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46
2부 0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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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76년, 77년? 하여간 기나긴 간극 후에 도성에서 개선식이 벌어졌다. 6개월 가까이 북방을 뒤흔들었던 난리가 끝났으니 마땅히 축하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함경도 지방군들은 여기 동원되지 않았다. 경군으로 파견되었던 병력만 보무당당하게 도성 거리를 행진했고 포로로 잡은 야인 전사와 아녀자들이 줄줄이 묶인 비참한 꼬락서니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광화문 문루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뿌듯하긴 한데 흙길이 거슬렸다. 으음, 어서 도성 시가지를 돌이나 벽돌로 포장해야겠다 싶다. 포장도로를 만들면 보기도 좋지만 교통도 편리하고, 노변에 있는 상점 따위가 도로를 쉽게 먹어들어오지도 못하니까.
연산군 때도 그 계획을 구상은 했었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못 했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 중국에서 장인을 데려다가 평양에 벽돌공장을 짓자. 아무래도 벽돌공장은 연료를 많이 쓰니까, 탄광이 있는 평양에 두는 게 좋겠지.
완성된 벽돌은 배로 실어오면 되겠지만, 그와 별개로 평양으로 가는 신작로를 더 튼튼하게 정비할 필요는 있다. 이쪽도 벽돌로 포장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시내도로도 아니고 시외로 가는 간선도로를 벽돌로 포장하기는 너무 비싸게 들지 싶다. 그보다 로마식 돌포장이 나을까.
잠시 딴생각을 하는데 백성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내리니 부여주병마사 자리에서 해임된 신립이 당당한 태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수레 위에는 신립이 거둔 수급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신립은 비록 미리 난리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으나, 그동안 부여주를 지키는데 공을 많이 세웠고 난리를 진압하는데도 선두에 나서 싸웠으므로, 벌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병마사에서 체직하여 용양위 위장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명한다.”
용양위는 도성을 지키는 중앙군인 5위 중 좌위(左衛)에 해당하는 군영이다. 예하에 5위에서 가장 강한 기병인 별시위가 들어가 있다. 다른 군영이 보유한 기병들이 종친이나 공신 자제가 많은 장식용 부대임을 감안하면, 그나마 일반 양반 출신인 별시위가 5위에서 최정예다.
이번 반란이 터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흉년이다. 하지만 신립이 조금 더 유화적으로 야인들을 대했다면 그 규모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음도 자명하다. 두만강 연변뿐 아니라 부여주 전역에서 신립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전하께서 정하신 바가 옳습니다. 신립이 분명 죄를 지었으나 그동안 쌓은 공이 있으니 그 정도로 하소서.”
조정에서도 신립에 대한 조치는 별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워낙 공과가 뚜렷한 문제다 보니 적당히 조정하기가 도리어 쉬웠다. 따지자면 승진도, 좌천도 아니고 보직이동일 뿐이니까.
“도승지. 신립이 몇 살이라 하였는가?”
“병오생입니다. 서른여덟입니다.”
“이순신보다도 한 살이 적구나.”
그럼에도 종2품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덮어쓰며 무훈을 세웠는지 알 만하다. 이런 스타플레이어 하나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면 굳이 대군을 동원하지 않아도 적을 겁먹게 한다. 역시 경성군은 비용을 덜 들이고 야인들을 진압할 수 있는 장수라서 신립을 좋아했나 보다.
“추후에는 저들이 신립이라는 한 장수의 용맹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와 임금의 위광에 겁을 먹게 해야 한다. 하루빨리 부여주에 사민을 벌여 야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야겠다.”
얼른 보내자. 매년 8만 명씩 10년이면 80만 명, 20년이면 160만 명이다. 인구도 분산하고, 새 땅도 개척하고. 하루빨리 국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라도 사민정책은 늦출 수가 없다. 죄인을 강제로 보내는 외에 세금혜택 걸고, 면천도 걸어서 자원자를 가능한 많이 모아야겠다.
