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40
2부 0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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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방패를 든 여진족 보병들이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궁수들이 뒤에 서서 이들이 무사히 돌격할 수 있도록 화살을 퍼부었다. 성벽 위로 날아든 화살들이 마치 싸락눈처럼 타닥거리며 성벽 돌을 두들겼다.
화살비가 두려워서겠지만 조선인들은 성벽 여장 뒤에 숨어서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들이 사냥하라고 내준 화살촉을 이렇게 돌려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쩝, 좀 미안하긴 하네.”
말 위에 올라탄 니탕개가 성벽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라고, 부사. 나도 위신이 있지.”
회령부사 조대곤이 조선인들에게도 명관인지는 니탕개도 알지 못했다. 다만 니탕개 자신을 비롯한 야인들에게는 후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회령에서 개시가 열릴 때면 조선 장사꾼들이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엄히 단속했고, 분쟁이 생기면 늘 공정하게 판결했다.
흉년이 닥친 뒤에도 종종 곡식을 주었고, 사냥에 쓸 화살촉을 만들라고 철도 주었다. 물론 모피로 값을 치렀으니 거저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고을에서는 이 정도 배려도 없었다.
허나 조대곤이 주는 도움만으로 계속된 흉년을 버틸 수는 없었다. 날씨 때문에 수확은 적고 신립 때문에 교역은 막히고 사냥을 너무 해서 사냥감은 적어졌다. 어떻게 겨울을 지내나 하고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는데 우을지가 보낸 사자가 갑자기 도착했다.
“우리가 굶주리는 원인은 호랑이 병마사에게 있다! 조선인들에게 갚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동참하라! 지금 내 군사들이 경원부를 함락시키기 직전이다. 노획물을 같이 나누자.”
흔들렸다. 함경도 변경 고을에는 분명 비축된 식량이 있다. 아무리 흉년이라 해도 군량미로 남겨두는 곡식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걸 털어온다면 겨울을 넘길 수 있다. 목표가 경원이라는 점도 입맛이 당겼다. 조대곤이 있는 회령은 그간 신세진 게 있다 보니 좀 껄끄러웠다.
물론 그 뒤에 들이닥칠 신립은 두려웠다. 하지만 신립은 머나먼 북평에 있지 않은가? 그가 내려오자면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경원부 함락에 잠깐 동참한 다음 얼른 손을 떼면 보복당할 대상은 우을지 하나뿐일 게다. 혹시 나중에 들키면 얼른 도성에 사자를 보내 죄를 빌면 된다.
간단히 생각하고 전사들 중 일부만 데리고 우을지에게 가담했는데, 웬걸 경원성이 도무지 떨어지지를 않았다. 전리품만 얼른 나누고 발을 뺄 생각이었는데 피해만 입고 있으려니 화가 치밀었고, 따지러 갔다가 도리어 우을지 놈의 교활한 입놀림에 넘어가고 말았다.
“젠장, 이건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없고.”
조대곤이 베푼 후대가 마음에 걸려서가 아니다. 한참 떨어진 경원부라면 모를까, 회령부가 공격당했는데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분명 밀려든 조선군은 우을지 뿐만 아니라 니탕개도 노릴 게 뻔하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회령을 공격하는 대신 조선군 편으로 돌아서서 우을지를 공격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선 것도 아니고 동조해서 경원부 공격에까지 가담했다. 우을지는 분명히 그 사실을 폭로하여 니탕개를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갈 게 분명하다.
공에 눈이 먼 조선군 장수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 줄 리는 없다. 우을지 놈을 때려잡아 충성심을 증명하려고 시도해도, 그 뒤에 토벌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무슨 수를 생각해도 앞길이 보이지 않자 기왕 가던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저런 망할!”
보병들이 성벽 밑에 도착해서 사다리를 세우려고 하는데 성벽 위에서 진천뢰가 떨어졌다. 폭연과 함께 십여 명이 그대로 흩날리고 나머지 병사들이 방패를 집어던지고 도망쳤다. 성벽 위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쏘는 탄환이나 화살은 없었다.
“젠장, 화포를 쏘지 않기에 화약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회령부를 둘러싼 공성전도 벌써 엿새째였다. 조선군은 처음에는 성벽 위에서 치열하게 포를 쏘며 버텼다. 하지만 사흘째부터 발포를 줄이기 시작했고 오늘 아침에는 마침내 화포 발사가 멈췄다. 니탕개는 적에게 화약이 떨어졌다고 확신하고 부하들을 돌격시켰었다.
“추장! 조선군은 아직 화약을 많이 가진 모양입니다.”
