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47
2부 0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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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풍이 잦아든 계절이지만 사공들은 선뜻 배를 내자고 하지 못했다. 232명이나 되는 큰 규모의 사절단이다. 자칫 바다에서 몰사할 수도 있는 만큼 날씨를 살필 필요는 컸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술을 나눌 여유가 있지. 축하하네, 여해.”
“고맙네, 서애.”
부사(副使) 유성룡과 서장관(書狀官) 이순신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병을 비웠다. 그간 출발 준비로 바빴던 탓에 이렇게 둘이 느긋하게 마주앉을 기회가 없었다.
정사(正使)인 전 대제학 김조영은 날씨가 나쁘니 뼈가 수신다 하며 객관 안 다른 방에 누워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술잔이 비자 이순신이 부드럽게 농을 건넸다.
“사실 일전에 받은 서신에서, 상감께서 자네를 정사로 임명하여 왜 땅에 보내시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었네. 품계도, 나이도 전례에 맞지 않으니 말일세.”
“난들 기꺼웠겠나. 상께서 내리시는 명은 무엇이든 따르는 편이 도리겠네만, 합당치 않다고 여긴다면 마땅히 진언을 드려야지. 덕분에 상께서 생각을 바꾸셨으니, 다행스러울 뿐이네.”
임금은 북방에서 벌어진 난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가 생기자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야겠다고 선언했다. 어리둥절해진 신하들이 무슨 연유로 사신을 보내려 하시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왜국에서 권신들이 서로 내전을 벌임은 이미 일상이라 우리가 개입할 것이 없으나, 적어도 임금을 해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 헌데 지금 권신인 신장은 임금인 원의소를 수도인 경도(교토)에서 내쳤으니, 이를 그대로 볼 수 없다. 이웃의 정으로써 화해를 주선하려 한다.”
명분상으로는 그럴듯했다. 고려건 조선이건 이제까지 일본인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난리를 치든 상관하지 않았다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이 점을 들어서 몇몇 신하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임금은 나름 설득력 있는 논리를 들이밀었다.
“과거에 왜 땅에서는 그저 해적들이 무리지어 설쳤을 뿐 제대로 된 조정과 왕실이 없었다. 예로부터 천황이라 일컬으며 망령되이 설치는 자들이 있기는 하나, 정사는 돌보지 않고 그저 잡신에게 제사만 지낸다 하니 그건 북변 야인들이 믿는 무당 같은 자들이 아니냐?”
임금과 조정 중신들 모두 일본에 ‘천황’이라 자칭하는 군주가 있음은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권력을 잃은 지 수백 년이 되었고, 막부를 이끄는 장군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이쪽은 명나라에서 국왕으로 책봉까지 받았다. 어느 쪽을 진짜 군주로 볼지, 말할 것도 없다.
“원 씨는 명백하게 대국으로부터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았노라. 그러니만큼 우리는 저들이 위험을 겪을 때 도울 의무가 있다. 우리 사정도 있으니 군사를 보내서 돕기는 좀 망설여지나, 적어도 양자를 중재하는 시도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느냐.”
동인들이야 웬만하면 임금 편을 든다. 서인들에게도 ‘군자라면’ 이웃이 내홍을 겪고 있을 때 이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임금의 주장이 효과가 있었다. 서인의 거두인 병조판서 이이는 아예 군사를 보내서 원 씨를 돕자고 주장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다만 사신을 가리키는 명칭은 통신사를 주화사(周和使, 화해를 주선하는 사신)로 바꾸었다. 또한 누구를 보내느냐는 문제도 처음 임금이 세웠던 계획에서 변화가 있었다. 공론화가 되기 전에 유성룡이 필사적으로 간언한 덕분이었다.
“생각해 보게나. 일단 명색이 화해를 주선하는 사절이니, 양쪽을 모두 만나야 하지 않는가? 헌데 신하에 불과한 신장이라면 몰라도, 일단 국왕인 의소를 만나려면 내 품계가 조금 낮네. 또한 무게를 잡으면서 화해를 권하려면 나이도 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젊지 않은가.”
처음에 임금은 몇 살 차이가 나지도 않으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가 안 됐다. 요시아키와 노부나가 모두 유성룡보다 너덧 살 더 많다. 모양새가 너무 안 난다.
부사라면 몰라도, 최소한 정사는 그 두 사람보다는 나이가 든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저쪽이 중재를 받아들이건 말건, 일단 보내는 쪽의 품격을 위해서 말이다. 품계도 그렇고.
