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48
2부 026화
– 1 –
자,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당분간 급한 일은 없는 셈이다. 올해는 가뭄이 안 들어서 농사도 잘 되고 있고, 두만강 일대에서 일어난 소요도 어렵지 않게 진압했다. 덕택에 민심도 안정된 편이다. 이제 이런 때에 쌓인 일들을 처리해야지. 장래를 위한 설계도 하고.
“정철은 오직 글 짓는 재주만 있을 뿐,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솜씨가 없다. 부여주 관찰사로 앉히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후보자로 정철을 추천하는 의견이 올라오자 단칼에 잘라버렸다. 정철에게 별 원한은 없다. 하지만 관동별곡 외우느라 치를 떨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정철은 가서 좋아하는 술이나 먹고, 시나 쓰고 있으라고 해라. 강원도랑 전라도 관찰사 때도 크게 좋은 소리는 못 들었더구먼.
솔직하고 줏대 있는 성격도 좋고 충성심 강한 것도 좋은데, 야인들이 소요라도 일으켰을 때 술이나 처먹고 뻗어서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지금 부여주 관찰사로 보낼 이는 만사 꼼꼼하면서도 술이라곤 입술도 안 적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부여주 관찰사는 지금 부병마사를 맡고 있는 정만기를 승진시켜 맡도록 하면 어떻겠느냐.”
기존에 있던 강력한 병마사 대신 관찰사를 두기로 결정하자 조정 안팎에서 수많은 후보를 추천했다. 개중에 적당한 자를 고르는데 영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없었다. 역사적으로 아는 인물은 아는 대로, 모르는 인물은 모르는 대로 걸리는 구석이 나왔다.
그러던 참에 갑자기 눈에 들어온 이가 정만기였다. 부여주 내정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었던 신립을 대신해서 그동안 야인들을 다스리고, 지금도 관찰사 부재 상황에서 부여주를 문제없이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럴 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전하, 정만기는 부병마사로서 상관 신립을 잘 보좌치 못한 죄가 있습니다. 후임 관찰사를 정하는 대로 마땅히 신립과 함께 체직시켜야 할 터인데, 도리어 관찰사로 승차시킴은 도리가 아닌 줄로 아옵니다.”
“정만기는 신립이 부임하기 2년 전부터 부병마사로 재직하지 않았더냐. 내 경차관 이원익이 조사한 내용을 받아보니, 그동안 신립은 정만기가 야인들을 추스르는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이참에 정만기로 하여금 이번 난리를 정리하게 하는 방안도 괜찮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부여주는 그동안 기피지역이었다. 고위관직에 오른 이들 중에서 부여주에서 근무 경험을 쌓은 이는 많지 않다. 그 말인즉슨 신참을 부여주 관찰사로 앉힌다면 현지에서 적응하고 업무 파악하는 데만 한세월을 잡아먹는다는 의미다.
바로 직전에 대규모 반란을 겪었고 언제 해서부 놈들에게 침략을 받을지 모르는 ? 이 건은 신립이 가진 견해에 나도 동감한다 ? 부여주에 초짜를 보내 유유자적 적응시킬 여유는 없다. 즉, 이미 부여주에 4년째 있으면서 모든 사정에 익숙한 정만기 이상 가는 후보는 없다.
“정만기는 무관 경력이 없습니다. 이번 난리에서도 과감하게 군사를 움직이지 못한 탓으로 해서부 야인들이 날뛰게 방관하지 않았습니까. 군무 경험이 있는 이를 관찰사 자리에 올림이 가하다고 판단되옵니다.”
이제까지 조선 역사에서 군무 경험 없는 관찰사가 임명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무슨 망언을. 관찰사 자리 하나 떨어지나 보다 하다가 없어지니까 배가 아파서 그러지?
“그래서 병사를 세 명이나 두지 않느냐? 군사는 전적으로 세 병사들이 담당하게 하고, 오직 행정에만 몰두하게 하면 관찰사가 문관이라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이다.”
병사가 셋이나 되면 유사시 서열 문제가 걸릴 수 있어서, 이 문제는 좌병사>우병사>북병사 순으로 지휘권을 갖는다고 못을 박았다. 아무래도 가장 경계해야 할 쪽이 요동과 접한 목단강 일대니까 말이다. 아직 통제도 잘 안 되는 흑룡강 쪽이 가장 후순위인 건 당연하고.
“정만기는 그동안 자기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나 불행하게도 신립이 그 앞을 막았다. 이제 기회를 주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가 확실히 의사를 결정하자 신하들도 따랐다. 와, 역시 중종반정이 없었던 세계라 그런지 신하들이 좀 더 고분고분하구나. 반대할 때는 하더라도 말이지.
