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65
2부 0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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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돌아오고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일본 쪽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결혼 제안은 노부나가가 그냥 한번 찔러 본 소리였던 모양이다. 하긴, 요도기미를 우리 왕실에 맞아들이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지.
사치가 심한 거 정도야 뭐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지르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친정에서 돈 갖다 쓰라고 하면 그만이다. 일본을 지배하는 외삼촌이 있는데 용돈 정도는 넉넉하게 주겠지.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뇌도 없는 주제에 아는 척 하고 나대며, 욕심과 야망은 실로 하늘을 찌른다는 거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오사카 포위전에서 그나마 도요토미 측이 가지고 있던 이점을 모조리 날려먹은 거야말로 요도기미가 세운 최대 업적이다.
전국시대에 여자들이 성주를 맡고 전투를 지휘한 사례가 극소수이긴 해도 분명히 있었다.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도기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고,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아들일 머리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총대장 노릇을 했다.
만약 노부나가가 정말로 요도기미를 나나 세자한테 시집보내겠다고 나오면 당장에 딱 잘라 거절할 테다. 도대체 조선 왕실에 어울리질 않는 여자인걸.
영창대군이나 다른 왕자군들도 절대 안 된다. 요도기미의 성격이 내가 아는 대로라면, 필시 자기 남편을 부추겨서 역모를 꾸미게 만들고도 남는다. 자기가 왕비가 되고 싶어서 말이지.
만약 노부나가가 요도기미를 내세워 국혼을 정식으로 제안해 온다면 그냥 거절해야겠다. 그 혼사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대놓고 볼모를 교환하는 편이 낫다. 적당히 멀찍하면서도 가까운 종친 하나 골라서 보내면 되겠지.
아, 물론 대놓고 볼모라고 보낼 수는 없다. 뭔가 다른 명목을 붙여 보내야 하는데, 어떤 게 좋을까? 무지한 왜인들에게 덕과 학문을 가르치는 ‘왜인교화사’ 정도로 임명해서 보낼까?
저쪽에서 오는 놈은…차라리 남자가 오면 좋겠다. 남자는 종성가 때처럼 적당한 여자 하나 붙여 주고 관리하면 되는데, 여자는 아무나 붙여줄 수도 없다. 신분이 너무 높으면 요도기미 그 X년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고, 너무 낮으면 모욕이라고 펄펄 뛸 거고.
처음에는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 요도기미는 15살, 임해군은 13살이다 ? 임해군을 그리로 장가보낼까 하고 농담처럼 생각해 봤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도저히 실행할 계획이 아닌 듯하다. 도대체 어떤 막장부부가 나올지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다.
에휴, 이 문제는 정말로 노부나가가 요도기미를 보내면 그때 생각해 보자. 설마 싶지만.
“전하, 홍문관 제학 유성룡 입시이옵니다.”
“들라 하라.”
유성룡은 일본에 잘 갔다 온 공으로 직급이 올라 종2품 제학이 되었다. 도승지가 되기 전에 홍문관 부제학이었으니 한 단계 올라 소속기관으로 복귀한 셈이다.
“소신 유성룡, 명을 받잡아 편전에 들었사옵니다.”
“앉으라. 경에게 물을 일이 있어 불렀다. 도대체 온다던 선교사는 언제 오는가?”
규슈에서 걸렸다는 열병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유성룡이 도성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두 달, 즉 병에 걸린 건 석 달 전이다. 이만하면 나을 때도 되지 않았나?
“송구하옵니다. 신으로서도 어찌 이리 소식이 없는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서한을 보내서 상황을 확인할 수도 없는지라….”
유성룡이 말한 대로다. 방문 합의 자체가 비공식이었으니 대놓고 서한을 보내 왜 온다더니 안 오냐고 따질 수도 없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문의하기도 곤란하고.
“그럼 어찌하라는 말인가. 그냥 이대로 기다리자는 말인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유성룡이 약간 긴장하기는 했어도 침착하게 답했다.
“전하, 지금 전하께서는 이 나라가 선 이래 유례가 없는 일을 하시려는 참이옵니다. 신은 전하께서 하시려는 일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사오니, 너무 조급하게만 굴지 마시옵소서. 저들은 전교가 지상과제이니, 다른 선교사를 동원해서라도 분명 올 것이옵니다.”
그래, 언젠가 오긴 오겠지. 종파를 막론하고, 선교사들만큼 끈질긴 족속도 없으니까. 언제쯤 가서 내 눈앞에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물러가 보라.”