조선인 정주인구가 늘어나면 세금 수입도 늘고, 병력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터전을 뺏기는 야인들이 불만을 품을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지. 걔들도 어디 터를 잡아 정주하든가 아니면 직업군인으로 사회적 위치를 잡든가 하게 유도해야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여주에 백성들을 이주시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백성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목에 칼을 쓴 채 발목에 차꼬를 차고 걸어오는 우을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우을지 건으로 조정에서 벌어진 논란이 머릿속에 절로 떠올랐다.
“그대들은 이 두 장계가 내용이 상충되는 데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가?”
조정 중신들은 박경운이 올린 장계와 이성혼이 올린 장계, 아니 사실상 이일이 올린 장계를 보고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장계가 완벽하게 서로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라. 경원부사 이일은 그 스스로가 우을지를 사로잡았으며, 수하 장수들까지 모두 합쳐서 453과나 되는 수급을 거두었다고 한다. 대부분 자신이 거두었지만 수하 장수인 원균도 60과, 박경운의 종사관으로 자기 밑에 둔 이순신이 17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이일이 그래도 양심이 조금은 있었네? 전공을 모조리 자기가 가로채지 않고 일부는 원균, 일부는 이순신에게 남겨준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양심불량이긴 매한가지다.
“신 좌찬성 조광 아뢰오. 포로를 베거나 아녀자를 베어 수급 숫자를 늘리는 행동은 전하께 올리는 공훈을 부풀려 성총을 흐리게 만드는 악습입니다. 허나 워낙 무장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으니, 쉽게 고칠 수가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적용되는 윤리가 다르니까 포로나 부녀자를 학살하는 게 이 시대에는 범죄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구라를 치는 건 명백한 범죄 아닌가! 그것도 감히 임금을 속여? 내가 포로를 죽이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마침 아주 좋은 반대사례가 있다.
“부여주병마사 신립을 보라! 신립 역시 적굴을 토벌하면서 아녀자들도 처단했지만, 신립은 아녀자를 죽이고 머리를 깎아 적의 수급이라고 보고하지는 않았다. 장수라면 마땅히 전장에서 거둔 성과를 보고함에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
허위보고가 반복되면 상층부에서는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조종사들이 격추했다고 보고한 수를 합치면 적 공군이 세 번쯤은 전멸했을 텐데 여전히 제공권은 적에게 있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과를 조작하는 자가 승패를 뒤바꿔 보고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풍조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모조리 털 수는 없다고 쳐도 이참에 한번 걸고는 넘어가자.
“이미 지나간 옛 일은 불문에 부치겠으나, 추후에는 수염이 없는 수급은 머리모양이 어떻건 모두 여자로 보고 전과로 세지 마라! 만약 풀로 수염을 붙이고 전공이라 속이는 자가 있다면 기군망상(欺君罔上)한 죄로 엄벌에 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수급을 세는 공훈 평가방법 자체가 바뀌어야지. 하지만 대체할 수단이 없으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보기도 좋고 세기도 좋은’ 수급만큼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보고서 작성으로 대체하면 분명히 보고서에서도 구라를 칠 테니까.
“허나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경원부사 이일과 그 수하인 아산보 만호 원균이 웃전을 속이고 수하 장수 이순신이 세운 전공을 모조리 자신들이 한 것처럼 거짓 보고를 올린 일이 문제가 아니냐!”
어떻게 숫자가 맞아도 이렇게 정확하게 맞는지 모르겠다. 이순신이 잡아서 이일에게 넘긴 수급과 남녀 성인 포로를 다 합한 수가 정확하게 453이다. 이일이 잡았다고 올린 포로 중에는 우을지 한 명을 빼면 어른은 한 명도 없고 모조리 어린애밖에 없었다.