– 2 –
부여주 관찰사를 정하는 일은 그래도 큰 반발 없이 처리가 됐다. 자리를 놓친 양반들이 퍽 아쉬워하긴 했지만, 원래 무관들 몫이던 자리니까 딱히 손해라고 할 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 하나는 확실히 자기들에게 피해로 돌아왔다.
“무종께서 분명히 법을 제정하셨을 것이다. 공신전은 4대까지만 보유를 허락하며, 5대까지 내려가면 도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 이상은 오직 개국공신에게만 허락한다고 천명하신 바가 있는데 그간 그 실적이 너무도 미진하였다.”
내가 연산군 때 제정했던 법은 공신전을 지급받은 지 5대째가 되면 반납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생각 같아서야 4대고 뭐고 곧바로 몰수하고 싶었지만, 반발이 워낙 심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후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유예기간도 거의 다 되었다. 내가 76년을 점프한 덕분에, 한참 뒤에 후손들 손으로 실행하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정책을 내가 마무리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도 실행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말이다.
“전하, 그간 흉년이 심한 해가 잦았고, 공신전을 속공할 시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사옵니다. 이에 전하께서도 그 실행을 강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걸 알았을 때는 나도 의외였다. 구두쇠 경성군이 국고에 돈 들어오는 일을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면세지도 아니고 그냥 국유지가 늘어나는 일 아닌가.
좀 더 캐고 보니 나름 경성군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경성군은 선비를 좋아했고 자기가 도리를 숭상하는 임금으로서 칭송받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서 절약에 사활을 걸었으면서도 공신전에 대해서는 탈법적인 상속 연장을 눈감아 주었다. 뭔가 돈을 ‘더 쓰는’ 일은 아니니까.
“그간 유예했으면 되었지, 어찌 법으로 규정한 바를 계속 어기겠느냐? 자고로 선대의 법은 지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지키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법을 세워 적용을 하겠느냐?”
성종 때 공포한 경국대전에서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한두 군데를 바꾼 게 아닌 내 입장에서 낯 뜨거운 소리이긴 하군. 이놈의 내로남불 고무줄 잣대.
하여튼, 경성군이 정말로 이 법률에 불만을 가졌다면 정식으로 폐기했으면 되지 않나? 나도 부대조건을 몇 개 달긴 했어도 재가금지법이나 서얼금고법을 모조리 폐기해버렸다. 물론 내가 제대로 자란 조선 임금이었으면 그런 엄두를 못 냈겠지만, 작정하면 가능은 했단 말이다.
내가 눈을 뜬 뒤에는 당연히 뒤집었겠지. 하지만 정식으로 폐기한 법을 다시 되살리는 것과 일시 유예한 조치를 다시 시행하는 건 엄연히 난이도가 다르다. 경성군이 부담을 느낀 덕분에 나는 아주 편안히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년으로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라면 일반 백성들처럼 나라에 구휼을 신청하면 될 터이다. 그 이상은 스스로 출사를 하든, 장사를 하든, 농사를 짓든 알아서 해결하라. 무종대왕께서도 후손이 조상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 법을 만드셨느니라.”
전쟁 하나를 막 승리로 이끈 참이니 내 등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다. 게다가 금위사도 오랜 잠을 깨고 재가동을 시작한 터다. 일단은 공식적인 정보만 모으고, 옛날처럼 사방에 정보원을 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기한이 된 공신전을 속공하라는 명에 반대하는 이들은 일어서 보라.”
대전 안에 잠시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확연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대간들 몇이 일어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반대하는 이가 이거밖에 없다니, 역시 무종대왕께서 정하신 바에 따름이 옳다고 그대들도 생각하는구나. 좋은 일이다.”
사실 이 승부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확실히 내가 이겼다. 이쪽은 중종반정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 보니 그쪽에서처럼 공신을 양산하지 않았고, 내가 책봉한 군공공신들이 사실상 마지막 공신이다. 게다가 나는 공신들한테 저화로 상을 줬지 공신전을 주지 않았다.
즉, 5대가 지나서 공신전을 토해내야 할 옛 공신들은 그 뒤로 가문이 번창해서 공신전 따위 뱉어내도 될 정도거나 목소리도 못 낼 정도로 쇠락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들을 도와줄 ‘새 공신’ 세력은 존재하지 않고 말이다. 나는 승리감에 차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 올해부터 속공을 개시한다. 이미 5대를 넘긴 공신전은 올해까지 그 보유를 인정하나, 올해 수확을 지급한 후에는 공신전은 모조리 회수한다. 이후로는 매년 가을 추수를 거둔 뒤에 상속 여부를 살펴 겨울에 그 땅을 거둘 것이다.”
호조에서 계산한 바로는 지금 회수 대상인 공신전은 그 면적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5백결은 족히 된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회수해 나가면 적어도 2,3천결은 회수할 수 있으리라. 이게 얼마나 큰 수입이냐?
