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66
2부 0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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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왔을 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더니, 이제 다 되었느냐?”
“그렇습니다, 전하.”
김지는 한껏 흥이 오른 모양이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다 죽어가던 모습에 비하면 완전히 날아갈 것 같았다.
“그대가 흥겨워하는 것을 보니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온 모양이구나.”
김지는 이번에 문종화차의 틀을 벗어난 신형 화차를 만들었다고 했다. 화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기존에 쓰던 삼총통보다 강력한 승자총통을 장착했다. 그러고 보니 승자총통도 나름대로 깊은 사연이 있는 무기였다.
“이미 무종께서 만드신 조총이 있어 그 이전에 쓰던 작은 총통들은 모두 녹이게 한지 오래 되었건만, 그대는 왜 이런 걸 만드는가? 조총보다 무겁고 불편하며 잘 맞지도 않지 않는가!”
“전하, 조총이 비록 가볍고 잘 맞으나, 한 번에 탄환을 하나밖에 쏘지 못하니 맞힐 수 있는 적도 단 한 명뿐입니다. 이 승자총통은 한 번에 탄환 여러 발을 쏘아 수십 명을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시끄럽다! 한 번에 적을 많이 쓰러트리려면 커다란 포를 쏘면 되지 왜 굳이 이런 어중간한 놈을 들고 나가서 쏜단 말이냐? 조총으로 정확히 쏘아 넘어뜨리는 것만 못하다!”
승자총통 개발을 놓고 김지와 경성군 사이에 벌어진 충돌은 상당히 격렬했다. 물론 한 편이 왕이니만치 충돌이라고 해야 김지 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형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승자총통 개발까지는 경성군에게 승인을 받았다. 대포를 끌고 가기 곤란한 상황에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소형 대포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김지의 변설이 통했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총통을 개량하는 형태였던 까닭에 개발 과정에서 리스크도 없었던 덕분이다.
다만 이 건으로 기세가 오른 김지는 온갖 신무기를 더 개발하려다가 얼마 안 가서 잘렸다. 하지만 김지가 만든 성과가 헛되지는 않아서, 승자총통은 다수가 양산되었다. 비록 경성군이 제작을 중단시킨 대구경 총통들 대신이었지만 말이다.
이게 참 내 입장에서 보면 좋지만은 않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경성군이 한 지적이 틀린 게 아니니까 말이다. 승자총통이 산탄을 쏜다고는 하지만 그 유효사거리는 50m도 안 나온다. 밀집대형에다 대고 쏜다면 활강조총만큼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래봐야 소구경이다.
물론 근접전에서는 나름 산탄총처럼 쓸 수 있고, 화약무기가 없는 야인들에게는 이 정도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번 우을지의 난 때도 쏠쏠하게 잘 써먹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우을지 친구 니탕개 놈이 안 잡혔구나. 그놈은 아직도 해서부에 숨어 있나?
니탕개를 찾아서 잡으려고 부여주에서 이성량에게 월경을 허가해달라고 신청하게 했더니, 그런 놈 모르니 허락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망할 놈 같으니.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게다.
어쨌든 경성군이 중화포 대신 승자총통만 만들어댄 덕분에 조선군 무장 수준은 퇴보했다만, 대신에 화차를 만들기는 좋아졌다. 각 군영에 뿌린 승자총통을 도로 거둬들인 것만 해도 만여 자루는 족히 되었으니 말이다. 이걸 다 새로 만들려면 또 시간이 얼마나 걸렸겠는가.
“너무 많이 거두어들여 변경에서 사용할 양이 부족하지는 않겠느냐?”
“염려 놓으시옵소서. 야인들이 나타날 수 있는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회수하지 않고, 그 이남 군영에 배비한 것들만 도로 거두어들였사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
경성군도 나름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바로 그놈의 구두쇠 근성이었지! 아니, 대포가 비싸다고 대포 없이 소총하고 유탄발사기만 가지고 군대를 무장시키면 어떻게 해?
“새 화차는 한 번에 승자총통 마흔 자루를 쏠 수 있습니다. 다 쏘고 나면 총통틀을 바꾸어 달고 연달아 계속 쏘는데, 총통틀 여덟 개를 탑재하고 있어서 쉴 새 없이 쏠 수 있습니다. 또 싸움이 멈추면 바로 총통틀을 재장전할 수 있도록 화약과 탄환, 화승도 따로 실었습니다.”
실험장 안쪽으로 가면서 김지가 쉴 새 없이 설명을 했다. 헌데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 보니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 화차는 원래 총통틀을 갈아가면서 쏘는 거지. 그런데 그건 탄약차 역할을 하는 다른 수레가 싣거나 사람이 메고 따라가는 거잖아. 그걸 ‘탑재’한다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알고 있기로, 화차에는 분명 총통틀 따위를 예비로 싣고 다닐 공간이 없다. 단 한 개도 못 싣는다. 그걸 여덟 개에, 재장전용 화약과 탄환까지 실었다고?