이걸 보면 이일은 이순신을 떠나보낸 뒤에도 아예 자기 손으로는 적을 하나도 안 잡았다는 소리다. 아니,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상급자가 하급자 공 가로채는 게 일상이긴 하다만, 자기는 아예 손도 까딱 안 하고 뽑아먹기만 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이일이 이번 반란에서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다. 경원부 방어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서 사살한 적이 수백은 될 거다. 다만 휘하 진보들을 제때 지원하지 못한 죄가 있고, 이걸 메우려고 기를 썼을 뿐이다.
지친 자기 군사들보다 새로 받은 파견부대를 앞세운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지금 문제는 너무 공으로 먹으려고 했다는 거지! 그것도 감히 이순신을 등쳐먹으려고 들어?!
여기에, 처음에는 내가 몰랐던 죄가 하나 추가되었다.
“이번에 오도리 추장 동호수가 보낸 장계를 받았다. 동호수가 말하기를, 이번에 난이 터져 수습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분명히 이일에게 경고를 보냈다고 했다. 우을지가 두만강 일대에서 야인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난을 일으킬 거라고 말이다!”
이 장계는 이원익을 거쳐서 올라왔다. 무장들이 일단 토벌에 바쁜 사이 이원익은 현지에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소문을 수집했다. 오도리 쪽도 토벌군에 동참하고 안내인을 제공하느라 바빴지만, 이번 일에서 자기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은 알고 있었다.
“이일은 이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무시했다. 이는 경원부 판관 양사의도 자백한 바다! 이는 수급을 부풀린 것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죄가 아니냐!”
“전하, 적어도 그 시점에서 이일에게 그 첩보를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하여 모든 판단에 죄를 묻는다면 판단 자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사헌부 지평 하나가 항의하고 나섰다. 와, 확실히 삼사가 기세가 많이 살았구나?
“이일이 나름 타당한 근거로 첩보를 묵살했다면 그대가 옳겠다. 허나 그저 태만했을 뿐이지 않으냐? 경원부 관원들을 내보내 조사를 시키지도 않고 다른 야인을 불러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런 자가 우을지를 보았다는 제보는 어찌 그리 쉽게 믿고 이순신을 내보냈단 말이냐?”
처음에 이일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우을지를 쫓게 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따지자 그 다음에는 이순신이 공을 탐하여 스스로 길잡이를 구해 멋대로 움직였으므로 벌해야 한다는 답서를 제출했다. 아니, 그럼 자기가 먼저 벌을 주자고 하지 왜 은폐하고 공을 가로채?
이미 박경운에게 받은 장계가 있는 이상 이일의 보고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 사실 박경운이 굳이 장계를 올리지 않았어도 내가 어느 쪽 말을 믿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일은 죄가 너무 크다! 비록 공도 있다 하나, 어찌 용서를 바라겠느냐?”
이일이 지은 죄는 세 가지다. 우을지 봉기에 대한 사전제보를 받았음에도 묵살했을 뿐더러 이를 숨기기까지 한 죄, 휘하 진보를 제때 구원하지 못한 죄, 수하 장수가 세운 공을 가로챈 죄! 경원부를 지킨 공으로 이 중에서 하나 정도는 상계해줄 수 있다. 하지만 다는 안 되겠다.
“이일을 백의종군에 처한다! 부여주 북병사 휘하에 들어가 공을 세울 때까지 종군하라!”
전에 계획했던 부여주 행정개편은 관찰사 밑에 북병사, 좌병사, 우병사를 두는 것으로 일단 낙착을 보았다. 좌병사는 목단강에 인접한 서부지역을, 우병사는 두만강과 연해주 등 동부를, 북병사는 지금은 거의 방치상태인 흑룡강 방면을 담당하게 된다.
기군망상이라는 큰 죄를 저질렀지만 애초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이일이 한 행동이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해서 이 정도로 용서했다. 더불어 원균에 대한 처분도 결정했다.
