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0
2부 048화
– 12 –
“남만인이 도성에 들어왔다 했느냐.”
“그렇습니다, 마마.”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다. 남만인이 동래에 도착했다는 장계가 올라왔던 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임금에게 들었다. 조만간 남만인이 도성에 올 거라고, 그러면 나라에 더 많은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그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하께서는 뭐라 하셨느냐?”
“무척 기뻐하시며 동평관에 일단 유숙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 궁으로 들게 하셔서 친견하실 모양입니다.”
동평관(東平館)은 왜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머무르게 하는 숙소다. 본래는 서평관(西平館)이라고 하여 하나 더 있었지만, 왜국 사신이 국초에 비해 줄면서 세종대왕 때 없어졌다.
“그래, 한 명 뿐이냐?”
“그러합니다. 나인을 보내 알아보니 어디서 배웠는지 우리말도 제법 구사한다 합니다.”
중전 김씨가 감찰상궁에게 보고를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그럼 전하께서 오늘은 어느 침소에 드신다고 하더냐.”
“어디도 드시지 않고 강녕전에서 홀로 주무신다고 들었사옵니다.”
“알겠다. 나가보아라.”
중전 김씨는 아무 말 없이 감찰상궁을 내보냈다. 잠시 홀로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했다.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십여 년을 함께 살았던 예전과 너무 달랐다.
남편인 주상은 국사를 돌보지 않을 때는 늘 책만 팠다. 근검절약이 생활화되어 있고 변화를 싫어했다. 무종조부터 내려오는 여러 정책들 중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안이 많이 있지만 굳이 고치지 않았다. 60년 가까이 지나며 이미 자리가 잡힌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위 초부터 10여 년 동안 이어진 금상의 치세는 대체로 현상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외조모를 닮은 김씨는 그런 소극적인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건 엄연히 임금인 남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년 전부터 갑자기 주상이 바뀌었다. 그렇게 나라 살림을 절약하면서 만약을 위해 창고에 비축만 하던 임금이, 쌓인 돈을 펑펑 쓰며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종께서 심으셨던 나무를 베어 목재를 준비하고, 제작을 멈췄던 총포 생산을 재개하고, 전선 건조를 확대했다.
여기까지라면 임금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고만 여기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을 너무 낭비한다고 체직시켰던 김지를 다시 군기시 제조로 등용하고 돈을 퍼부어준 건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김씨는 김지가 만들었다는 귀차 이야기를 듣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만인만 해도 그렇다. 임금은 남만인들이 왜인들에게 염초와 총을 판다는 사실을 알고서 길길이 뛰며 추후 어떤 남만인도 조선 땅을 밟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다. 그런 못된 종자들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저들을 부른다. 조선에 변화를 일으킬 거라면서.
국정 방침이 너무 급하게 바뀌는 게 혼란스러워 상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전에 하던 방침들을 철회하시느냐고. 그랬더니 임금은 이렇게 대답했다.
“무종대왕릉에 참배를 갔다가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무종대왕께서 현몽하셔서는 나를 크게 꾸짖으셨소. 이대로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아니하면 외침을 당해 나라가 망하리라고 말이오. 그래서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이전에 하던 바를 무종대왕 시기의 전례에 따라 바꾸게 되었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어도 중전이 아는 한에서 외침이 있을 기미는 없었다. 명나라와는 더 이상 사이가 좋을 수 없을 만큼 사이가 좋고, 왜국은 늘 그랬듯 자기들끼리 편을 나누어서 싸우는 중이다. 직전신장이라는 자가 패권을 잡더라도 곧 또다시 내분이 벌어지리라.
분명 외침이 있다 해도 그 규모는 변경을 노략질하는 야인이나 왜구 수준일 것이다. 침략이 그 정도라면 기존에 유지하던 군비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강무관을 세운다, 총포를 갖춘다 하며 비용을 들였다. 꿈 한 번으로 바뀌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급격했다.
바뀐 부분은 군주로서의 태도만이 아니었다. 남편으로, 지아비로서 보이는 태도도 바뀌었다.
“후궁전에 가지 않는 이유? 뭐, 그야 딱히 가고 싶지 않아서 그렇소만….”
예전에 주상은 술을 비롯한 잡기는 일체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색만은 자제하지 못했다. 성종대왕을 본받은 군주가 되고 싶다더니 후손을 생산하는 방면에서도 그 본을 따르려는 듯 열심이었다. 무종, 명종, 인종까지 모두 후궁은 둘, 셋에서 그쳤는데 금상만 벌써 다섯이었다.