도무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황망한 기분으로 흙두덩을 돌아가니 마침내 오늘 방문할 시험장이 나왔다. 김지가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전하, 새 화차이옵니다! 아직 이름이 없으니 부디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길 청하옵니다!”
내 눈 앞에는 문종화차와는 전혀 닮지 않은, 미니버스만한 사륜차가 놓여 있었다.
경성군이 김지를 군기시에서 내보낸 것도, 대포는 안 만들면서 승자총통만 들입다 만들어댄 것도 다 돈 때문이다. 나는 경성군처럼 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지난 1년 동안은 군기시에 예산을 정말 넉넉히 주었다. 그리고 그 용처에 대해 일체 상관하지 않았다.
김지가 원하는 대로 한번 실컷 해보도록 해준 결과가 이런 괴물로 돌아왔다! 젠장, 구두쇠 경성군이 김지 때문에 뒤로 자빠진 심정이 이해가 가는군.
“안에 화약을 실었다가, 적이 화공을 펼쳐 불이 붙으면 폭발하지 않겠느냐?”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떼어서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적이 화공을 가하지 못하도록 겉에 철판을 입혔사옵니다.”
다시 보니 확실히 겉에 철판을 입힌 티가 난다. 녹슬지 말라고 했는지 위에 옻칠을 해놓는 바람에 나무만 써서 만든 줄 알았다.
“사방을 삥 둘러서 반 치 두께로 철판을 붙였으니, 불화살도 박히지 않을뿐더러 조총 탄환 정도는 수천 발을 맞추더라도 뚫지 못합니다. 또한 군사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총통틀을 쏠 수 있으니, 실로 무적입니다.”
측면 벽이라도 열고 쏘나? 수레 안에서 총통을 수십 발씩 쏘면 안에 초연이 차서 숨을 못 쉴 텐데? 거북선도 그 문제 때문에 꽤나 애먹었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놀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까 김지가 씩 웃더니 호령을 했다.
“총통틀을 올려라!”
다음 순간 덜컹 하는 소리가 나더니 수레 지붕 한가운데가 양쪽으로 벌컥 열렸다. 그리고는 그 밑에서 총통틀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흔 개나 되는 승자총통이 선명하게 보였다.
“포구를 동쪽으로!”
김지가 호령하자 총통틀이 시계방향으로 정확히 90도 돌더니 동쪽을 향했다. 곧바로 발사를 명령하는 호령이 떨어졌다.
“쏘아라!”
총통틀 뒤쪽으로 연결된 심지가 타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마흔 자루에 달하는 승자총통을 실은 총통틀이 오른쪽 끝에서부터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수백 개나 되는 탄환이 빗발치듯 날아가자 표적으로 펼쳐놓은 삼베가 순식간에 걸레가 되었다.
“환장(換裝)하라!”
김지가 호령하자 다 쏜 총통틀이 올라왔을 때처럼 쓱 하고 화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새 총통틀이 다시 올라왔다.
“쏘아라!”
호령에 따라 또 총통틀이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움직이며 표적지 주위를 휩쓸었다. 삼베를 묶어두었던 기둥까지 탄환 세례를 받아 조각나면서 그 주변은 온통 들쑤셔진 바닥만 남았다. 그 광경을 보며 김지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어떻습니까, 전하!”
나는 대답할 엄두도 못 내고 입을 떡 벌린 채 굳어져 있었다. 도승지를 비롯해서 내 행차를 따라온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뭐야? 이런 게 가능해? 오버테크놀로지 아니야?
“으음, 그리 되었던 건가.”
초연이 가신 뒤 화차 ? 이런 물건을 화차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만 ? 앞에 다가가서 그 내부를 들여다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기술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물건은 아니었다.
위아래로 오르내린 총통틀은 승무원들이 내부에서 사슬과 도르래로 움직였다. 화차 안에는 다섯 명이 탑승하는데, 하나는 측면에 낸 관측창으로 사격 방향을 살피고 네 명이 재장전과 발포를 맡는다. 총통틀 회전은 손으로 기어를 돌려서 하고, 내린 총통틀은 구석에 치워둔다.
차체는 두께가 세 치나 되는 참나무 목판으로 만들고, 겉에 철판을 입혀 대갈못(리벳)으로 고정했다. 이 정도 방어력이면 현자총통 정도는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포탑은 아직 없지만, 이 정도 차량이라면 일종의 전차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행여 적이 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러도 막아내도록, 바닥에도 철판을 붙였습니다.”
정말 전차 맞구먼. 바퀴에 직격탄을 맞으면 멈추거나 주저앉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때만 빼면 절대적으로 무적이다. 360°를 돌면서 발포하니 쏘지 못하는 사각도 없다.
“정말 훌륭한 병기로다. 정말 훌륭한 병기야.”
이 괴물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지는 묻지 말도록 하자. 그래, 묻지 않겠어. 그건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거 한 가지만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대에게 한 가지 묻겠다. 이 수레를 어찌 움직여 적과 대적하게 할 생각인가?”
그래, 적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없다면 어떤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이 화차, 아니 전차도 전쟁터까지 굴러갈 수 있어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동하지 못한다면 그냥 작은 보루를 쌓고 말지 이런 걸 만들 이유가 없다.