공신전뿐만이 아니다. 종친들에게 나간 토지도 종친 지위가 사라지면 모두 회수하도록 할 생각이다. 분명히 투덜거리는 자들이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도성 안은 종친들 저택으로 가득 차고, 주변 토지는 종친들 소유지로 메워질지도 모르지 않은가.
“전쟁을 한번 하긴 해야겠군.”
옷을 갈아입고 후원으로 나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쟁을 해야 전비 핑계로 몽땅 몰수하지.”
대규모 전쟁은 국가 체제를 개혁하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조선도 임진왜란을 통해 자의, 타의로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물론 사람들이 다 거기 만족하지는 않지만, 국가체제 및 사회구조가 대대적으로 바뀐 계기가 임진왜란이었음은 분명하다.
“오다가 쳐들어오면, 종친 자격을 잃은 이들이 물려받은 상속재산은 모조리 몰수해야겠다. 근친들이 가진 재산도 정말 품위 유지할 만큼만 빼고 전부. 그런데 그러려면 너무 일찍, 쉽게 물리치면 안 되겠는데….”
왜군이 아예 우리 땅에 발도 못 붙이게 초전에 박살내버리면 큰 전쟁으로 인식이 안 된다. 그저 흔한 왜변일 뿐이다. 왜구가 100척 정도 침입했다가 우리 수군에게 쫓겨난 30여 년 전 을묘왜변처럼, 사소한 난리로 취급받아서야 개혁을 발동하는 계기로 삼을 수가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왕이 되었을 때 세운 목표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역사에서 소거하는 일이었다. 아예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만약 일어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내 원래 목표였다.
헌데 지금은 내가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작정만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임진왜란을 일부러 규모를 키우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세상에, 내가 이럴 수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 10여 년, 내가 세상을 보는 태도가 바뀌긴 했나보다.
– 3 –
“전하! 어찌 이런 곳까지 납시셨나이까.”
“마음껏 말을 달릴 겸, 한번 여기까지 나와 보았다.”
신립의 마중을 받으며 살곶이 벌판을 둘러보았다. 벌판에는 천여 기가 넘는 기병들이 떼를 지어 달리며 먼지를 피우고 있었다. 함성 소리, 칼과 창이 부딪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저들이 조련을 잘 따르는가?”
내 질문을 받은 신립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따르지 않는 이는 오직 군법으로 다스릴 뿐입니다.”
나도 마주 웃었다. 하긴, 신립이 그 성격에 양반이건 종친이건 누군가 우대할 리가 없겠지. 신분 따위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신나게 굴리고 있을 거다 아마.
“신이 석 달만 더 조련하면 모두가 북방기병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옵니다. 내년에는 오위 소속 기병이 밥벌레 취급을 받지 않게 될 터이니 염려 놓으소서.”
신립은 도성으로 돌아온 뒤, 거의 살곶이 벌판에서 살고 있다. 자기 휘하에 들어온 용양위 소속 기병들 뿐 아니라, 5위에 속한 전체 기병을 대상으로 매일같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립을 도성으로 소환한 참에 경군 소속 기병들을 동북아시아 최강 기병으로 양성할 결심을 했다. 연산군 때는 실전도 많이 치르고 하면서 숙련도가 많이 올라갔었는데, 이번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평화가 길어지면서 퇴보, 아니 본래대로 돌아간 거다.
본래 오위에는 종친이나 공신 자제로 편성된 부대가 많다. 이렇게 부대를 편성한 목적이야 보다 충성심이 입증된 병사들로 부대를 편성한다는 의도였겠지. 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권층이 쉽게 병역을 때우는 꿀보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고, 실상이 그랬다.
지나간 두 차례 규슈 파병에서 경군 기병 대신 여진기병을 파송한 이유에는 사실 이 전투력 문제도 있었다. 파병 비용이나 인명피해 우려도 있었지만, 전비태세가 느슨해진 경군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말을 달리고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일전에 본 수준이 아니다. 흡족한 마음에 신립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필요한 조치가 혹시 있는가? 청한다면 참고하겠노라.”
“경원부사를 데려와 훈련관으로 활용한다면 큰 보탬이 있을 듯합니다. 혹시 그가 받고 있는 백의종군을 풀어주시어 신이 활용하게 해주실 수는 없으시겠사옵니까.”
뜻밖에 바로 답이 나왔다. 아마 그동안 아쉬웠던 모양이다. 사실 이일은 원균처럼 단순하게 정리해버릴 수 있는 무능한 장수가 아니긴 하니, 나로서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좋다. 북방에 명하여 이일을 올려 보내게 하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일을 단순히 기병교관 정도로 쓸 생각은 없다. 이일이 가진 능력을 생각하면 장차 설립할 사관학교 교수요원으로까지 기용해도 모자람이 없는 장수다. 왜군을 상대로는 쓸모가 없을지 몰라도, 여진족을 상대하는 전술에는 도가 튼 사람이니까. 좀 굴렀으니 정신도 차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