그런 결과로 인해 전 대제학이며 68세라는 나이를 자랑하는 김조영이 이번에 일본에 가는 통신사 정사가 되었다. 본인은 지명을 받고 놀라 사양했지만, 예법에 익숙하면서 높은 학식을 갖춘 김조영은 훌륭한 정사감이었다. 가다가 죽지만 않는다면.
“만약 김 대감이 파선이나 병으로 죽기라도 하면, 그 역할은 내가 대신하게 될 걸세.”
“설마 전하께서 그걸 노리시고 일부러 연로한 대감을 고르신 건 아니겠지?”
“나도 모르네. 어찌 상감께서 품으신 그 본의를 알겠는가.”
임금은 정사, 부사, 서장관 세 사람이 절대 같은 배를 타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 배가 뒤집히더라도 죽는 사람은 하나로 그쳐야지, 사절단이 몰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네만, 전하께서 따로 밀지를 내리셨네. 들려줄 테니 잘 듣게.”
“어허, 상감께서 내리신 밀지를 어찌 이 사람 앞에서 밝히려 하는가?”
이순신이 놀라자 유성룡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와 자네, 둘에게 내리신 밀지일세. 놀라지 말고 듣게.”
유성룡은 잠시 돌아앉아 도성 방향으로 절을 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말을 꺼냈다.
“사실 이번에 주화사가 가는 진짜 용건은 화해를 주선하는 게 아닐세. 신장이 구주에 손을 뻗지 못하게 설득하는 게 진짜 임무일세.”
생각지 못한 말을 들은 이순신이 깜짝 놀랐다. 유성룡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하께서는 의소와 신장이 화해를 하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이 없으시네. 그들을 중재한다 하심은 우리를 파견하려는 핑계일 뿐이셨고, 본심은 신장이 당장 구주 정벌에 나서지 않도록 시간을 버시는 데 있네. 구주 다음은 필시 우리 땅을 노릴 테니까.”
“내 판단에도 그럴 위험이 크네.”
이순신도 서장관으로 따라나서게 된 후 일본 쪽 사정에 대해 상당히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노부나가가 절대 일본 통일로 만족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하께서 우리 둘을 보내시는 걸세. 내게는 신장과 담판을 하면서 그 세력 내외를 살피라 하셨고, 자네에게는 왜군의 전법이나 무장을 보고 그 파훼법을 생각하라 하셨네.”
“그런 배려셨는가.”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헌데 그런 일을 맡기기에는 나보다 공적도 많으면서 경험도 풍부한 무장들이 많지 않은가. 왜 하필 나를 보내려 하시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건 나도 모르네. 다만 전하께서 자네에게 관심을 크게 가지신 건 사실일세. 이번 난리가 터지기 전부터 내게 자네 근황을 물으시고, 근래에는 사헌부에도 명해 자네 주변을 조회하신 모양이더군. 흥도에게 들었네.”
유성룡은 홍가신에게 딱히 먼저 다가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이 홍가신과 친하다 보니 그 역시 가끔 어울려 친해지게 되었다.
“일전에 자네를 잡자기 발포만호로 발탁하신 적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 경원부사가 공적을 가로채려 한 사실을 밝혀 일을 바르게 돌리신 것도 그렇고, 자네를 좋게 보신 건 분명하네.”
잠시 말을 멈췄던 유성룡이 술 한 모금을 들이켰다. 또 놀라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두 번째 임무는 왜국 땅에 와 있는 남만인들을 데려가는 걸세.”
“남만인? 전하께서 스스로 남만인이 입국할 수 없게 하라 하지 않으셨는가?”
남만에서 온 낯선 이들이 일본에 염초와 조총을 판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알려졌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는 건 분명 금상 스스로 내린 명령이었다. 때문에 작년 초에 표착했던 남만인도 별 조치 없이 그대로 중국으로 보냈다.
“생각이 바뀌셨다고 하네. 그들에게 받아낼 물화와 지식이 많다시며, 구주에 있을 천주교라 하는 서교 선교사들을 찾아 조선으로 데려오라 하셨다네. 나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네.”
“허허, 거 참.”
이건 정녕 이순신도 연유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성룡이 앞에 놓인 술병을 들어 이순신의 잔에 따랐다. 골치 아픈 문제는 술로 잊기로 한 모양이었다.
