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53
2부 031화
– 12 –
딱딱거리는 목탁 소리 사이로 낭랑하게 불경 외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내 귀를 괴롭혔다. 아아, 지루하다. 왕실 공식행사라서 앉아있기는 하지만, 난 애초에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에 별 호감도 없다. 그런데 왜 여기 앉아있냐고?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인순왕후, 즉 내 손자며느리이자 양어머니인 환이의 중전 박씨를 위해 제를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세조가 세운 왕실의 원찰, 원각사다.
“전하, 벌써 대비께서 승하하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비록 대비께서 생전에 명하셨다고는 하나, 이만 원각사에서 올리는 제를 폐하시고 종묘 제사만 남기셔도 가할 줄로 아뢰옵니다.”
“그대들이 불도를 못마땅하게 여김은 알고 있다. 하지만 원각사는 세조대왕께서 세우셨고, 열성조께서 백 년이 넘게 유지해 오셨다. 대비께서 생전에 수시로 발걸음하며 공을 들이시던 곳이기도 하다. 어찌 거기서 올리는 제를 임의로 폐한단 말이냐? 그것은 불효가 아니겠느냐?”
우리 쪽 역사에서는 미치광이 연산군이 원각사를 폐지하고 흥청들을 채워 넣어서 기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뒤 중종 때 아예 건물까지 헐어버림으로써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다르다. 나는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 원각사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황이나 환이도 마찬가지였다. 승과 역시 간헐적으로 열리긴 해도 계속 유지했다.
사림을 대놓고 지원했던 경성군은 좀 달랐다. 경성군은 승과도 열지 않고 도첩도 발행하지 않았다. 당연히 도성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원각사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이쪽에는 차마 직접 손을 대지는 못했다.
일단 직계조상인 세조가 중건했고 6대, 백 년 이상을 고이 모셔온 절이다. 더구나 경성군은 환이의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환이 즉 명종의 왕비인 의성대비 박씨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대비가 사흘이 멀다 하고 원각사를 드나드는데 경성군이 손을 댈 수 있을 리 없었다.
대비는 경성군이 보위를 물려받고 6년이 되던 해에 사망했다. 하지만 매년 자기 제삿날에는 원각사에서 법회를 열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경성군은 의붓어머니의 소망을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지키는 중이었다.
성리학자들로 채워진 조정에서는 불교행사. 그것도 임금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를 껄끄럽게 여겼다. 하지만 경성군은 그 자신 불교를 싫어하면서도 꼬박꼬박 이 법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정말 효심이었는지, 보여주기였는지 모르겠다. 뭐, 그래도 절은 절대 안 했다더라만.
“석가의 도가 허황된 면이 있음은 나도 안다. 허나 백성들이 이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바도 있고, 과거 태조대왕께서도 불도와 인연이 깊으셨으며 세종대왕, 세조대왕께서도 불도를 깊이 믿으셨다. 그런데 어이 대비마마의 뜻을 어기고 원찰에서 여는 법회를 폐하겠느냐.”
“허나 불도는 옳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허설(虛說)일 뿐입니다.”
“그대들이 대학자라 떠받드는 이조판서도 한때 출가하지 않았는가!”
올해도 법회를 중단하라는 의견이 대간들 사이에서 올라왔다. 물론 대간들을 짓밟는 재미에 이렇게 대답해 묵살한 다음 행사에 나왔다. 아, 지금 이조판서는 이이다. 이이가 스무 살 때? 그때쯤 1년 정도 절에 들어가 불도를 닦다가 환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는 종교가 없다. 훈련소에서 담배 얻어 피우려고 성당에 나가긴 했지만 세례까지는 안 받았고, 책 보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건 있지만 딱히 어느 종교도 신자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싫어하는 종교도 없다. 연산군 때도 날 암살할 뻔한 미륵신앙 말고는 별 관심을 안 가졌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박원종이 미륵당 저격수를 역저격해서 날 구했었지? 그 공으로 박원종도 한세상 정말 잘 살았지. 웬만한 망나니짓은 아무도 막지 못했으니까.
신규 사찰 건립은 통제하고 기존 사찰이 가진 재산에도 세금을 철저하게 매겼지만, 그 정도 조치는 탄압도 아니다. 부와 권세를 가진 집단이 자꾸 커지지 못하게 만들려면 이만한 규제는 당연히 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이 조치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80여 년 동안 작은 암자라면 모를까, 대규모 사찰은 줄면 줄어들었지 하나도 늘지 않았다. 또한 사찰 소유 토지에서도 일반 토지와 똑같은 비율로 조세를 걷는다. 뿐만 아니라 도첩이 없는 승려는 군역도 져야 한다.
특권을 가지고 정치적 영향력만 행사하려들지 않는다면 어떤 종교든 마음대로 믿게 놔둬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둬야지. 그래야 예수회 선교사들이 들어온 뒤에도 갈등이 좀 덜할 테니까.
다만 내년부터는 법회에 직접 참가하는 건 관둬야겠다. 이거,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루하다. 목탁소리에 귀도 아프고.