“나도 안다!”
부하들에게 화를 내 봤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포위를 풀고서 물러난들 조선군이 용서해줄 리도 없다.
“병사들을 물러나게 해라. 상황을 살펴서 다시 공격한다!”
“예, 추장!”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까짓 거, 정 피할 구석이 없으면 일을 더 크게 만들어버리면 된다. 우을지 놈이 했던 것처럼 이쪽에서도 각 부족에게 사자를 보내 두만강 일대만이 아니라 부여주 전역에 걸친 봉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신립이 휘두르는 철권 때문에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건 두만강 일대 부족들만이 아니다. 잘 하면 정말 부여주 전체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아마 오도리는 끝까지 동참하지 않겠지만.
“조선의 개들!”
다른 부족들이 부여주로 완전히 밀려난 후에도 유독 오도리만은 두만강 남쪽 함경도 땅에서 잘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나지 않은 채 식량도 종종 제공받으며 안정된 삶을 누리니 시종일관 조선 편을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두고 보자. 우린 절대 죽지 않는다.”
북방의 추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이다. 살아남는 자가 가장 강한 것이고,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협력도 배신도 모두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니탕개 앞에 놓인 갈림길 중 어느 것이 부족을 존속시키는 길일지, 고민이 깊어졌다.
병사들을 불러들여 재편성을 지시하려는 참에 숨이 턱에 닿은 기병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저런 급보가 올게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하는 순간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추, 추장님! 병마사가 왔습니다. 호랑이 병마사가 철기 수천 기를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뭐? 뭐야? 병마사가 와?”
“예! 말로 겨우 하룻길입니다!”
니탕개 본인은 물론 주변에 서있던 부하들도 일제히 공포로 얼어붙었다. 북평에 있어야 할 호랑이 병마사, 신립이 어떻게 여기 있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원 공격이 훨씬 일찍 시작했는데 하필 왜 회령부터 구하러 온단 말인가?
수수께끼가 줄을 이었지만 지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신립 휘하의 철기들이 등 뒤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도망도 못 가고 모두 죽는다.
“병마사는 어느 쪽에서 오고 있느냐?”
“북쪽입니다! 정북쪽에서 화살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 즉시 모든 병사들을 철수시켜라! 일단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예, 추장!”
– 9 –
“성을 지켜내느라 고생이 많았소.”
경원을 포위하고 있던 야인들은 북병사 이성혼이 끌고 온 원군을 보고 썰물처럼 사라졌다. 근 스무날 가까이 지속된 포위가 풀리자 군사와 백성들은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다.
이성혼은 담당구역에서 모은 함경도 병사 3천을 먼저 거느리고 왔다. 경원을 해방시킨 후에 4천이 더 왔고, 도성에서 출발한 경군 3천도 도착했다. 이들은 원래 둘 다 회령을 구원하러 갈 예정이었다. 헌데 이동하던 중에 느닷없이 북쪽에서 나타난 신립이 이미 회령을 구했다는 소식을 받고 경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허나, 적도들이 처음 침노했을 때 부사가 보인 태도만은 심히 유감스럽소. 불의의 기습을 당했으니 대처가 늦을 수는 있소. 허나 4개 진보가 공격을 당하는데도 구원하러 나서지 않은 건 도대체 무슨 연유요?”
“적이 매복을 펼쳐 나서지 못했습니다.”
한겨울이지만 이일은 진땀을 흘렸다. 사실 이일이 적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예하 진보들을 구원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상황을 살피러 보낸 척후들이 모두 복병을 만나서 죽거나 다쳐 돌아오는 바람에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꼼짝도 못 했을 뿐이다.
“주상께서는 그런 보고를 반기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오. 경원을 지켜냈음은 확실한 공이나 각 진보를 구하지 못함은 분명한 죄, 부사가 져야 할 책임이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일은 추궁을 받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하들은 패했어도 그 자신은 버텼다고 강변할 수도 있지만, 제때 도와야 할 예하 군사들을 돕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허나 아직 싸움이 한참 남았는데 장수를 바꿀 수는 없겠지. 전하께서는 강동까지 출병하여 부여주병마사와 함께 적도들을 토멸하라 하셨소. 그대 역시 이 싸움에 종군하여 죄를 씻도록 하시오.”
“높으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옛날에는 두만강 너머에서 야인들이 침입하면 지역 수령들이 곧바로 군사를 끌고 강을 건너 응징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부여주가 영토로 통합되고 어느 정도 체제가 잡히면서 그런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대신 부여주병마사에게 통보하여 토벌을 의뢰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명으로 도강령이 내려왔다. 이성혼과 품계가 같은 부여주병마사 신립이 분명 텃세를 부리겠지만, 그에게는 영내에서 일어난 난을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 두 사람 중에서 이성혼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경원 방면에서는.
