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
1부 0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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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장은 양화나루 옆 한강 모래밭에 마련되었다.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모두 참여하라는 내 지시에 따라 수백 명이 모이자면 도성 내에서는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사형은 단순한 개인적인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대역죄에 대한 처벌이니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집행 장면을 보도록 해야 했다. 그러자면 가능한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예상대로 처형장에는 관리들 외에도 일반 구경꾼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시대에는 사형집행만한 이벤트는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죄인들을 끌어내라!”
집행관이 고함을 지르자 칼을 쓴 사형수 다섯 사람이 함거에서 끌어내려졌다. 유자광의 청에 따라 사형에서 귀양으로 감형된 강겸을 제외한 다섯 사람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죽은 시체가 한 구 더 있었다. 무덤을 파헤쳐 꺼내온 김종직의 시신이었다.
김종직에게는 다른 처벌이 있을 수 없었다. 부관참시. 이미 죽은 자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형벌이다.
“이제부터 역도 김종직의 목을 벨 것이다!”
호령 소리에 따라 김종직의 시신이 멍석 위에 올려졌다. 시신은 관 위에 회반죽을 부어 굳히는 조선 특유의 장례 풍습 덕분에 별로 부패하지 않았다. 이미 죽은 지 6년이나 된 시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성해 보였다.
본래 참수형을 할 때는 사형수의 양쪽 귓불을 화살로 꿰어 목을 고정시키고 상투를 기둥에 묶어 칼이 빗나가지 않게 한다. 하지만 김종직은 이미 죽어 있으니, 그런 조치는 필요가 없었다. 준비한 멍석 위에 형리들이 시신을 얹고, 목 밑에 큼직한 목침을 놓았을 뿐이었다.
준비가 끝나자 그 역시 사형수 출신인 망나니가 커다란 참도를 들고 내리칠 준비를 했다. 옆에 서 있던 집행관이 슬쩍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집행관이 망나니를 향해 우렁차게 소리쳤다.
“베어라!”
날 길이만 두 자, 자루는 석 자쯤 될 것 같은 묵직한 칼이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내리쳐졌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목을 효수하라!”
뒤에서 대기하던 형리가 나서서 바닥에 떨어진 김종직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머리카락을 풀어 옆에 준비해둔 기둥에 묶은 다음 기둥을 모래바닥에 박았다. 피는 전혀 흐르지 않았다.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실상은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시체인 탓이겠지.
곧 나머지 사지가 토막 났다. 이 잘린 몸 조각들은 소금에 절여져 전국을 돌며 반역자의 최후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나머지 죄수들이 모두 사형에 처해진 뒤에 한꺼번에. 아, 그 전에 한 가지 행사가 더 있었지.
“죄인의 책을 가져다 쌓으라!”
처형될 때를 기다리는 다섯 죄수들 앞에 김종직의 책이 가득 쌓였다. 《청구풍아(靑丘風雅)》, 《동문수(東文粹)》, 《점필재집(?畢齋集)》 등 김종직이 쓴 이 책들은 김종직 사후 제자들이 스승의 글을 모아 출판한 것이다. 전라남도 감영이 찾아낸 판목도 그 위에 던져졌다.
김종직의 책을 소장한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 제자들은 물론 김종직과 사귀었던 이들, 그 세력에게 덕을 보려는 자들이었다. 이 책들을 가지고 있다가 추후에 적발되는 자들은 모조리 김종직 일당으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한 덕분에 이만큼 수거할 수 있었다.
“불을 붙여라!”
금부 나졸들이 불을 붙이자 수백 권이나 되는 책들이 일시에 타올랐다. 책을 태우려니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만 김종직과 김일손이 그만큼 큰 죄를 지었음을 만방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사람은 스승의 저작이 불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 가해진 국문으로 이제 지쳤는지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거나 말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능지형에 처할 죄수 셋을 끌어내라!”
