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51
2부 0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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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0월. 각성한지 거의 한 해가 되어간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궁궐 안에서만 1년을 살았더니 좀이 쑤셨지만, 밤에 나가서 바람 쐬고 오는 정도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망할 종성순 때문에 임금이 홀로 암행을 나가는 일은 상상도 못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호위 없이 나다니다가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무래도 왕실을 관통하는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황이는 물론 환이나 경성군도 단 한 번도 암행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무종께서 칼 맞아 죽어서’ 안 된다고는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무종대왕께 인사를 드려야겠다. 행차를 준비하도록 하라.”
뭐, 능 참배만큼 좋은 외출 명분도 없다. 바람 쐬러 가는 데는 이게 최강이다. 연산군 때는 사냥을 즐겼지만, 이젠 그것도 별로 안 내킨다. 거닐면서 느긋하게 생각 좀 정리하자.
사복시에서 준비한 호마(胡馬)에 오르니 폴쇄 생각이 났다. 궐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놈은 내가 죽은 뒤로는 아무도 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지거나 안장을 얹을 때는 가만히 있었는데, 누가 올라타기만 하면 날뛰어서 내팽개쳐 버렸다나.
박원종이 한번 타보려다가 허리가 부러질 뻔하고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고, 결국 폴쇄는 늙어죽을 때까지 누구도 태우지 않고 여생을 보냈다. 중전 신씨가 주인을 그리는 폴쇄를 보고 예뻐해서, 매일 데려다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고 한다.
근 10년을 나 이외에 아무도 태우지 않았으니 그런 버릇이 들만도 하다. 하지만 설마 10년 넘는 세월을 정말로 나만 기다릴 정도로 그 녀석이 충성스러웠을까? 진돗개도 아니고 그냥 말 아닌가. 아마 80년을 내려오면서 소문이 전설이 된 사례겠지.
일부러 길을 돌아서 청계천 옆을 지났다. 갈수기라, 물이 마른 청계천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양쪽 기슭은 옛날에 정비가 되어 깔끔하게 석축을 쌓아놓았지만 그 사이에는 구정물이 흐르는 실개천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양편에는 온갖 허섭스레기가 쌓여 있었다.
참, 원래는 청계천 이름이 아직 개천(開川)이어야 한다. 헌데 내가 헷갈려서 연산군 때 이미 청계천으로 바꿔버렸다.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모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성부에서는 저런 것도 제때 안 치우고 무엇을 하느냐? 한성판윤에게 명을 내려 청소를 제대로 하도록 하라.”
“예, 전하.”
높은 양반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면 밑에서 죽어나는 건 나도 알지. 하지만 보기 흉한 건 흉한 거잖아. 위생 문제도 있고.
청계천은 사실상 서울을 가로지르는 하수도다. 그렇다 보니 깨끗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게 제대로 안 되면 냄새도 냄새지만 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십 년 내에 역병이 발생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지금은 없지만, 장차 외국과 교역을 하게 되면 콜레라나 페스트 같은 외국 전염병이 조선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감염된 선원을 통해 콜레라가 들어올 수도 있고, 배에 타고 온 쥐들이 페스트를 퍼트릴지도 모른다. 음, 검역은 철저하게 해야겠군. 유럽에서 관례가 40일이던가?
콜레라는 수인성 전염병이고, 페스트는 쥐가 옮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수도를 늘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중요하다. 생각 같아서야 제대로 상수도랑 하수도를 깔고 싶지만 돈이랑 기술이 있어야 말이지. 예전에 시킨 것처럼 우물이랑 변소 사이라도 떨어트리도록 관리하는 수밖에.
분뇨가 식수에 섞이지 않게 하고, 기생충 알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푹 썩혀서 퇴비로 쓰는 건 전염병이 퍼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적어도 도성 근교에서는 지켜지고 있다.
“어의는 이리 오라.”
“예, 전하.”
행렬을 따라 걷고 있던 내의원 첨정(僉正) 허준이 급히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이 허준이 그 허준이냐고? 그래, 그 허준 맞다. 동의보감을 썼다고 하는 그 허준 말이다. 물론 동의보감 완성은 광해군 때 일이었으니, 아직 그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허준은 경성군으로 각성한 뒤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반가웠던 사람 중 하나였다. 동의보감을 만든 사람, 조선시대 의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혹시 이번 생에서 상희가 허준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허준은 남자다. 하지만 지난번 생에서는 뭐 상희가 남자여서 의원 노릇을 했나? 내가 넣어주긴 했지만, 여자면서도 남장을 하고 내의원에서 잘만 버텼다. 한번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유감스럽게도 그 기대는 깨끗하게 빗나갔다. 대화하며 슬쩍 떠보았더니 허준은 확실히 미래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이 시대 보통 남자였다. 실망감에 내의원, 혜민서에 있는 의원과 의녀를 모조리 불러다가 하나하나 면담을 해봤지만 역시 그중에 상희는 없었다.