게다가 병이라도 나지 않으면 절대 혼자 자는 법이 없었다.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중궁전 아니면 후궁 처소 중에 어딘가를 찾았다. 하룻밤에 방사를 여러 번 치르지도 않고 딱 한 번에 해도 금방 끝났지만, 한 번도 안 하고 자는 날은 절대로 없었다.
그러던 금상이, 2년 전 갑자기 태도가 바뀐 그날 이후로 무려 석 달 동안을 어느 침소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중궁전에 들고, 다른 후궁들을 찾게 된 뒤에도 이틀에 하루 꼴로 혼자서 잤다. 대신 한번 동침하면 서너 번씩 방사를 치렀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격렬하게.
이러다 보니 당연히 궁궐 안팎에서 임금이 마치 다른 사람 같다는 구설수가 샘처럼 솟았다. 하지만 적어도 궁궐 안에서는 그 샘이 땅 위로 솟지 않았다. 임금의 행동이 달라진 초창기에 중전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린 박 상궁이 어찌 되었는지,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전 스스로도 의구심을 갖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임금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니, 기억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임금이 ‘기억하는’ 사건들은 어딘가 기록이 있거나 내관, 궁녀들이 들려줄 수 있는 것뿐이었다.
과거 임금은 중궁전에 들면 방사를 치른 뒤에 중전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국정을 이끌며 느낀 고민, 학문적인 토론, 커나가는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공식적인 기록이 없는, 옆에서 들은 이들도 없는 이런 대화에 대해서…주상은 지금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중전이 은근슬쩍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두루뭉술하게 넘기거나 다른 화제를 꺼내 회피하곤 했다. 한두 번이라면 모른다. 어떻게 매번 그럴 수가 있는가.
임금이 달라지고도 2년이 지난 지금, 궐내에서는 더 이상 불온한 소리를 내뱉는 자가 없다. 내명부 질서가 잡혔다는 의미이니 내명부를 이끄는 중전으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지금 임금이 보이는 태도나 성격이 싫은 것도 아니다. 애초에 그녀도 얌전한 규수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함께 보낸 15년이 넘는 세월이 없어졌다. 지아비와 지어미로서 살을 맞대고,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내던 세월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분명히 자신의 남편이건만 자신의 남편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날 밤 임금은 어쩐지 몸이 좋지 않다면서 누구 침소에도 들지 않고 혼자 잠들었다. 그 탓일까. 혹시 기억을 잃고, 행동을 바꾸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이런 문제는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다. 자신은 임금에 대해 의혹을 품는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아야 할, 최후까지 임금 편이 되어야 할 중전이니까.
김씨는 수십 번도 더 곱씹은 낡은 고민을 다시 마음속에 쟁여 넣었다. 언젠가 허심탄회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상감과 이야기할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밤도 도무지 잠들지 못할 듯 했다.
– 13 –
“친절한 대우에 감사드립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지요.”
진심 가득한 인사를 받은 하인은 계면쩍게 웃으면서 물러갔다. 일본에서 온 사신들이 묵는 숙소라더니, 그래서인지 시중을 드는 이들도 일본어가 능숙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동래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만난 조선인들도 수는 많지 않았지만 모두 세스페데스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과거 십여 년 동안 조선에 찾아온 선배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딱 잘라 입국을 거절당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리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 기회는 실로 주님께서 내려주신 것일세. 만의 하나라도 실수를 범해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게.”
일본 주재 신부들의 영수격인 프로이스 신부는 사카이를 출발하기 전에 세스페데스를 만난 자리에서 그를 붙잡고 꼭 성공해야 한다고 세 번, 네 번 강조했다.
“우리는 이미 20여 년 전에 빌레라 신부를 조선에 보내서 선교를 시도했지만 조선 국왕이 입국을 거부하는 바람에 조선 땅도 밟아보지 못했지. 빌레라 신부는 쓰시마에만 한참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어. 그 뒤에는 쓰시마까지도 가지 못했고.”
가스파 빌레라(Gaspar Vilela) 신부는 프로이스와 같은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로, 1556년에 일본에 와서 정말 초기 선교를 맡았다. 프로이스와 함께 교토에 있다가 규슈로 옮겨서 선교를 하던 중 12년 전인 1572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조선에 가려고 처음 시도한 건 1568년이었다.
“빌레라 신부 이후로, 그 뜻을 이어받아 몇 번이나 조선으로 가는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지. 그러던 참에 스스로 우리를 맞으러 오다니, 이 어찌 주님의 뜻이 아니겠나.”
프로이스가 말없이 성호를 그으며 신의 뜻을 찬양했다. 세스페데스도 마주 성호를 그었다.
