게 알렸다. 히데요시는 평소 사이가 나쁜 미츠히데를 감시할 생각에 몰래 첩자를 심어두었었다.
첩보를 접한 노부나가는 시간을 끌고자 호위병 일부를 혼노지에 남겨두고 아들 노부타다가 있는 묘가쿠지로 갔다. 그리고 곧바로 노부타다의 병력을 움직여서 아케치를 처단하려 했는데 그건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히데요시는 명실상부한 오다 군 2인자가 되었다. 음모를 탐지하여 주군을 구해낸 공훈 앞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장수들은 히데요시를 견제하기는커녕 혹시 자기 밑에는 히데요시가 들여보낸 첩자가 없을지 걱정하는 판이었다.
“장차 규슈를 제압할 때는 혹시 조선이 개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리 공략에서는 굳이 그 가능성을 우려할 필요가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조선군과…싸울 일 자체가 없을 겁니다.”
히데요시가 발언을 끝내자 노부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와는 표정이 전혀 달랐다.
“하시바가 하는 말이 옳다. 싸움에 이기려면 용감하기도 해야 하지만, 싸움을 시작하기 전 주변 상황부터 살펴야 할 일이다. 아마 조선은 모리를 돕지 않을 것이다.”
노부나가가 내린 결론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곧바로 내년 봄에 단행할 시코쿠 공략 및 모리 제압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히데요시는 천천히 아즈치 성 천수각 아래를 걸었다. 한때 원숭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이제 오다군 2인자, 명실상부한 일본의 2인자가 되었다. 조선에서 이것저것 배운 고니시 유키나가, 그 똑똑한 놈이 진언한대로 첩자를 심었던 덕분이다. 이제 실질적인 1인자가 될 차례다.
“아직은 좀 일러, 천하인에 도전하기에는.”
첩자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때는 일순간 갈등했다. 교토에는 아케치에게 맞설 오다군 병력이 없다. 아무리 자신이 심은 첩자에게 연락을 받았다 해도 여유는 불과 한두 시간이었을 터다.
교토 탈출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적군이 추격할 게 분명하고, 노부나가의 성격 때문에도 탈출 따위 시도할 리가 없었다. 분명 목표를 놓친 아케치군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서 아케치의 목을 따려고 시도할 게 확실했다. 실패할 공산이 높음에도.
만약 자신이 회군을 적당히 늦춘다면, 노부나가는 분명 죽는다. 그 뒤에 아케치를 토벌하면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는 명분으로 오다군 내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후계자 선정에서도 영향력이 커질 것이고, 그만큼 빨리 천하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잠시 이를 악문 히데요시는 가능한 빠르게 모리와 협상을 하고 회군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노부나가에게 공인받은 2인자가 먼저 되고, 힘을 다진 후에 그 이상을 노려도 늦지 않으니까.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아직까지는 상대하기 벅찬 경쟁자들이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