“자, 한 잔 더 하고, 전공을 세워 출세하거든 날 잊지 말게나. 친구 덕 좀 보세.”
“아무려면 내가 자네보다 빨리 출세하겠나. 내가 당상관이 되기보다 자네가 정승의 반열에 오르는 날이 더 먼저 올 걸세.”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술잔 사이로 술병이 비어갔다. 다른 잡무는 다 처리해 뒀으니, 배가 출발할 때까지는 술이나 마시며 보내면 되었다.
– 22 –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당했는지를 생각하란 말이오! 죽고, 뺐기고, 밟히고!”
니탕개가 열변을 토했다. 그 앞에는 율보리(栗甫里)를 비롯한 20여 명 가량 되는 추장들이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선 임금을 상전으로 모시게 되었소. 80년 전, 우리 고조할아버지 때를 상기해 보시오. 우리는 명나라 황제를 직접 모셨소. 조선 국왕도 격으로는 우리와 동격이었단 말이오!”
니탕개는 신립을 피해서 휘하 군대를 모조리 흩어버렸다. 그리고 측근 몇 명과 호위병 서른 명 가량만 거느리고 서쪽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다. 어차피 신립과 싸워본들 이길 가망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수백 리 길을 달려 도망쳤다.
숲과 산을 넘어 도착한 곳은 백두산 인근이었다. 이곳은 난리가 휩쓸지 않아 평화로웠다.
니탕개는 그전부터 친분이 있는 율보리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가 난을 일으켰다는 소문은 이미 이쪽에도 퍼져 있었지만, 율보리는 보호를 청하는 손님을 내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관가에 넘기리라는 우려를 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심신을 달래는 니탕개의 귀에 신립이 저지른 파괴와 학살이 전해졌다. 불타 없어진 마을과 도륙당한 부족민들, 오두막에 갇힌 채 불타 죽은 아녀자들 이야기를 들은 니탕개는 몇 시간을 미쳐 날뛰었다. 그리고 복수를 맹세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니탕개에게는 신립과 싸울 힘이 없었다. 마침 신립이 도성으로 올라갔다 하니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부족원들을 모아 다시 군사를 일으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 혼자 일어서 싸워서는 어차피 조선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좌절하던 니탕개의 마음속에 문득 예전에 잠시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부여주 전역을 반란을 일으킨 야인들의 함성으로 뒤덮자. 부여주 야인 전체가 봉기하면 적어도 전사 10만 명 정도는 동원할 수 있다. 아무리 신립이라도 혼자서 야인 전체를 감당할 수 있을 리는 없다.
니탕개 자신이 신립을 직접 죽이진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 임금이 신립을 불러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부여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죄를 물어 아예 처형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 정도라면 충분한 복수가 되리라.
“다들 생각해 보시오! 저 호랑이 병마사가 부임한지 고작 1년 반, 그 사이에 우리 야인들이 얼마나 힘겨워졌는지 말이오! 그간 수많은 호소를 하고, 제발 통치를 완화하고 병마사를 다른 이로 바꿔달라고 도성에 장계를 백 번이나 냈소. 그래도 임금은 묵묵부답이었소.”
신립이 도성으로 돌아간 일은 이들에게도 알려졌다. 하지만 임금이 딱히 신립에게 그 이상 큰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언제 다시 강동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겨울, 우리 부족은 죽기 직전이었소. 그래서 마지못해 일어섰다가 처절하게 짓밟혔소. 그래요, 내가 반기를 들었으니 저들이 날 잡아 죽이려는 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왜 죄 없는 우리 아녀자들, 그리고 내 부하도 아닌 엉뚱한 부락들까지 불태워 사람을 죽인단 말이오?”
니탕개는 계속해서 자기 앞에 있는 이들에게 증오심을 부채질했다. 병마사 신립은 모두에게 있어서 원수다. 압제와 가혹한 통치를 상징하는 존재, 어떻게든 제거하고 싶은 적이다.
“우리가 일시에 일어나면, 병마사도 별 수 없을 거요! 군사들과 함께 함경도를 공격합시다. 그럼 병마사가 달려올 거요. 우리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면 충분하오! 쉽게 해치울 수 있소!”