아무래도 선교사 파송 및 그에 따른 유럽인 기술자 영입이 내 기대만큼 빨리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석탄 증산이나 장거리 항해능력 확보는 일단 명나라 쪽에서 오는 지원만 가지고도 해낼 수 있으니까, 그 이상은 유성룡 말대로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지금 일본 수준도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나을 게 없다. 임진왜란 때 그대로 아닌가?
물론 우리는 일본처럼 숙련된 장창병대 같은 건 없다. 대신 우리에게는 강선조총과 야포가 있다. 아직은 강선조총 숫자가 충분하지 않지만, 10년 동안 계속 만들면 된다. 그동안 진행한 생산설비 복구도 완료했으니 이제 재정 형편 되는대로 뽑아내는 일만 남았다.
“군기시에 가겠다. 채비를 하라.”
“예, 전하.”
편전을 나서며 결심했다. 지금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만 하자. 처음부터 계획에도 없었던 일 가지고 괜히 고민하지 말고.
– 4 –
“각하께서는 언제쯤 출발 승인을 내려주실 생각이신지요.”
“전에 말했듯이 두 달 뒤, 우에스기 정벌군이 출발할 때쯤.”
노부나가는 올해 안에 우에스기를 완전히 무릎 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고 나면 동부에서 대규모 영지를 소유한 주요 다이묘들 중 남는 세력은 호조, 다테, 그리고 사타케 정도다.
다테와 사타케는 아직까지는 호조와 우에스기 뒤에 숨어 눈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사이가 나쁘고 또 호조 씨하고도 사이가 나쁜지라, 세 가문이 힘을 합쳐서 노부나가에게 맞선다거나 할 가망성은 거의 없었다.
“우에스기가 항복하면 호조 씨만 남지. 우에스기를 공격하는 동안은 그대들이 조선 국왕의 관심을 끌고, 호조가 쓰러지고 나면 오차차가 조선 국왕의 관심을 끌게 하는 거야. 그 가련한 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규슈 전체가 내 지배하에 들어와 있겠지.”
노부나가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차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면 다른 무엇보다 일본을 먼저 하나로 합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든 배제해야 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누이 오이치를 닮은 조카 오차차는 무척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위해서 좋은 혼처도 찾아줄 생각이지만, 그 전에 외숙을 위해 정치적 역할을 좀 맡아줘도 안 될 건 없지 않은가. 조선 같은 나라라면 볼모로 온 계집아이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을 터다.
“주군, 하시바 공이 왔습니다.”
시종이 들어와서 알렸다.
“들어오라 하라. 그대는 그만 나가보라.”
“예, 각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프로이스가 접견실을 나섰다.
접견실을 나선 프로이스는 문앞에 선 히데요시와 마주치자 살짝 눈인사를 한 뒤 지나쳤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평소 교류도 없는 히데요시에게는 그 정도 인사면 충분했다.
계단을 내려가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조선 선교는 예수회가 동아시아에서 가지고 있는 숙원 중 하나였다. 규슈에는 이미 천주교당이 곳곳에 있으니 조선 상인들이 오기만 하면 어느 정도 전도가 가능할 텐데, 조선 상인들은 이키까지만 왔다. 본토에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마침내 기회가 왔는데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마침 일정에 여유가 있는 선교사 한 사람을 뽑은 뒤 조선 사신과 함께 떠나기 위해 한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선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 내용을 보고만 받던 노부나가가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조선에 가지 말라는 말은 안 하겠다. 다만 내가 가도 좋다고 허락할 때 가라.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새로운 양 한 마리를 얻기 위해서 이미 붙잡은 양 한 마리를 놓을 수는 없었다. 노부나가가 마음만 먹으면 이미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의 선교가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미 수십 년을 기다렸는데, 몇 달 더 기다리는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전화위복이기도 했다. 마카오에 있는 선교본부에 보고를 하고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 조선에 선교사를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준비기간도 충분히 확보했다.
조선에 갈 선교사로 뽑힌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는 올해 33세로, 일본어와 한문을 아주 능숙하게 구사했다. 지금은 규슈에서 온 상인에게 조선말도 배우고 있다.
다행히 노부나가는 조선에서 진행될 선교 방침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려들지는 않았다. 장차 주님의 복음이 조선에도 펼쳐질 밝은 미래를 꿈꾸며 프로이스는 계단을 내려갔다.
“저 바테렌(신부)은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접견실로 들어선 히데요시가 묻자 노부나가는 간단히 대답했다.
