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38
2부 016화
– 5 –
부상을 입은 전사들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끙끙거리며 신음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니탕개가 거칠게 그 옆을 걸어갔다. 전사들 한 무리가 주변을 경계하며 그 뒤를 따랐다.
“어떻게 할 거야! 네놈 말을 따랐다가 별다른 소득도 없이 손해만 보지 않았나!”
니탕개가 천막 입구 드림천을 걷어내며 고함을 쳤다. 그 안에서 한참 자기 밑에 거느리고 있는 소추장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우을지가 고개를 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난들 일이 이렇게 풀릴 줄 알았겠나? 조선 놈들이 이렇게 질기게 버틸 줄은 몰랐어!”
“단박에 함락시킬 수 있다면서!”
추장들이 고성을 지르며 다투자 주변을 둘러싼 양편 전사들 사이에 살벌한 공기가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허리에 찬 칼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누구 하나만 칼을 뽑는다면 그 즉시 천막 안이 피바다가 될 상황이었다.
“이봐, 니탕개! 흥분을 멈추게. 분명히 함락시킬 수 있으니까.”
우을지가 다소 타협적인 태도로 나오며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지금 여기서 칼을 뽑아 싸운다면 분풀이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두 추장 중 하나는 분명 죽는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함락시키면 뭐하나! 조금만 있으면 조선군이 밀려올 텐데!”
니탕개는 목소리를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만큼 화가 나 있었다.
두만강을 건넌 우을지는 경원부 일대 진보 4개를 동시에 공격하면서 니탕개를 비롯, 두만강 일대 번호들에게 사자를 파견했다. 흉년이 준 고통을 과장해서 퍼뜨림과 동시에, 지금 조선 본토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알리면서 함께 들고일어나자고 했다.
우을지가 애초부터 이런 대규모 반란을 꾸몄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기 부족들을 위해 식량만 조금 약탈하고 그 잘못을 머나먼 장백여진에게 덮어씌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자 의도적으로 판을 키웠다.
사실 두만강 인근에 사는 야인 부족들은 요 근래에 조선 관헌들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흉년으로 어렵다고 호소하면 가까운 함경도 관리들은 ‘너희는 부여주에 속해 있다’며 외면했고, 부여주에서는 ‘우린 돈도 곡식도 없으니 알아서 해결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나마 예전 부여주병마사는 사람을 보내서 불평을 하면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신립은 야인을 대할 때 인정사정없었다. 거칠게 항의하면 무엄하다고 그 자리에서 쳐 죽였고, 반항할 기색을 보이는 부락은 군사들을 보내 불태워버렸다.
참다못한 한 부족에서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후환을 각오하고 매복한 전사 30명이 신립을 기습했는데, 신립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17명을 직접 활로 쏘거나 칼로 베어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 뒤로 신립은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야인들은 강한 자를 존숭한다. 하지만 야인들이 강한 전사를 높이 치는 근본 이유는 사냥과 전쟁을 성공시켜서 먹을 것을 마련해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해도 부족민들을 굶게 만든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신립은 여진족들에게 지도자 자격이 없었다. 불만은 커져만 갔다.
몇 년째 흉년이 계속되는데도 식량 한 톨 내주려 하지 않는 조선 관리들, 그러면서도 세금 독촉은 악착같은 그자들에게 쌓인 증오는 컸다. 한번 혼을 내줘야만 그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을 제대로 할 거라는 우을지의 꼬드김에 많은 추장들이 넘어왔다.
잘 진행되던 반란은 첫 번째 주요 목표인 경원이 쉽게 함락되지 않으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길목에 있는 진보들은 며칠 안에 모두 함락되고, 도망친 조선군 수비대는 경원으로 모여들어 농성했다. 그런데 경원성은 스무 배 가까운 병력에게 포위당하고도 함락되지 않았다.
경원부사 이일이 상당히 유능한 장수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습이니만치 승산이 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무참하게 실패하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을지, 이게 다 네놈 때문이야! 우리는 전사 백 명만 잃고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손해를 어떻게 보상하겠나!”
니탕개는 조금 망설이다가 권유를 받아들여 우을지 편에 가담했다. 니탕개는 회령 일대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데, 회령부사 조대곤은 신립이나 이일과 달리 야인들을 온후하게 대했다. 니탕개와도 가깝게 지냈다. 물론 그 역시 이들을 굶주리지 않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북방의 법은 간단하다. 생존이 전부를 좌우한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버린다. 그게 야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조선 국왕이 뭐라고 하건, 생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경원성을 지키는 이일 놈을 제압할 수 없다면, 끌어내기라도 해 보란 말이다. 여기서 그저 시간만 끌고 있으면 북병사가 구원군을 끌고 온다! 오도리 놈들도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고!”