니탕개가 열변을 토했지만, 뜻밖에 호응은 없었다. 회의장 안 분위기는 무척이나 싸늘했다. 차가운 분위기에 멈칫한 니탕개가 말을 멈추자 추장 하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생각도 그대와 같소. 하지만 병마사는 이미 도성에 불려갔고, 후임자가 올 때까지는 부병마사가 직무를 대리한다고 했소. 부병마사는 좋은 사람이오. 우리가 바라던 결과가 이제 이루어졌는데, 왜 굳이 싸워야 한다는 거요?”
니탕개는 북받쳐 오르는 분노 때문에 미처 받아치지 못했다. 잠시 말이 끊긴 사이, 그 옆에 있던 다른 추장이 말을 거들었다.
“그대가 거느린 이들이 횡액을 맞은 거야 안 됐소. 헌데, 애초에 그대가 멍청하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탓이잖소? 자신이 바보짓을 해놓고 왜 우리에게 복수를 도우라는 거요? 그것도 이미 떠난 병마사를 굳이 불러들일 정도로 큰 반란을 일으켜서까지?”
“맞소, 내가 바보였소. 식량이나 좀 마련해 보려다가 우을지 놈에게 속아 멸망을 자초했소. 하지만 병마사가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라는 점은 마찬가지가 아니오?”
가까스로 흥분을 억누르자 다시 말문이 트였다. 어떻게든 저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대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알겠소. 나와 우을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봤으니 두렵겠지. 허나 그 패배는 원체 전력이 부족했던 탓이 컸소. 충분한 준비도 없이,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치지도 않고 일어났으니 어려웠던 게 당연하오. 하지만 모두 함께 일어나면 다를 거요!”
“아니, 그러니까 왜 봉기를 일으켜야 하느냔 말이오. 병마사 하나 죽이자고? 그 대신 우리 전부 다 피와 불 속에 잠길 게 빤한데도?”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 병마사를 죽여 복수하고 싶으면 그대가 남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도성으로 가시오. 옷을 바꿔 입고 병마사 집에 쳐들어가 불을 지르든가, 암습해서 찔러죽이면 될 게 아니오.”
생각도 하지 못한 반발에 니탕개가 말문이 막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가 뭐라고 막 받아치려는 참에 율보리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이제 그만. 니탕개, 이만하면 이 일대 추장들 의견은 충분히 들었으리라고 생각하오. 근처 추장들에게 꼭 할 말이 있다기에 이 자리를 주선했지만, 그대가 설마 또 다른 반란을 시도할 생각으로 선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율보리 역시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니탕개가 새파래진 얼굴로 율보리를 노려보았다.
“내, 이웃의 정으로서 그대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소. 허나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두 위험에 빠트리려 한다면 계속 머무르게 해줄 수 없소.”
율보리의 말을 들은 다른 추장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에는 허리에 차고 있는 칼 손잡이를 어루만지는 자들도 있었다. 니탕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날 관군에게 팔아넘길 작정이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소. 다만 언행을 주의해주길 바라오.”
율보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협할 의도는 없다는 태도였지만, 니탕개에게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빤히 보였다. 분노한 니탕개는 이제 이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멍청이들! 아직 임금이 강동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일어서서 싸워야만 우리 지위를 지킬 수 있단 말이다. 장래에 함경도에서처럼 조선인들이 물밀듯 밀려오고, 모든 걸 빼앗기면 그 뒤에도 지금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조용히 있으라지만, 이제 와서 입을 다문다고 해서 앞으로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니탕개가 여기 있고 재차 반란을 일으키려고 도모한다는 이야기는 금방 새어나갈 거다. 당장에 조선군이 득달같이 달려들리라. 아니면 높은 값에 팔아넘기려는 배반자가.
“난 이곳을 뜨겠다. 너희 같은 겁쟁이들은 조선 놈들의 개나 되어라! 오도리처럼.”
소리 높여 일갈한 니탕개는 당장 회의장을 뛰쳐나왔다. 율보리를 비롯한 추장들은 모욕적인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니탕개는 아직 남은 부하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곧바로 말을 타고 마을을 빠져나가 북서쪽을 향해 달렸다.
목단강을 건너 요동으로 가자. 지금 해서부 내에서는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적당한 미끼만 던져주면 당장에 이쪽으로 쳐들어올 거다. 잘하면 건주위도 쳐들어오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립이 강동을 떠났으니까 더 쉽게 쳐들어올 것이다.
이미 니탕개의 마음속에는 신립 개인에 대한 원한보다 신립을 이 땅에 보낸 조선 임금과 그 나라에 대한 원한이 더 커져 있었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