집행관이 호령하자 형리들이 일시에 억센 손을 내밀었다.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세 사람이 비틀거리며 끌려 나왔다. 이들은 사형수이되 참수형 대상이 아니므로 귀에 화살은 꽂지 않았다. 하지만 열흘 가까이 국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전하! 억울하옵니다! 신들은 그저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자 하였을 뿐, 왕실을 능멸할 의도는 없었사옵니다!”
권오복이 절규했다. 하지만 그에 호응하는, 그를 살리고자 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조정 관료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고 노사신조차 눈을 감았다. 나머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흥정한 대가가 저들 다섯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하! 전하! 신의 노모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권오복은 밧줄에 사지를 묶이면서도 절규를 멈추지 않았다. 집행관이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내 쪽을 흘깃거렸지만 내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래, 사람이 산 채로 찢기는 광경이 즐거운 건 아니지. 하지만 저들은 이 시대 기준으로 충분히 이런 형을 당할 만한 죄를 지었잖아. 그리고 내가 국정을 운영하는데 너무 방해가 돼. 그러니 어쩔 수 없어. 날 원망하지는 말아줘. 그리고 넌 이미 감형을 받았다고.
“전하, 권오복에게는 늙은 어미가 있고 권경유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본래 법대로 하면 교형(絞刑, 목을 졸라 죽이는 처형)에 처해야 하나, 권오복의 죄가 김종직보다 작으니 다소 감하여 연좌만이라도 면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노사신을 필두로 하여 한치형, 성준 등이 고개를 숙여 가며 간청했다. 의외지만 또 유자광이 함께 하고 있었다. 당사자들은 도저히 구할 수 없더라도 가족만이라도 살리려는 이 노력에 대해서 태클을 걸고 나선 사람은 이번에도 윤필상이었다.
“신은 법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이 양반은 정말 사림들한테 감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 나도 권오복의 노모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자면 신하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청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는 엄히 벌을 주려고 했지만 신하들의 청을 받아들여 용서해준다는 그림이 완성이 되니까.
“제왕이 죄수를 논단할 때는 조금만 가엾은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살리도록 하는 법입니다. 이번 사건은 아무리 대역죄라고 해도 거사를 일으킨 자만큼 큰 죄는 아닌 만큼,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형은 면해주시는 편이 실로 정도 있고 사리에도 맞을 것입니다.”
노사신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탄원했다. 그래,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모 및 처자에 대한 사형은 감해 주라. 대신 도형(徒刑)에 처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신이 불효하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시끄럽구나.”
눈가가 찌푸려졌다. 가족은 살려준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나? 저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죽도록 ‘가족은 처형되지 않을 것’이라고 윤필상을 시켜 전해주게 했는데.
어쩌면 윤필상이 일부러 전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저들의 가족도 모두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양반이니, 가는 길에 골탕 좀 먹으라고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고요히 바라보는 사이 세 사람의 목과 사지에 모두 밧줄이 걸렸다. 밧줄 열다섯 가닥이 황소 열다섯 마리에게 단단히 비끄러매어졌다. 황소 옆에 선 나졸들이 신호를 기다렸다.
집행관이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을 중단하라는 왕명이 없다면, 이제 집행관이 내릴 지시는 하나밖에 없다.
“당겨라!”
“끄아아악!”
구령이 떨어지자 일시에 소 울음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산 채로 사지가 찢기는 사람의 비명소리는…정말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영화에서 보던, 그런 죽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내가 명령한 집행이고, 모두 와서 보라고 지시한 사람도 나다. 그런 내가 이 자리를 뜨거나 고개를 돌릴 수는 없다. 떨리는 손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팔걸이를 꽉 움켜잡아야 했다.
세 사람 모두 숨이 끊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도 되지 않았다. 무릎이 끊어지고 팔이 어깨에서 빠졌다. 목도 떨어져서 땅바닥을 굴렀다. 피가 흥건하게 흘렀지만 곧 모래에 흡수되어 그 흔적만 남았다. 세 사람의 몸통은 사지 중 하나에 붙은 채 땅바닥을 끌려갔다.