“전장까지는 황소 여덟 마리를 써서 끌고 갑니다. 가는 도중에는 군량이나 화약을 운반하는 수레로 써도 되지만, 원체 차가 무거우니 이는 삼가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리고 전장에서는 소와 사람의 힘을 다 함께 써서 일선에 세워 두고, 싸움이 끝나면 회수하겠사옵니다.”
그 정도면 크게 비현실적인 계획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무거워서야 아무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다. 전략기동은 도로가 제대로 깔린 코스로 가야만 하고, 전술기동은 아예 못 한다. 일단 한 군데 세워놓으면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
“만약 패하기라도 하면 버릴 수밖에 없겠구나.”
“패하지 않게 만들 병기이옵니다.”
나는 이 하얀 코끼리 같은 괴물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지만 김지는 의기양양했다. 심지어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술 더 뜨는 계획까지 세워 두고 있었다.
“전하께서 윤허만 내리신다면, 이 화차에 증기기관을 올려 소가 끌지 않아도 스스로 앞으로 가도록 만들어 보겠사옵니다. 그리하면 거침없이 적진을 짓밟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건 정말 전차로군. 아니, 그건 됐어. 좀 참아줘.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과거 무종께서 증기선을 만들어보려고 그토록 애쓰셨건만 완성하지 못하셨다. 이 화차도 배보다 작은데, 어찌 여기 올릴만한 작은 기관을 만들기가 쉽겠느냐.”
19세기 유럽에서 증기기관을 단 자동차가 한때 유행한 걸 생각하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다. 다만 그거 연구하는 동안 군기시가 당장 필요한 다른 무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지 못할 거라는 점, 그리고 만들어봐야 도로 사정상 별로 써먹지를 못할 게 빤하니 문제지.
“화차는 잘 보았다. 다른 두 가지 병기는 어찌되었느냐?”
“여기 있사옵니다.”
한껏 부풀었던 꿈이 좌절되어서인지 김지는 조금은 풀이 죽은 듯했다. 그러면서도 준비했던 신병기를 내 눈앞에 선보이는 데 소홀해지지는 않았다.
“이것이 일전에 말씀드린 후장조총이옵니다. 여기 보시듯 총신을 꺾고, 미리 화약과 총탄을 넣어둔 탄통(彈筒)을 밀어 넣고 다시 닫습니다. 불접시에 선약을 붓고 화승을 조절하면 총을 쏠 준비가 모두 끝납니다.”
군기시 소속 총포장이 직접 사격 시범을 보였다. 총신을 꺾어 탄통을 삽입하는 광경이 마치 현대에서 중절식(中折式) 산탄총에 탄환을 장전하는 모습 같았다.
“이 총을 쓰면, 미리 준비한 탄통을 다 소모할 때까지는 무척 빠르게 장전할 수 있습니다. 탄통은 조금 더 무겁기는 해도 크기는 죽관과 별 차이가 없어 십여 개 정도는 무난하게 몸에 지닐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앉거나 엎드리거나, 어떤 자세로도 탄을 잴 수 있습니다.”
그래, 이거야말로 후장총이 가진 엄청난 메리트 중 하나지. 하지만 내가 꺼내들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아까 그 ‘장갑차’에서는 아예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던 질문이다.
“이 총 한 자루를 만드는데 강선조총 몇 자루쯤 만들 수 있는 비용이 들어갔느냐?”
“강선조총 다섯 자루 값이 들어갔습니다.”
그럼 아웃. 분명 성능으로 보자면 우위지만, 이거 한 자루 가지자고 강선조총 다섯 자루를 버릴 수는 없다. 죄다 수공으로 만들려니 어쩔 수 없겠지만, 제식소총으로 채택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특수부대용으로 소량만 생산하는 방안은 고려해 봐야겠다.
“이것은 무릿매를 이용해 던지는 척탄(擲彈)입니다. 주화사가 보고하기를, 왜국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무릿매로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이가 많다 하였습니다. 우리 군사들 중에도 석전에 능한 이들이 많으니, 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작은 척탄을 만들었습니다.”
오, 이게 오늘 본 무기들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지 싶다. 크기는 어른 주먹 정도, 딱 수류탄 사이즈다. 위로 살짝 빠져나온 도화선에 불을 붙인 뒤 무릿매(슬링)로 날리면 된다.
“야포에도 한 발씩 넣고 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완구에 넣고 쏘는 비격진천뢰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이 짠 대열을 흐트러뜨리는데 매우 좋을 것입니다.”
“그것 참 좋구나.”
내가 딱히 지시한 바가 없는데도 탄약 규격을 통일시키다니, 훌륭하다! 한 가지 물건이지만 수류탄으로도 쓰고, 포탄으로도 쓸 수 있으니 참으로 좋다. 이건 많이 만들어서 비축해야겠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술과 고기를 내리겠으니 오늘은 먹고 마시며 즐거이 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아, 뿌듯하다. 수류탄 하나만 해도 말이다. 근데 전차는 어쩔까. 정말 몇 대 만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