“아산보 만호 원균은 임지를 버리고 도망쳤으며, 이일을 부추겨 다른 이의 공을 가로채도록 직접적으로 교사했다. 이 어찌 큰 죄가 아니겠느냐? 이일은 공이라도 세워 벌을 감하였으되, 원균은 죄만 있고 공은 없으니 백의종군이 아닌 삭탈관직 후 부여주 북병사 밑으로 보내라!”
굳이 찾으려고 들면 원균도 공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아산보에서도 싸웠고, 경원부에서 이일 밑에 들어가 방어전에 종사했으니 야인 몇 명 정도는 사살했을 수 있다. 근데 그게 뭐?
그 정도 공은 아산보와 수하 군사들을 버리고 도망친 큰 죄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고대건 현대건, 군인에게 적전도주만큼 큰 죄는 없다. 어떤 군대라도 도망친 병사는 용서하지 않는다. 사실 처음에는 걍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반대가 좀 강했다.
“전하, 그래도 원균이 역심을 품고 일을 망친 것은 아니니 목숨은 붙여주소서.”
유감스럽게도 원균이 속한 원주 원씨 가문이 방귀 깨나 뀌는 집안이다. 이성계의 후궁으로 사실상 3번째 왕비였던 성비 원씨가 이 집안이고, 태종도 이 사람에게는 꼼짝도 못했다. 이후 위세가 이어져서 지금도 한 가닥 한다. 덕택에 온갖 루트로 구명 청원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확 짜증이 났다. 이놈들도 다 죽여 버릴까 하다 생각해 보니 죽이는 대신 북변에 보내 구르게 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원균이 지금 마흔 넷인데, 그 나이에 흑룡강변에 가서 제설작업 좀 하면 진짜 죽고 싶겠지? 남은 평생, 한번 그렇게 보내 봐라.
함성 소리가 커지기에 밑을 보니 우을지가 막 광화문 앞을 통과하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우을지를 직접 체포한 당사자로서 이순신이 준마에 올라탄 채 행진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순신은 이번에 세운 공으로 품계가 급상승했다. 무려 정4품 진위장군이다. 이번 전란이 터지기 직전까지 겨우 종8품 수의부위였던 걸 생각하면 벼락출세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3년 전 발포만호 승진 때도 그랬으니.
하지만 워낙 세운 공이 크다 보니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게다가 첫 승진도 아니고 원래 품계로 돌아가는 것뿐이잖은가? 결과적으로 이일이 고마운 일을 한 셈이다. 이일이 이순신을 앞세워 굴린 덕분에 공훈이 쌓여서 승진이 쉬워졌다. 그래서 이일의 벌도 좀 줄여줬다.
다만 품계는 올리도록 했지만 직책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유성룡과 함께 일본에 통신사로 보낼 생각인지라, 병조나 지방에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제 개선식 끝나면 통신사 파견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해야지.
움직이던 대열이 멈추었다. 우을지를 호송하던 군사들이 그놈을 미리 단상 위에 만들어놓은 처형대 위로 끌어올렸다. 칼을 풀어낸 군사들이 체념한 우을지의 두 귀를 화살로 꿰뚫었다.
준비가 갖춰지자 집행을 맡은 형리가 장도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왔다. 치켜들었던 장도가 내리쳐지자 잠시 조용해졌던 광화문 앞이 환성으로 들끓었다. 잘린 목을 기둥 위에 매달아서 위로 올리자 환성은 한층 더 커졌다.
“정녕 말로 들은 무종 때 같습니다.”
내 뒤에 서 있던 나이든 내관이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신이 궁에 들어왔을 때, 무종을 모시던 이들이 아직 궁에 많아서 옛 개선식 때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지금 광경이 정녕 신이 귀로 들었던 그때 이야기와 같습니다.”
당연하지. 그때나 지금이나 다 내가 주관하는 건데. 그래도 지금 행사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규모나, 전리품이나…무엇보다 아쉬운 건 전시한 머리가 하나라는 점이다. 우을지 옆에 니탕개 놈도 사이좋게 매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놈은 대체 어디 짱박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