“선교사를 적당한 때에 들여보내서 조선 조정을 뒤흔들어놓아야 하니까. 일본에도 선교사가 처음 들어올 때 논란이 컸다. 조선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주 재미있지 않겠느냐.”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품은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이제 모리가 제압된 만큼 우에스기를 칠 때 그전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규슈 방면, 구 모리 영지 쪽에 대한 경계가 아무래도 허술해진다는 의미도 된다. 조선군이 규슈에 와도 대응하기 힘들 만큼.
노부나가는 이런 위기를 선교사 한 사람으로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었다. 히데요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과연, 현명하십니다. 조선인들은 밥 먹기보다 논쟁을 좋아합니다. 분명 선교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다투느라 올해 내내 보내고도 남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 네가 신경 쓰인다는 문제가.”
“우리 일본에는 본래 불도와 신도가 성합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들어온 뒤에 불도, 신도와 서로 다투느라 빚어지는 소란이 크지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불도가 쇠락했고, 그 외에는 딱히 믿는 도가 없어서 주군께서 바라시는 만큼 큰 소동이 일어나기는 힘들 겁니다.”
“상관없다. 나는 시바타가 우에스기를 항복시키는 동안, 그 잠시간 동안 조선인들의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을 뿐이니까. 남만인들이 조선인들 사이에 소동을 일으킬 만큼 선교에 성공하건, 아니면 실패하건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어느 다이묘건, 수십만 대군을 동원할 능력이 있다 해서 그 병력을 언제나 투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영지에서 농민병을 끌어내면 농사를 못 짓고, 모집해서 고용한 잡병에게는 급료를 주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재정을 축낸다는 점은 똑같다.
노부나가 역시 꼭 필요한 이상으로 병력을 동원할 생각이 없었다. 선교사 한 명을 보내고서 병력 수천을 아낄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일이 아닌가. 더구나 그 선교사는 노부나가의 부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 뒤 규슈 공략을 시작할 때쯤 공식적으로 혼인 이야기를 꺼낸다. 아예 오차차를 조선에 보내면서 말이야. 그러면 조선 조정은 그 문제를 놓고 또 패를 갈라 말다툼을 하느라고 제때 개입하지 못하겠지.”
이야기를 듣던 히데요시가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노부나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경고를 날렸다.
“야, 이 대머리 원숭이 자식아. 네가 오이치한테 반한 것도 알고, 오이치 대신에 오차차를 넘보고 있다는 것도 안다만 쓸데없는 욕심일랑 집어치우는 게 좋을 게다. 오이치는 네 면상을 보는 것보다 머리 위에 송충이를 퍼붓는 쪽을 택할 테니까. 오차차를 주는 건 턱도 없고.”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히데요시가 펄쩍 뛰어올랐다. 황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노부나가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히데요시를 노려볼 뿐이었다.
“넌 네 마누라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부터 알아야 해. 내가 이미 한참 전부터 야단을 치지 않았나? 제발 첩 좀 그만 늘리고 네네에게 충실하라고 말이다. 미동을 안는 것도 아니고 하필 여자를 그렇게 많이 끌어들여서 네네의 속을 긁는 거냐. 오이치는 그래서 네가 싫은 거야.”
고위 무장들에게 미소년은 잠시 스쳐가는 상대일 뿐이다. 하지만 첩으로 들인 여자는 평생 그 집에서 산다. 본처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싫은 상대일지는 분명하다. 더구나 첩은 아이를 낳아 본처 소생의 상속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다. 미소년은 그러지 못한다.
노부나가에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히데요시는 엎드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퍼부어댄 노부나가가 귀찮다는 듯 뒤로 기댔다.
“아무튼, 시바타가 우에스기를 제압하고 나면 호조는 타키가와에게 맡기겠다. 재작년에 한 번 패했으니 기회를 주어야지. 엿새 후 회의에서 결정할 생각이다.”
“그러시다면, 저를 미리 부르신 이유는…?”
“규슈 출진을 준비해라. 시마즈가 오토모를 공격하고, 오토모 소린이 구원 요청을 보내면 원숭이 네놈이 출진하는 거다. 소린을 지켜주는 정도면 족하니, 무리할 건 없다.”
“알겠습니다.”
히데요시가 고개를 숙였다. 노부나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호조가 완전하게 정리될 때까지는 믿을 만한 원병을 붙여줄 수 없다. 혼자서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움직여라.”
“예, 주군.”
모리에 이은 단독 작전이다. 히데요시는 성공을 다짐했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자신이다. 더 큰 실력과 전과 없이 누가 내 뒤를 따르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