애초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가 있는 이일은 그저 죽었다고 각오하고 이성혼 밑에서 공을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일은 이성혼을 따라 군의에 들어가면서 이를 악물었다. 무슨 짓이든 해서 기필코 살아남으리라고 단단히 결심했다.
“우리는 북병사 영감의 지휘에 따라 두만강을 건넌 다음 강변 일대에 있는 여진족 촌락을 모조리 찾아 부순다. 항복하는 자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으나, 저항하거나 도주하려는 자들은 용서 없이 베어라. 집과 창고는 불태우고 가축과 곡식은 있는 대로 거두어라.”
예전 무종 때 토벌에서는 곡식 따위 거두지 않고 다 태워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원하게 태워버리기에는 식량이 너무 아까웠다. 어쨌든 함경도도 흉년이니까 말이다.
“오위 군사들은 내가 지휘해서 움직일 것이나, 내금위 군사들은 전에도 그랬듯이 각 군영에 몇 명씩 흩어져서 움직이게 된다. 이 종사관.”
“예, 영감.”
부름을 받은 이순신이 정중하게 답했다. 상석에 앉은 조방장 박경운은 정3품으로, 이순신이 발포만호로 있을 때 상관인 전라좌수사로 재직하던 장수였다. 이순신의 실력과 인품을 알기에 이번 출병에 나오게 되면서 그를 종사관으로 골라 데려왔다.
“북병사 영감과 다른 장수들이 모인 군의에서, 경원부 군사들이 입은 피해가 크니 특별히 내금위 군사 1개 중대를 따로 빼어 경원부 군사들과 함께 적괴를 추격하게 하기로 하였네. 난 자네가 그 일을 맡아주었으면 하네.”
“어찌 군령을 거부하겠나이까.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순신이 절도 있게 답하자 박경운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군의가 곧 끝나고 도성에서 함께 온 경군 장수들이 각자 막사로 돌아가는데 박경운이 이순신을 따로 불렀다.
“미리 해둘 말이 있네. 경원부 군사들은 격전을 치러 많이 지쳐 있으나, 부사 이일은 제때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가 있으니 공을 쌓아 죄를 씻으려고 조바심을 부릴 것이야. 욕심이 좀 과하거든. 허나 그 성격 덕분에 자네에게도 공을 세울 기회가 생길 걸세. 기회를 잘 살리게.”
박경운은 자기가 전라좌수사를 그만둔 뒤 이순신이 고발된 사실을 알고 무척 안타까워했다. 조정에서 승인을 받지 않고 멋대로 전선을 건조한 일은 분명 잘못이지만, 자신이 수사 자리에 있었다면 확실히 책임을 경감시켜줄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임 수사는 이순신을 방관했다.
이순신은 품계가 깎이고도 성실하게 복무를 계속했다. 그런 태도를 잘 아는 박경운은 이번 난리가 이순신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경원부사를 상관으로 두면 심기가 편치 않은 때가 많을 걸세. 허나 적과 싸워 공을 세우려 하는 그 욕심은 진짜이고, 그 실력도 제법 뛰어난 만큼 그대가 공을 세울 기회도 많겠기에 내 추천하였네. 부디 경원부사 밑에 있는 기회를 살려 좋은 성과를 내기 바라네.”
“영감께서 소관을 믿어주시니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답례하는 이순신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상관이 누구건, 어떤 생각을 하건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순신으로서는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공을 세우려 하는 이유도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지 출세와 영달을 이루고자 해서가 아니었다.
북방 근무라면 7년 전 동구비보 권관으로 복무할 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곳 경원과는 다소 먼 곳이지만 야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환경은 비슷하다. 마침 휘하에 들어올 내금위 군사 대부분도 북방 근무 경험이 있으니 다행이다.
“내금위 군사들은 강선조총도 받았으니 아마 경원부사가 무리한 임무를 부여할 수도 있네. 그렇다 해도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네.”
“무관 된 몸으로 어찌 싸움을 꺼리겠나이까. 소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터이니 염려치 마소서.”
이순신에게 출세할 기회를 주려고 이일 밑으로 보내기는 한다. 허나 박경운이 보기에도 두 사람은 극과 극으로 성격이 달랐다. 과연 어려움 없이 어울릴 수 있을까? 이 점만은 그 역시 마음속으로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