쓸데없는 갑질 당하지 않고 환자 치료나 열심히 하고 싶다더니 과연 어디에 있을까. 허준을 보자 상희를 찾으려던 노력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났다. 하지만 사람을 불러놓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용건을 꺼냈다.
“확인을 잊고 있었다. 그, 우두창에 걸린 소를 찾아보라는 명은 어찌되었느냐?”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백방으로 찾았으나,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은 증세를 가진 소를 아직 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지금 허준이 가진 벼슬인 첨정은 종4품으로, 정승들이 겸임하는 내의원 제조, 도제조 외에 의관들 중에 서열 2위다. 정3품 정(正)이 서열 1위인데, 사실 한품서용법(限品敍用法) 때문에 중인 출신 의관들은 애초에 정3품 이상 올라갈 수 없다.
내가 연산군 때 서얼금고법을 무력화하긴 했지만, 그 혜택을 보는 서얼들도 결국은 양반집 자식들이다. 중인 출신 기술관들은 여전히 승진에 제한이 있었다. 양반들 반발이 너무 빤하게 보여서 이것까지 폐기하기는 무리였다.
80년 넘게 시간이 흘렀으니 한번 또 뒤집어볼까 싶은데, 그러자면 계기가 필요하겠지. 역시 전쟁에서 중인 출신들이 전공을 세워야 하는 건가. 무관들 중에는 중인 출신들이 꽤 되니까.
“팔도에서 찾을 수 없다면, 부여주까지라도 사람을 보내서 찾아보라.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예, 전하.”
우두창(牛痘瘡)은 즉 우두(牛痘)다. 소에 걸리는 천연두 비슷한 병, 천연두를 예방할 종두법 시행에 꼭 필요한 병이다. 그런데 이 우두가 아무래도 조선 땅에는 원래 없는 병인 모양이다. 1년을 둘러봐도 찾지를 못했다.
허준은 별 말 없이 물러갔다. 쉽지 않은 일을 받았음에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괜히 어려운 일을 맡긴 듯해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젠장, 정 안되면 인두법(人痘法)이라도 써야겠지.”
종두법에서는 우두에 걸린 소에서 채취한 고름을 접종해서 항체를 만든다. 하지만 인두법은 다르다. 인두법은 진짜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서 얻은 부스럼 딱지를 말린 다음 가루를 내서 콧속에 불어넣거나 고름을 접종한다. 면역이 될 수도 있지만, 운이 없으면 바로 병에 걸린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인두법 기술이 완전히 정착된 조선 후기에 인두법 시술을 받은 사람이 천연두에 걸려 죽을 확률은 1% 정도였다. 부작용이 아예 없다시피 한 종두법에 비하면 분명 위험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천연두에 걸리면 사망률이 30%는 나온다. 뭐가 낫겠는가?
문제는 지금 조선에는 인두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다는 거다. 그래서 가능하면 종두법을 해보려고 우두 걸린 소를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연산군 때는 애초에 그건 영국에만 있는 병일 거라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찾을 생각도 안 했었지만.
어쩌면 가축이 많이 있는 몽골 쪽에는 이런 병에 걸린 소도 있지 않을까? 동대문을 나서며 생각하니 어쩌면 불가능하지도 않겠구나 싶다. 마침 충성파인 야인들에게서 니탕개가 해서위 쪽으로 도망쳤다는 고발도 들어왔고 하니, 니탕개를 잡는다는 핑계로 그쪽 한번 들쑤셔볼까?
“거참, 이런 이야기는 중전한테밖에 털어놓을 수가 없구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자는 입이 없으니까. 그리고 내 말을 이해할지 못할지 여부에 대해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종두법을 쓰자니 우두에 걸린 소가 없고, 인두법을 쓰자니 쓸 줄 아는 사람이 아직 하나도 없어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고. 이런 판이라면 접종하다가 죽는 사람이 백에 하나도 아니고 열에 서넛이 나올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그 많은 의원이 하나도 소용이 없구려.”
정말로 의원은 많이 있다. 내가 마스터플랜만 짜고 실행은 하지 못했던 향의원(鄕醫院), 즉 보건소 설치 계획이 그 뒤에도 진행된 덕분이다. 매년 각 도에서 100명씩 향의관을 뽑고, 각 고을에 배치해서 돈 없는 이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주게 했다. 이게 벌써 70년이다.
역설적이겠지만 이 제도는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서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 향의원을 세울 재원으로 삼을 생각이었던 대동세는 대동법 실시가 그동안 유야무야되어 없어졌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안 되었다. 사람에도, 건물에도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참, 조정에 돈이 없지도 않은데 그리 의원들에게 박하게 구는 이유를 모르겠소.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켰으면 마땅히 보수를 주어야지.”