“다만, 이건 조선 국왕 혼자서 추진하는 일이라 하니 주의해야 하네. 조선 정부는 내외가 모조리 유학자들로 꽉 차 있어. 일본과 달리 조선은 중국에 버금가는 유학자들의 나라라 종교 자체에 호의적이지 않다 하니, 그들이 수상한 눈치를 채고 반발하면 전교가 실패할 수 있네.”
“알겠습니다.”
과연 조선은 일본과 달랐다. 일본은 사방에 불교 사원이 널려 있는데, 상륙지인 동래에서는 사찰도 승려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행하는 관리에게 왜 여기는 절이 하나도 없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건 다 못 배운 것들이나 믿는 거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 외에는 비교적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배를 타고 내륙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강물이 얕아진 뒤에는 말을 타고 커다란 산을 넘고, 고갯길을 넘은 뒤에는 다시 배를 탔다. 물결치는 강물에 배를 맡기고 자연스레 도착한 곳이 조선의 수도, 한양이었다.
세스페데스가 생각하기에 여정의 대부분이 수로였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고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편히 여행하라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가능한 조선인들에게 서양인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동안 만난 조선인은 선원들, 그리고 관리들뿐이었다.
이는 분명 그동안 나라 문을 닫았던 데서 비롯된 결과이리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신하와 백성들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 군주가 고심 끝에 택했을 법한 방법이다.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이용해 국왕을 제대로 설득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선교의 문이 열리리라.
조선도 중국과 같이 군주가 절대적인 힘을 갖는 나라라고 했다. 그 말은 곧 국왕이 확고한 결정만 내리면 모든 문이 활짝 열린다는 뜻이다. 일본처럼 각 지방마다 영주를 따로 설득하고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 군주 한 사람만 설득하면 전국이 일시에 열린다.
스스로 선교사를 부른 국왕이다. 분명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며 세스페데스는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취침 전 기도는 마쳤건만, 자리에 눕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기도문이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14 –
“하늘이 무척 맑구나.”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누군가는 마음 속 가득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누군가는 기쁘고 즐겁게 잠들었을지도 모르는 밤이지만, 나는 너무나 기쁘고 벅차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드디어 서양인이 온다, 유럽인이 온다! 기왕이면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 왔으면 좀 더 말이 통하는 상대였겠지만, 스페인인이라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아쉬우면 어떤가, 유럽인인 걸.
십 수 년을 떨어져 있었지만, 유럽인이 온다고 하니 내가 예전에 얼마나 서구화된 세상에서 살았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까놓고 말해서 현대사회는 서구가 만든 사상과 기술을 기반으로 성립된 세계니까 말이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1584년이니까, 아직 돈키호테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거다. 세르반테스는 분명 살아있겠지만 아직 돈키호테를 쓰지 않았다. 레콘키스타?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로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투우? 레판토 해전?
내가 유럽에 대해, 스페인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저 선교사가 알면 얼마나 놀랄까? 물론 저들이 겪을 미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지. 공연히 잘못 흘렸다가는 상황이 어떻게 꼬일지 모른다. 저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만 살며시 비쳐도 충분하다.
“전하, 지금 막 남만인이 궐문에 도착했다 하옵니다.”
“아, 그러하냐.”
내관이 급히 알리는 소식을 듣자 내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 찼다. 하지만 정전 안을 가득 메운 신하들 사이에는 불편한 공기가 고조되었다. 충분히 이해했다. 낯선 외국인, 그것도 지난 십여 년 동안 계속된 국정 기조를 거스르고 들어오게 한 외국인이다. 편할 리가 없다.
다행이라면 호기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 신하들도 여럿이라는 점이다. 비교적 열린 사고를 가진 이들은 어디에든 있으니까 말이다. 아직 성리학이 교조화되지도 않았고.
“남만인 세스페데스 듭시오~!”
낭랑한 외침과 함께 정면 문이 열리고, 검은색 사제복을 입은 세스페데스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유럽인의 외모에 사방이 술렁거렸지만, 나는 벅차기만 했다. 드디어 왔다, 드디어 왔어! 유럽과 내가 연결이 됐다고!!!!!
세스페데스는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알현하는 예법에 맞춰 내게 절을 했다. 제법 열심히 연습했는지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린 채 내게 첫인사를 했다. 세스페데스가 조선말을 제법 잘 구사한다고 들었기에, 뭐라고 인사할지 솔직히 기대가 되었다.
“안녕하시무니까, 저는 에스파냐에서 온 예수회 전교사 세스페데수라고 하오무니다. 조선 국왕 폐하를 만나 진시무로 영관스럽사오무니다.”
…일본인에게 어설프게 조선말을 배웠구나. 사역원에 보내서 말부터 제대로 가르쳐야겠다.