“경기도에서 유생들이 절을 불태우는 사건이 터졌다고?”
“예, 전하.”
연산군 때는 없었던 게 이 조선 사회에 하나 생겼다. 바로 서원. 법회를 마치고 돌아온 뒤 도승지에게 받은 첫 보고가 그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양주에서 유생 서른 명 정도가 서원에 모여서 불승들이 무지한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악에 대해 논하였는데. 논의 도중에 감정이 격해져 자리를 떨쳐 일어나 가까운 절을 습격하여 안에 있던 불승들을 모두 내쫓고 건물을 모두 불태웠다 하옵니다.”
“이런 법도를 모르는 놈들이 있나!”
실제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숱하게 있었다지. 동네 선비들이 나서서 절을 파괴하고 불상을 부수고, 말 그대로 왈패짓을 저지르고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선 다를 거다.
“난행을 저지른 자들은 모두 부여주로 전가사변에 처하라! 설사 승도(僧徒)들이 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처벌은 관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디 감히 관위도 없는 유생들이 멋대로 나서서 처벌한답시고 절간에 불을 지른단 말이냐? 이는 임금을 능멸하는 일이로다!”
유생들이 승려들을 핍박하는 명분이야 빤하다. 양민을 호도하고 혹세무민을 일삼아 재물을 챙긴다는 건데, 그게 사실이면 관가에 고발하면 된다. 멋대로 사적제제를 범하지 말란 말이다! 난 그런 짓 하는 놈들을 그냥 화적패로 취급할 생각이다. 사민할 인력도 조달할 겸.
“그러하옵시면, 불타서 없어진 절은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음, 공정하게 판결하자면 재건하게 해야겠지? 가해자 재산으로 손해배상하게 하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분명히 사림들이 들고일어나서 귀찮게 할 듯하다. 중요한 절도 아니고 하니 그냥 없애자. 저쪽에도 떡 하나는 던져줘야지.
“이미 불타 없어졌으니 다시 세우기는 난망할 듯하다. 절에 남은 승려와 전적(典籍), 토지와 노비는 원각사로 옮겨 속하게 하라.”
만약 절을 재건하면 이번에는 복수심으로 불을 지를 놈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불교 쪽에서도 한 발 물러나게 하는 편이 서로 낫지. 방화범들이 벌을 받아 위로는 됐을 테니까.
불교 광신자나 유교 광신자나 나한테는 똑같다. 모두 부여주로 보낼 사민 후보자들이지. 뭘 저지르든, 누구든 내 손에 걸리기만 해라, 모조리 부여주로 보내줄게.
– 13 –
“벼슬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 원균을 부디 도성으로 돌아오게만 해 달라고.”
원균의 사촌동생이 올린 매우 절절한 상소문을 읽고 있으려니 코웃음이 쳐졌다. 아무리 한 집안이라도 그렇지, 어찌 원균을 풀어달라고 할 수가 있지?
일단 올라온 상소고 글도 잘 써서 끝까지 읽긴 읽었다만,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다. 원균과 같은 XXX를 변호하는 사촌은 도대체 인물됨이 어떤가 싶어 도승지에게 물어보았다.
“이 원연이라는 자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으며, 제 종형(從兄)과 성품이 비슷한가?”
“일찍이 사마시에 붙었으나 지금은 무관(無官)으로, 향리에서 지내고 있사옵니다. 또한 실은 원균의 종제(從弟)가 아니라 친동생입니다. 백부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이름은 까먹었는데, 원균에게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임진년에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대파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싸우다가 끝내 전사했다고 했다. 진정 형보다 나은 아우라고 할 수 있다.
“하아, 그러한가? 그러하면 원균이 아닌 이쪽이 가문을 잇는 적자인 셈인데, 어찌 관로에 올라 가문을 빛낼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소신이 원연과 별다른 친분이 없어, 그 사유까지는 잘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벼슬에 뜻이 없는 선비들이, 양반으로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생원과에만 도전하고 그치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원연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하긴 양반 신분을 유지하려면 생원만 붙어도 되니까. 누구나 이이처럼 시험 볼 때마다 막 장원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말이다. 솔직히, 더 좋은 성적 때문에 재수는 할 수 있다고 해도 장원 한 번 했으면 그 시험은 다시 안 봐야 하는 거 아냐? 어쨌든 원연에게는 호감이 간다.
“원연이 이토록 간곡한 상소를 올린 사정은 알겠으나, 원균은 그 죄가 크니 벌을 풀어줄 수 없다. 허나 원연은 그 글과 태도가 실로 아름다우니 벼슬을 내릴까 하는데, 도승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준원이 당황했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원연은 생원과밖에 통과하지 못했으니 제대로 된 관직은 내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효자로 표창을 받거나 대단한 공이라도 세운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원연은 향리에서 조용히 은둔하여 지냈기에 그런 공도 쌓지 못했습니다.”
반대란 말이지. 알았다, 무리해서 추진하진 말자. 원연이 인간적으로야 아쉽지만 지금 당장 등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인재는 아니니까. 기회를 주는 정도로 족하겠지.