이일은 진보 네 개가 모조리 무너지는 동안 경원성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진보를 함락시키면서 우을지 측 사기는 올랐지만, 여기에는 별다른 물자가 없었다. 모두에게 나눠줄만한 재물을 얻으려면 이 기세를 그대로 몰아 경원을 들이치는 수밖에 없었다.
우을지는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세한 여러 부족까지 이끌고 곧바로 경원성을 공격했지만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일이 악착같이 성을 지키면서 꼬박 열흘 동안 전투가 계속되었다. 공성에 나선 야인들도 지쳤고 많은 사상자가 났다. 그래서 니탕개가 날뛰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이 있다.”
“뭔가?”
우을지로서도 지금 이 난처한 입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부락에 두고 온 수까지 합쳐 1만이 넘는 전사를 거느린 니탕개와 갈등이 폭발하면 곤란했다. 행여 니탕개가 우을지의 목을 베어 조선에 귀순한다는 마음이라도 먹으면 반란이고 뭐고 당장에 끝장이다.
“네놈이 회령부를 공격하는 거다. 그러면 놈들은 어느 쪽을 먼저 구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당황할 거고, 우리가 얻을 전리품도 더 많아질 거야. 회령부도 병사가 별로 없지 않나? 조선 원군이 오기 전에 한시바삐 쳐야 해.”
이번엔 니탕개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얼굴을 본 우을지가 은근히 니탕개를 도발했다.
“왜, 부사가 네놈 친구라서 망설이나? 그 늙은이는 제대로 싸움도 할 줄 모르니 차라리 잘 됐지. 네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을 포위하면 겁을 먹고 바로 항복할 테니까, 그때 성에 있는 재물만 빼앗고 부사는 풀어주면 되잖나? 아니면 네놈은 그럴 용기조차 없나?”
우을지가 예상한 대로 니탕개가 버럭 화를 냈다.
“어디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하나! 네가 경원을 함락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회령을 함락시켜 보여주마! 얘들아, 가자!”
니탕개가 부하들을 이끌고 거칠게 나가버리자 우을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을지보다 많은 부하를 거느린 니탕개가 회령을 공격하면, 분명 조선 토벌군은 니탕개부터 공격할 테니 이쪽에선 숨을 돌릴 수 있다. 상황을 보고 움직이는 편이 좋겠구나 싶었다.
“자, 우리도 얼른 경원을 함락시킬 궁리를 하자. 적어도 도망칠 때 먹을 양식은 구해야지.”
– 6 –
도성에서 파견할 병사는 조총병을 중심으로 해서 3천 명으로 했다. 대다수는 번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오위 소속 병사들, 까놓고 말해서 파트타임 군인들이다. 그래도 명색이 중앙군이라 숙련도는 제법 높다. 그 외에 전원 총을 든 내금위 소속 정예병이 3백 명.
유감스럽게도 예전에 내가 애용하던 백정군 병사들은 이제 없다. 황무지가 없어져 사냥터가 줄고, 국가가 치안을 확립하면서 옛날처럼 날뛰는 백정집단 자체가 사라졌다. 이제 백정들은 종사하는 직업이 다를 뿐, 농사짓고 사는 일반 백성들과 기본적인 전투력은 다를 게 없었다.
내금위에는 여전히 백정, 재인 출신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그거야 보통 백성들 중에도 힘 좋고 싸움 잘 하는 이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전자 명단을 보다보니 마침 임꺽정이라는 백정 출신 종7품 부사정 한 명이 눈에 확 들어오던데, 혹시 이 임꺽정이 그 임꺽정일까?
동대문 문루 위에서 보고 있으려니 보병, 기병들이 줄지어 성문 밖으로 나갔다. 내가 위에 있다고 해서 함성을 지르거나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라고 했으므로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사실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할 겸 해서 거창하게 출정식을 하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함경도에서는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그런 행사로 시간을 끌면 안 되겠구나 싶어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챙길 일은 챙겼다.
“가는 길에 군사들을 잘 먹이도록 지시해 두었느냐?”
“넉넉히 식사를 준비하라고 가도 연변에 있는 고을마다 명을 내려 두었습니다.”
흉년이 이어졌다지만 유사시를 위한 군량미는 충분하다. 게다가 내수사가 꾸준히 잡아내는 고래와 생선이 있어 굳이 소를 잡지 않아도 군사들에게 고기도 줄 수 있다. 이런 걸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점에서는 경성군이 구두쇠 짓을 한 걸 칭찬해 줘야겠군.
“함경도 남병사와 북병사 모두 군사를 모으고 있으렷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지금 한참 싸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의 기본적인 변경 방어 체제는 경계초소 역할을 하는 진보들이 일차적으로 적을 막고, 후방에서 원군을 편성해서 적을 몰아내는 방식이다. 초기에 대응하는 주력은 아무래도 가까운 평안도나 함경도 병사고, 전투가 대규모인 경우 후방에서 파병이 이루어진다.