지금 의과, 아니 각 도 관찰사가 주관하는 의시(醫試)에는 합격을 해도 벼슬을 주지 않는다. 그거야 당연하다 하더라도 보수도 안 준다. 향의원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3년 동안의 생계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 대신에 의원 개인에게는 평생 역을 면해준다.
진료 장소는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관아 한구석을 내주는 정도가 상례다. 운이 좋으면 고을 안에서 배때기 좀 두드리는 사람이 집 한 채 기부하기도 하지만, 운이 없으면 향의관 자신이 마련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3년만 채우면 득달같이 그만두지. 생계도 보장되지 않는데 어찌 사람을 계속 두어 일을 하게 만들 수 있겠소.”
향의관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다 보니, 진맥이나 침술에는 규정대로 돈을 받지 않아도 뜸을 뜨거나 약을 지어줄 때는 공공연하게 쑥값과 약값을 받는다. 환자들이 대부분 서민들인데다, 향의관들은 실력이 딸린다고 빤히 알고 있다 보니 일반 개업의원보다는 싸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제도 덕분에 쌀 한 톨 안 들이고 기본적인 의료시스템을 구축했다. 의시가 의원 양성을 위한 자격시험 노릇을 하게 되면서 돌팔이도 줄어들었다. 수십 년 동안 의시 합격자가 배출되면서, 의시 출신이 아닌 의원은 의원 취급을 못 받게 되었다.
수는 많지 않다지만, 심지어 의녀 외에 공식적인 여의사도 있다. 따지자면 이슬람 국가에서 여의사를 두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남녀가 유별한데 의원이라도 어찌 남자가 여자 환자를 볼 수 있냐는 논리였다. 이건 자순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에 지적해서 통과시켰다고 한다.
물론 의시에도 부정은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 근본적으로 조선이란 곳에서는, 미래 한국처럼 의사가 존중받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인이 주로 종사하는 기술직일 뿐.
“어쩌면 상희 그 아이도 어디 다른 고을에서 남장을 하지 않고 그냥 여의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하지만 팔도에 있는 여의를 모조리 도성으로 불러 확인할 수도 없고.”
근본적으로 상희가 나처럼 환생을 거듭하고 있는지 끝내고 나갔는지를 모르니 말이다. 그걸 알아야 전력으로 찾든지, 아예 체념하든지 할 텐데 도무지 모르겠다. 천녀가 준 힌트도 없고.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아직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다. 상희도 저 해를 보고 있을까.
– 9 –
“해도 안 뜨고, 벌써 눈발은 날리고, 죽겠구만.”
10월 말이면 남방에서는 아직 따뜻한 시기다. 하지만 추운 북방에서는 이미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군영 연무장에 이미 한 치 두께로 눈이 쌓이고 있었다.
“빨리 쓸어! 눈이 쌓이게 하지 말란 말이다!”
군관이 호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스무 살은 어린 자식이 뒤에 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소리를 들으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이미 삭탈관직까지 당한 몸, 홧김에 한 대 쳤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이놈, 원가야! 어서 쓸지 못하고 무엇을 하느냐!”
만호까지 지낸 이 몸을 감히 성으로 부르다니!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젠장, 같이 여기로 보내진 이일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
“원 만호, 조금만 참도록 하세. 우리가 한 일이 좀 그렇긴 하지만 다들 하는 일이잖은가?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혼이 나게 되었지만, 전하께서도 곧 화를 풀고 불러들이실 걸세.”
“부사 나리는 백의종군이시니 그리 말씀하실 수 있지만, 저는 삭탈관직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 벼슬이야 주상께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돌려주실 수 있지 않은가. 그동안 자네가 큰 공은 못 세웠어도 큰 잘못을 한 바도 없으니, 곧 풀어주실 걸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이번에 이런 벌을 받을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다. 수급 숫자 좀 부풀리고, 객장에게 공을 몰아주지 않는 정도는 다 하는 것 아닌가.
진보를 끝까지 수비하지 않았다고도 욕을 먹었지만, 그것도 억울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군사는 모조리 데리고 나왔단 말이다. 다만 말이 부족했고, 탈출하다 다 죽어서 그렇지.
백 번을 생각해도 자신은 억울했다. 그래도 이일이 있는 동안은 서로 말동무도 하고 의지도 되었는데, 이달 초에 갑자기 어명이 내려왔다. 이일을 도성으로 불러올린다는 조서였다.
“건강히 잘 있게! 내, 올라가거든 자네도 풀려나도록 힘을 써 보겠네.”
이일은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도성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래도 이일이 풀려났으니 조만간 자기도 풀려나지 않을까 했는데, 도성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예 눈이 오기 시작했다.
“함경도 눈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구나….”
차라리 한겨울이 와서 펑펑 쏟아지면 눈쓸기 따위 포기할 텐데. 원균은 이를 갈며 빗자루를 잡았다. 자기를 이 꼬락서니로 만든 객장, 이순신이란 자가 너무도 저주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