“흠, 알겠다. 그럼 원연에게 교지를 내려, 종형이 풀려나기를 원한다면 그 자신이 출사하여 공을 세워 종형 대신 속죄하라고 일러라. 그 뒤에 원균이 받는 벌을 감할지 고려해 보겠다.”
당연히 원연이 공적을 얼마나 쌓건 원균을 풀어줄 생각은 없다. 원연이 내 제안을 받아들여 출사한다고 해도 ‘원균을 풀어줄’ 만큼 공을 세울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리고 공적이 그만큼 쌓이기 전에 원균이 죽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그 문제는 이걸로 됐다. 도승지는 물러가서 원연에게 내릴 교지를 초하라. 좌부승지, 여기 왜인여진들에게 봉수대 관리를 일임하자는 의견은 부여주에서 올라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부여주에선 목단강을 따라 늘어선 봉수대 관리를 목단강 연변에 사는 야인 부족들에게 맡겨두고 있다. 본래 함경도 군사들에게 맡겼던 걸 경성군이 바꿔놓았다.
“병조에서는 어찌 말하고 있느냐?”
“좋은 의견이긴 하나, 행여 백두산 일대 방어가 약화될까 우려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인여진(倭人女眞)이란 내가 연산군으로 규슈원정을 벌였을 때 잡아온 쇼니 군 포로들의 후예다. 8천 명에 이르는 포로들 모두 여진족 여자를 한 명씩 받아 백두산 일대에 둔전병으로 정착했고, 그 후예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슈에서 온 순수 일본인 1세대는 당연히 거의 다 늙어죽었고 ? 생존자가 한 손으로 꼽을 만큼은 있다고 하더라 ? 지금은 여진족 혼혈인 3세대, 4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왜검술에 더불어 기마까지 능숙한, 충성심 높고 싸움도 잘 하는 정예병들이다.
“왜인여진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얼마나 되는가?”
“정병 2만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두 세대가 넘게 지났지만 늘어난 인구는 2.5배밖에 안 되는 셈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규슈하고 비교가 안 되는 기후조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정착 초기에 명을 달리한 수가 ⅓이 넘었다니 말이다. 그나마 야인 여자라도 붙여줬으니 나머지라도 살아남은 거다.
그 뒤로 이자들은 함경도 북병사 밑에 소속되어 국경을 넘나드는 건주위 놈들을 막는 일을 맡았다. 또 부여주 내부에서 소요가 일어날 때도 진압군으로 활동하곤 했다. 부여주병마사는 이들을 지휘할 권한이 없었지만, 필요하면 요청할 수는 있었다.
“그만하면 목단강에 연해 있는 봉수대 20개소에 1백 명씩 파견해도 문제는 없겠구나.”
“그러합니다. 지금처럼 부여주 야인들을 배치함은 좋지 못합니다. 애초에 기강도 제대로 서 있지 않고, 전임 병마사 신립 탓에 원성도 높습니다.”
야인들은 분명 싸움에 능숙하다. 하지만 그건 직접 적과 창칼을 맞대고 붙을 때 이야기다. 진드근하게 망을 보면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기다리는 그런 일은 좀이 쑤셔서 못한다. 그러다보면 기운이 빠져 경계태세가 흐트러지고, 기습에 무너지기 쉬워진다.
지난번 해서위 침공 때 봉수대가 허무하게 뚫린 것도 그 탓이었다. 거기에 신립이 봉수대에 근무하던 야인들을 잡아 처형한 행동이 우리 조정과 여진족들 사이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도망병을 잡아 처형하는 건 분명히 정당한 군법 집행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좋지 않았다. 가족과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에 목을 매달고, 시신이 썩어서 절로 땅에 떨어질 때까지 거두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야 원한이 쌓이지 않을 수 없다.
“알겠다. 그럼 정월을 기해 왜인들을 파견해서 야인들과 교체하고, 그동안 버려져 있었던 둔전도 다시 일구게 함이 좋겠다. 내일 묘당에서 논의 후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리라.”
주요 사안들은 승지들과 회의해서 대략적인 방향을 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만사를 결정할 수는 없다. 최종적인 결론은 조정에서 내린다. 그게 조선이란 나라의 시스템이니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장관이나 국회는 병풍 취급하고 비서관들하고만 쑥덕거려서 만사를 결정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게 나라인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없지만 조정에서라도 일단 논의를 거친 뒤 결정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는 사안이라면 정보가 부족해서라도 더더욱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고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연산군 노릇을 하면서 쌓아둔 유산 덕분에 진행이 훨씬 매끄러운 듯하다. 만약에 내가 선조가 즉위할 때부터 이 퀘스트를 시작했다면, 내 앞에는 연산군 때문에 약해진 왕권과 잔뜩 독이 오른 사림들이 버티고 있었겠지. 나라살림도 어려웠을 거고.
그 상태에서 뭔가 바꾸기는 더 힘들었을 거다. 그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무척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