“정말로 함경도에도 총포가 넉넉히 있느냐? 관장들이 거짓 보고를 한 것은 아니냐?”
여진족은 분명 조선의 주적이다. 하지만 부여주가 영토로 편입된 후 80년이다. 그전보다는 아무래도 대비가 소홀해졌을 공산은 크다. 묻고 또 물어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우려하실 필요 없사옵니다. 작은 진보에는 포가 없으나, 경원이나 회령과 같은 큰 성에는 총통을 넉넉히 두어 바로 쓸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쳐들어온 야인들을 가장 쫓아내기 쉬운 수단이 화포인 까닭에, 언제나 잘 관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도승지 유성룡은 내 옆에 붙어서 내가 하는 온갖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역시 도승지쯤 되면 국정 전 분야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모양이다. 아니, 유성룡이라서인가?
그나저나 경원부사가 이일이라고 하던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일도 우리 역사에서는 제법 여진족 상대로 잘 싸운 무장이었는데, 여기서는 어떨까? 공연히 이순신하고 작은 다툼이라도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도승지, 이순신은 지나갔느냐?”
“훈련원 군사들은 지금 막 동대문에 도착했사옵니다.”
동대문을 나가는 오위 군사들을 보다가 성내 쪽으로 몸을 돌리니 훈련원 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아서 다른 군영 군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이 섬 같았다.
지금 훈련원은 병조에서 실시하는 각종 시험을 관장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연산군 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사관학교라면 몰라도 부사관교육대 정도로까지는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무척 아쉽다. 좀 서둘렀으면 좋았을 걸.
“저기 오른쪽에서 세 번째로 말을 타고 있는 이가 이순신입니다.”
내려다보니 키가 크고 마른 무장 한 사람이 말 위에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경군 지휘관인 조방장 박경운의 종사관으로 뽑혀 종6품으로 오른 이순신이었다.
“부디 공을 세우고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장래에 이순신에게 시킬 일이 무척 많도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유성룡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나로서도 딱히 그가 대답하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사이 이순신이 성문을 지나 동쪽으로 멀어져 갔다. 부디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참 동안을 바라보았다. 전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성대한 개선식을 열어주어야지.
지나간 기록을 보니 내가 죽고 76년간 개선식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간 치른 싸움이 내 때와 달리 죄다 방어전이었다고 해서 안 열었다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싶다. 공격전에서 거둔 승리는 자랑스럽고, 방어전에서 거둔 승리는 자랑스럽지 않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내금위 조총수들이 거둘 전과도 기대된다. 내금위 무사들은 전원이 군기시에서 뒤져낸 강선조총 중 상태가 좋은 것들을 지급받았다. 부디 솜씨를 발휘해주길 바랄 뿐이다. 참, 그러고 보니 예전에 군기시를 책임지던 ‘땜장이 장군’ 김지가 복직했지?
“전하! 이미 늙은 몸을 이리 다시 불러주시니 성은이 감격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전 평안병사, 경상우수사 김지(金?)는 내 앞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머리가 거의 백발이었다.
“그대와 같은 충신을 물러나게 하다니, 과인이 큰 잘못을 범했도다. 군기시를 다시 맡기니, 총포와 화전(火箭)을 개량함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김지는 변경에서 군무를 맡으면서 화포야말로 꼭 필요한 무기임을 확신했다. 군영 내에서 장인들을 다그쳐 가며 성능은 같으면서도 보다 가벼운 화포, 무게가 같지만 탄환이 더 멀리 나가는 화포를 만드는데 매진했다. 이에 솜씨를 인정받아 십년 전에 군기시 제조가 되었다.
김지의 운명이 꼬인 건 그때부터였다. 경성군은 김지에게 싸고 가벼운 화포를 만들게 해서 군사비를 줄일 심산이었는데, 임금의 의중을 잘못 파악한 김지는 크고 강력한 고성능 화포나 후장총 따위를 개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당연히 엄청난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인종대에 창고에 처박힌 강선조총을 다시 꺼내고, 군사들에게 지급한 활강조총도 모두 거두어들여 강선을 파자’고 했다. 돈 아끼라고 앉혀놨더니 입을 열기만 하면 돈 잡아먹는 소리만 하자, 참다못한 경성군은 김지를 파직하고 신무기 개발도 중단시켰다.
그 뒤로 김지는 긴 세월을 굴욕 속에 살았다. 노력은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에선 ‘땜장이 장군’이라는 모욕적인 별명만 들었다. 당장이라도 화병이 나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참에 임금이 다시 불러준 것이다. 그것도 군기시에!
“그대를 군기시에 부름은 솜씨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뭔가를 만들겠거든 꼭 내게 먼저 설명하고 허락을 받은 후에 만들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김지와 나누던 대화를 떠올린 사이 마지막 대열이 동대문을 나섰다. 길다란 군사들의 줄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