“소를 끌고 가라! 줄을 풀어 죄인들의 시신을 모아라!”
집행관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능지형은 원래 온몸을 회 뜨듯 살을 발라내 죽이는 형벌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능지형을 선고해도 실제로는 소나 말에 매어 사지를 찢는 거열형을 집행했다. 하긴 사람으로 회를 뜨는 건 너무 잔인하긴 하지.
거열형이 집행된 현장을 정리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펼쳐진 사형장이 정리되자 곧 나머지 두 사람이 끌려나왔다.
“죄인들은 무릎을 꿇어라!”
이목과 허반 두 사람은 이미 완전히 넋이 나갔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형리들이 이끄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하긴, 스승의 책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친구이자 동료이던 이들이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제정신이라면 그게 더 대단한 일이다.
거열형이 진행되는 동안 참수형 준비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손은 이미 뒤로 묶였고 양 귓불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웃옷도 풀어헤쳐져 있었다.
“옷을 벗기고 고개를 숙여라!”
참수형을 집행할 때는 남녀 불문하고 상의를 벗긴다. 형리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의 웃옷을 허리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상투에 끈을 묶어 당긴 다음 기둥에 묶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멍석 위에 엎드리자 형리들이 목침을 가져다가 목 밑에 괴었다.
“베어라!”
마지막 집행이다. 이제 집행관은 굳이 내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호령에 따라 망나니 두 사람이 일제히 참도를 내리쳤다.
“크헉!”
칼날이 목침에 내리꽂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 두 개가 모래바닥 위를 굴렀다. 김종직 때와 달리 푸슛 하고 튀어 오른 핏줄기가 앞으로 내뿜어졌다. 산 사람을 베었으니 경동맥으로 피가 분출한 것이다.
목이 떨어진 뒤에도 몸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묶인 채 부들거리며 떨던 두 몸은 잠시 더 시간이 흐르고서야 멈췄다.
“죄인들의 사지를 잘라라!”
이들 두 사람 역시 사지를 소금에 절여 전국에 조리돌림을 하게 된다. 전시할 죄인이 여섯 명이나 되니 전국에 있는 모든 고을에 시신을 순회시켜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
“모두 들으라!”
사형 집행이 모두 끝나고, 기둥 여섯 개가 각각 머리 하나씩을 달고 곧바로 섰다. 이제 내가 한 마디 할 차례였다. 내가 일어서자 형장을 둘러싸고 있던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
“왕실을 능멸하고, 하늘의 뜻을 업신여긴 역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합당한 벌을 받았다! 남은 무리 역시 그에 맞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윗전을 거역하고 왕실을 능멸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백성들은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하들도 뭐라고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나로서도 대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건 명백한 내 위협 선언인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하고 외치겠는가, ‘천세!’를 외치겠는가?
“충분히 효과가 있었을까.”
침전에 누워 있으려니 아까 본 피바다가 자꾸 떠올랐다. 지난 3년 동안 사형 판결을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집행하는 장면을 직접 본 일은 없었다. 사람이 깔끔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사지가 찢기고 목이 잘리는 광경은…생각보다 끔찍했다.
“노사신 영감 제안대로 한 게 다행이다.”
노사신이 필사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죽는 사람 수는 최소한 수십 명 이상이었다. 유배로 판결한 김종직의 제자들 중에도 상당수가 처형되었을 테고, 연좌제에 걸린 가족들도 수없이 처형되었을 공산이 크다. 노사신 외에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저들을 지키려들지 않았으니까. 물론 ‘자애로운 임금’이라고 나를 평한 그 백성도 있었지만….
한 가지 의문은 왜 유자광이 막판에 몇몇 사림에 대한 처벌을 낮춰달라고 청했을까 하는 점이다. 혹시 자기가 서출인데도 불구하고 잘 대해 주던 사람들이기라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